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478)
회귀해서 건물주-478화(478/740)
다음 날.
고속도로를 달리는 승용차 한 대.
그 안에는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기분이 어떻습니까?”
조수석에 앉은 김민중이 운전을 하고 있는 한석호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운전을 하고 있던 한석호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바로 대답했다.
“아주 좋습니다. 20년 만에 외출이라 그런지 마치 학창 시절에 수학여행을 가는 기분입니다.”
“그래요? 그럼 다행입니다.”
“원장님은 어떠세요?”
“말하면 뭐합니까? 일단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숨이 트이는 거 같았습니다. 자, 이 공기를 마셔보세요. 벌써 공기 질부터 다르지 않습니까?”
김민중은 완전히 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공기를 한껏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한석호가 씨익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1년 전부터 고민을 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혹시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겁니까?”
사실 어제 원장인 김민중으로부터 그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궁금했던 거였다.
전혀 예상도 못 했던 일이다.
거의 20년을 아무 일없이 잘 생활해 오던 사람이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건 어떤 계기가 있었을 거라는 게 한석호의 생각이었다.
김민중이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되물었다.
“계기요?”
“네, 솔직히 어제는 많이 놀랐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시던 분이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는지 말입니다.”
“그게…….”
잠깐 망설이던 김민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친구 녀석 하나가 죽었습니다.”
“혹시 작년 봄에 인천 상갓집에 다녀오신 그분 말씀입니까?”
“네, 맞아요. 물론 교통사고였지만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던 녀석이었거든요. 그렇게 황망히 가는 걸 보고 나니 저도 모르게 회의감이 들더군요.”
“아, 네…… 그러셨군요.”
1년 전이었다.
진료가 끝나자마자 상갓집에 간다면서 사라졌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상갓집을 다녀온 후 일주일 동안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상시와 너무나 달랐다.
나중에서야 친구가 상을 당했다는 걸 알았다.
결국, 그때 그 일이 발단이었다는 얘기다.
김민중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사실 그때부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대로 언제까지 꽉 막힌 서울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야 하는지 말입니다.”
“네,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렇게 1년을 고민하다가 어제 신문에서 그 광고를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거였습니다.”
한석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김민중이 다시 바로 말을 이었다.
“굳이 내가 언제까지 서울에서 그 많은 한의원들과 경쟁하면서 하루도 못 쉬고 숨 막히게 살 필요가 있나 하고 말입니다.”
“사실 그건 말이 안 되는 얘기였습니다. 그 작은 동네에 한의원 100개가 말이 됩니까? 처음 저희가 그 동네에 오픈할 때만 해도 그 절반도 안 됐었는데 말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인제 와서 탓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차피 지난 일이고 이제라도 그 지옥에서 벗어나면 되는 거지요.”
한석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20년을 버틴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처음부터 그곳이 그렇게 한의원이 몰려 있었던 건 아니다. 70년대까지도 토요일 오후부터는 쉬면서 할만했었다.
변화가 생긴 건 80년대 초부터였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동시장의 상권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주변에 한의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한 건물에 한의원이 세 개씩이나 몰릴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말이다.
결국, 과잉 경쟁의 결과는 토요일은 물론이고 일요일도 없이 일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지방의 환자들이었다.
평일에는 시간이 안 된다는 이유로 주말에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한두 사람씩 쌓이다 보니 경동시장 일대의 한의원들은 1년 365일 쉬지 않는다는 꼬리표가 붙으면서 모든 한의원들이 주말에도 진료를 보게 된 것이다.
쉬면 그만큼 손님을 뺏길 수밖에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모두가 문을 열었던 것이다.
그 세월이 어느덧 20년이 된 것이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승용차는 어느새 원주 톨게이트를 막 빠져나가고 있었다.
“저 앞에서 좌회전이요.”
김민중이 손으로 왼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한석호가 바로 물었다.
“참, 군 생활을 원주에서 하셨다고 했던가요?”
“맞아요, 바로 40년 전에 여기 태장동에서 근무했어요. 지금도 그 부대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여기 지리를 잘 아시는군요?”
“네, 그때는 내가 한의대에 들어가기 전이라 운전병으로 근무를 했었거든요. 그리고 사실은 지금 가는 서명면도 예전에 훈련 뛸 때 몇 번 간 적이 있었고요.”
“아, 그렇습니까? 그럼 어제 광고를 볼 때도 이미 알고 계셨다는 말씀이시네요?”
“네, 맞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더 관심이 갔을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지금도 오랜만에 꼭 고향을 찾아가는 기분입니다.”
한석호는 빙긋 웃으며 김민중을 바라봤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지금 심정이 어떤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듯싶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승용차는 다시 횡성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이정표에 서명면이란 글자가 나왔다.
한석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원장님, 드디어 서명면입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앞으로도 1시간 30분은 더 달려야 할 겁니다. 혹시 피곤하면 교대할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모처럼 비포장을 달리는 기분도 좋습니다.”
한석호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비포장의 흔들림이 아주 오래전 기억들을 깨우는 듯했다.
그때 김민중이 다시 한석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나도 사무장님한테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저한테 말입니까?”
“네, 그래요. 다른 게 아니라 제가 생각할 때 사무장님의 경력 정도면 경동시장에 있는 어느 한의원을 가시더라도 환영을 받을 텐데 왜 굳이 저와 함께 하겠다는 이유가 뭔지…….”
“그게 궁금하십니까?”
“…….”
김민중은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석호가 바로 또 말을 이었다.
“혹시 기억하십니까?”
“네? 뭐를 말입니까?”
“20년 전 말입니다. 원장님께서 저를 처음으로 채용하면서 주셨던 돈 말입니다.”
“네? 아, 그거요.”
김민중 또한 기억하고 있는 일이다.
처음 그를 채용할 때였다. 채용이 확정되던 날 그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왔었다.
그건 바로 1년 치 월급을 미리 달라는 거였다.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달이 된 것도 아니고 채용이 확정된 날 1년 치 월급을 달라고 하니 말이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어머니 때문이었다. 급히 어머니 수술을 해야 하는데 목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그때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었다. 그건 바로 어머니 때문이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어머니 수술을 하겠다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한석호의 말이 이어졌다.
“그땐 원장님도 여유가 없었던 때입니다. 이제 막 개원을 했으니 당연했겠지요. 그런데도 원장님은 그 돈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대출을 내서 말입니다.”
“그거야 어머니가 급하게…….”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이제 막 들어온 직원이 1년 치 월급을 달라고 한다고 해서 그 돈을 주겠습니까? 그것도 대출을 내서 말입니다.”
“…….”
특별히 할 말이 없는 김민중이었다.
그러자 한석호가 바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덕분에 저희 어머니는 무사히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원장님 얘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저한테 당부를 하셨습니다.”
“당부요?”
“네, 그건 바로 평생 원장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때 어머니와 약속을 했습니다. 일을 할 수 있는 동안은 평생 원장님을 큰 형님처럼 모시겠다고 말입니다.”
김민중으로선 처음 듣는 얘기다.
물론 어머니 때문에 그 돈을 마련해 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일 때문에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다.
2년 전 그에게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는 걸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경동시장에서 그만큼 오래 근무한 사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의원의 수익은 사무장의 손에 많이 좌우될 수밖에 없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가 일언지하에 스카우트 제안을 거부했다는 것이었다.
“혹시 2년 전에도 그래서 거절을 했던 겁니까?”
“거절이요? 어떤……?”
“스카우트 말입니다.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고 하던데요?”
“어? 알고 계셨습니까?”
“네, 어쩌다 보니 제 귀에까지 들어왔습니다.”
“원장님께는 민망한 얘기지만 사실입니다. 하지만 돈 몇 푼 더 준다고 저의 양심을 팔 수는 없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허락을 안 하실 테고요.”
“…….”
김민중은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2년 전에는 그 이유가 궁금했었는데 막상 그 이유를 듣고 보니 특별히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한석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이유가 다는 아닙니다.”
“네? 그 말씀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얘깁니까?”
“네, 물론입니다. 어머니하고의 약속도 중요한 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저는 인간적인 도리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인간적인 도리요?”
“네, 제 나이가 올해로 쉰다섯입니다. 물론 많이 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는 어떻게 사는 게 인간적인 도리인지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물론 돈이 다가 아니란 것도 알고 말입니다.”
김민중은 한석호의 말이 끝나자 흐뭇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인간적인 도리.
어쩌면 말은 쉽다. 하지만 그걸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는 건 그게 또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게 또 돈과 결부가 되면 더욱 그렇다.
돈도 적은 돈이 아니라고 들었다.
지금 월급의 50을 더 주고, 천만 원도 별도로 더 준다고 했었다. 그런데 한석호는 그 모든 걸 거부하고 자신의 곁에 남은 것이다.
그가 말하는 인간적인 도리를 다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 보니 그를 바라보는 표정이 흐뭇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민중은 한석호를 정감 있게 불렀다.
“사무장님!”
“네?”
한석호는 갑작스러운 김민중의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크게 나왔다.
그때 김민중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아, 저도 모르게 그만…….”
“제가 별도로 보답은 하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쪽에서 사무장님한테 제시했던 조건 그대로 다음 달부터 월급으로 나갈 겁니다. 물론 천만 원도 특별 보너스로 드리겠습니다.”
“네? ……!”
한석호는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2년 전 새로 생기는 한의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을 때 갈등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무시하기엔 그 금액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으로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석호는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네? 뭐가 죄송하다는 겁니까?”
“솔직히 갈등을 했었습니다. 원장님의 은혜를 안다면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말입니다.”
“사무장님은 사람 아닙니까?”
“네? 그게 무슨…….”
“당연하다는 얘깁니다.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아무리 어떤 말로 포장을 하든 돈 앞에서는 흔들리는 게 우리 인간이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마지막으로 그 사람의 선택입니다. 그런데 사무장님은 결국 저를 선택하신 거고요. 안 그렇습니까?”
“…….”
한석호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순간적으로 흔들린 마음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김민중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아까 사무장님이 말한 그 인간적인 도리 말입니다.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때로는 인간적인 도리보다 더 무서운 게 물질이거든요.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사무장님은 해 내신 겁니다.”
“부끄럽습니다.”
“아닙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 기회에 제가 사무장님한테 선물을 하나 드릴까 합니다.”
“네? 선물이요? 조금 전에 월급도 올려주신다고…….”
“아, 그건 당연한 거고요. 그거 말고 별도로 제가 생각한 게 있습니다.”
“네? 또요?”
“그건 일단 비밀입니다. 오늘 여기 어린 사장을 만나보고 앞으로 어찌할지 결정한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때 한석호의 시선에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어? 드디어 다 온 거 같습니다. 이제 4킬로 남았네요.”
“네, 맞습니다. 여기서 이제 10분 정도만 더 달리면 서명면 터미널이 나올 겁니다.”
“사람 마음이 이상합니다.”
“네? 뭐가 말입니까?”
“나이를 먹어도 원장님께서 선물을 주신다고 하니까 설레니 말입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그 선물이라는 게…….”
“비밀입니다.”
김민중은 한석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끊었다. 그리곤 바로 또 입을 열었다.
“그건 어린 사장을 만난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근데 이거 하나만은 확실합니다.”
“네? 어떤……?”
“사무장님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거라는 겁니다.”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는 궁금해서 어쩌라고…….”
한석호로서는 고문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김민중의 입가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몇 분 후.
삼거리가 나오자 한석호가 바로 물었다.
“어디로 갑니까?”
“왼쪽은 터미널 쪽이고 오른쪽은 그 어린 사장이 운영한다는 식당이 있는 곳입니다. 어느 쪽으로 가시겠습니까?”
“당연히 왼쪽이지요.”
한석호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왼쪽으로 바로 핸들을 틀었다. 그곳은 바로 앞으로 병원이 세워질 건물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어제 신문 광고에서 봤던 바로 그곳이었다.
부르릉!
승용차는 다시 병원이 세워질 건물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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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건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