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442)
회귀해서 건물주-442화(442/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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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식사를 마칠 때까지 박범수는 현성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 그를 보며 현성이 물었다.
“도저히 생각이 안 나요?”
“네, 제 머릿속엔 사장님밖에 안 떠오릅니다. 저를 인정해주시고 저를 데리고 홍천 시내에 나가 요리책을 사 주신 분도 사장님입니다. 게다가 오늘은 이렇게 훌륭한 칼도…….”
“형님.”
현성은 박범수의 말을 끊었다. 그리곤 다시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런 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사장님이 휴가를 나올 때마다 얼마나 즐거운지 몰랐습니다. 아버지를 제외하고 저한테 사람대접을 해준 사람은 사장님이 유일했으니까요.”
“그래요?”
“네, 오죽했으면 다음 휴가는 언제 나오나 하고 기다렸을까요?”
“근데요, 다 좋은데…… 아버님은 왜 빼요?”
“네? 아버지요?”
현성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범수가 바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 그대로 아버님은 왜 빼냐고요? 제가 생각할 때는 아버님이 저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는 더 마음을 쓰셨을 거 같은데요, 안 그래요?”
“그거야 당연한 거니까…….”
“당연하다고요? 그러니까 아버님은 아버지니까 당연하니 논외다? 빼자? 이런 말인가요?”
현성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꿈틀댔다.
아버지라는 이유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의 생각이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박범수의 답변이 다시 이어졌다.
“아니, 꼭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아니지만? 그다음은 뭡니까?”
“제 얘기는 아버지니까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누가 그래요?”
“네?”
“누가 그러냐고요? 아버지니까 당연히 자식한테 희생하고 모든 걸 다 양보하고 언제든지 항상 이해해야 하는 겁니까? 그런 거예요?”
“…….”
박범수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말이 없었다. 얼핏 들어도 조금 전에 자신이 했던 얘기가 어딘지 모르게 정상적인 생각은 아닌 듯싶었기 때문이다.
현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형님, 그럼 하나만 묻겠습니다.”
“…… 네.”
“자식은요?”
“자식이요?”
“네, 자식은 부모한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형님이 생각하는 아버지 상이 그렇다면 자식도 아버지한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게 있을 거 아닙니까?”
“…….”
박범수는 다시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역시나 또 할 말이 없었다. 그 이유는 그런 생각은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현성이 다시 물었다.
“왜요? 그건 또 아무 말도 못 하는 겁니까?”
“…… 저, 그건 미처 생각을 못 했습니다.”
“형님,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 안 들어요?”
“…….”
“자식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아버지는 모든 걸 희생해야 한다? 단지, 아버지라는 이유로? 제 생각에는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형님 생각은 어때요?”
“…….”
박범수는 이번에도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기를 잠깐.
조용히 고민하던 박범수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 쪽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그의 손에는 막걸리가 한 병 들려 있었다.
박범수가 잔 하나를 현성 앞으로 내밀었다.
“한잔 하시겠습니까?”
“네, 주세요.”
쪼르륵.
잔을 채운 두 사람은 그저 조용히 각자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다.
“…….”
“…….”
두 사람은 막걸리를 마신 다음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 말이 없었다.
현성은 일부러 박범수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오늘 제대로 그와 대화를 나눠볼 참이었다.
어려서 유학을 갔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모든 걸 받기만 한 그다. 물론 그게 그의 책임만은 아니지만 이제라도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조금이라도 바꾸어주고 싶었다.
물론,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잠시 후.
박범수는 혼자 막걸리를 한 잔 더 따라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사장님.”
“네, 말씀하세요.”
“나이 먹고 창피한 얘기지만 저는 지금까지 사장님이 얘기한 그 문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랬을 겁니다. 아무도 얘기를 해줄 사람이 없었을 테니까요. 어차피 아버님도 그걸 얘기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현성은 마지막에 ‘하지만’이란 말에 힘을 줬다. 그리곤 바로 말을 이었다.
“이제는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때요?”
“네, 이제는 더 늦기 전에 형님도 한 번쯤은 진지하게 그 부분을 짚고 넘어갈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전에 먼저 이거 하나만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현성의 말이 끝나자 박범수는 궁금하다는 듯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바로 말을 이었다.
“형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겁니다.”
“네?”
“자고로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형님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대표적인 경우요?”
“네, 제가 알기론 10살 때 일본으로 갔다고 들었습니다. 맞죠?”
“네, 맞아요. 그때가 3학년 여름 방학을 시작하자마자 갔으니까요. 그건 지금도 확실히 기억합니다. 날짜까지도.”
“모르긴 몰라도 많이 무서웠을 겁니다. 그죠?”
박범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막걸리 탓인지 그의 눈가는 어느새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그런 그를 보며 현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울기도 많이 울었을 테고요.”
“…… 네, 하루는 울다 보니까 아침이더라고요. 그땐 정말 어린 나이지만 죽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습니다. 유학을 온 게 아니라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사실 그땐…….”
박범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가장 힘든 건 외로움이라고 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항상 혼자라는 생각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그의 오래전 기억은 하나둘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박범수의 말이 길게 이어지자 현성은 온 마음을 다해 듣기 시작했다. 가끔은 고개를 끄덕이며 또 가끔은 눈시울을 적시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그게 지금으로선 박범수한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위로라 생각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박범수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렇게 더 10분 정도 얘기를 하던 그가 갑자기 현성을 불렀다.
“사장님!”
“네, 형님.”
“그래서 마지막으로 죽으려고 했었습니다. 근데 아버지한테 전화가 온 겁니다. 제가 분명히 조금 전에 마지막 인사까지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아버지로부터 10분 후에 다시 전화가 온 겁니다.”
“아버님이요?”
“네, 그런데 아버지가 뭐라 그랬는지 아세요?”
현성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러자 박범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무조건 아버지만 믿고 아무 걱정하지 말고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아버님은 뭔가를 알고 계셨군요?”
“아마도 미국에 있는 형하고 통화를 한 거 같습니다. 제가 형한테 먼저 전화를 했었거든요.”
“아, 그래서 아버님이 바로 형님한테 전화를 다시 한 거군요?”
“네, 맞아요. 그때 아마 아버지와 통화를 안 했다면 저는 이미…….”
박범수는 다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앞에 놓인 막걸리 병을 잡았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막걸리 병을 잡고 따르기 시작했다. 박범수의 잔에 술을 채운 후 현성은 자신의 잔에도 막걸리를 따랐다.
그리곤 바로 잔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챙!
두 사람은 가볍게 잔을 부딪친 후 입으로 가져갔다.
“…….”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이 없었지만 그게 불편한 사람은 없는 듯했다.
아마도 박범수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얘기를 그 누구한테도 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얘기를 하는 동안 연신 눈물을 흘리는 그를 보며 그저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어찌 이게 그의 잘못이겠는가 말이다.
잘못이 있다면 부모의 과욕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부분은 그의 아버지인 박희철이 이미 인정을 했던 부분이다.
어찌 됐건 중요한 건 오늘을 계기로 박범수는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고통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거다.
자가 치유.
박범수는 오늘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얘기를 밖으로 끄집어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많은 치유가 되었을 것이다.
현성은 남았던 더덕구이 하나를 반으로 찢어 박범수 앞으로 옮겨놓았다.
“형님, 드세요. 더덕구이 향이 아주 좋습니다. 그러고 보면 형님은 진짜 요리에 대한 감각은 대단하신 거 같습니다. 책만 보고도 이 정도의 맛을 내다니 말입니다.”
“사장님도 참…….”
“빈말이 아니고 정말입니다. 그리고 이 더덕 장떡은 또 어떻고요? 솔직히 더덕으로 장떡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저는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됐습니다. 괜히 저를 위로하시려고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박범수는 말을 멈춘 채 현성을 바라봤다. 그런 그의 눈은 이미 벌겋게 충혈된 상태였다.
그런 박범수가 갑자기 현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부끄럽습니다.”
“네? 갑자기 뭐가…….”
“아버지에 관해서 말입니다. 조금 전에 저한테 이기적이라고 하셨지요? 생각해 보니 그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다 희생하는 게 마땅하고, 반대로 자식인 저는 받는 걸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했습니다.”
“…….”
특별히 할 말이 없는 현성이었다. 어떡하든 그게 잘못됐다는 걸 한 번은 짚고 넘어가고 싶었기에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동의 의사를 대신했다.
박범수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는 알 거 같습니다. 제가 정말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말입니다. 사실 어찌 보면 어느 한쪽도 일방적으로 희생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말입니다. 그건 나무 불공평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부자지간이지만 말입니다.”
“형님이 그렇게 바로 생각을 해주시니 저는 오히려 고맙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도 제가 말했지만 형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어른들의 욕심이 문제였던 거지요.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걸 따지자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한 번쯤 해보자는 거였습니다.”
“고맙습니다.”
박범수는 갑자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다시 또 말을 이었다.
“사장님이 뭐를 말씀하시는지 잘 압니다. 그래서 고맙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저한테 이런 얘기는 아무도 안 해줬으니까요.”
“다행입니다. 형님이 이렇게 바로 생각을 바꿔주시니 말입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또요? 뭐가요?”
“여기요, 여기가 시원해졌습니다. 그동안은 여기가 꽉 막힌 거 같았는데 이젠 시원합니다.”
툭툭.
박범수는 자신의 가슴을 몇 번 두드렸다.
역시 효과가 있었나 보다.
현성은 그런 박범수를 보며 살짝 웃었다.
그러자 박범수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네? 뭐를 말입니까?”
“아버지 말입니다. 어떡하든 아버지한테 감사를 표하고 싶은데 어떤 방법으로 하면 좋을까요?”
“글쎄요…….”
현성은 잠깐 생각을 하다 벽에 걸린 달력으로 시선이 옮겨갔다. 날짜를 확인한 현성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형님, 모레가 혹시 무슨 날인지 아세요?”
“모레면…… 오늘이 6일이니까 8일이잖아요?”
“맞아요. 8일입니다. 그런데 그게 5월 8일이네요? 혹시 5월 8일이 무슨 날인지 모르는 거 아니죠?”
“5월 8일이요? 글쎄요…… 그 날이 무슨 날입니까?”
박범수는 모르겠다는 듯 현성을 빤히 쳐다봤다.
“정말 모르는 겁니까?”
“잠깐만요…… 아! 혹시 어버이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맞아요. 이제 이시겠습니까?”
“아, 저는 또 다른 날인 줄 알고요. 근데 그 날이 왜요?”
피식.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이 정도 얘기했으면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저런 질문을 한다는 얘기는 그의 머릿속에는 ‘어버이 날’에 관한 개념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현성은 바로 물었다.
“혹시 일본에는 어버이날이 없나요?”
“어버이 날이요? 그런 거 없는데요?”
“네? 그게 진짭니까?”
“네, 그런 건 없고 어머니의 날이랑 아버지의 날은 있어요.”
“어머니의 날이랑 아버지의 날이요? 그 말은 날짜가 다르단 얘긴가요?”
“네, 물론입니다. 어머니의 날은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이고 아버지의 날은 그다음 달인 6월 셋째 주 일요일입니다.”
“아, 그래요?”
그건 몰랐던 사실이다.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 그러니까 일본에는 어머니 날이랑 아버지 날이 따로따로 군요?”
“네, 맞아요. 근데 사실 저는 그때가 제일 싫었어요. 그 이유는 …….”
그 이유는 굳이 안 들어도 알 듯싶었다.
현성은 다시 말을 이었다.
“음, 그랬군요. 좋습니다. 어쨌건 우리나라는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에 대한 감사를 같은 날로 정해서 마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전에 저한테 어버이 날을 물었던 거군요?”
“네, 그래서 말인데요, 조금 전에 형님이 감사의 마음을 전할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잖아요?”
“아!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날에 아버지한테 감사의 마음을 전하라는 거군요?”
“그렇죠. 그리고 이왕이면 어머니랑 아버지 두 분께 형님이 특별히…….”
“네, 알았습니다. 이제 무슨 말인지 확실히 알았습니다. 이번엔 제가 확실히 어버이 날을 챙기겠습니다. 그날은 제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박범수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자신이 할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박희철이 가장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등등, 그의 얘기는 그 후로도 길게 이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현성은 빙긋 웃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