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477)
회귀해서 건물주-477화(477/740)
경동시장 사거리에 위치한 민중한의원.
“후우!”
심호흡을 길게 내쉰 반백의 김민중 한의사. 그의 앞에는 조금 전 읽은 일간 신문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때였다.
똑똑.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민중한의원의 사무장인 한석호였다.
“원장님, 부르셨습니까?”
“네, 이쪽으로 앉으세요.”
한석호가 자리를 잡고 앉자 김민중이 기다렸다는 그의 앞에 커피잔을 내밀었다.
그러자 한석호가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후 바로 입을 열었다.
“커피는 역시 원장님이 내린 커피가 참으로 맛이 좋습니다.”
“허허, 별소릴 다 하네요.”
“아닙니다, 농담이 아니라 어디를 가도 원장님이 내려주신 커피만 한 게 없습니다.”
한석호는 농담이 아니라는 듯 정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자 김민중이 알았다는 듯 미소를 살짝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렇게까지 인상을 안 써도 되네. 그건 그렇고 이 건물 말인데, 만기가 언제라고 했지요?”
“올 9월이니까 이제 5개월 남았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냥이요.”
“그냥이요……?”
한석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한의원을 운영해온 건 올해로 20년째다. 20년 동안 있으면서 원장인 김민중이 건물 계약에 관해 신경을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일부러 불러놓고 계약기간을 물어보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때 김민중이 나직한 목소리로 한석호를 불렀다.
“사무장님!”
“네, 원장님.”
“우리가 이곳에 터를 잡은 지 몇 년이나 되었지요?”
“올해로 20년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아니요, 그냥…….”
한석호는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전에는 계약 만기일을 묻더니 이번엔 또 몇 년이나 있었는지 묻는 모습이 아무리 생각해도 평상시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사람을 100% 안다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그 사람과 함께 생활한 시간이 어느 정도 되면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했을 때 그 사람의 심경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그 함께한 세월이 20년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지금 김민중의 경우가 그렇다.
20년 동안 한 번도 하지 않던 행동을 한다?
그것도 연거푸 두 번씩이나.
무슨 일일까……?
잠깐 고민하던 한석호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김민중을 바라보며 바로 입을 열었다.
“원장님 무슨 일인지 저한테 말씀하십시오.”
“어? 눈치를 챘습니까?”
“이거 왜 이러십니까, 제가 원장님과 함께한 시간이 얼만데…….”
“하하, 그런가요.”
김민중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가볍게 웃은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내년이면 환갑입니다.”
“네? 아, 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알고 있는 얘기다. 하지만 갑자기 나이 얘기를 하니 순간적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신을 차린 한석호는 김민중을 바라봤다. 그다음 얘기를 하라는 의미였다.
잠시 말이 없던 김민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사실은 고민이 있습니다.”
“고민이요? 어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네?”
김민중의 얘기를 듣던 한석호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그만큼 김민중의 말이 충격적이었다는 얘기다.
고민이 있다고 하기에 무슨 고민인지 당연히 궁금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한석호는 바로 물었다.
“지금 갱신을 고민한다고 하셨습니까? 제가 지금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사실은 좀 됐습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사무장님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제 혼자 1년 전부터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렇다고 사무장님을 무시해서 그런 건 아니니까 행여 오해는 하지 마세요.”
“…….”
한석호는 할 말이 없었다.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지금까지 20년을 함께 했지만 오늘 같은 날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너무 놀란 탓인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한석호가 아무 말이 없자 김민중이 자세로 고쳐 앉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석호야!”
“네? 아, 네.”
한석호는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에 순간 당황했지만 바로 정신을 차렸다. 그만큼 김민중이 자신의 이름을 부른 적은 드물었다는 얘기다.
어쩌다 아주 가끔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보통 술이 어느 정도 취한 상태이거나 솔직한 감정을 얘기를 할 때였다.
하지만 오늘같이 이런 자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민중이 다시 물었다.
“서운하냐?”
“네? 아, 아닙니다. 서운한 게 아니라 놀라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죄송하고요.”
“죄송? 왜?”
“원장님이 그토록 고민이 깊었는데 제가 몰랐다는 게 왠지 저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거 같아서 말입니다.”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런 생각은 하지 마.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진짜 미안하지. 내가 이번엔 좀 그럴 일이 있었다. 사실은…….”
김민중은 자신이 왜 그런 고민을 했었는지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설명이 이어지자 한석호는 조용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김민중의 설명이 끝나자 한석호는 잠깐 고민을 하는 듯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 그가 다시 입을 연 건 그의 말이 끝나고 1분쯤 지났을 때였다.
“지금 은퇴라고 하셨습니까?”
“네, 사무장님.”
어느새 다시 존칭으로 돌아온 김민중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한석호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신 거고요?”
“네, 사실은 은퇴를 하려고 했었는데 오늘 생각을 바꿨습니다. 아니, 아직 확실히 바꾼 건 아니고 좀 더 고민하기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원장님께 무슨 일이 있었다는 말씀이군요?”
1년 전부터 고민을 하다가 오늘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 말은 결국 오늘 그에게 특별한 일이 생겼다는 얘기가 된다.
그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민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맞습니다.”
“혹시 그게 무슨 일인지 저한테 말씀을 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당연하지요. 그래서 사무장님을 오시라고 한 건데요.”
김민중은 그 말과 함께 신문을 한석호한테 건네며 말을 이었다.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이게 뭡니까?”
“일단 보시죠.”
김민중이 내민 건 전면이 광고로 채워진 신문의 맨 뒷장이었다.
-함께할 의사 선생님을 모십니다!
광고의 맨 위에 적인 광고 글이었다. 한석호는 광고를 읽기 시작했다.
얼마 후.
“혹시 지금 생각한 곳이 이곳입니까?”
한석호는 보던 신문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러자 김민중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이란 말씀은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네요?”
“네, 맞습니다. 사실은 은퇴를 생각했었는데 오늘 그 광고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시골 생활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이 서울이 이제는 좀 버겁습니다.”
‘버겁다?’
한석호는 김민중이 말한 ‘버겁다’라는 말에 대해 잠시 고민을 해봤다.
버겁다는 건 벅차다는 얘기일 것이다.
처음 이곳에 병원을 차릴 때만 해도 그의 나이 마흔이었다. 그리고 이제 내년이면 환갑이고.
20년을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다.
경동시장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반경 1킬로 내에 한의원만 100여 개다. 말 그대로 10미터에 하나씩 있는 게 한의원이다.
심지어는 한 건물에 한의원이 3개씩 있는 곳도 있다.
그중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쉬는 날?
언감생심이다.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는 날이 바로 쉬는 날이었다. 주말이면 손님들이 지방에서 올라오는 탓에 더 바쁜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렇게 20년을 달려왔으니…….
한석호가 말없이 고민을 하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민중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이제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김민중은 말을 하다 말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는 서울에서 살기 싫습니다. 솔직히 돈도 싫고 건강도 예전 같지 않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으로도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제는 지금까지 살던 방향을 바꿔볼까 합니다.”
“그래서 시골을 선택하신 겁니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궁금증이요?”
한석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도 서울이 싫고 이곳 생활에 지쳤다고 했었다. 그런데 또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고 하니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석호 입장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석호는 궁금한 마음에 다시 물었다.
“지금 궁금증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궁금증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친구 말입니다.”
“그 친구라면……?”
“그 광고주 말입니다.”
김민중은 그 말과 함께 턱으로 신문을 가리켰다.
그러자 한석호 또한 자연스럽게 시선이 신문으로 향했다.
-김현성.
광고 맨 하단에 사진과 함께 적힌 이름이었다. 조금 전에 볼 때는 무심히 그냥 지나쳤던 부분이다.
“어?”
한석호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건 바로 광고주의 나이 때문이었다.
“원장님, 혹시 이 친구 나이 보셨습니까?”
“네, 봤습니다. 재밌지 않습니까? 27살짜리 치고는 맹랑하지 않습니까?”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한석호는 황당 그 자체였다. 물론 세상을 나이로 재단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상식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이건 그 상식 자체를 파괴하는 일이었다.
김민중의 말이 이어졌다.
“어떻습니까? 사무장님도 궁금증이 생기지 않습니까?”
“저는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옵니다. 어떻게 이 나이에 이게 가능합니까? 병원을 한 개도 아니고 여덟 개씩이나 유치를 하겠다니 말입니다. 게다가 5년 동안 무상으로 그것도 일정 수익을 보존하겠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게 또 거짓은 아닐 거 아닙니까?”
“그거야 물론이겠지요. 진짜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말입니다.”
한석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다.
처음엔 광고를 보고 어떤 독지가가 마을을 위해 건물을 기부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막상 27살이라는 청년인 걸 알고 나니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김민중의 말이 이어졌다.
“이만하면 직접 확인해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확인이요?”
“네, 그래도 세상을 살아본 경험이 있는데 광고만 보고 무조건 믿을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말씀은?”
“네, 직접 내려가 볼 생각입니다. 도대체 이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가서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결정을 할까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5년 동안 공짜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수익도 보존을 해주겠다고 했고 말입니다.”
말하는 김민중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만큼 이미 마음은 그쪽에 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 모습을 바라본 한석호가 물었다.
“그리 좋으십니까?”
“당연히 좋지요. 어쩌면 이 또한 운명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지금 운명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쩌면 제 마지막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장 고민하던 순간에 찾아온 기회이니까 말입니다.”
김민중은 바로 또 말을 이었다.
“강요는 하지 않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20년 동안 저 때문에 고생하셨는데 더 이상 사무장님을 잡는다는 것도…….”
“원장님!”
한석호는 김민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큰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리곤 바로 말을 이었다.
“이거 정말 섭섭합니다.”
“네? 섭섭이요?”
“네, 지금까지 원장님과 함께한 세월이 20년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저를 버리시는 겁니까?”
“버려요? 누가요?”
“조금 전에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더 이상 붙잡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그게 버리는 거지 뭡니까?”
한석호의 표정에서도 서운한 감정이 역력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김민중은 바로 입을 열었다.
“허허, 이거 뭔가 오해가 있었나 봅니다. 저는 단지 사무장님한테 미안해서 그랬던 겁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사무장님을…….”
“진짭니까?”
“네? 뭐가요?”
“저를 버리는 게 아니라는 말씀 말입니다.”
“당연하지요. 우리가 지금까지 이 바닥에서 함께한 세월이 있는데 제가 어찌 그러겠습니까?”
“그럼 됐습니다. 저는 혹시라도 원장님이 저를…….”
한석호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건 김민중이 자신을 바라보면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장님, 그 웃음은 뭡니까?”
“좋아서 그렇습니다. 저는 혹시라도 사무장님이 시골에 안 내려가겠다고 하면 어쩌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나니 저도 모르게 그만 웃음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자, 그럼 내일 당장 서명으로 가는 겁니다!”
“내일 당장이요?”
“네, 저도 일요일에 처음으로 한번 쉬어 보렵니다. 우리도 내일은 20년 만에 처음으로 벚꽃이나 한번 보러 갑시다. 가서 그 친구가 어떤 친군지 한번 만나봅시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쉬는 날이라 그런지 김민중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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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건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