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486)
회귀해서 건물주-486화(486/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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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퇴근을 하고 원룸으로 돌아온 이정우.
“어? 이게 뭐야?”
이정우는 문 앞에 놓인 박스 세 개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침에 현성과 같이 출근할 때만 해도 문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 후에 누군가 가져다 놨다는 얘긴데…….
‘혹시?’
이정우는 순간적으로 한 사람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건 바로 아침에 이곳 원룸에서 같이 나갔던 현성의 얼굴이었다.
그러고 보니 해장국을 먹으면서 그가 했던 말이 있었다.
-너를 군청까지 데려다주고 어디 좀 들러서…….
잠깐 생각하던 이정우는 얼른 박스를 열어 안에 있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박스 안에는 책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헌법, 행정학, 경제학 등 7급 시험에 필요한 각종 수험서들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현성의 작품이었다.
“하아!”
이정우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아프다는 말 한마디에 그 먼 거리를 단박에 달려와 준 녀석이다. 거기다 고민까지 해결해주고.
그리고 이젠 시험에 필요한 수험서까지.
잠깐 박스를 바라보던 이정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고맙다, 현성아. 내가 꼭…….”
이정우는 혼자 중얼거리며 박스를 바로 방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박스를 다 옮긴 이정우는 바로 전화기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두 번 울리자 상대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다, 현성아.”
-어, 그래. 이제 퇴근한 거야?
“응, 지금 막 퇴근했어. 근데 이 책들…… 아, 아니다. 고맙다.”
이정우는 다른 말을 하려다 고맙다는 말로 자신의 마음을 대신했다. 굳이 형식적인 긴 인사로 자신의 마음을 퇴색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인했냐?
“그래, 퇴근하자마자 확인했고 이제 막 방으로 다 옮겼다. 긴 말은 하지 않을 게. 앞으론 쓸데없는 헛소리 안 하고 공부 열심히 할게. 절대 쉽지 않으리란 거 잘 안다. 하지만 네가 말한 대로 다시 또 시작했으니 이번에도 끝장을 볼 거다.”
-좋아, 역시 내 친구 이정우다. 너는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하나만 명심해.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야.
“그래, 인마. 고맙다. 진짜 고맙다. 내가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거다.”
-야, 친구 간에 무슨 그 정도 일로 자꾸 고맙다고 그래? 그리고 은혜는 무슨 은혜?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솔직히 진짜 고마운 건 바로 나야.
“내가 무슨…….”
-아니야, 너는 나한테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했었어. 지금 내 입으로는 말할 수 없지만 그런 게 있다. 그러니까 나한테 너무…….
“야, 김현성!”
이정우는 갑자기 현성의 말을 끊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곤 바로 다시 물었다.
“야,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물어보자. 너 예전에 고등학교 다닐 때도 매번 그 얘기를 했었거든. 내가 도대체 너한테 뭘 어떻게 해줬다는 거야?”
-어? 그게…….
현성으로선 쉽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전생에 도움을 받았던 일이라 지금으로선 얘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정우가 다시 채근하려는 듯 말을 이었다.
“야, 왜 대답을 못 해?”
-그게 좀 그럴 이유가 있다. 그러니까 그 부분은 자꾸 묻지 마라. 하여간 그건 그렇고 공부 열심히 하고 올 연말에는 다 같이 모여서 송년회 한번 하자.
“자식, 말도 못 하면서…… 그러니까 앞으로는 내가 뭘 줬네, 그런 소리 하지 마. 난 아무리 생각해도 너한테 준 게 없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연말에 가기 전에 미리 전화할 테니까 이번엔 일수랑 수혁이랑 다 같이 한잔하자.”
-오케이, 수고…….
뚝.
전화를 끊고도 이정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현성이 그런 말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으로선 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항상 뭔가를 줬다고 하니 갑갑한 마음에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국 이번에도 대답을 회피하며 말을 할 수 없다고만 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잠시 생각하던 이정우는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젓고 말았다.
“휴우!”
한편 전화를 끊고 난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길게 숨을 내쉬고 말았다.
물론 이정우의 입장에서는 무슨 말인지 모르니 갑갑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성 또한 전생에 있었던 일이라 말을 할 수 없으니 갑갑한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쨌든 변함이 없는 건 현성의 입장에서는 전생에서 그한테 잊을 수 없는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도와달라는 말 한마디에 적금까지 깨서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줬던 이정우다. 그런 친구를 위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게 현성의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백두순이었다.
그를 보자마자 현성이 놀라운 표정으로 먼저 물었다.
“야, 이 시간에 네가 웬일이야?”
지금 이 시간에 백두순이 이곳으로 오면 안 된다.
지금은 퇴근시간이다. 이제 결혼한 지 겨우 4개월이 조금 더 지났을 뿐이다. 그 말은 그는 지금 신혼이라는 얘기다. 그런 그가 퇴근을 하자마자 집으로 안 가고 자신을 찾아왔단 얘기는 뭔가 일이 생겼다는 것일 터.
현성은 궁금한 마음에 다시 물었다.
“야, 무슨 일이야?”
“그냥 소주나 한잔하려고.”
“소주?”
현성의 시선은 백두순의 손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양손에는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순간적으로 현성은 고민에 빠졌다.
‘어찌할 것인가?’
신혼인데 집으로 안 가고 이곳으로 왔다?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건 확실한데 신혼인 녀석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기껏 친구라고 찾아왔는데 내보낼 수도 없고…….
잠깐 고민하던 현성은 결심한 듯 바로 입을 열었다.
“일단 앉아.”
우선은 무슨 일인지 내용을 확인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두순이 자리에 앉자 현성은 다시 물었다.
“우선 하나만 묻자. 무슨 일이 생긴 거지?”
“…….”
말이 없다는 건 긍정의 의미일 터. 결국 처음 들어왔을 때 느꼈듯이 무슨 일이 생겼다는 얘기다.
현성은 다시 물었다.
“야,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데 나한테까지 찾아온 거야?”
“일단 이쪽으로 잠깐 앉아. 목 좀 축이고 얘기하자.”
백두순은 그 말과 함께 가져온 안주를 봉지에서 꺼냈다. 그가 가져온 건 순대였다.
미리 안주까지 준비를 했다는 얘기는 그냥 순간의 기분으로 온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고민을 하고 왔다는 의미일 터.
현성은 주방에서 소주잔을 들고 그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쪼르륵.
현성이 술잔을 내려놓자 백두순이 술잔에 술을 채웠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일 것도 없이 소주잔을 내밀어 가볍게 부딪쳤다. 굳이 다른 말은 필요 없었기에 조용히 소주를 한 잔씩 마셨다.
먼저 입을 연 건 백두순이었다.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앞뒤 다 자르고 뭐가 힘들다는 거야? 그러지 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봐.”
“그게 사실은…….”
백두순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틀 전이었다고 했다.
퇴근을 하고 집에 가보니 집안 분위기가 냉랭하기에 이유를 알아보니 어머니와 장모님이 다퉜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현성은 아찔했다.
처음 백두순이 결혼을 하면서 어머니와 장모님을 같이 모시고 산다고 할 때부터 가장 우려했던 게 바로 그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사돈끼리 한 집에서 지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전생에서도 많이 봤었다. 의도는 좋은데 그게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성은 궁금한 마음에 백두순의 말을 중간에서 끊으며 바로 물었다.
“이유는?”
“그걸 말씀을 안 하신다.”
“응? 이유를 말씀 안 하신다고? 두 분 다?”
“어, 그래서 미치겠어.”
백두순은 갑갑하다는 듯 양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이해가 안 되는 건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사람이니 다툴 수는 있다. 그런데 두 사람 다 왜 다퉜는지 그 얘기를 하지 않는다?
얼핏 들어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최소한 그 이유를 숨길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유가 뭘까?”
“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그게 이해가 안 가. 솔직히 사람이니까 다툴 수는 있다고 쳐, 그런데 왜 그 이유를 말 안 하느냔 말이야?”
“유빈이는 뭐래?”
“유빈이도 모른대. 장모님이 유빈이한테도 말씀을 안 하셨대.”
현성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은 자신의 자식한테는 얘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자신의 자식들한테도 얘기를 안 한다는 말인가 말이다.
현성은 다시 물었다.
“혹시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어?”
“가끔.”
“가끔?”
“응,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두 분이 싸우는 거 같아.”
“이유는?”
“여전히 말씀들을 안 하신다. 오죽했으면 오늘은 내가 너한테 소주 사들고 찾아왔겠냐? 나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어떻게 할 줄 모르겠어.”
백두순은 그 말을 마치자마자 갑갑한 듯 소주를 한 잔 따라 마셨다.
“그러니까 매번 싸우시기는 하는데 그 이유를 말씀 안 하신다는 거지?”
“응, 근데 이상한 건 며칠 후에는 또 괜찮아진다는 거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야.”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이상하다고. 어떤 날은 싸우시다가 또 어떤 날은…….”
백두순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설명이 길어질수록 현성의 표정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심각한 표정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덤덤한 표정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설명이 끝나자 현성은 가볍게 웃으며 백두순의 이름을 불렀다.
“야, 백두순.”
“어, 근데 너 지금 웃는 거야? 지금 나는 심각한데?”
“그래, 인마. 일단 얘기하느라 수고했다. 자, 소주나 한 잔 해라. 그러고 얘기하자.”
현성은 그의 빈 잔에 소주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곤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른 다음 잔을 들어 그의 잔에 가볍게 부딪쳤다.
우물우물.
순대를 하나 짚어 입에 넣은 다음 현성은 말을 이었다.
“야, 아무 걱정하지 마라.”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심각한데?”
“내가 볼 때 두 어머니들은 지금 기싸움을 하시는 거야.”
“기싸움?”
“그래, 어차피 지금 같이 사시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잖아? 그래서 두 분은 지금 서열 정리를 하고 있는 중인 거야.”
“아니 무슨……?”
백두순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이 피식 웃은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앞으로도 당분간 두 분은 계속 그러실 거야. 물론 그 시간은 언제 끝날지 몰라. 어쩌면 짧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1, 2년도 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분명한 건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서열이 정리되고 나면 자연스럽게 괜찮아질 거라는 거야.”
현성도 전생에서 겪었던 일이다.
3년 정도 사정이 있어서 어머니와 장모님을 같이 모신 적이 있었다. 처음엔 서로 어려운 사이라 조심하는 듯하더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서로 티격태격하시는 것이었다.
처음엔 속상한 마음에 아내와 힘들어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게 기싸움이었다는 것임을 알았다. 그 기간이 1년 정도 이어졌었다.
“진짜?”
“그래, 그러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거 없어. 그리고 중요한 건 너하고 유빈이의 태도야.”
“태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방관.”
“방관?”
“그래 끼어들지 말라는 거야. 거기서 만약 두 사람이 끼어들면 그땐 진짜 답이 없어. 절대 누구의 편도 틀면 안 돼.”
백두순은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다시 또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진짜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거야?”
“물론 사람마다 다르긴 한데 짧게는 6개월 길게는 몇 년씩 가는 사람들도 있어.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딸이나 아들이 끼어들면 그건 해결하기 쉽지 않다는 거야. 까딱 잘못하면 어머니들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의 문제로 발전할 수도 있거든. 그러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눈 딱 감아. 어차피 두 분이 해결할 문제니까 말이야.”
“그런데 왜 그러시는 거야?”
“조금 전에 얘기했잖아? 기싸움하시는 거라고. 어차피 서열이 정해져야 끝나는 싸움이야. 그러니까 이제 집에 돌아가면 유빈이한테도 이 사실을 확실히 얘기해. 그리고 너희들 두 사람만 흔들리지 않으면 이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
현성이 말이 끝나자 백두순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너는 장가도 안 갔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그거 음…… TV에서 봤어.”
현성이 선택한 대답이었다. 어차피 전생에서 겪었던 일이라고 말을 할 수도 없는 일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현성은 다시 말을 이었다.
“유빈이는 지금 어때?”
“나랑 비슷해. 오죽했으면 유빈이가 너한테 갔다 오라고 하더라. 혹시 모르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말이다.”
“진짜 유빈이가 그랬다고?”
“그래, 유빈이가 나는 못 믿어도 너는 믿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피식.
현성은 말끝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곤 다시 말을 이었다.
“두순아, 내가 더 좋은 방법 가르쳐줄까?”
“어? 무슨 좋은 방법?”
“두 어머니가 싸움을 빨리 끝나게 하는 방법 말이야.”
“진짜 그런 게 있어?”
백두순의 눈빛이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그가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알 듯싶었다.
“그게 뭔데?”
백두순이 급한 마음에 다시 물었다.
그러자 현성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손주.”
“손주?”
“그래, 하루라도 빨리 두 분한테 손주를 안겨주는 거다. 그러니 이제 그만 가서 유빈이랑 놀아라. 가서 열심히…… 알지?”
현성은 그 말을 끝으로 앞에 놓인 술잔에 술을 채운 다음 높이 들었다.
“야, 우리 건배하자. 백두순과 신유빈의 뜨거운 밤을 위하여!”
“히히, 오케이 알았어. 자, 위하여!”
챙!
두 사람의 잔은 허공에서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백두순의 표정은 처음 들어올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