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434)
회귀해서 건물주-434화(43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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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성이 신유빈의 집을 다시 찾은 건 바로 다음 날이었다.
자신 스스로 책과는 담을 쌓을 정도로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는 그녀였다. 하지만 그건 본인의 관심과는 거리가 먼 내용들이라 그럴 것이란 게 현성의 판단이었다.
그녀의 관심?
그건 이미 본인 스스로가 얘기했었다. 농사를 짓는 게 꿈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으로선 그녀의 관심은 하나일 터, 그건 바로 농업에 관한 분야일 것이다.
현성이 오늘 신유빈의 집을 찾아온 이유다.
끙.
현성은 트럭에서 종이박스 세 개를 마루로 옮겼다.
“어? 오빠 이게 다 뭐에요?”
신유빈이 마루에 쌓인 박스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현성이 숨을 몰아쉬며 짧게 대답했다.
“책.”
“책이요?”
“그래, 앞으로 네가 공부할 책들이야.”
“제가 그날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요? 저는 책만 보면 졸린다고 말이에요. 그런데 무슨 책을 세 박스나 사 왔어요?”
“무슨 책인지 보기나 하고 말해.”
현성의 말에 신유빈이 고개를 갸웃하며 박스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어? 오빠 이건……?”
미처 말을 다 잇지 못하는 신유빈이었다. 그런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이고 있었다.
“어때?”
“너무 좋아요. 사실은 저도 너무 보고 싶었던 책들인데 비싸기도 하고 여기가 시골이라 그런 책은 구할 수도 없더라고요. 그런데 이 책들 어디서 사 온 거예요?”
“춘천.”
“춘천이요? 저 때문에 일부러 춘천까지 갔다 온 거란 말이에요?”
“미래의 훌륭한 농군을 위해서 이 정도 투자는 해야지.”
어차피 이제 신유빈의 나이 고작 열아홉이다.
그녀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농업에 관한 열정뿐이다. 농고를 나온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집에서 조금 농사를 지은 게 다다.
그걸로 앞으로 농사를 짓기에는 어림도 없다는 게 현성의 생각이었고 그래서 그 보완책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농업에 관한 책이었다.
“어? 이건 농기계에 관한 책이네요?”
신유빈의 손에는 어느새 농기계를 소개한 책이 들려있었다.
“어차피 필요할 거 같아서. 미리 졸업하기 전에 공부해 두라고.”
“와! 우리 오빠 대단하네요!”
“뭐? 우리 오빠?”
“아, 아니…… 저도 모르게 그만.”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는 신유빈이었다. 그런 그녀가 일부러 관심을 돌리려는 듯 또 다른 박스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어? 오빠, 이 책은 뭐예요? 이거 컴퓨터에 관한 거 같은데요?”
“응, 맞아. 어차피 앞으로는 컴퓨터 시대야. 지금부터라도 미리 준비를 해야 하거든.”
“이걸 저보고 공부하라는 거예요?”
“그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야. 앞으로 졸업할 때까지 문서 작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해야 돼. 컴퓨터하고 프린터도 내가 곧 사 올 거야.”
“네?”
신유빈은 놀랍다는 듯 현성을 빤히 쳐다봤다.
얼핏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는 충분히 알겠는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신한테 너무 신경을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값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이젠 컴퓨터까지 사 오겠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왜 그렇게 놀라?”
“아니, 솔직히 책은 그렇다 쳐도 컴퓨터까지……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신유빈이었다.
그런 신유빈을 보며 현성은 빙긋 웃었다.
“유빈이는 특별하니까.”
“…….”
신유빈은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현성이 말한 특별하다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제 열아홉이 아니던가 말이다.
“무슨 생각해?”
“네? 아니, 그게 아니고…….”
“그렇다고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자꾸 놀리지 말고 하고 싶은 얘기가 뭐예요?”
어차피 특별하다는 말에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챈 신유빈은 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현성도 알았다는 듯 바로 말을 이었다.
“열정 때문이었어.”
“열정이요?”
“그래, 네가 첫날 나에게 보여준 열정 말이야. 지금 너한테 가장 필요한 게 뭔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내 결론은 이거야.”
현성의 시선은 마루에 놓인 책으로 향했다.
자고로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능률도 오르고 발전도 할 수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알아야 한다. 현성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서 저한테 이 책들을 사 오신 거예요?”
“그래, 내가 아까도 말했지만 투자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사람에 대한 투자만큼을 아끼지 않아.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어.”
“조건이요?”
“그래, 바로 열정이야. 그리고 역시 오늘 나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고.”
“그건 또 무슨…….”
현성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 전에 네가 보여준 눈빛을 보고 알았어. 책만 보면 졸린다고 하던 네가 조금 전엔 이 책을 보고 반짝반짝 빛이 났거든.”
“진짜요? 제가 그랬다고요?”
“그래, 그 눈빛을 보는 순간 역시 내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넌 오늘 이 책들을 보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잘걸.”
“호호…….”
신유빈은 웃고 말았다.
마치 속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듯 약간은 부끄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사실 처음에 현성으로부터 책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왜냐하면, 책은 자신과는 상극이라 할 정도로 항상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전에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걸 느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웃음을 멈춘 신유빈의 시선이 다시 마루에 있는 세 번째 박스로 향했다. 그리곤 그중에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준비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동아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다.
“이건 뭐예요? 이것도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책인가요?”
“아니, 그건 내가 유빈이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야. 앞으로 살면서 꼭 필요한 내용이라 골랐어.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가 와도 잡을 수가 없거든.”
“어? 그러고 보니 진짜 그렇네요?”
“그래, 그러니까 이제부터 준비하자고, 알았지?”
“네, 알았어요. 오늘, 아니, 오빠 가시고 나면 바로 시작할게요.”
“알았어, 그렇지 않아도 갈 생각이었어. 그럼 오빠 갈 테니까 책 봐라.”
“어? 그런 의미 아니었는데…….”
“농담이야. 사실은 약속이 있어. 그럼 다음에 또 보자.”
현성은 그 말을 끝으로 신유빈의 집을 나왔다. 아니, 나오려고 했다.
“오빠! 잠깐만요!”
신유빈이 갑자기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오빠, 이거 가져가세요.”
“어? 이게 뭐야?”
“아까 엄마가 만든 옥수수 술빵이에요. 아직 따뜻해서 드셔도 될 거예요. 뭐라도 드리고 싶은데 이거밖에 없네요.”
“술빵? 이거 나도 좋아하는 거야. 그렇지 않아도 먹고 싶었는데 잘됐다. 빵은 역시 술빵이 제맛이지.”
“오빠, 너무 티 나거든요. 그렇게까지 연기 안 해도 돼요.”
“어? 그랬어?”
“하여간 가만히 보면 오빠 참 순진해요. 호호…….”
“…….”
현성은 할 말이 없었다. 50이 넘어서 고3 여학생한테 순진하다는 말이나 듣고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기분은 좋았다.
백두순에 이어 또 한 사람의 농군이 생겼으니 말이다.
***
며칠이 지나고, 4월 둘째 주.
드디어 기다리던 벚꽃이 개화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추운 지역이다 보니 서울은 지난주부터 벚꽃이 핀다고 하더니 5일 정도 차이가 나는 듯했다.
“좋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식당 건물 꼭대기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현성의 표정에 만족감이 가득했다. 이제 막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단계라 아직 화려하지는 않지만 20만 평이 넘는 들판에 펼쳐진 그림이 넓은 바다를 보는 듯 황홀한 기분이 들기엔 충분했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노력과 땀의 결과라고 생각하니 그 기분은 더없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가장 고생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유민철 소장이었다. 아니, 이제는 소장이란 직함이 아닌 부장이라고 부르기로 했으니 유민철 부장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이다.
덜컹.
옥상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다가왔다. 어차피 이곳으로 올 사람은 현성 외에 단 한 사람밖에 없다. 바로 유민철 부장.
현성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고생 많으십니다, 부장님.”
“저야 그저 지시한 대로만 할 뿐이지만 사장님은 진짜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처음부터 이렇게 큰 그림을 그렸는지 저는 그게 신기할 뿐입니다.”
“그게 다 처음부터 부장님이 도와주셔서 가능했던 겁니다. 만약 저 혼자였다면 어림도 없었을 겁니다.”
“아닙니다. 솔직히 말이야 바른말이지만 사람이야 왜 없었겠습니까? 그 정도 대우를 해준다고 공고를 했더라면 몇백 명은 모였을 겁니다.”
“아무리 모이면 뭐합니까, 믿을 사람이 없는데, 안 그렇습니까?”
현성은 유민철을 슬쩍 바라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그때도 말씀드렸듯이 저한테는 그냥 사람이 필요했던 게 아니라 제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게 바로 부장님이었고요.”
“…….”
유민철 부장은 말 대신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현성이 그렇게 말하지만, 자신으로선 한없이 고마운 사람일 뿐이다. 세상에 어느 누가 시골에서 설비나 하는 사람한테 이렇게 큰일을 맡긴단 말인가 말이다.
그리고 진짜 고마운 건 그의 말투였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대하거나 무시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의 나이 이제 고작 스물넷이다. 자고로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고 했다. 얼마든지 교만에 빠질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는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또 소장이 아닌 부장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부장.
사무직에서는 임원 다음으로 가장 높은 자리다.
앞으로 정식으로 직원을 뽑게 되면 엄청난 숫자의 사람이 함께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자그마치 그 인원이 천 명이다. 그중에서도 부장이란 직책이 차지하는 위치는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다.
그 자리는 감히 욕심을 내지도 않았는데 그 중책을 맡겨준 것이다. 그러니 어찌 고개가 절로 숙여지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때 현성의 손이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은 강가 양옆으로 집을 짓기 위해 택지를 조성한 곳이었다.
“부장님, 다음 달부터 저기에 집을 짓기 시작하면 제일 첫 집은 부장님 집입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유민철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물론 처음에 그런 말을 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게 진짜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당연하지요. 제가 처음에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그냥 하는 말로 생각했지 진짜 그럴 거라고는…….”
유민철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아니야.’
준다고 넙죽 받기에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사장님!”
“네, 말씀하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거 같습니다. 저는 사장님의 마음만 받겠습니다. 이건 도저히 받을 수가 없습니다. 남들이 알면 저만 나쁜 놈 됩니다. 어린 사장님 꼬셔서 제 잇속만 챙겼다고 말입니다.”
“누가요?”
“네?”
“누가 부장님을 욕하느냔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꼬신다고 넘어갈 사람입니까?”
“물론 그거야 당연히 그렇지 않지만 모르는 사람은…….”
“부장님.”
현성은 유민철의 말을 끊었다. 그리곤 바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 거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네?”
“그러니까 부장님 말씀으로는 우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 그런 사실을 알면 부장님을 나쁜 사람이라고 욕할 거란 말이죠?”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누가 세상천지에 직원한테 …….”
“무시하자고요, 어차피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굳이 그런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뭐가 중요합니까? 부장님이 저를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제가 부장님을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만 변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그러면 된 겁니다. 굳이 살면서 다른 사람들 신경 쓰는 것도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거 같습니다. 때로는 적당히 무시하는 것도 살아가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 두 사람이 당당하면 되는 겁니다.”
“…….”
유민철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자꾸 고집을 부린다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집을 통째로 받는 건 아니라는 생각은 여전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네, 그렇습니다. 받는 놈이 무슨 조건이냐 하시겠지만 이건 제 마지막 양심입니다.”
“좋습니다. 그 조건이 뭡니까?”
“그건…….”
유민철은 무슨 말인지 한 번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물었다.
“아니, 뭔데 그렇게 조심스럽습니까? 부장님이 말씀하시는 마지막 양심이 뭔지 궁금합니다. 어서 말씀해 보세요.”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건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