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453)
회귀해서 건물주-453화(453/740)
455
“쿡쿡.”
김일수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현성의 지갑에서 설마 그게 나올 줄은 진짜 몰랐다.
몇 년 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현성과 단둘이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 전에 그에게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카드는 그 전날에 집에서 만든 조그만 카드 한 장이었다.
고마운 마음에 그에게 뭐라도 주고 싶었다.
자신의 인생이 그 덕분에 완전히 바뀌었으니 어떡하든 고등학교를 마감하면서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며칠 전부터 고민을 하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바로 백지수표였다. 한도가 정해져 있지 않은 수표, 상대가 원하는 금액은 얼마가 됐든 무조건 지급해야 하는 수표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한 백지수표의 개념은 다른 의미였다.
돈 대신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그건 바로 상대가 원한다면 그게 무엇이든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따르겠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노예계약과 비슷한 의미였다.
그래서 만든 게 명함 크기의 하얀 종이였다. 백지수표 대신에 백지카드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물론 자신의 사인을 정성껏 적어 넣었다. 그땐 그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고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했었다.
– 이 카드는 백지카드다. 앞으로 살면서 네가 원하는 게 있을 때 그게 무엇이든 이 카드를 내밀면 나는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너의 말에 따르겠다. 내가 지금으로선 가진 게 없어서 너한테 줄 수 있는 건 이게 최선이다.
카드를 주면서 자신이 한 말이다.
어쩌면 유치한 애들 장난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땐 또 그때대로 나름 심각하고 진심이었다. 그만큼 고마웠기에 어떡하든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카드가 이렇게 진짜로 사용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중요한 건 현성이 그 카드를 지금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김일수는 현성으로부터 받은 백지카드를 손에 쥐고 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이걸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냐?”
“당연하지, 그게 어떤 카든데. 네가 나한테 준 최고의 선물이었잖아.”
“이걸 지금 사용하겠다는 거고?”
“물론이지.”
현성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카드를 받을 때만 해도 솔직히 그걸 사용하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 김일수의 행동이 너무도 진심으로 느껴졌기에 오늘날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 부사장 얘기를 하던 중에 그 카드가 문득 생각이 났다.
물론, 김일수가 왜 부사장이 돼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라면 얼마든지 얘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김일수다.
그의 성격에 아무리 설명을 한다고 해도 그 자리를 받아들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유?
그런 녀석이니까.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 잠깐 고민을 했고, 그 결과 찾아낸 방법이 바로 그가 고등학교 졸업을 며칠 앞두고 전해준 바로 그 백지카드였던 것이다.
“…….”
카드를 손에 쥔 김일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
피식.
김일수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가 싶더니 결심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인 후 바로 입을 열었다.
“좋다, 이 카드의 효용은 이 시간부로 종료다.”
“받겠다는 거야?”
“물론이다. 내 입으로 내가 한 약속인데 어길 수는 없는 거잖아. 그런데 미안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다.”
“조건?”
현성은 ‘조건’이란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 이유는 지금 이 순간에 그의 입에서 조건이란 말이 나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는 그 카드를 주면서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자신의 말을 따르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현성의 목소리가 커졌다.
“야, 그건 반칙이지. 네가 분명히…….”
“내 말 끝까지 들어.”
김일수는 현성의 말을 끊었다. 그리곤 씨익 웃으며 바로 말을 이었다.
“물리기 없기다.”
“뭐?”
“물리기 없기라고. 이게 내 조건이다. 어때? 그래도 이 카드를 지금 쓸 거야?”
김일수는 현성의 답변이 나오기도 전에 다시 말을 이었다.
“생각 잘해야 할 거다. 나 또한 욕심이 있는 놈이라 부사장 자리에 한번 앉으면 절대로 안 물러날 거니까. 혹시라도 지금의 결정을 나중에 후회할 거면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까 이 카드 도로 가져가라. 내가 주는 마지막 기회다.”
“마지막 기회?”
“그래, 나라고 왜 욕심이 없겠냐? 하지만 마지막 양심으로 버티고 있는 거다. 빨리 결정해라. 나도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 거 같으니까.”
“…….”
현성은 대답 대신 그를 바라봤다.
조금 전에 김일수의 조건이라는 말에 처음엔 이건 반칙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유 불문하고 자신의 말을 따르기로 한 그가 조건을 내세우니 당연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그 조건이란 걸 듣고 보니 오히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부사장.
그 자리가 결코 작은 자리는 아니다.
사람인 이상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그건 김일수도 마찬가지일 테고.
하지만 지금 그는 마지막 양심으로 버티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녀석이다.
그냥 모른 척 받아도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아닌데 그걸 또 양심으로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는 거다.
여기서 더 이상 시간을 끈다는 건 그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콜!”
“콜?”
“그래, 네가 말한 그 조건까지 받아들인다.”
“진짜야?”
“그래, 내가 여기서 장사를 하는 동안 부사장은 내 친구 김일수가 유일하다!”
현성의 목소리에 감정이 듬뿍 실렸다.
사람의 마음이 참 묘하다.
어쩌면 처음 부사장 자리를 언급했을 때 바로 단번에 받아들였다면 지금처럼 감정이 실리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또 마지막 양심으로 버티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니 감정이 더 실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김일수가 멋쩍은 듯 살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나 이제부터 부사장인 거야?”
“그래, 인마. 받아줘서 고맙다.”
“내가…… 부사장이라고…….”
김일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그 모습을 본 현성은 미소를 지으며 바로 말을 이었다.
“부사장님, 그런 의미에서 우리 맥주 한 캔 더 할까요?”
“흐흐…… 부사장님?”
김일수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는 순간이었다.
현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와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딸깍.
캔맥주를 따서 김일수에게 내밀었다.
“자, 우리 건배하자.”
“흐흐…… 좋다. 부사장으로 승진까지 했는데 한잔 더 안 마실 수야 없지. 자, 건배.”
두 사람은 기분 좋게 공중에서 맥주캔을 부딪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얼마 동안 맥주를 마시며 즐거움을 함께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빈 맥주캔 또한 늘어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약간의 취기가 오른 두 사람.
김일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앞으로 할 일이 뭐야?”
“그전에 내가 먼저 하나만 묻자. 넌 네가 사장이라면 하고 싶은 게 뭐야?”
“내가 사장이라면?”
“그래.”
“음…… 글쎄다, 솔직히 갑자기 초고속 승진이라 정신이 없기는 한데, 내가 만약 사장이라면 아무래도 장사에 가장 먼저 신경을 쓸 거 같다. 어차피 가장 중요한 건 장사일 테니 말이야.”
현성은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물었다.
“그리고?”
“음…… 그다음은 직원들이 많으니까 아무래도 직원들한테 신경을 쓰게 되겠지. 어차피 그 사람들이 잘해야 여기 식당도 살고 모두가 살 수 있는 거니까.”
“어떻게?”
“어떻게?”
“그래, 어떤 식으로 신경을 쓸 건지 그 방법들이 있을 거 아니야?”
현성의 질문에 잠깐 생각을 하던 김일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솔직히 직장 생활을 해보니까 월급이 중요하긴 중요하더라.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게 또 있더라고.”
“그게 뭐야?”
“직원을 무시하지 않는 거. 아무리 월급을 받는 입장이지만 인격적인 모독은 참을 수 없더라고. 나야 그곳에서 오래 안 있어서 그런 경우가 없었지만 다른 직원들 얘기 들어보니까 장난 아니더라고.”
현성도 이미 알고 있는 얘기였다. 월급을 준다는 이유로 직원을 무시하고 때로는 폭력까지 서슴지 않는 경우를 전생에서 많이 봤으니 말이다.
현성은 다시 물었다.
“해결책은?”
“해결책? 글쎄…… 사장의 인격이 문제가 아닐까? 그거야 너니까 문제가 없을 테고, 그리고 사장도 사장이지만 직원들 간에도 괴롭히는 경우도 많더라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쩔 수 없이 직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거고.”
“어떻게?”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쉬운 건 직원들로부터 직접 얘기를 듣는 거지. 물론 그러려면 비밀 보장은 기본일 테고. 그리고…….”
김일수의 말이 길어졌다. 아무래도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겪었거나 선배들로부터 들은 얘기가 많은 듯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식당 경영의 전반적인 얘기까지 설명이 이어졌다.
현성은 조용히 그가 얘기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얘기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해.”
“응? 뭐라고?”
“그렇게 하라고. 지금까지 네가 했던 말들 그대로 앞으로 하라고. 그게 부사장으로서 네가 할 일이야.”
“내가?”
“그래, 그래서 부사장 자리가 필요한 거야. 그리고 하나 더.”
현성은 손가락 하나를 펼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식당이 정상 궤도에 오르면 난 여기를 가끔 비우 게 될 거야. 그땐 네가 나 대신에 여기를 책임지고 운영하게 될 거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어떻게?”
“그렇다고 너무 걱정은 하지 마라. 1, 2년 사이에 떠날 건 아니니까. 그동안 나랑 같이 운영하면서 배우면 돼.”
“잠깐!”
김일수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곤 다시 바로 물었다.
“지금 여기를 떠난다고 그랬어?”
“아무래도 그렇게 될 거 같다. 그렇다고 완전히 떠나는 건 아니야. 가끔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올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
김일수는 너무 황당해서 말도 안 나왔다.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식당도 작은 식당도 아니고 전국에서 제일 큰 식당을 만들어놓고 사장이란 사람이 그 자리를 비우겠다니 말이다.
“휴우!”
김일수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그러자 현성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야, 그렇다고 무슨 한숨을 그렇게 쉬어?”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너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자그마치 1,000명이야. 그런데 그 사람들을 놔두고 어디를 가겠다고 하는지 말이야.”
“경영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고 시스템이 하는 거야.”
“시스템?”
“그래, 그러니까 그건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그 시스템은 다 만들어 놓고 나갈 테니까. 그리고 나중엔 또다시 돌아올 거야.”
“…….”
김일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시스템은 그렇다 치고 나중에 다시 또 돌아오겠다니?
김일수는 바로 물었다.
“다시 돌아온다고?”
“응, 물론 그 시기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내 목적을 이루고 나면 돌아올 거야.”
“그 말은 여기를 나가는 다른 목적이 있다는 거야?”
“그래,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거든.”
“가장 중요한 일? 그게 뭔데?”
“미안해. 지금은 아직 말할 수는 없어. 때가 되면 말하겠지만 나에겐 어쩌면 여기 식당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여기를 비우게 될 거야.”
김일수를 부사장으로 앉힌 이유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여기를 비우게 되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하니 말이다.
식당은 3년 정도면 완전히 자리를 잡을 것이다. 어차피 운영은 각 팀장들의 관리하에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손님들도 그때쯤이면 안정권에 들어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부 일은 부사장인 김일수가 맡고 외부일은 유민철 부장이 맡으면 이곳을 운영하는 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할 일은 바로 아내 윤지수를 찾는 일이다.
전생에서 그녀를 처음 만난 건 29살인 2007년 봄이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가 36살이었다.
하지만 그땐 서로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비디오 가게 주인과 손님일 뿐이었다.
그녀와 만남이 이루어진 건 그로부터 4년이 지난 33살 때였다. 그녀 또한 그땐 이미 40이 되었고. 그렇게 1년을 사귄 끝에 2002년 월드컵으로 나라가 뒤집어지던 6월에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처음 만났을 때 왜 인연이란 걸 몰라봤는지 후회된다.
나중에 그녀가 습관처럼 한 말이다. 처음 만났을 때 인연이 되었다면 아이도 있었을 테고 좀 더 행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한 번으로 족하다. 그런 실수는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주어진 기회다. 이번엔 제대로 멋지게 그녀와의 인연을 만들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준비를 하는 것이다.
현성은 김일수를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글쎄다, 난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는데 네가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잖아. 일단 열심히 해볼게.”
“고맙다, 그리고 내 결혼식 때 사회는 너랑 정우랑 같이 봐라.”
전생에서 결혼식 사회는 이정우 혼자 봤었다. 하지만 이젠 또 한 녀석이 그 자리에 같이 서도 될 듯싶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성 혼자만의 생각인 거고, 김일수는 황당하다는 듯 바로 말을 이었다.
“야, 갑자기 여기서 결혼식 얘기가 왜 나와?”
“그런 게 있다. 나중에 보면 안다. 그건 그렇고 우리 내일 오픈을 위해서 건배하자.”
현성은 맥주캔을 높이 들었다.
그러자 김일수 또한 맥주캔을 높이 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맥주캔은 허공에서 또 한 번 부딪혔다.
‘지금쯤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이제 몇 년 후면 그녀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늘따라 그녀가 더욱 보고 싶어 졌다.
456
회귀해서 건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