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496)
회귀해서 건물주-496화(496/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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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후.
학원 운영은 성공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어르신들을 위한 한글 교실은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을 자신의 이름 석 자도 쓰지 못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은 물론이고 아들딸들의 이름까지 쓰기 시작했으니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르신들을 위한 반찬 도시락 배달도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새벽 다섯 시면 식당 앞에서 신춘오 회장과 최진영 실장, 그리고 현성까지 세 사람이 만나 배달을 시작했다.
처음 반찬을 배달한다고 했을 때 가장 좋아했던 사람은 신춘오 회장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봉사.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일을 한다는 것이 너무 즐겁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그의 보람은 더욱 크게 느끼는 듯했다.
그리고 신춘오 회장에겐 또 다른 재미가 생겼다.
그건 바로 친구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반찬을 배달하면서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과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단순히 반찬 배달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의 유대관계가 생겨난 것이다.
어쩌면 반찬 못지않게 노인들한테는 또 다른 선물이 된 셈이다. 그건 신춘오 회장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인 거고.
이유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10개의 한의원 또한 모든 입주를 마치고 진료를 시작했다. 결국은 현성이 처음 목표한 대로 한의원 의료 단지를 조성한 것이다.
병원이 많아지자 제일 먼저 변화가 온 건 병원 측의 서비스였다. 선의의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부터 예상했고 그러기를 바랐던 순기능이다.
그 혜택은 당연히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던 환자 부족 문제는 4월 중순부터 벚꽃이 피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처음에 민중한의원의 한석호 사무장이 얘기했던 의료관광 상품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도 환자가 부족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던 늦여름 어느 날.
똑똑.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그는 바로 이석만 할아버지였다.
현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석만을 맞이했다.
“어! 할아버지, 어서 오세요.”
“이 늙은이가 여기에 와도 되는지 모르겠네?”
“무슨 그런 말씀을? 당연히 오셔도 되지요. 자, 이쪽으로 앉으세요.”
이석만이 자리를 잡고 앉자 현성은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할아버지, 이거 드세요.”
“무슨 이런 걸 다…….”
이석만이 음료수를 마시며 한숨을 돌리자 현성은 궁금한 마음에 바로 물었다.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이석만이 이곳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다 보니 현성으로선 혹시라도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궁금했던 것이다.
“무슨 일은 아니고 이것 좀 전해주려고.”
이석만이 현성 앞으로 검은 봉지 하나를 내밀었다.
현성은 얼른 봉지를 받아 들었다. 그런데 그 봉지가 따끈따끈했다.
그게 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 이건…….”
“그려 알다시피 감자여. 내가 조금 전에 막 삶은 거니까 어서 식기 전에 먹게. 햇감잔데 오늘 처음 캤거든, 그래서 가져왔네.”
“…….”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현성은 대답 대신 얼른 감자 하나를 꺼내 껍질을 벗긴 다음 한 입 베어 물었다.
우물우물.
입속으로 퍼지는 감자 맛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맛있었다.
“할아버지, 너무 맛있어요. 감자가 제대로 여물었는데요. 팍신한 게 정말 맛있네요.”
“허허, 정말이지?”
“그럼요,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이 감자는 아무도 안 주고 저 혼자 다 먹을 겁니다.”
오늘 처음 캔 감자라고 했다. 그런 감자를 삶아서 바로 가져온 것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현성은 열심히 감자를 먹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석만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고맙네.”
“고맙긴요? 오히려 제가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덕분에 이렇게 맛있는 감자를 먹을 수 있어서 말입니다.”
“아니, 내 얘기는 그게 아니라 다른 게 고맙다고.”
“네? 다른 거요?”
“그려, 모두 다 말이야. 아침마다 가져다주는 반찬도 그렇고 한 달에 한 번씩 부녀회에서 청소를 해주는 것 말이야. 그리고 자네 덕분에 이젠 내 이름은 물론이고 우리 집 주소까지도 내 손으로 직접 쓸 수가 있다네. 이 모든 게 다 자네 덕분일세.”
이석만은 잠시 호흡을 조절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요즘 내가 뭘 하는지 아는가?”
“네? 글쎄요…… 그건 잘…….”
“매일 일기를 쓴다네.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이제 열흘 조금 더 지났는데 그 재미가 또 쏠쏠하다네. 한글을 안다는 게 이렇게 좋은지 정말 몰랐네. 그래서 요즘은 목표를 하나 정했네.”
“목표요?”
“그래, 조금 더 노력해서 편지를 쓸 생각이네.”
편지라는 말에 현성은 빙긋 웃었다.
이제 한글을 배운 지 3개월이 조금 더 지났다. 그런데 일기에 이어 편지까지 쓴다고 하니 자신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 편지의 대상이 궁금해졌다.
“편지는 누구한테 쓰시려고요?”
“자네.”
“네? 저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다.
이석만 같은 경우는 거의 매일 새벽마다 반찬을 주면서 얼굴을 대하게 된다. 그런데 또 편지를 쓰겠다고 하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 내가 앞으로 열심히 연습해서 꼭 편지를 쓸 거네.”
“연습이요?”
현성은 이번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이유는 이석만의 말에 이해 안 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히 지금 일기를 쓰고 있다고 했다. 그 얘기는 지금도 어느 정도 한글을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도 충분히 편지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더 연습을 하겠다고 하니 현성으로선 이해가 안 됐던 것이다.
현성이 고개를 갸웃하자 이석만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완벽하게 쓸 생각이네.”
“완벽이요?”
“그려, 아직까지는 많이 부족하거든. 일기를 매일 선생님한테 검사를 받는데 아직도 틀린 글자가 너무 많다네. 그래서 아직은 쓸 수가 없는 것이고.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게. 내가 앞으로…….”
이석만의 말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말은 길었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였다.
물론 지금도 쓸 수는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완벽하게 쓸 수 있을 때 편지를 쓰겠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 또한 간단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고마움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현성은 그제야 조금 전에 이석만이 왜 편지를 나중에 쓰겠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현성은 이석만을 지그시 바라봤다.
비록 얼굴에 주름은 깊게 파였지만 말하고 있는 그의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한편으론 안쓰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너무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성은 조용히 이석만을 불렀다.
“할아버지!”
“응, 그래.”
“그냥 써 주셔도 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저는 그저 할아버지가 저한테 편지를 써주시는 자체로 감사할 뿐입니다.”
“그건 아닐세. 그건 내가 인정할 수가 없네. 돈을 내고 배우는 것도 아니고 공짜로 배우는데 사람이 최소한 그 정도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양심이요?”
양심이란 말에 현성은 머리를 슬쩍 긁적였다.
그가 말하는 양심이란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이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이석만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자고로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뻔뻔해지기 쉬운 법이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거지. 하지만 그건 나 스스로가 인정할 수가 없네. 비록 지금 이렇게 주름은 늘었지만 최소한 아직까지는 내 양심만은 지키고 싶네. 그리고 사실…….”
이석만의 말이 다시 길어졌다.
조금 전에 했던 말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받고 있는 도움에 대해서 보답하는 길은 하루라도 빨리 한글을 완벽하게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게 자신으로선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는 거라고 했다.
결국 그가 말한 양심이라는 건 도움을 받는 만큼 자신 스스로도 그만큼 노력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석만의 말이 끝나자 현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바로 말을 이었다.
“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제부터 할아버지의 편지를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현성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석만을 위한 것일뿐더러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란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였다.
이석만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왔다.
“그다음은 내 자리를 찾을 생각이네.”
“네? 지금 자리라고 하셨습니까?”
현성은 이석만을 빤히 쳐다봤다. 그가 말한 ‘자리’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석만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려, 내 자리 말일세. 어쩌다 보니 내 나이가 칠순이 되고 말았네. 물론 내 실수이겠지만 자식들한테 다 내주고 나니 생일상도 못 받는 이 모양 이 꼴이 됐네. 하지만 이제라도…….”
이석만의 얘기가 다시 길어졌다.
이번엔 집안 얘기였다. 자식들 키우고 출가시키면서 가지고 있던 땅들을 다 팔았다고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자식들의 왕래가 없어졌다고 했다.
한마디로 개털이 되자 버림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여기까지 얘기를 한 이석만이 갑자기 현성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현성은 고개를 또다시 갸웃거렸다.
지금은 타이밍상 웃을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궁금한 마음에 현성은 바로 물었다.
“할아버지, 그 웃음은 어떤 의미십니까?”
“며칠 전에 복덕방에서 다녀갔네.”
“복덕방이면 박인수 사장님 말씀입니까?”
“그려, 그런데 그 사장이 아주 재밌는 얘기를 하고 갔네.”
복덕방에서 찾아올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그건 바로 매매일 것이다.
그런데 웃는다?
결국 그 말은…….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현성은 바로 물었다.
“혹시 박 사장님이 집을 사겠다고 했습니까?”
“박 사장이 사겠다는 게 아니고 누가 우리 집을 욕심낸다는 거여. 더 정확히는 집이 아니라 집터 말이여.”
“집터요? 그 말씀은 누군가 그곳에다가 집을 짓겠다는 얘기네요? 그런데 그 사람이 누구래요?”
“그거까지는 아직 얘기를 안 하는데 중요한 건 돈이여. 글쎄 두 장을 얘기하더라고.”
“두 장이요? 두 장이면 2천은 아닐 테고, 혹시…… 2억이요?”
씨익.
이석만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조금 전에 사무실을 들어올 때부터 이석만의 모습은 평상시와는 확실히 달랐었다. 역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현성은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들었다.
이석만은 조금 전에 자신의 자리를 찾겠다고 했었다. 그러면서 가정사를 얘기하기 시작했고 그 말끝에 갑자기 복덕방에서 다녀갔다고 하면서 2억이라는 얘기를 끄집어냈다.
그렇다면 결국 그는 그 2억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겠다는 얘기가 아닌가 말이다.
어떻게……?
현성은 궁금한 마음에 바로 물었다.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자식들한테 이 사실을 알릴 것이네.”
“알린다고요?”
“그래, 그래야 미끼를 물 거 아닌가? 오랜만에 낚시를 한 번 해볼 참이네.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없었으니 내가 힘을 못 썼지만 2억 정도의 미끼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이석만은 가볍게 웃은 후 다시 말을 이었다.
“한 번은 실수를 했지만 두 번째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걸세.”
“그 말씀은?”
“끝까지 쥐고 있겠다는 얘기일세. 어차피 지금 2억이면 앞으로 그 금액은 더 올라갈 테니 말일세. 내가 끝까지 쥐고 있을수록 자식들은 나한테 잘할 수밖에 없을 걸세. 어차피 나는 그걸 마지막 카드로 쓸 테니까 말이야. 죽기 전에는 절대로 안 팔 거거든.”
“결국은 유산으로 남기시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그래서 미리 자식들한테 얘기를 하겠다는 거야. 앞으로 하는 거 봐서 나눠주겠다고 말이여. 여차하면 한 사람한테 몰아줄 수도 있다는 얘기도 꼭 할 걸세. 아마도 그렇게 되면 모르긴 몰라도 세 녀석 다 지금처럼 나를 방치하지는 않을 걸세. 안 그런가?”
풉.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이건 누가 봐도 이석만이 이기는 게임이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이석만의 입장에서는 마지막까지도 자식들한테 대우를 받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패는 없을 것이다.
그것도 자식이 셋이나 되는 그 효과는 더욱 확실할 것이고.
이석만이 말이 다시 이어졌다.
“이게 누군 때문에 가능한지 아는가?”
“이건 누구 때문이 아니라 그 땅 때문이 아닙니까?”
“틀렸네. 그건 바로 자네 때문일세.”
“네? 그게 왜 저 때문입니까?”
“자네가 이 마을을 이만큼 발전시키지 않았는가. 만약 자네가 없었더라면 그 땅은 2억은 고사하고 2천도 안 됐을 거네. 자네 덕분에 내가 마지막에 희망을 가질 수가 있게 됐네.”
솔직히 틀린 말도 아니다. 전생과 비교하면 지금의 땅값은 기본 열 배 이상은 올랐으니 말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잘됐습니다. 그래서 언제쯤 말씀하시려고요?”
“자네한테 편지를 쓴 다음 그다음에 자식들한테 똑같이 같은 내용으로 편지를 쓸 생각이네.”
현성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굳이 전화를 놔두고 편지로 그 사실을 알리겠다는 이석만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석만이 미소를 지으며 바로 말을 이었다.
“자식들한테 한방 제대로 먹이고 싶어서 그렇다네. 아마 내 이름도 쓸 줄 모르던 내가 편지를 쓰면 자식들로서는 얼마나 놀라겠는가 말이야.”
“아, 그렇겠군요.”
“이번엔 예전의 내가 아니란 걸 확실히 보여줄 생각이네. 아마도 길게 가지는 않을 걸세. 나도 그 녀석들이 어떻게 나올지 많이 궁금하거든.”
현성은 그제야 이석만이 왜 편지를 완벽하게 쓰겠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식들 앞에서 변한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자식들이 어찌 나올지 현성으로서도 궁금한 건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 파이팅입니다.”
현성은 두 주먹을 흔들며 이석만을 바라봤다.
그러자 이석만 또한 두 주먹을 움켜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