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441)
회귀해서 건물주-441화(441/740)
며칠 후.
현성이 향한 곳은 박희철의 집이었다.
오늘 만날 사람은 박희철이 아니라 그의 아들인 박범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며칠 전에 박범수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할 말이 있으니 시간 되는 날 한 번 와 달라는 거였다. 그래서 약속을 잡은 날이 바로 오늘이다.
“사장님, 어서 오세요!”
현성이 박희철의 집에 도착하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박범수가 반갑게 현성을 맞았다.
두 달 전부터 현성을 보고 ‘사장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박범수다.
그렇다 보니 처음에는 말할 때마다 어색한 듯 머뭇거렸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은 그런 어색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저 때문에 일부러 나와 계셨던 겁니까?”
“시간을 보니까 사장님이 오신다고 했던 시간이 거의 다 돼서요. 저도 10분 전에 나왔습니다.”
“아, 그러셨어요? 참, 아버님은 어디 가셨어요?”
“오늘 홍천 시내에 볼일이 있다고 오전에 가셨는데 아직 안 오셨습니다.”
“아, 네. 그렇군요. 형님, 이것 좀…….”
현성은 들고 있던 두유 상자와 또 다른 직사각형 모양의 박스 하나를 박범수에게 건넸다.
직사각형 모양의 박스는 선물 포장지로 예쁘게 포장된 상태였다.
박범수가 바로 물었다.
“어? 이게 다 뭡니까?”
“두유는 어머니하고 아버님 드실 거고, 그 박스는 형님 겁니다.”
“아니, 한두 번도 아니고 오실 때마다…… 그건 그렇고 이게 제 거라고요?”
“네, 확인해 보세요.”
현성의 말에 박범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얼른 포장지를 뜯어 안에 내용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박범수의 눈빛이 반짝였다.
“사장님! 이건 칼이 아닙니까?”
“네, 제 선물입니다. 아무래도 형님한테도 이젠 그 정도 칼이 필요할 듯해서 특별히 주문해서 어제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가져왔습니다.”
현성은 말끝에 바로 다시 말을 이었다.
“참,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일본과 우리나라의 칼에 대한 문화는 다릅니다. 일본은 사무라이 문화라 충과 복종을 요구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칼은 자신과 가정의 행복을 지킨다는 ‘수호’를 뜻합니다. 그렇다 보니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듯이 주변 사람들이 이사나 개업할 때도 선물로 주니까 다른 오해는 하지 마세요. 물론 일반적이진 않아요. 그리고 특히 요리하는 사람에게 칼 선물은 최고의 선물이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주세요.”
“아,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제가 받아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요. 그동안 아버님으로부터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형님의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이 칼로 더욱 맛있는 요리를 만드시면 됩니다.”
“사장님……!”
박범수는 할 말을 잊은 채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기를 잠시.
꾸벅!
박범수는 갑자기 현성을 향해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사장님,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아니, 형님.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무슨 칼 하나에 이렇게까지…….”
현성은 황당 그 자체였다.
이유야 어쨌든 박범수와는 11살 차이가 난다. 아무리 자신을 사장이라고 부른다고 하지만 11년이란 세월의 차이는 절대 무시할 수가 없다.
그리고 솔직히 정식으로 계약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선물을 받고 허리를 90도로 숙이는 모습에 현성으로선 당연히 황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박범수의 말이 이어졌다.
“저에게 이건 단순히 칼 하나가 아닙니다. 이건 바로 저의 새로운 인생입니다.”
“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이제야 말이지만 솔직히 저를 처음으로 인정해준 사람도 사장님입니다. 그리고 저를 홍천 시내까지 직접 데리고 가서 요리책을 사준 분도 사장님입니다. 맞으시죠?”
“그거야 형님이…….”
현성은 다른 말을 하려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 다른 말은 불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박범수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저는 솔직히 그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누군가가 저를 인정해준다는 게 처음이었거든요.”
“…….”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아니요, 누가 뭐라 해도 저는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해서는 안 되는 나쁜 생각까지도 했었으니까요.”
박희철로부터 박범수의 얘기는 전해 들었다. 일산이 신도시로 발표되던 날 아들이 나쁜 생각을 했었다는 말을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한참 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던 박희철이었다.
박범수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도 3년 동안 거의 밖에 나온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을 사람들이 두렵고 무서웠거든요.”
박희철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던 부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생각한 방법이 가끔 목욕탕에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사람이 제일 적은 이른 새벽 시간에 말이다.
그리고 간 곳이 강가에 낚시였다고 했다. 역시 그 방법을 선택한 것은 사람이 없다는 이유였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나아지는 듯해서 장날이면 데리고 나가 구경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짜장면도 먹었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적응을 시켰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거기까지였다고 했다. 자신과 같이 나갈 때만 나갔지 혼자서는 거의 나간 적이 없다고 했었다.
박범수의 말이 이어졌다.
“아버지랑 가끔 나가긴 했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못 나가겠더라고요. 나가면 마을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는 거 같아서 말입니다.”
“왜 그런 생각을…….”
“아버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 자신이 패배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던 겁니다. 아버지를 믿고 막상 한국으로 돌아오기는 했는데 20년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는 할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박범수는 말을 하다 말고 현성은 바라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혹시 사장님이 군에서 휴가를 나올 때마다 저한테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네? 제가 뭘 어떻게……?”
“친동생 같았어요.”
“친동생이요?”
“네, 이제야 말이지만 그땐 진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아버지를 빼고 저한테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유일하게 사장님만은 달랐어요.”
사실은 박희철의 부탁이 있었다. 어떡하든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의 자신감을 키워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살갑게 대했던 거고 말 한마디라도 저 신경을 썼던 것이다.
박범수가 다시 물었다.
“혹시 말입니다. 말년 휴가 때 저한테 했던 말 기억하세요?”
“글쎄요…….”
물론 기억한다. 어디까지나 의도된 말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걸 또 기억한다고 할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그가 하는 대로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 사장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님은 눈빛이 살아있어요’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또 했지요. ‘형님은 앞으로 무얼 하든 잘할 겁니다’라고 말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떡하든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없는 말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세상을 조금 더 살아보니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는 칭찬만큼 좋다는 게 없다는 걸 알았기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게 통했던 걸까.
그 후부터 박범수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오죽했으면 박희철이 2주 후면 제대할 자신한테 그새를 못 참고 편지로 그 기쁨을 전했을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말이다.
박범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솔직히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네? 거짓말이요?”
“네, 아무리 제가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거든요.”
피식.
박범수는 말을 하다 말고 현성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그리곤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이 얼마나 멍청한지 저는 그때 또 알았습니다.”
“네? 누가요?”
“누군 누굽니까, 바로 저지요.”
“형님이요?”
“네, 얼마나 멍청한지 거짓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게 또 힘이 되는 겁니다. 신기할 정도로 저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그때 제가 진짜 멍청하다는 걸 알았어요.”
“형님도 참, 하하…….”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걸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줄은 정말 미처 몰랐다. 그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그게 거짓이 아니라 진심이라고 믿게 하려고 엄청 신경을 썼었다.
그런데 보람도 없이 그게 거짓이라는 걸 알았다고 하니 현성으로선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솔직히 100% 거짓말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진심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빈말이라고 하지만 전혀 없는 얘기를 할 정도로 연기가 뛰어나지는 못한 현성이었다.
웃음을 멈춘 현성이 조용히 박범수를 불렀다.
“형님.”
“네, 사장님.”
“그거 거짓말 아닙니다.”
“아니, 사장님. 저 그렇게 바보 아닙니다. 이젠 굳이 그런 거짓말 안 하셔도 됩니다. 저는 이제 충분히 자신감을 찾았으니까요.”
“거짓말 아니라니까요.”
현성은 정색을 하며 박범수를 바라봤다. 물론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한 건 사실이지만 분명히 어느 정도는 진심이었다.
“제 말을 못 믿으시겠어요?”
“아니, 사장님. 그게 말이 됩니까? 제가 무슨…….”
“왜, 제 말을 못 믿으세요? 이제야 솔직히 말하지만, 형님 말씀처럼 거짓말을 한 건 사실입니다. 그땐 그렇게라도 형님한테 도움을 드리고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100% 거짓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때도 형님 눈빛은 확실히 살아있었거든요.”
“정말입니까?”
“제가 이제 와서 왜 거짓말을 합니까? 그리고 저 그렇게 연기 잘 못합니다. 그 정도 연기할 거 같으면 제가 지금 여기 있겠습니다. 벌써 충무로로 갔지. 안 그래요?”
현성은 그 말과 함께 가볍게 웃었다.
그러자 박범수도 알았다는 듯 씩 웃으며 바로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제가 또 바보가 되죠 뭐, 어쨌거나 사장님 덕분에 저는 세상으로 다시 나올 힘을 얻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것도 다 사장님 덕분이고요.”
“굳이 이제 와서 다른 말씀은 안 드리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그동안…….”
“참! 여기서 시간을 너무 보냈네요. 사장님이 오신다고 해서 준비한 음식이 있는데.”
“음식이요?”
“네, 그동안 솜씨를 좀 발휘해봤습니다. 자, 어서 들어가서 맛 좀 보세요.”
“진작 말씀하시지…….”
두 사람은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킁킁.
집안에 들어가자마자 현성은 코를 실룩거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형님, 이거 혹시 더덕 냄새 아닙니까?”
“어? 어떻게 아셨어요?”
“한국 사람이 더덕 냄새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제가 요즘 더덕에 빠졌거든요. 사실 일본 사람들은 더덕을 거의 먹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일본에 있을 땐 더덕이 뭔지도 몰랐어요.”
“일본에서는 더덕을 안 먹는다고요?”
현성의 고개가 자동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는 없어서 못 먹는 더덕을 일본에서는 안 먹는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네, 사실입니다. 그래서 시골에 가면 들판에 널린 게 더덕이에요. 저도 며칠 전에 어머니가 구워준 더덕을 먹어보고 그때서야 더덕이란 걸 알았습니다.”
“근데 걔들은 왜 더덕을 안 먹는대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상한 애들이네요. 다른 건 잘 먹으면서, 그건 그렇고 오늘 요리가 더덕입니까?”
“자, 이쪽으로 앉으세요.”
박범수는 현성을 주방으로 안내했다.
“형님, 이게 다 뭡니까?”
주방으로 들어선 현성은 깜짝 놀랐다. 조금 전에 박범수가 더덕 요리라 하기에 단순히 더덕무침이나 아니면 더덕구이 정도로 예상했었다.
그런데 식탁에 놓인 반찬의 가짓수가 20여 종 정도나 되었다.
“형님, 이게 다 뭐냐고요?”
“더덕 정식입니다.”
“더덕 정식이요?”
“네, 제가 사장님을 위해서 만든 음식입니다. 알고 보니까 더덕이 사람 몸에 엄청 좋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특별히 만들어 봤습니다.”
“혹시 저를 부른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습니까?”
“한 번은 정식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배운 것 중에 제가 제일 자신 있는 걸로 준비를 했습니다. 사장님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
현성은 잠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볼일이 있어 자신을 부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자신한테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불렀다고 하니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께 여쭈어 봤습니다.”
“네? 뭐를요?”
“진짜 고마운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그랬더니 정성을 다해 밥 한 끼 준비하는 것도 좋을 거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이상한 게 뭔지 알아요?”
“네? 글쎄요.”
“아버지는 바로 딱 아시더라고요.”
“뭐를 말입니까?”
“그 사람이 누군지 말입니다.”
“아, 네…….”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박희철이 모르겠는가. 그동안 박범수를 위해서 항상 뒤에서 전전긍긍하며 지켜봤을 텐데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도 일부러 집을 나갔을 것이다. 아들을 위해서 말이다.
지금쯤 공터에서 괜히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이건 뭡니까?”
현성은 더덕구이 옆에 있는 작은 전을 보며 물었다.
“더덕 장떡입니다.”
“더덕 장떡이요?”
“네, 사장님이 사준 요리책에 나와있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드셔 보세요.”
“그러지 말고 형님도 어서 앉으세요. 혼자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먹습니까? 자, 같이 먹읍시다.”
“네? 네. 그럼…….”
박범수가 자리에 앉자 현성이 바로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 앉을 사람은 사실 제가 아닙니다. 혹시 누군지 아시겠어요?”
“네? 그게…….”
“식사하면서 잘 생각해 보세요. 진짜 이 자리에 앉을 사람이 누군지 말입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현성은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지금쯤 어디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모를 박희철, 어찌 자신이 아버지인 그 사람만 하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