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407)
회귀해서 건물주-407화(407/740)
408
박희철의 둘째 아들인 박범수.
그가 한국에 들어와 아버지인 박희철과 함께 지낸 지도 어느덧 한 달째.
아침 밥상을 마주한 두 사람.
“아버지…….”
“왜?”
“이걸 꼭 먹어야 해요?”
박범수 앞에는 개인 접시에 김치 세 조각이 담겨있었다. 말하는 그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어두웠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에 세끼 밥을 먹으면서 끼니마다 무조건 김치 세 조각은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가 생활비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 달 전,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 박희철의 조건은 딱 하나였다.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를 것.’
당연히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일본에서 벌인 사업이 한마디로 쫄딱 망해서 빈 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잘나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무리한 투자가 결국 발목을 잡고 말았다. 부도 직전까지 갔었고 모든 걸 포기하려던 순간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고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같이 생활을 하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식습관이었다.
워낙 어려서 일본으로 건너간 터라 한국의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김치, 그런데 문제는 그 김치를 먹어야 생활비를 아버지로부터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맘대로 해.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굳이 먹지 않아도 돼.”
박범수와는 다르게 박희철의 표정엔 여유가 있었다.
물론 먹는 거 가지고 조건을 내세운다는 게 유치하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한국인의 입맛을 찾기 어려울 거라는 판단하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외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하지만 한국 사람으로서 최소한 김치 정도는 먹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게 박희철의 신념이었다.
“아버지 치사하게 진짜 이러실 겁니까?”
“허허, 참. 굳이 안 먹어도 된다니까.”
“으으…….”
박범수는 어쩔 수 없이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우적우적.
‘어?’
억지로 김치를 씹던 박범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어제저녁까지도 김치를 씹는 식감은 물론이고 김치의 매운맛 때문에 김치 한 조각을 다 먹으려면 물을 몇 번씩 먹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 김치맛은 어제와 비교하면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아버지?”
“어, 또 왜?”
“이상해요.”
“또 그 소리.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 한 달쯤 됐으면 그냥 조용히 먹거라. 네가 무슨 서너 살 먹은 애냐? 매번 똑같은 소리를 하게?”
“아니, 그게 아니고요, 어제와 김치맛이 달라요. 어제까지는 식감도 별로고 젓갈 냄새 때문에 먹기가 힘들었는데 오늘은…….”
박범수의 말이 길어졌다. 결론은 어제와는 다르게 김치가 먹을 만하다는 것이었다. 박범수의 말이 끝나자 박희철이 웃으며 바로 물었다.
“허허, 그게 진짜야?”
“네, 어제저녁까지도 분명히 억지로 먹었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렇게 김치맛이 강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박범수는 생각할수록 신기할 뿐이었다. 하루 만에 이렇게 입맛이 달라진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우적우적.
박범수는 다시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그런데 역시나 입맛은 확실히 어제와는 달랐다. 그렇다고 물론 전혀 거부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젓갈 냄새 때문에 코를 막고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 이 정도라면 세 조각이 아니라 그 이상도 충분히 먹을 수 있을 듯싶었다.
“하하, 하하하…….”
박범수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30분 후.
설거지를 끝낸 박범수가 박희철 앞에 당당히 앉았다.
“아버지, 이젠 아버지 차례입니다. 저는 한 달 동안…….”
“옜다.”
박희철은 박범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한 달 동안 김치를 먹으면 주겠다고 약속했던 생활비였다.
봉투를 받아든 박범수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즐거운 듯 웃음이 귀에 걸렸다.
그 모습을 바라본 박희철이 물었다.
“그리도 좋냐?”
“네, 마치 옛날로 돌아간 거 같아요.”
“옛날?”
“네, 혹시 아버지는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그때가 국민학교 1학년 때였어요. 그날 처음으로 받아쓰기 시험을 봤는데 제가 백 점을 받은 거예요. 그날 아버지가 잘했다고 하면서 천 원을 주셨잖아요.”
박희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기억이 난다. 근데 문제는 그게 시작이었다.
욕심이 났다. 어떡하든 남의 자식들보다 잘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국민학교 1학년을 마치자마자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잘못이었다는 걸 알았을 땐 시간이 너무 지난 후였다. 처음 몇 년 동안 적응을 못 했을 때라도 바로 다시 데리고 돌아왔다면 그 어린 것이 타국에서 그 설움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을 땐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보상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었다. 그땐 또 그게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보상이라고 생각했었다.
악수(惡手)는 또 다른 악수를 부른다고 했다.
자신의 경우가 그랬다. 미안한 마음에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어느 순간 그의 머릿속엔 돈이 최고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결국, 그 폐해는 고스란히 박희철 자신에게 돌아왔다. 그에겐 아버지보다도 돈이 더 우선이었던 것이다.
박희철은 박범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미안하구나.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만 있다면…….”
“저는 그때 너무 행복했거든요. 돈도 돈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시니까 그래서 더 열심히 했던 건데…….”
박범수는 하던 말을 멈추고 고개를 젖혔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후회했던 게 바로 그때 처음으로 백 점을 맞았을 때였다. 그때 만약 백 점을 맞지 않았더라면 그 어린 나이에 말도 안 통하는 일본으로 유학을 오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때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안건 아주 시간이 많이 지난 후였다.
자신을 일본으로 보낸 건 아버지의 욕심이 아니라 자신을 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한 아버지의 큰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시지탄(晩時之歎).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땐 이미 모든 게 끝난 상태였던 것이다.
박희철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이겠지만,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아버지.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그 모든 게 제가 부족해서 그렇게 됐다는 걸 말입니다. 아버지는 그저 어떡하든 제가 잘되기를…….”
“범수야!”
박범수의 말이 끝나기 전에 박희철이 나긋한 목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박범수가 박희철을 바라봤다.
“네, 아버지.”
“아니다, 내가 욕심이 너무 과했다. 그땐 그게 너를 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게 너를 위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그랬다는 걸…….”
“아버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아니야, 아니야. 내가 너무 바보같이…….”
“아버지 그건…….”
두 사람은 서로의 말을 끊으며 자신의 탓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는 반복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박범수가 박희철을 불렀다.
“아버지!”
“어? 어…….”
“아버지, 우리 이렇게 해요!”
“응? 뭘 어떻게…….”
박희철은 박범수의 단호한 목소리에 그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때 박범수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왔다.
“쌍방과실이요.”
“쌍방과실?”
“네, 아버지 말씀처럼 아버지도 잘못이 있고 저 또한 잘못이 있으니까 서로 남 탓을 하며 원망하지는 말자는 겁니다.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닌 서로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되돌아보는 겁니다. 네? 아버지?”
“…….”
“저도 처음에는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야 그게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라 제가 많이 부족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버지 또한 저한테 분명히 섭섭한 게 있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말하는 박범수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중한 모습이었다. 그의 말은 그 이후에도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의 말을 듣던 박희철은 어느 순간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렇게 한 사람은 계속 얘기하고 또 한 사람은 눈을 감은 채 그의 말을 듣는 것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이어졌다.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먼저 눈물을 보인 건 눈을 감고 있던 박희철이었다. 그의 감은 두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주름을 따라 옆으로 흐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눈 밑으로 바로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범수 또한 어느새 울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눈물이 흐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입을 벌려 울기 시작했다.
“엉, 엉, 으엉…….”
그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그의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박희철은 자신의 입술을 더욱 세게 깨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25년 동안 풀지 못했던 감정의 골을 허물고 있는 것이었다.
***
30분쯤 지났을까.
방 안에 울음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듯싶더니 박희철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고맙다.”
“저도 고맙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마음고생 많았다. 그런데 하나만 물어도 되겠느냐?”
“네, 말씀하세요.”
박범수는 박희철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희철이 바로 물었다.
“언제부터냐?”
박희철은 지금 박범수의 심경 변화 시점을 묻고 있는 것이다. 박범수는 항상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 대화에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지금 언제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네? 뭐가 말입니까?”
“내가 알고 있기론…….”
박희철은 질문의 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박희철의 설명이 끝나자 박범수가 바로 말을 이었다.
“그날입니다.”
“그날?”
“네, 4월 27일이요. 그날 제가 아버지께 먼저 전화를 드렸고 통화를 끝낸 후 전화를 끊었는데 잠시 후에 아버지가 다시 전화를 주셨던, 바로 그날이요.”
“4월 27일?”
4월 27일은 박희철 자신에게도 특별한 날이다. 그날은 바로 일산이 신도시로 발표되던 날이다.
당연히 기억이 난다. 그날 속보가 끝나자마자 현성이한테 가려고 일어났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바로 둘째인 박범수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그 순간엔 당연히 TV로 속보를 보고 전화를 한 줄 알았다. 전화를 끊을 때까지도 돈 냄새를 맡고 전화를 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 걸 큰 녀석인 박민수와 통화를 하고 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그래서 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었다.
박희철은 다시 물었다.
“그날이 왜?”
“그날 아버지가 저한테 뭐라고 그러셨는지 기억하세요?”
“내가? 음…… 글쎄다.”
“그날 아버지는 저한테 묻지도 않고 바로 아무 걱정하지 말고 그냥 한국으로 무조건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기억나십니까?”
당연히 기억이 난다. 큰 녀석을 통해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았기에 굳이 이유를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바로 그냥 돌아오라고 했던 것이다.
박희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박범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은 그날 그게 마지막 전화였습니다.”
“마지막 전화?”
박희철은 갑자기 ‘마지막’이라는 말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너, 설마……?”
“…… 맞습니다. 그날이 바로 부도나기 하루 전이었거든요.”
“야, 이놈아. 그러면 그렇다고…….”
“헤헤.”
박희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범수가 아이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다시 바로 말을 이었다.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 ‘나한테는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아버지가 있지’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날 급하게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팔아 일단 부도부터 막았습니다. 그리고 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 인생 실패의 모든 원인이 저한테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전까지는 원망만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핑계를 찾기 위한 저의 못난 행동이었다는 걸 그날에서야 깨달은 겁니다. 그러고 나니까 지난날들이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새롭게?”
“네, 저를 어려서 유학을 보낸 이유도 그동안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보였고 그뿐만이 아니라…….”
박범수의 말이 다시 길게 이어졌다. 박희철은 이번에도 조용히 그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말이 끝나자 바로 물었다.
“그래서?”
“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할 작정이냐?”
“다시 시작할 겁니다. 한 번의 실수는 했지만 두 번 실수는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김치를 먹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박범수는 말끝에 미소를 지은 후 바로 말을 이었다.
“제 몸은 역시 한국 토종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솔직히 평생을 먹어도 김치를 못 먹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한 달 만에 적응이 되더라고요. 이런 식이라면 몇 달 뒤에는 김치 없이는 밥을 못 먹겠다고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정말이냐?”
“네, 저도 신기할 정돕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젠 음식 말고 다른 것도 하나씩 배우고 싶습니다.”
“허허, 그렇단 말이지…….”
박희철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 뭔가를 들고나왔다.
박범수가 바로 물었다.
“그건 달력 아닙니까?”
“뒷면을 보거라.”
샤락.
달력을 넘겨 뒷면을 확인한 박범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커다란 달력 뒷면에는 글씨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맨 위에는 ‘국민교육헌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박범수는 다시 물었다.
“혹시…… 이걸 다 쓰는 겁니까?”
박희철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리곤 바로 말을 이었다.
“외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