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45)
회귀해서 건물주-45화(45/740)
이정우와 현성의 관심은 당연히 건물주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지켜보던 이정우와 현성의 표정이 약속이라도 한 듯 굳어지기 시작했다.
신명순 때문이다.
사정하듯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에서 뭔가 문제가 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때 이정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현성은 이정우를 바라보며 고개를 심하게 흔들었다.
말은 안 해도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전달되는 의사 표현이었다. 그러자 이정우가 입술을 깨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건물주는 나갔고 신명순은 주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기다리기라도 한 듯 이정우는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현성은 말리고 싶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가장 힘든 건 신명순일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말릴 수가 없었다. 이정우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말이다.
주방으로 들어간 이정우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하지만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등지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의 어깨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엄마!’
이정우는 속으로만 엄마를 불렀다. 차마 울고 있는 엄마를 부를 순 없었다.
테이블로 다시 돌아온 이정우의 눈은 어느새 발갛게 충혈 돼 있었다.
현성으로서도 속상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주제넘게 나서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현성은 지금의 분위기를 토대로 상황을 정리해봤다.
건물주가 왔다 간 후 세입자가 운다?
경우의 수는 두 가지.
하나는 월세 인상일 테고, 또 하나는 기간 만료일 것이다. 물론 단순한 기간 만료는 아닐 테고.
‘뭐야?’
‘설마?’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뭔가 있었다.
여기서도 또 건물주의 갑질?
현성의 머릿속에 전생에서 마지막 순간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건물주 이세호의 마지막 말, 계약 연장 불가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었다.
결국, 그 끝은 현성의 죽음이었다.
신명순은 생각했다.
지금까지 자세한 내용은 아들 이정우한테 말하지 않았었다. 미리 얘기해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이었다.
전조(前兆)는 사실 몇 달 전부터 보였었다.
석 달 전, 그러니까 학생들 방학하기 두 달 전이었다.
처음엔 그저 손님인 줄 알았다. 3일 연속 오길래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더니 3일째 되던 날은 장사가 잘되느냐, 손님은 주로 연령대가 어떻게 되느냐는 등 시시콜콜히 묻는 것이었다. 설마 그게 다른 마음이 있어서 묻는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여자는 건물주 여동생이었다.
그리고 한 달 후, 건물주가 이상한 말을 했다. 3개월 후에는 가게를 비워달라고. 계약 연장 안 된다고.
설마 했는데….
오늘 최종 통보를 받았다. 다음 달 말일까지라고.
월세를 더 올려주겠다고 사정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씨알도 안 먹혔다. 작정을 했다는 얘기다.
남편이 사고로 떠나고 10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를 했었다. 이제 좀 자리도 잡고 장사 좀 된다 싶었는데 이게 무슨 청천 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인가.
‘어떡해?’
신명순은 머리를 감쌌다.
앞이 안 보였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혼자만 끙끙 앓고 있을 건 또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조금 전 상황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챘을 것이다.
어차피 더 이상 숨긴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다.
휴우!
신명순은 한숨을 쉰 후 주방을 나와 이정우와 현성이 있는 테이블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들! 이제부터 엄마가 하는 얘기 잘 들어. 그러니까 …….”
역시 현성의 예상이 맞았다.
계약 연장 불가!
단순하게 계약 기간 만료라면 나갈 마음이 없는 세입자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거야 당연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세입자의 서러움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거다.
나중에서야 임대차보호법이 10년을 보장해주는 등 법이 있었지만, 이때만 해도 건물주가 곧 법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단순한 임대 기간 만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미 주변 상가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했다. 장사가 좀 되자 건물주가 탐을 낸다는 것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건물주 여동생이 분식 가게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큰 족발집도 아니고 술집도 아니고 조그만 분식 가게다.
그런데 그걸 또 욕심내는 족속들이다.
신명순의 얘기가 끝나자 이정우의 눈에선 결국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신이 건물주 이세호한테 당했던 것과 너무도 똑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지고 만 것이다.
전생이나 지금이나 세월이 그렇게 지났음에도 건물주라는 유전인자는 어쩜 그리도 변함이 없는지 소리 안 나는 총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현성은 조용히 가게를 나왔다.
하아!
참았던 숨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또 벌어진단 말인가. 그것도 제일 친한 친구한테 말이다. 우연치고는 너무 고약한 운명의 장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2학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 듯싶다. 어느 날 이정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가게 문을 닫는다고.
그땐 솔직히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아마도 본인 능력 밖의 일이었기에 어른들의 일이라며 모른 체했을 것이다.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걸 보면 별 생각이 없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지금은?”
적어도 그때 그런 마음은 아닐 것이다.
이젠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미리 살아본 세월이 얼마인데 뭔가 방법이 정말 없을까?
현성의 눈빛이 변하는 순간이었다.
찾자.
어떡하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분명 뭔가 있을 거라는 게 현성의 생각이었다.
현성은 이정우네 분식 가게를 나와 학교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5분쯤 걸었을까.
학생들 몇 명이 걸어오더니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뒤 그 골목에서 어른 두 명이 나와 시장 쪽으로 걸어갔다.
“음?”
현성은 걸음을 멈추고 길 건너 골목을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골목을 지나다니는 학생들의 숫자가 유독 많았다. 가끔 어른들도 다니긴 했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
현성이 지금 지켜보고 있는 골목은 학교 방향과 삼거리를 연결해주는 지름길이었다. 큰길로 돌아갈 때보다 2~3분 정도 단축되는 거리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이 유독 많은 이유다.
“저기는?”
현성은 길을 가로질러 골목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현성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의 기억에 의하면 골목 조금 들어가서 상가가 하나 있었다. 꽤 오랫동안 비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라면 전문집이 생겼었다.
그런데 그 집이 대박이 났었다. 이유는 매운 맛의 열풍이 불면서부터였다.
오로지 매운맛을 위한 라면 전문집이었다. 1단계부터 3단계까지 있었다.
“잠깐!”
현성은 걷던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움직이던 현성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그땐 고3이었는데…….”
그 라면 전문점이 생긴 건 2학년 겨울 방학이 끝나고 3학년 새 학기가 막 시작할 때였다. 갑자기 학교 내에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같이 만나면 첫인사가 다 똑같을 정도였다.
“몇 단계?”
그만큼 매운맛의 열풍이 강했던 것이다. 아마도 시골이라 더 심했을 수도 있다. 먹거리 선택의 폭이 좁다 보니 말이다.
특히 남학생들 사이에선 은근 경쟁도 붙었었다.
누가 더 매운맛에 강한가?
타다닥.
현성은 골목 안쪽으로 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현성이 멈춘 곳은 어느 빈 상가 앞이었다.
“여기다!”
그래 여기야!
기억 속의 상가가 틀림없었다.
분명 대박이 났던 곳이다. 물론 아직은 주인을 만나지 못한 탓이라 가게는 비어있는 상태였다.
잠시 상가를 바라보던 현성은 뒤돌아 다시 뛰기 시작했다.
드르륵!
쾅!
현성은 이정우네 가게 문을 열어젖혔다.
너무 세게 연 탓인지 문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가게 안에 있던 이정우와 그의 어머니 신명순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뛰어왔는지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현성의 얼굴이 보였다.
이정우가 현성을 보며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찾았다!”
현성은 이정우한테 말하고는 바로 또 신명순을 향해 다시 말했다.
“어머니! 찾았습니다!”
“현성아, 도대체 뭘 찾았다는 거냐?”
“가게 이전할 자리요. 여기서 멀지도 않아요.”
신명순은 현성을 바라보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표정으로만 봐서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듯한 모습인데, 솔직히 자신의 입장에서는 전혀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장사한 지 올해로 10년째다. 얼마 전부터 건물주가 더 이상은 계약 연장이 안 된다고 했을 때부터 이곳저곳을 알아봤었다.
그런데 이 돈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애석하게 한 군데도 없었다. 시골 동네라 빈 상가조차 몇 개 되지도 않았었다.
신명순의 입이 힘없이 열렸다.
“고맙긴 한데…….”“저를 믿으시라니까요.”
“현성아, 미안한데…….”
신명순은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현성이 자신의 손을 잡고 무조건 가게 밖으로 끌고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정우도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따라나섰다.
잠시 후.
현성은 조금 전에 봤던 상가 앞에까지 와서야 신명순의 손을 놔주었다. 그리곤 호기롭게 큰 소리로 말했다.
“여깁니다.”
“여기라고?”
“네, 여기가 이전할 가게란 말입니다.”
“여기는…….”
이곳은 신명순도 잘 알고 있는 자리였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식당을 했던 자리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갑자기 주인이 주방에서 쓰러졌는데, 그만 그게 끝이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지병이 있었다고 하는데 확인된 바는 없었다.
중요한 건 사람이 죽어 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누구도 이곳에 뭔가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신명순은 현성을 보며 말했다.
“혹시 이 상가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니?”
“아니요. 제가 아는 건 이전하기에 이만한 장소가 없다는 것뿐입니다.”
“여기는 안 된다.”
안 된다!
신명순의 답변은 너무도 간결하면서도 확실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말이라는 게 어느 정도 여지가 있어야 그 빈틈을 파고들 텐데 신명순의 답변은 철옹성이나 마찬가지였다.
할 말을 잊은 현성은 신명순을 빤히 쳐다보는 걸로 말을 대신했다.
그러기를 잠깐.
저 정도로 완고하게 말한다는 건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 보는 게 우선이었다.
현성은 신명순을 바라보며 심각하게 말했다.
“그 이유나 들어 봅시다.”
“뭐, 봅시다?”
순간 현성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자신도 모르게 전생의 말버릇이 나온 것이다.
“헤헤, 아니 그게 아니고 너무 완고하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그만….”
“갑자기 웬 아저씬가 했다.”“저도 순간적으로 놀랐지 뭡니까? 그건 그렇고 왜 안 되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이걸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만, 사실 이곳은…….”
신명순은 어쩔 수 없이 현성에게 이곳에 관한 숨겨진 얘기를 말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런데요?”
신명순의 애기를 다 듣고 난 현성의 반응이었다.
“그런데요 라니?”
“그게 어쨌다는 말씀입니까?”
“사람이 죽어 나간 자리라니까.”
신명순은 현성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사람이 죽어 나갔다는 말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현성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갑갑하기는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사람이 죽어 나갔다는 이유로 이곳을 꺼린다?
물론 어느 정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얘들도 아니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성은 신명순을 보며 다시 말했다.
“그게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뭐라고?”
“단순히 사람이 죽어 나간 자리하고 해서 여기를 꺼린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사람이야 어차피 누구나 죽는 거 아닙니까?”
“그렇기야 하지만 그 문제하고는 다른 거지. 어쨌든 난 싫다.”
신명순의 입장은 확고부동(確固不動)이었다.
난감한 건 현성이었다.
무조건 되는 자린데, 그것을 설명할 수 없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서 여기 주인은 현지인이 아닌 외지 사람이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현성은 이정우를 바라봤다.
혹시나 이정우를 통하면 뭔가 달라질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우야!”
“나야 뭐, 엄마가…….”
이럴 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이정우였다.
현성은 신명순을 보며 다시 물었다.
“이 자리가 무조건 대박 난다해도 절대 안 되겠습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무조건 대박 나는 자리라니까요.”
“그걸 어떻게…….”
못 믿겠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