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425)
회귀해서 건물주-425화(425/740)
427
현성이 박범수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한참 공사 중인 산 중턱이었다.
“내려요.”
“…….”
박범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성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집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자신의 과거로 가겠다고 했었다. 사실은 그 말부터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을 데리고 온 곳은 한참 공사 중인 이곳이니 어찌 기분이 좋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렇다 보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현성이 온 것을 보자 유민철 소장이 뛰어와 현성을 맞았다.
“추운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형님.”
“아닙니다. 이 정도 추위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예정에 없으셨는데 갑자기 어떻게…….”
“아, 잠깐 여기 형님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왔습니다. 참, 서로 인사 나누세요. 여기 형님은 박희철 아저씨의 둘째 아드님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여기 관리소장님입니다.”
현성이 서로를 소개하자 박범수가 먼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박범수입니다.”
“박범수? 네가 범수야?”
“네? 혹시 저를 아십니까?”
“너 기억 안 나? 국민학교 1학년 때 저기 강가에서 수영하다가 병에 찔려서 내가 너를 업고 너희 집까지 갔었는데?”
“아…… 맞다, 그때 형은 6학년이었죠?”
“그래, 난 6학년이고 너는 1학년, 이제 기억나?”
“아, 기억나요. 솔직히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형인지도 몰랐는데 그게 형이었군요. 아, 맞다, 민철이 형, 그러고 보니까 형이 맞네요. 이제야 기억이 나네요. 와! 이게 몇 년 만이에요?”
박범수는 조금 전과는 다르게 밝은 모습으로 유민철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옛날얘기를 나누며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듯 기쁜 표정을 지었다.
한참 인사를 나누던 박범석이 먼저 물었다.
“여기서 일하시는 거예요?”
“어, 3년 됐어. 그전에는 설비 일을 하다가 여기 사장님이 불러서 일을 하게 됐어. 사장님 덕분에 내가 시골에서 소장이란 감투도 쓰고 출세했지.”
“소장님이요?”
“응, 그래. 여기 모든 공사를 내가 총괄로…… 그건 그렇고 여기는 무슨 일이야?”
“사실은 저도 잘 몰라요. 저는 그저 현성이가 갑자기 여기로 데리고 와서 그냥…….”
박범수는 말을 하면서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말을 이었다.
“네, 제가 범수 형님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잠깐 모시고 왔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말씀 나누십시오. 저는 이만 가서 일 보겠습니다.”
“네, 그럼 수고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범수야 나중에 쉬는 날 소주라도 한잔하자.”
유민철은 그 말을 끝으로 현성을 향해 깍듯이 인사를 한 후 공사장으로 다시 향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범수는 고개를 살짝 저였다. 그 이유는 유민철의 행동 때문이었다.
유민철과 자신은 5년 차이다. 그렇다면 현성과 유민철은 16년 차이가 난다. 아무리 사장과 소장의 관계라 하더라도 어쨌건 한동네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그런데 16살이나 많은 유민철이 현성을 대하는 태도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유민철뿐만이 아니었다. 현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고용주다. 흔히 하는 말로 아무리 나이가 어리지만, 사장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유민철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도 정중한 모습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 우쭐할 법도 한데 그런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현성이 박범수를 보며 물었다.
“어? 아, 아니야. 그냥…….”
“이쪽으로 오세요.”
“어, 그, 그래.”
박범수는 조용히 현성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의 끝이었다.
“…….”
현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을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박범수 또한 조용히 마을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한참 동안을 마을만 바라봤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침묵을 먼저 깬 건 현성이었다.
“형님, 저기 기억나세요?”
현성이 가리킨 곳은 소(沼)였다. 개울 바닥이 움푹 파여 물이 다른 곳보다 깊은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여름이면 동네 아이들의 수영장으로 사용되곤 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겨울이면 그곳에서 팽이도 돌리고 썰매를 타던 곳이었다. 지금도 몇 명이 아이들이 썰매를 타고 있었다.
“당연히 기억나지. 아까 민철이 형이 얘기했듯이 내가 깨진 병을 밟아서 다쳤던 곳도 저기였어. 그래도 그때 생각보다 많이 안 다쳐서 일주일 뒤에 다시 친구들하고 수영을 했었는데, 그뿐만이 아니라 겨울 방학엔 또 어떻고? 밥만 먹으면 개울에 나가서…….”
박범수는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예전의 기억을 하나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던 박범수가 현성을 보며 물었다.
“혹시 아까 나의 과거로 가겠다고 했던 말이 저곳이었어?”
“네, 맞습니다. 근데 그거 아세요?”
“어? 뭘?”
“저곳은 형님뿐만이 아니고 민철이 형님은 물론이고 저 또한 추억이 깃든 곳이거든요. 어디 저희뿐이겠습니까? 이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같은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보다시피 지금 놀고 있는 아이들도 나중에는 그 추억을 생각할 거고요.”
“그거야 당연히 그렇겠지.”
박범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얼마나 갈까요?”
“어? 그게 무슨 소리야? 얼마나 가다니?”
“앞으로 말입니다. 10년? 아니 20년 뒤에도 아이들이 저곳에서 놀 수 있을까요?”
“……글쎄다, 그건 정확히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많지는 않을 거 같은데.”
박범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물었다.
“이유는요?”
“내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온 지 3년이 됐는데 그때 이미 일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거든.”
“우려의 목소리요?”
“그래, 앞으로 10년 후부터는 농촌의 인구가 빠른 속도로 점점 줄어들 거라고 말이야. 심각하게 고민은 안 해봤지만 앞으로 한국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흔히들 일본과 한국의 차이가 10년이라고 한다. 그 말은 지금 일본에서 말하는 10년 후가 한국에서는 20년 후가 그렇게 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현성은 다시 물었다.
“이유는요?”
“응? 이유?”
“네, 농촌 인구가 빠른 속도로 주는 이유 말입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농촌 인구가 빠른 속도로 줄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일본에서는 그 원인을 어디에 있다고 분석하느냔 말입니다.”
“가장 큰 원인은 살기 힘들다는 거야. 한마디로 농사로는 답이 없다는 거지. 수입 농산물이 점점 늘어나면서 가격 경쟁이 안 되다 보니 농사를 지어도 답이 없다는 거야.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현성으로선 살면서 눈으로 직접 봤던 얘기다. 농촌의 경제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리고 그 결과 학생이 없다 보니 학교까지 폐교되는 모습을 말이다.
“젊은 사람들이 점점 시내로 빠져나가니까 농촌엔 노인들만 남을 테고요?”
“맞아. 급격히 농촌이 고령화가 된다는 거야.”
“젊은 사람들이 줄어드니 당연히 아이들도 점점 줄어들 테고요. 그렇다 보니 당연히 학교도 폐교를 할 테고…… 그뿐이겠습니까, 농촌 인구가 준 만큼 빈집들도 점점 늘어나겠지요.”
“어? 어떻게 알았어?”
“당연한 거잖아요. 그러면서 농촌은 점점 유령마을로 변해갈 테고 결국은 농촌의 문제가 사회문제로 자리를 잡게 되겠지요.”
“맞아.”
박범수는 현성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놀랄 수밖에 없었다. 3년 전 연구소에서 발표했던 내용과 너무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현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해결책은요?”
“해결책?”
“네, 뭐가 문제인지 알았으니 해결책이 있었을 거 아닙니까?”
“어? 그거야 그런데…….”
박범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연구소에서도 이렇다 할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긴 해결책이 있었다면 10년 뒤를 걱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현성이 다시 물었다.
“결국, 해결책을 못 찾았죠?”
“어? 어…… 그게 답이 없다는 거야.”
“그럴 겁니다.”
현성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해결책을 찾았다면 농촌의 붕괴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나라 어느 곳도 그 문제를 해결한 곳은 없었다.
현성은 조용히 박범수를 불렀다.
“형님!”
“어? 왜?”
“젊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어? 그거야 농사로는 답이 안 나오니까……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어쩔 수 없이…….”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형님이나 저나 농촌 경제가 무너지는 그 원인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박범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청년들이 왜 농촌을 떠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는 바로 나온다. 문제는 해결책이다. 그 해결책만 찾으면 농촌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이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해결책은 그 누구도, 심지어는 정부에서도 찾아내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때 현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 해결책 말인데요…….”
“해결책?”
“네, 농촌을 살릴 수 있는 그 해결책 말입니다.”
“…….”
“저는 찾았습니다.”
“뭐라고?”
박범수는 고개를 돌려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이 손을 들어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은 바로 비닐하우스 단지였다. 그런데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5만 평입니다.”
“5만 평?”
“네, 보시다시피 일반 비닐하우스와는 다릅니다. 철제로 용접을 해서 만들기 때문에 어떤 태풍이 와도 끄떡없을 겁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배수로 또한 완벽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시간당 1000밀리가 와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다.”
“…….”
박범수는 그저 입만 벌어질 뿐 할 말이 없었다. 물론 멀리서 한두 번 보면서도 놀라긴 했지만 현성으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고 나니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1단계입니다.”
“1단계? 그 말은…….”
“네, 앞으로 10년 후에는 2단계로 저쪽에 5만 평을 더 만들 겁니다.”
박범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재배는 능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문제는 소비다. 그 많은 양을 이 시골에서 과연 소비를 할 수 있느냐, 이것이 관건일 것이다.
“유통을 할 겁니다.”
“유통?”
“네, 팔겠다는 겁니다. 각종 산나물을 재배해서 전국으로 팔겠다는 얘깁니다.”
“여기 시골에서……?”
박범수는 또다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강원도 이 산골에서 전국으로 팔겠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그때 현성이 이번엔 반대쪽을 가리켰다. 그곳은 바로 한참 공사 중인 식당 건물이었다.
“형님, 저기를 보십시오.”
“거긴 식당이잖아?”
“네, 맞습니다. 형님이 보시기에 어느 정도의 규모로 보입니까?”
“글쎄다, 상당히 크기는 한데…….”
“200평입니다. 그것도 주방은 빼고 홀만.”
말이 200평이지 식당이 그 정도라면 운동장이나 다름없다. 그렇다 보니 박범수는 그저 눈만 끔벅거릴 뿐이었다.
“7층으로 완공될 겁니다. 물론 지하 1, 2층은 주차장이고요.”
“나머지 건물을 다 식당으로…….”
“네, 지상 1층부터 4층까지는 식당이고 5층은 카페입니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모든 채소를 자체 공급하겠다는 얘깁니다. 저쪽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말입니다.”
박범수는 식당과 비닐하우스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비닐하우스를 왜 5만 평이나 만들었는지 이해가 될 듯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는 의문으로 남았다. 10년 후에 5만 평을 더 만들어서 전국에 팔겠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됐다.
그때 현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10년 후에는 이곳에 몇 명이나 올 거 같습니까?”
“10년 후에? 글쎄…….”
“주말이면 최소한 만 명은 넘게 올 겁니다. 그때부터는 그 사람들을 상대로 강원도 특산물인 산나물을 팔 겁니다.”
“아…….”
박범수는 자신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현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들어줄 주인공이 바로 저기 길과 이쪽 산에 심어져 있는 저 친구들입니다.”
“벚나무 말이지?”
“네, 벚나무는 기본이고 봄이면 유채꽃 가을이면 코스모스를 벚나무 사이사이에서 보게 될 겁니다. 20만 평이 넘는 이곳에 그 꽃들이 핀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전국에서 사람들이 오지 말라고 해도 오지 않겠습니까?”
“…….”
박범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현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제가 찾은 해결책입니다.”
“어? 어…….”
“주차인력만 해도 최소한 50명이 필요할 겁니다. 거기다 식당과 카페 그리고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다 합치면 기본 천 명은 될 겁니다. 물론 나중에 2단계로 농장을 하나 더 만들면 사람은 더 필요할 테고요. 판매까지 시작하면…….”
현성은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앞으로 2, 30년 뒤에는 어떻게 운영할 건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성의 설명이 길어지자 박범수는 그저 고개만 연신 끄덕일 뿐이었다.
설명을 끝낸 현성이 다시 박범수를 불렀다.
“형님.”
“어…….”
“이제 원점으로 돌아가서 물 반 컵을 놓고 검증하지 마시고 지금까지 말씀드린 제 말을 바탕으로 결정을 해주십시오. 저는 틀림없이 우리 고향을 지킬 것이고 발전시킬 겁니다. 어느 한 사람도 일거리가 없어서 고향을 떠나는 일은 없게 만들 겁니다.”
현성은 잠깐 쉬었다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 혼자는 못 합니다. 아니,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형님이 도와주십시오.”
“내가?”“네, 우리의 고향이지 않습니까? 형님도 앞으로 가정을 가질 테고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전에 그랬듯이 앞으로도 우리의 아들딸들이 저기 강가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우리가 이 고향을 지키자고요. 네? 형님!”
“…….”
박범수는 말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저 멀리 있는 강가를 바라볼 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박범수가 천천히 현성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곤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현성아. 아니, 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