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409)
회귀해서 건물주-409화(409/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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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갑 연대 신병 대기 막사.
하루 전에 1사단 신병교육대를 수료한 신병들이 막사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자엔 한일(一)자로 작대기 하나가 달려 있었다.
주먹을 쥔 양손을 무릎에 올려놓은 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긴장이 된 듯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 오직 한 사람만은 다른 신병들과 다르게 긴장한 기색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의 오른쪽 가슴에 적힌 세 글자.
[김현성]어찌하다 보니 군대를 두 번 간 바로 그 현성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또 한 사람, 바로 김동수였다.
“야, 힘 빼. 어차피 10시 될 때까지는 아무도 안 와.”
현성이 김동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러자 김동수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야, 말 시키지 마. 조용히 눈알도 굴리지 말고 앉아 대기하라고 그랬잖아.”
“그거야 그냥 하는 말이고.”
“…….”
김동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몇 마디를 더 붙여봤지만, 그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쩝.
현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맛을 다신 후 이번엔 오른쪽에 앉은 신병을 향해 말했다.
“야, 백두순. 너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나중에 제대할 때 여기서 다시 만나자. 자대 가서도 부디 사고 내지 말고 운전 조심하고, 아무쪼록 무사히 제대하길 바란다. 내가 나중에 제대할 때 다시 말하겠지만 농사지을 거면 나한테 와라. 내가 볼 때 너는 농사가 천직이다.”
“……?”
“그리고 하나 더, 혹시나 자대 가더라도 삽질 너무 잘하지 마라. 신교대에서처럼 그렇게 열심히 했다가는 제대할 때까지 일복 터진다. 적당히 하라고. 더도 덜도 말고 딱 중간만 해라. 농담 아니니까 꼭 명심해.”
“……?”
여전히 말이 없는 백두순이었다. 물론 선택은 그의 몫이겠지만 그나마 현성으로선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충고였다. 어쨌거나 그는 삽질 하나만큼은 훈련병들 중에서 최고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현성은 훈련소에서 친하게 지냈던 동기들 앞으로 다가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어차피 지금 헤어지면 제대할 때나 다시 볼 수 있는 동기들이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무사히 군 생활 마치고 제대할 때 보자.”
현성은 대답 없는 동기들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았다.
그때였다.
“진짜야?”
오른쪽에 앉은 백두순이 속삭이듯 물었다.
그가 물어볼 말은 한 가지밖에 없다. 조금 전 현성이 농사지을 마음이 있으면 자신한테 오라고 했던 말.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말했다.
“물론이다. 내가 앞으로 농사를 크게 지을 생각이다. 최소한 5만 평은 하우스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너 같은 진짜 농사꾼이 꼭 필요하다. 앞으로 큰 식당을 운영할 계획인데 거기서 쓸 야채를 직접 키울 거거든. 농담 아니니까 제대할 때까지 잘 생각해 봐.”
“…….”
백두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현성은 진심이었다.
자고로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신교대에서 4주 차에 대민 지원을 하루 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그를 보는 순간 이놈은 천상 농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진심으로 말했던 것이다.
5분 전 10시.
“자, 지금부터 더블백 메고 밖으로 집합한다. 실시!”
“실시!”
현성도 큰 소리로 복창을 한 후 더블백을 둘러멨다. 신춘오 회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군 생활을 다시 하기로 선택한 이상 이왕이면 제대로 해볼 참이었다.
그래서인지 복창하는 현성의 목소리가 유독 컸다.
밖으로 나온 병사들의 표정은 조금 전 막사에 있을 때보다 더욱 굳어 있었다. 거기다 날씨까지 바람이 불고 춥다 보니 병사들의 표정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경직돼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모자를 꾹 눌러쓴 그들의 눈빛만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게 바로 신병의 군기라는 것이었다.
여단 인사과장의 짧은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각 대대의 인사장교들이 순서대로 호명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현성이 아는 얼굴이 앞으로 나섰다. 6233부대 인사장교인 유진철 중위. 3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그의 특이한 외모 때문이었다.
얼핏 보면 여군으로 착각할 정도로 곱상한 그의 얼굴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성격은 부드러운 외모와는 정반대일 정도로 상당히 거칠었다.
처음에 보통 그의 외모만 보고 깝죽거리다가 혼쭐이 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바로 입을 열었다.
“김현성.”
“이병, 김 현 성!”
“김동수.”
“이병, 김 동 수!”
현성이 먼저 튀어 나갔고 곧이어 김동수가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바로 유진철 중위가 타고 온 짚차에 올라탔다.
짚차는 구형 K111 모델이었다. 한국전쟁 시 미군에 의해 들어온 M38A1 모델을 기본으로 아시아자동차에서 생산한 군용 짚차다.
개인적으로 운전병으로 있으면서 가장 탐났던 차종이다. 차체는 작지만, 사륜구동이라 높은 산꼭대기까지도 못 올라가는 데가 없을 정도로 힘은 기본이고 잔고장도 없었다.
단, 흠이 있다면 최고속도가 96km/h 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군대에 있으면서 그 속도 이상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통일로를 달리던 짚차는 어느새 큰길을 벗어나 주내 삼거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음…….’
현성은 예전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때 당시 운전 연습을 하며 다니던 길이다. 훗날에야 이 도로가 포장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비포장도로였다.
운전 중에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차에서 내려 뛰어야만 했다. 그렇게 뛰고 나면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전투복이 땀으로 흠뻑 젖곤 했었다.
“김현성.”
“이병, 김 현 성!”
유진철 중위가 부르자 현성의 입에선 자동으로 관등성명이 나왔다. 군 생활의 기본이다.
아무리 세월이 지났지만, 군복을 입으니 뇌에서 자동으로 반응하는 듯했다.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네, 그렇습니다!”
어찌하면 군 생활을 잘하는지 알고 있는 현성의 목소리는 짧고 굵었다.
그래서였을까.
유진철 중위의 곱상한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 미소에 속아서도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현성이었다.
“대대장님께서 빨리 보고 싶어 한다. 김 병장, 조금만 빨리 가자!”
“네, 알겠습니다.”
운전을 하고 있는 김민혁 병장, 물론 현성도 잘 알고 있는 이름이다. 어디에나 꼭 있는 신병 킬러, 운전 교육은 거의 전담하다시피 했던 인물이다.
전생에서는 그에게 운전 교육을 받으면서 맞기도 무지 맞았다. 오죽했으면 오른쪽 팔로 밥숟가락을 못 들 정도였다. 심지어는 언덕길에서 30cm 뒤로 밀렸다고 30대를 때릴 정도로 악랄했던 그였다.
운전 교육이란 명분하에 맘껏 폭력을 휘둘렀던 그였다. 그땐 그게 또 적당히 통했던 시대이고.
피식.
현성은 속으로 웃었다.
웃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다. 이제는 예전의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운전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경사가 심하다고 해도 단 1센티도 안 밀릴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팔이 퉁퉁 부을 정도로 두들겨 맞으며 배웠던 ‘반클러치’ 조작 방법, 그건 30년이 지난 지금도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윽.
현성의 시선은 옆으로 향했다.
자신이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앞만 바라보고 있는 김동수.
문제는 김동수다.
그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사회에서 운전 경험 없이 겨우 면허증만 따서 입대한 케이스다. 그렇다 보니 신병교육대에서 1주일 배운 운전 교육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다.
야수교(야전 수송 교육연대)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았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1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을 받게 되면 딱 1주일만 운전 교육을 받게 된다.
그렇다 보니 자대에 와서도 운행을 나가려면 운전 교육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게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고.
현성 자신이야 이제는 그럴 일이 없겠지만 김동수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전생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을 테니 말이다.
전생에서야 내 코가 석 자라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은 분명히 그때와 다르다. 어떡하든 똑같은 상황이 일어나도록 방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물론이고 은혜를 입은 그의 아버지를 봐서라도.
문제는 방법인데…….
‘어떡한다?’
현성이 막 고민에 빠지려 할 때였다.
“전~~~ 진~~~”
짚차가 부대 정문을 통과하기 직전 위병소를 지키던 위병이 큰소리로 경례를 했다. 경례 구호는 전방에 위치한 만큼 ‘전진’이었다.
물론, 정문 좌측에는 ‘6233부대’라는 표지판이 현성의 눈에 들어왔다.
‘후!’
현성은 마음속으로 짧게 호흡을 조절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자대 생활 시작이기 때문이다.
“하차.”
“하차!”
대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상황실 앞에 도착한 현성과 김동수는 유진철 중위의 하차 명령에 큰 소리로 복창과 함께 짚차에서 내렸다.
그 후 상황실에서 간단히 신고식 요령을 배운 다음 대대장실로 들어가 신고식까지 마친 두 사람은 대대장 앞에 말 그대로 부동의 자세로 앉았다.
“자네가 김동수인가?”
“이병, 김 동 수! 네, 그렇습니다!”
대대장 이천수가 먼저 관심을 보인 건 김동수였다. 전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생에서 그가 김동수에게 관심을 보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김동수가 씨름 선수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그의 아버지가 경동시장에서 약재상을 크게 운영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아니나 다를까.
대대장 이천수는 전생과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용인대 씨름부라고?”
“이병, 김 동 수! 네, 그렇습니다!”
“어, 그리고 여기서는 그렇게까지 큰소리로 대답을 하지 않아도 되네. 그냥 조용히 대답하게.”
김동수는 순간 어젯밤에 현성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혹시라도 대대장이 목소리를 작게 하라고 해도 그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그 이유는 대대장을 보좌하는 병사 때문이라고 했다.
만약 대대장이 말한 대로 했다가는 나중에 군기가 빠졌다는 이유로 그 병사한테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대답은 알았다고 하면서도 목소리는 여전히 크게 하는 김동수를 보며 현성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대대장은 오늘 잠깐 보면 거의 직접적으로 볼일은 없겠지만 대대장을 보좌하는 병사와는 같은 중대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생에서는 대대장 말만 믿고 그대로 했다가 두 사람 다 며칠 동안 그 병사한테 밤마다 시달렸었다. 당하고 난 다음에야 대대장보다 고참이 더 무섭다는 걸 알았다.
대대장은 그 후로 씨름에 관한 질문을 몇 가지 더 하고 이번에 김동수의 아버지에 대한 질문을 했다.
김동수는 여전히 준비된 대답을 바로 했다. 이 대답 또한 어젯밤에 현성이 미리 알려준 답변이었다.
“아버지가 면회 오실 때 대대장님 보약 세 재 가져오신다고 하셨습니다.”
“허허, 이 친구가…….”
대대장 이천수는 그저 헛웃음을 웃고 말았다. 그런데 웃긴 건 절대 안 된다는 말은 또 끝까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요즘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이 또한 그 시대의 어두운 한 단면이었다. 물론 극히 일부겠지만 말이다.
대대장 이천수가 이번엔 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가 그 유명한 그 친군가?”
“이병, 김 현 성! 무슨 말씀이신지…….”
전혀 예상에 없던 질문이라 현성으로선 난감한 순간이었다.
현성이 대답을 못 하자 대대장 이천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 그렇다고 너무 놀라지 말게. 사실은 신교대에 있는 그 친구가 내가 잘 아는 친구라 그냥 전화를 했다가 자네 얘기를 들었네. 그런데 말이야…….”
대대장 이천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신교대 대대장이 자신의 동기이고 그렇다 보니 전화를 했다가 현성의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최우수 선수로 선발되어 표창을 받은 것까지도.
대대장 이천수가 설명을 끝내고 다시 물었다.
“사격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이병, 김 현 성! 네, 그렇습니다!”
“이거 귀한 인재가 우리 부대로 왔으니 앞으로 사격대회는 걱정이 없겠구먼. 앞으로 사격은 자네만 믿네. 그렇지 않아도 우리 대대에서…….”
이 말은 전생에서 들었던 말이라 별로 들을 게 없었다. 이 말의 핵심은 여단에서 해마다 봄이면 사격대회를 시행하는데 거기에 나가 꼭 우승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현성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전생대로라면 여기서 모든 질문은 끝이다. 그런데 분위기를 보니 대대장은 그럴 생각이 없다는 듯 밖에 있는 병사를 불러 커피까지 가져오게 했다.
“자, 어서들 들게.”
“이병, 김현성!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이병…….”
김동수 또한 현성과 똑같은 말을 하고 커피를 마셨다. 두 사람이 커피를 마시고 커피잔을 내려놓자 대대장 이천수가 현성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황당한 건 현성이었다.
사실, 신병 신고식을 하면서 커피를 먹는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경우였다. 누구도 신고식을 하면서 커피를 먹었다는 얘기는 못 들었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이해가 안 가는 건 그의 행동이었다.
현성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
그 모습은 마치 보배를 얻은 듯한 표정이었다.
현성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런데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고맙네.”
“…….”
당연히 관등성명과 함께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한테 ‘고맙다’라는 말을 했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 대대장 이천수가 현성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말이야, 자네 농…….”
대대장 이천수는 ‘농’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농…….’
현성은 순간적으로 ‘농’이란 말과 관련된 단어를 떠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