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429)
회귀해서 건물주-429화(429/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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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거.”
“…….”
박희철은 순간적으로 할 말이 없었다.
아들이 자신을 보고 귀엽단다. 이걸 어찌 해석해야 하는지…….
버릇이 없다고 하기에는 아들의 나이가 너무 많다. 그렇다고 그 말이 싫거나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다. 그저 황당한 나머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박범수의 입에서 또 다른 말이 나왔다.
“꿈만 같습니다.”
“꿈?”
꿈만 같다는 박범수의 말에 박희철은 또 한 번 말문이 막혔다.
박범수가 빙긋 웃으며 박희철을 불렀다.
“아버지.”
“응? 어, 그래.”
“혹시 기억하세요? 제가 언제 아버지한테 귀엽다는 말을 했는지 말입니다.”
“글쎄다, 난…….”
박희철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좀 전에 박범수가 귀엽다는 말을 했을 때만 해도 처음 듣는 얘기라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말하는 뉘앙스로는 처음이 아니라 그전에도 그와 같은 말은 했다는 얘기가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면 언제…….
박희철은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빠졌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나고 박희철은 도저히 기억이 안 나는지 박범수를 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기억을 못 하시는군요. 하긴 저도 그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아주 오래전 기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오래전 기억?”
“네, 아……주 오래전입니다. 그때가 아마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으니까 다섯 살쯤이나 됐을까…… 하여간 그때 제가 아버지를 보고 귀엽다고 했던 거 같아요.”
“다섯 살? 그때가 기억이 난단 말이지?”
박희철은 신기하다는 듯 박범수를 바라봤다. 물론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30년 전의 기억을 한다는 데 신기할 뿐이었다.
“네, 정확히는 아니고 어렴풋이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아버지한테 귀엽다는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거 같아요.”
“그때 기억이라…….”
“네, 아버지도 이건 기억하실 겁니다. 아버지가 약주를 드시고 오신 날이면 가끔 저와 형 그리고 엄마 앞에서 노래를 부르시던 거요. 기억 안 나세요?”
“…….”
말없이 잠깐 생각을 하던 박희철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음…… 그래,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그땐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랬어. 그 얘기를 하니까 나도 이제야 기억이 난다. 그래, 그때 노래가 끝나고 나면 네가 나한테 ‘귀엽다’라는 말을 했었지.”
“네, 맞아요. 그러면 엄마는 또 어른한테는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고 했고요. 하지만 그래도 저는 끝까지 귀엽다는 말을 했어요. 그땐 아마 그 말이 최고의 칭찬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박범수는 씨익 웃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제 기억엔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조금 전에 아버지의 모습에서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던 거 같아요. 그리고 지금 이런 생활이 꿈만 같기도 하고요.”
솔직히 3년 전에 일본에서 모든 걸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만 해도 이런 생활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한국에 대한 기억은 10살 이후로 하나도 없었기에 과연 잘 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걱정이 됐던 건 아버지와의 관계였다.
-과연 20년이 넘는 공백을 채울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게 기우였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가 없었다. 굳이 억지로 노력할 것도 없이 한 달쯤 지나자 봄이 되면 얼었던 강이 녹듯이 자연스럽게 모든 게 해결되었다.
아버지와의 관계?
그냥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굳이 다른 어떤 말도 필요 없었다.
“신기합니다.”
“이번엔 또 뭐가?”
“사실 그동안 말씀은 안 드렸지만 제 나름대로는…….”
박범수는 처음 걱정했던 부분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박범수의 설명이 이어지자 박희철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아닌 게 아니라 박희철 또한 비슷한 고민을 했다는 의미였다.
“아버지도…….”
“그래, 솔직히 나라고 왜 걱정이 없었겠냐? 한두 해도 아니고 자그마치 20년이 넘는 시간이었는데…… 이제야 말이지만 처음 하루하루는 나도 많이 불안했었다.”
“저는 저만 그런지 알았습니다.”
“아비가 흔들릴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박희철의 말이 길어졌다.
박범수는 그런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당연히 아버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버지 또한 자신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보다도 더 많은 고민을 한 듯했다.
박희철이 말을 마무리하며 박범수를 나직하게 불렀다.
“범수야.”
“네, 아버지.”
“고맙다.”
“아닙니다. 그 말은 제가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오늘 이렇게 제가 웃을 수 있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건 모두 아버지 덕분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톡톡.
박희철은 더 말하려는 박범수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시간을 꿋꿋하게 이겨낸 그가 고마울 뿐이었다.
“그래요, 더 말 안 해도 아버지가 다 아실 테니까 그만하겠습니다. 그리고 참, 오늘 낮에 형한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그래? 뭐라고 하던?”
“아버지 덕분에 모든 게 잘 해결됐다고 합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지금까지 투자했던 모든 게 다 날아갈 뻔했다고 했습니다.”
“음…… 그래, 그럼 됐다.”
박희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사업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을 땐 마음이 아팠지만 무시하고 넘어갔었다. 그 이유는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산을 미리 나눠주고 그동안 당했던 인간적인 배신, 그건 한 번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으로 전해지는 고통은 그전에 느꼈던 배신감과는 또 다른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중 울면서 다시 연락이 왔다.
자식의 눈물 앞에 어찌 더 이상 버틸 수 있겠는가. 묻지도 않고 바로 그날 은행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응? 뭐 또 다른 문제라도?”
“아니, 그건 아니고요, 감사하답니다. 그리고 예전엔 죄송했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
“사업체가 기존처럼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올라서면 아버지 뵈러 오겠답니다. 늦어도 올겨울 전에는 한번 다녀가겠답니다.”
“…….”
박희철은 말없이 그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범수가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떻게 마음이 변하셨어요? 처음엔…….”
“왜, 그게 궁금해?”
“형이나 저나 지은 죄를 아니까요. 그런데도 아버지는 또…….”
“…….”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돼서요. 저희가 그동안 얼마나 아버지한테…….”
박범수는 차마 자신의 입으로 그동안 저지른 잘못을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박희철이 살짝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니까.”
“네? 저희요……? 그게 다예요?”
“자식 외에 다른 이유는…….”
박희철은 고개를 좌우로 살짝 저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차라리 내 눈에서 또다시 피눈물이 난다고 해도 차마 자식의 눈에서 눈물이 나는 건 견딜 수가 없었다.
“…….”
박범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그 시각.
마을 회관에는 동네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자, 다들 모였습니까?”
마을 이장인 이강석이 앞으로 나섰다.
“오늘 여기에 모인 이유는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마을 입구에 공판장이 근사하게 완공되었습니다. 물론 그 건물은 여기 있는 김현성 사장이 모든 비용을 부담했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은 우리 마을을 위해 이렇게 멋진 건물을 지어준 김현성 사장한테 박수 한 번 부탁합니다. 자, 박수!”
짝짝짝…….
이장 이강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수 소리가 회관 안에 가득 퍼졌다. 박수를 치는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즐겁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팔 수 있게끔 됐으니 기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 그럼 이제 공판장 운영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김현성 사장으로부터 듣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어? 거기 김 씨,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가?”
“아니 이장님, 다른 게 아니고 엄연히 우리 마을을 위해서 이렇게 훌륭한 공판장을 만들어주신 분인데 말끝마다 자꾸 사장, 사장하는데 그건 아닌 거 같아서요. 물론 현성이가 누군지는 다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최소한 그렇게 부르면 안 되는 거 같아서 말입니다. 당연히 ‘님’자를 붙이는 게 맞는 거 같아서 말입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
마을 사람 중 한 사람이 말을 하자 여기저기서 그게 맞는다는 말이 쏟아졌다. 그중에 부녀회장인 이순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입을 열었다.
“그건 우리 김 씨 아저씨 말이 백번 옳은 거 같네요. 이장님,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우리 멋진 김 사장님을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미안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평상시에 맨날 김 사장이라고 부르다 보니 이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일단 저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이제 다시 김현성 사장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자, 박수로…….”
이장 이강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수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강당 앞으로 나온 현성은 고개부터 숙였다. 그리곤 바로 말을 이었다.
“이렇게 마을 분들 앞에 서려니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사장이란 말 대신에 그냥 예전처럼 제 이름을 불러주시면…….”
“아아, 그건 아니죠. 예전에야 얼마든지 그렇게 부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는 없는 겁니다. 누가 뭐래도 이 마을을 위해서 가장 애쓰시는 분 아닙니까? 당연히 그만한 예우는 해드리는 게 맞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이장 이강석이 현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번 더 나서서 분위기를 잡았다. 그러자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현성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사람들을 보며 꾸벅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지금 호칭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네, 좋습니다. 그럼 어르신들 뜻대로 불러주십시오. 뭐라고 부르시던 저는 항상 여러분 곁에 있겠습니다.”
“캬, 우리 김 사장님은 말도 잘해요.”
“어이, 거기 김 씨, 자꾸 말 끊지 말고 우리 사장님 말 좀 들읍시다.”
“아니 내가 무슨…….”
현성은 씩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공판장을 만든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그중 첫째는…….”
현성의 설명이 이어졌다.
식당 건물을 짓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착공한 것이 마을 입구에 공판장 건물이었다. 그 이유는 마을 사람들이 생산한 농산물의 판매를 돕기 위함이었다. 더군다나 봄이면 시골이다 보니 들과 산에 봄나물이 상당히 많다. 그것들만 채취를 해서 팔아도 일 년 농사짓는 것보다도 수익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산나물 채취를 해도 판로가 없다 보니 집에서 먹을 정도만 채취를 했었다. 하지만 다음 주부터 두 달 정도만 사람들이 꽃구경을 위해 온다고 해도 그 매출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공판장을 만든 목적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마을 사람들의 수익 증대, 둘째는 마을 발전,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을 단합.
올해는 처음이니까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몇 년만 지나면 사람들은 알아서 몰려올 거라는 게 현성의 판단이었다.
현성은 설명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혹시 제가 작년에 산나물을 뜯어서 말려놓으시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렇게 하신 분 손 좀 들어보시겠습니까?”
“난 50킬로.”
“난 100킬로.”
“난 아주 작정을 하고 300킬로, 그거 말리느라고 엄청 고생을 했어요.”
많지는 않았지만 몇 사람이 손을 들며 말했다.
그러자 현성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손드신 분들은 올봄이 아주 많이 행복하실 겁니다. 그리고 공판장 운영은 100% 부녀회장님이 맡아서 하실 겁니다. 그리고 참고로 부녀회에서 하시는 사업의 수익금은 일하시는 분들 월급과 마을 공동기금으로 사용하게 될 겁니다. 그 부분은 이장님과 부녀회장님이 추가로 설명해 주실 겁니다. 저는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고 물러가겠습니다.”
현성은 돌아서려다 다시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하나만 더요. 12월에 직원 모집이 있습니다. 일단 주민과 그 자제분들을 우선으로 뽑을 계획입니다. 그런 다음 부족한 인원은 외부에서 뽑을 겁니다. 그러니 올가을 추석 때 자제분들 오시면 꼭 말씀해 주십시오.”
“잠깐, 질문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혹시 나이 제한 뭐 그런 거 있는가 싶어서요.”
“그런 거 없습니다. 60세가 넘어도 일만 하실 수 있으면 얼마든지 지원 가능합니다. 그리고 모집 분야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식당, 농장, 청소, 주차 등 할 일은 많으니까 아무 적정하지 마시고 오셔도 됩니다.”
어차피 처음부터 목적이 일자리를 만드는 거였다. 농촌이 무너지는 이유는 하나였다. 먹고 살기 힘드니까 고향을 떠나 도시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원인을 해결한다면 당연히 고향을 떠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라는 게 현성의 생각이었다.
“자,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고 부녀회장님께서 앞으로 공판장 운영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실 겁니다. 자, 우리 모두 다 같이 잘살아 보자고요! 화이팅입니다!”
현성은 주먹을 쥐고 화이팅을 외친 후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러자 이장 이강석이 다시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다시 한번 김 사장님께 감사드리고 이번엔 부녀회장님께서 앞으로 공판장 운영에 관해서…….”
마이크 소리를 뒤로한 채 현성은 조용히 회관을 빠져나왔다. 어차피 공판장 운영방식은 지난달에 이미 논의를 끝낸 상태다. 이제부턴 이장과 부녀회장이 알아서 할 것이다.
“저기요…….”
회관을 빠져나와 몇 발자국 걸었을 때였다. 누군가 뒤에서 불렀다. 그런데 목소리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여자 목소리였다.
하지만 어둡다 보니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