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402)
회귀해서 건물주-402화(402/740)
403
일주일 후.
일산의 한 복덕방.
드르륵.
복덕방 문이 열리면서 두 사람이 나왔다. 한 사람은 60대 중반으로 보이고 또 한 사람은 이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남자였다.
복덕방을 나온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근처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상한 건 두 사람의 표정이었다.
마치 무슨 일이라도 있는 듯 약간 상기된 표정, 그렇다고 슬프거나 노여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조용히 승용차에 올라탄 두 사람.
철컥!
운전석에 앉은 젊은 남자가 문부터 잠갔다. 안에서 문을 잠근다는 건 혹시라도 있을 밖으로부터의 위협에서 자신들을 보호하겠다는 의미일 터.
한밤중도 아니고 벌건 대낮에 하는 행동치고는 어딘가 이상한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 번 더 잠금장치를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하아…….”
그리고 잠시 뒤.
샤락!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통장을 넘겨 조금 전에 찍힌 금액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젊은 남자가 먼저 물었다.
“얼마예요?”
“오십억, 자네는?”
“오백억이요.”
“…….”
“…….”
말이 없던 두 사람이 어느 순간 얼굴을 마주 봤다.
“현성아!”
“네, 아버님!”
그렇다. 벌건 대낮에 문까지 걸어 잠그고 통장의 잔액을 확인하던 사람은 바로 현성과 박희철이었던 것이다.
일주일 전 강릉에서 출발하기 전에 이미 전화로 복덕방에 매매를 의뢰했었다. 어차피 3년 전에 거래했던 복덕방이라 말하기도 쉬웠다.
매매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고, 명의이전과 양도세까지 모든 과정이 끝나고 오늘 매매대금을 입금받은 것이다.
박희철이 믿지 못하겠다는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으윽!”
“그만 하세요. 꿈 아니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아서 말이야. 4월에 신도시로 발표 날 때까지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막상 통장에 오십억이라는 돈이 찍히고 나니까 나도 모르게 자꾸…….”
박희철의 말은 길게 이어졌다.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만, 결론은 여전히 하나였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건 사실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3년 전에 처음 이곳 땅을 살 때부터 이미 기본 100배는 오를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현성이 산 땅은 나중에 아파트가 들어설 곳이었기에 중개수수료며 양도세까지 다 제하고도 기본 오백억은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사람의 감정이란 게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그 금액을 눈으로 확인하니 마음이 진정이 안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생각만 하는 것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확실히 달랐던 것이다.
박희철의 말이 끝나자 현성이 바로 물었다.
“아버님,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제일 먼저 선산부터 다시 찾아야지.”
“선산이요?”
“그래, 내가 자식들한테 배신당하고 사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선산을 팔았었거든. 조상님들한테 큰 죄를 지은 거지. 그래서 그것부터 찾을 생각이네. 두 배, 아니 열 배를 달라고 하더라도 그것부터 찾을 거네.”
박희철이 잠시 호흡을 조절한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남은 돈은 일단 꽉 쥐고 있을 생각이네. 예전과 같이 자식들한테 미리 퍼줄 생각은 조금도 없네. 한 번은 당했지만 두 번 당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아, 네…….”
당연한 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돈이 힘이라고 했다.
그나마 나이를 먹어도 수중에 돈이 있을 때 자식들이 한 번이라도 더 찾아오는 법이다.
그렇지 않고 일찌감치 자식들에게 유산을 나눠주고, 흔한 말로 개밥에 도토리가 되는 신세를 많이 봤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그런 인간 말종들이 많다는 것을 전생에서 많이 봤었기에 현성으로서도 그 부분은 뭐하고 할 말이 없었다.
이번엔 박희철이 물었다.
“자네는 어찌할 텐가?”
“군대 가기 전까지 식당 용지 기본 공사는 끝내고 주변 조경도 어느 정도는 공사를 끝낼 생각입니다. 그리고 땅도 더 구매할 생각이고요.”
“땅을 더 산다고? 내가 알기론 이미 충분히 산 걸로 아는데?”
“네, 지금까지 십만 평을 샀는데 그거로는 부족할 거 같습니다. 계획이 추가됐거든요.”
박희철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물었다.
“십만 평이 모자란다고?”
“네, 그렇습니다. 사실은 농씸에서 …….”
현성은 신춘오 회장과 나눴던 얘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희철이 누구인가. 물론 전생에서는 둘도 없는 악연이었지만, 이번 생에서는 어찌 됐건 자신이 출발할 수 있도록 디딤돌이 되어 준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최소한 앞으로의 계획은 미리 설명을 하는 게 인간적인 도리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현성의 설명이 끝나자 박희철이 놀란 표정으로 바로 물었다.
“농씸에서 공장을?”
“네, 회장님께서 이미 결정하신 사안입니다. 앞으로 5년 이내에 저는 그 기본 바탕을 다 만들어야 합니다.”
“허허, 그렇단 말이지…….”
박희철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시 눈을 살짝 감았다.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한 듯 박희철이 현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건 상상 이상인데……, 그렇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 혹시 말이야, 내가 도와줄 건 없겠는가?”
“저는 이미 말씀드린 거 같은데요?”
“음? 그게 무슨 소린가? 나한테 언제?”
“형님들 말입니다.”
“형님들? 혹시 우리 민수와 범수를 말하는 건가?”
현성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희철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한테 그 녀석들을 3년 동안 데리고 있으라고 한 건가?”
“겸사겸사요.”
“겸사겸사?”
“네, 제일 중요한 건 우선 아버님과 같이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건 아버님도 가장 바라시는 것일 테고요.”
박희철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만, 형님들은 아마도 한국 음식은 물론이고 말도 어눌할 거 같고, 한국인으로서의 기본적인 것, 예를 들어 국민교육헌장이나 애국가는 아예 모를 거 같은데, 그 정도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자신의 뿌리인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허, 그러니까 자네 말은 지금 그 녀석들을 한국 녀석들로 만들어라, 이 말인 거지?”
“네, 맞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아버님의 책임도 어느 정도는…….”
“하하, 하하하…….”
현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희철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내 자식들이니까 나보고 책임을 져라?”
“솔직히 틀린 말도 아니지 않습니까? 헤헤…….”
현성은 일부러 가볍게 웃었다.
강압보다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효과가 있었던 걸까.
박희철의 표정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알았네. 듣고 보니 자네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는 거 같네. 내 욕심에 내가 다 저지른 일이니까 말이야. 자네 말처럼 어쩌면 이 녀석들은 김치도 제대로 못 먹을지도 몰라. 이제부터라도 하나씩 가르쳐 보겠네.”
“쉽지는 않을 겁니다.”
“당연하겠지. 세월이 얼만데, 자그마치 25년이야. 그 세월을 거꾸로 돌릴 수도 없는 일이고……, 어찌 됐건 내가 최선을 다해보겠네.”
현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희철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내가 3년 동안 이 녀석들을 제대로 된 인간으로 만들었다 치고, 과연 이 녀석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는가?”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응? 그 말은 이미 이 녀석들에게 맡길 일을 정했다는 건가?”
현성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 반대입니다.”
“반대?”
“네, 제가 군대 제대하고 나면 그때부터 찾을 겁니다. 형님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저와 함께 직접 일을 하면서 찾게 될 겁니다.”
“자네와 함께?”
“네, 바닥부터 시작할 겁니다. 저 또한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제 발로 직접 뛰면서 같이 할 겁니다. 그러다 보면 형님들한테 맞는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바닥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박희철은 운전하는 현성을 힐긋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삽질부터 시작할 것이고 그다음은 식당 청소도 있을 것이고 할 일은 그 밖에도 무지 많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일부러 형님들한테 힘으로 하는 일만 시키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제일 중요한 건 형님들의 마음가짐입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게 겉멋이고요.”
“겉멋?”
“굳이 그 의미는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 테고, 어찌 됐건 저는 최대한 형님들의 적성을 살릴 겁니다. 그러니 아버님은 제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제가 군대 제대할 때까지 기본 틀만 제대로 잡아 주십시오.”
“허허, 기본 틀이라…… 그다음은 자네가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고, 알았네. 생각해 보니 그게 또 맞는 거 같네.”
박희철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자신을 봐서라도 관리직 자리를 언급하길 바랐다. 어쨌거나 외국에서 공부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현성은 관리직 자체는 아예 언급도 안 했다. 오히려 삽질이나 청소부터 시작하겠다는 말로 입을 막아버렸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할 말이 없는 게 본인 자신도 같이하겠다고 하니 뭐라고 항변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한 말이 사람을 더 기가 막히게 만들었다.
겉멋은 사절.
그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한마디로 괜히 유학물 먹었다고 깝죽거리지 말라는 얘기다. 하긴 실패해서 고국으로 돌아오는 마당에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일단은 두고 보는 수밖에.
두 사람을 태운 승용차는 한강을 지나 어느덧 중부 고속도로로 향하고 있었다.
현성이 슬쩍 입을 열었다.
“아버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 아니야. 그냥 이런저런 생각.”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 혼자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아버님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래 주실 거죠?”
“허허…….”
박희철은 대답 대신 그저 웃고 말았다. 혹시나 이제는 뒷방 늙은이로 밀려나는 줄 알았다. 아니, 그렇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뭐지?’
아직은 아니라 이건가.
그 진위야 더 두고 보면 알 것이고, 그런데 웃긴 건 표정 관리가 안 된다는 것이다.
박희철은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바라봤다. 그렇지 않으면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들킬 거 같았기 때문이다.
승용차는 어느새 중부고속도로 위를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
다음 날.
현성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복덕방이었다.
“어서 오게, 김 사장!”
현성이 들어가자 복덕방의 박인수 사장이 반갑게 맞았다.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나야 잘 있었네. 솔직히 그게 다 김 사장 덕분 아니겠는가. 말이 나와서 말이지…….”
박인수 사장의 말이 좀 더 이어졌다. 시골이다 보니 매개 건수가 없어 힘들다는 푸념이었다. 그 말끝에 현성은 벽에 걸린 지도 앞으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사장님, 그럼 이제부터 일 좀 하셔야죠?”
“왜? 무슨 또 건수라도 있는가?”
“여기 지도를 봐주세요. 바로 이곳을 중심으로…….”
현성은 손으로 어느 지점을 정한 뒤 길쭉하게 원을 그렸다.
그러자 박인수 사장의 눈이 금세 놀란 표정으로 변했다.
“설마 거기를 다……?”
“설마가 아니라 이 골짜기 일대를 다 매입해 주십시오.”
“그 골짜기 전체를 다 말인가? 거기는 돌이 많아서 농사도 못 짓는 땅인데?”
“네, 그래서 더 좋습니다. 여기 다 매입하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음…… 글쎄, 거기 주인이 여러 사람이라 맞나봐야 알겠지만 넉넉잡고 6개월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잠깐 생각을 하던 현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3개월 안에 끝내주시면 제가 중개수수료 외에 한 장 더 드리겠습니다.”
“한 장을 더?”
“네, 가능하시겠습니까?”
“무조건 가능하도록 만들어야지. 알았네. 내가 내일부터, 아니, 오늘 당장 움직이겠네. 그나저나 그 넓은 땅을 뭐 하려고?”
“죄송하지만 그건…….”
“아, 알았네. 내가 그 용도까지 알 필요야 없지.”
현성은 일부러 농씸의 공장이 들어설 것이라는 말은 숨겼다. 혹시라도 말이 새 나가기라도 하는 날에는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 지장이 있을 지고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제 박희철한테도 그 얘기를 하면서도 그 부분은 철저히 비밀을 부탁했던 것이다.
현성은 복덕방을 나오기 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사장님, 그리고 혹시 이 동네에서 상가나 건물 나오는 거 있으면 다 잡아주세요.”
“상가에 건물까지?”
“네, 무조건 다요.”
“무조건……? 아, 알았네. 그런데 그걸…….”
박인수 사장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의 본분은 어디까지나 그저 중개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기 때문이다.
복덕방을 나온 현성은 트럭이 세워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저 앞에서 두 사람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어? 저 자식들은…….’
현성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