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499)
회귀해서 건물주-499화(499/740)
501
영동고속도로.
신갈을 막 지날 때였다.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붉게 물든 저녁 저 노을처럼 나 그대 뺨에 물들고 싶어~~~
라디오에서는 안치환의 ‘내가 만일’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당시에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노래였다.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던 현성은 문득 시계를 바라봤다. 시간은 이제 막 11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스르륵.
창문을 내리자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스치는 바람에 봄이 이미 곁에 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이 4월 1일, 이제 열흘 정도만 더 있으면 강원도 홍천에도 벚꽃이 피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손님들은 다시 또 몰려올 것이고.
어찌 됐건 식당은 자신이 없어도 무난하게 유지될 것이다. 어차피 모든 시스템은 완벽하게 갖추어놨으니 말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이 올 것이고 내려가서 해결하면 될 것이다.
결국, 시골 식당에 관해서는 문제 될 게 별로 없다는 얘기다.
이제부터는 시골 식당은 잠깐 잊고 인천 생활에 충실하면 될 것이다.
어차피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새 출발을 하는 것이니 말이다.
일단 오늘은 비디오 대여점을 계약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그래야 아내 윤지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생과는 확실히 다른 이유로 비디오 대여점을 시작하는 것이다.
전생에서 비디오 대여점을 시작했던 이유는 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3년을 더 공부를 했지만 목표로 했던 공인회계사 시험에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선택한 업종이 바로 비디오 대여점이었다. 장사를 하면서도 얼마든지 더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비디오 대여점을 쉽게 봤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비디오 대여점이 밖에서 봤던 것처럼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서야 그게 자신만의 착각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그땐 이미 모든 게 늦은 상태였다.
결국, 하던 공부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비디오 대여점은 결국 평생직장이 되고 말았다.
물론 시대의 변화에 따라 나중에는 비디오에서 책으로 대여 품목이 바뀌었고 최종적으로는 만화카페로 업종을 변경했지만 처음 시작은 비디오 대여점이었다.
어찌 됐건 중요한 사실은 전생에서 비디오 대여점을 하면서 아내 윤지수를 만났다는 것이다.
주인과 손님으로 말이다.
그래서 현성은 지금 또다시 전생의 그 비디오 대여점을 계약하러 가고 있는 것이고.
부르릉!
현성은 인천을 향해 액셀을 세게 밟았다.
지금까지는 가족과 마을을 위해 달려왔었다. 그 결과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모든 걸 이루었다.
그와 동시에 경제적인 부까지도 가지게 되었다.
이제부턴 그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그중 가장 먼저는 아내를 만나는 일이고 그다음은 번듯한 빌딩을 세우는 일이다.
HS빌딩.
현성의 앞 글자를 따서 빌딩을 올릴 것이다.
처음부터 목표로 했던 그 꿈을 이루는 날, 그때야말로 제대로 된 건물주가 되는 것이다.
“아자!”
현성은 핸들을 잡은 두 손에 힘을 가득 실었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현성이 도착한 곳은 인천 부평의 한 상가 앞이었다.
[비디오 세상]전생에서 광고지를 보고 처음으로 찾아갔던 비디오 대여점이다.
장사는 잘되는데 개인 사정이 있어서 싸게 내놓는다는 말에 속아 계약을 했던 바로 그 가게다. 물론 그땐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몰랐다. 사회 경험이 없다 보니 상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것이다.
나중에서야 그게 가게를 넘기기 위한 술수였다는 걸 알았다.
그때만 해도 컴퓨터 프로그램을 쓰는 곳은 많지 않았었다. 큰 가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노트에 대여 기록을 적었었다.
그런데 그는 그 대여 기록 자체를 뻥튀기했던 것이다. 일명 가짜 장부를 만들어 매출을 속이고 가게를 넘겼던 것이다.
결국, 그는 사기를 쳤다는 얘기다.
나중에서야 그 매출이 거짓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땐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난 후였다.
결국 그 피해는 세상 경험이 없는 현성의 몫이었던 것이고.
“후후!”
현성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때야 아무것도 몰라 고스란히 당했지만 이젠 그럴 일은 없을 거란 생각을 하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던 것이다.
“어서 오세요.”
현성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앉아있던 주인이 바로 인사를 건넸다.
이성수.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지만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름 석 자가 바로 생각났다. 그만큼 그때 당했던 사기의 아픔이 깊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현성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광고지 보고 왔습니다.”
“광고지요?”
“네, 가게를 내놓는다고…….”
“아, 네.”
이성수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현성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아마도 처음엔 단순하게 비디오를 빌리러 온 손님으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성수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일단 이쪽으로 앉으시죠!”
현성이 의자에 앉자 이성수는 커피포트에 전원을 켜며 다시 말을 이었다.
“나이가 꽤나 젊으신 거 같은데 어떻게 비디오 대여점을 하실 생각을 하셨습니까?”
“그게…….”
피식.
현성은 대답을 하려다 가볍게 웃고 말았다.
예전에도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그땐 또 곧이곧대로 모든 걸 솔직히 얘기했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비디오 대여점을 하겠다고 말이다.
그러자 그의 대답이 또 가관이었다. 공부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업종은 없을 거라고 말이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공부하기에 딱 좋다고 말이다.
그땐 또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고.
어찌 보면 참 순진한 모습이었던 터라 그때를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현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이요.”
굳이 다른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의 대화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하든 상대는 그 말에 사탕발림을 할 테니 말이다.
전생에서 그랬듯이 말이다.
이성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바로 물었다.
“그냥이요? 그게 무슨 의미인가요?”
“아무 의미 없습니다.”
“네? 아니 무슨…….”
이성수의 표정이 이번엔 좀 짜증 난다는 듯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현성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 말이다. 그렇게라도 전생에서 당했던 일에 대해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편, 현성이 일부러 그러는 줄 알 리 없는 이성수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처음 보는 사람이라 단순히 새로 이사를 온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광고지를 보고 왔다는 말에 바로 말 톤부터 바꿨다. 어떡하든 가게를 넘겨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말투였다.
기껏 물었더니 한다는 말이 ‘그냥’이란다.
기껏해야 서른도 안 돼 보이는데 말하는 태도가 영…….
하지만 그게 뭐 대수겠는가. 어차피 이 가게만 넘기면 그만인 것을.
생각을 정리한 이성수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하, 네, 좋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지요. 참, 그전에 커피 한잔 하시겠습니까?”
“아니, 죄송하지만 제가 아직 점심 전이라…….”
“아, 그래요?”
이 정도면 기본적으로 짜장면이라도 시켜주는 게 기본이다. 하지만 이성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커피포트의 물을 자신의 커피잔에 따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금액은 광고지에서 보셨으니 아실 테고…….”
“잠깐만요.”
현성은 일단 이성수의 말을 끊었다. 그리곤 바로 다시 말을 이었다.
“혹시 그 금액을 다 받으시려는 건가요?”
이성수가 광고지에 내놓은 금액은 2천5백만 원이었다. 나중에서야 그 금액에 천만 원은 뻥튀기됐다는 걸 알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그는 이미 3개월 전부터 가짜 장부를 만들었던 것이고.
“지금 그 금액이 많다는 건가요?”
“많다는 게 아니라 그 금액이 적정한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확인이라…….”
이성수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움직이는 걸 현성은 놓치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이미 준비를 했다는 얘기다.
매매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두 가지다. 비디오 보유량과 매출.
비디오 보유량도 단순하게 장수가 많다고 해서 가격이 높은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구색이다. 장르별로 얼마나 골고루 갖췄느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생에서야 당연히 그 기준을 알 리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저 비디오 장수가 많기에 그게 다 돈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1년쯤 지났을 때 그중에 반은 쓰레기라는 것을 알았다.
매출도 마찬가지다. 장부에 있는 매출이 당연히 실제 매출이라고 생각했었다. 설마 그걸 속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가게를 내놓기 3개월 전부터 비디오 장수를 채우고 매출을 늘려 장부를 만들었던 것이다.
후릅.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이성수가 여유 있는 표정으로 현성을 보며 말했다.
“당연히 확인해야지요. 이 가게가 비록 크지는 않지만 3중장이라 비디오 보유량이 일만 장이 넘습니다. 그리고 매출도 여기 보면 알겠지만…….”
이성수의 준비된 멘트가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어차피 전생에서도 들었던 얘기라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그의 설명이 끝나자 현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비디오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아니, 실제로 확인을 하는 게 아니라 하는 척하는 것이다.
어차피 장수와 구색 상태는 전생에서 이미 다 파악을 했으니 말이다.
잠시 후.
이성수 앞으로 걸어온 현성은 바로 입을 열었다.
“만이천 장이 조금 안 되는군요?”“어? 벌써 그걸 다 센 겁니까?”
이성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성이 비디오 장수를 센 시간은 불과 5분이 안 된다. 아무리 선수라 하더라도 이 정도 비디오 양을 세려면 최소 10분 정도는 걸린다.
그런데 어떻게……?
이성수는 현성을 보며 다시 물었다.
“혹시 그전에 대여점을 운영하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비디오는 처음입니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버릴 비디오가 너무 많은데요?”
현성은 이성수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또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바로 비디오의 구색 상태였다.
사실은 ‘쓰레기’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 말은 할 수가 없어 버린다는 표현으로 대신했던 것이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이성수의 입장에서는 그 말이 쓰레기든 버리는 거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은 3개월 전부터 주변에 지인들의 가게를 돌아다니면서 필요 없는 비디오를 아주 헐값에 사 왔었다. 그리곤 3중장 맨 안쪽에 진열했다.
어차피 가게를 넘기려면 무엇보다도 비디오 물량이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이 어린놈이 어떻게 아느냐 하는 것이다.
조금 전에 비디오 장수를 센 시간도 기껏해야 5분도 안 걸렸다. 지금 그 말은 그 5분 안에 비디오 장수는 물론이고 구색까지도 다 파악했다는 얘기가 된다.
분명히 비디오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
지은 죄가 있다 보니 이성수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비디오 장수는 확인했고…… 자, 이제 장부 좀 봐도 되겠습니까?”
“네? 아, 네. 여기요.”
이성수는 얼른 장부를 현성에게 건넸다.
‘이 자식 뭐야?’
이성수는 여전히 황당할 뿐이었다. 처음 광고지를 보고 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쾌재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건 그의 나이 때문이었다. 얼핏 봐도 서른이 안 돼 보였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리다는 얘기는 그만큼 사회 경험이 없다는 얘기일 테고, 그렇게 되면 계획한 대로 가게를 넘기는데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긋나기 시작한 건 그가 비디오 장수를 세면서부터였다. 5분도 안 돼서 끝내기에 세다가 포기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이미 그는 계산이 끝난 상태였다. 거기다 폐기할 비디오까지 그 짧은 시간에 파악을 한 것이다.
분명 비디오는 처음이라고 했는데…….
이성수는 불안한 마음으로 장부를 확인하는 현성을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후.
장부를 확인한 현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장사가 의외로 잘 되시는군요?”
“하하, 제가 광고지에도 적었지만 장사가 안 돼서 넘기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요.”
“아, 그래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장부 말인데요. 이걸 제가 어떻게 믿죠?”
“네?”
“혹시라도 장부에 장난을 칠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말입니다. 물론 사장님이 꼭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 오해는 마시고요. 저는 그저 단지 이 장부를 믿고 싶은데 세상이 어디 그렇습니까?”
현성은 이성수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이 장부 말고 1년 전의 장부를 볼 수 있을까요? 1년 전 것이 없으면 6개월 전거라도 괜찮습니다만.”
“네? 저 그건…….”
“왜요? 혹시 무슨 문제 될 게 있습니까?”
잠시 망설이던 이성수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