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500)
회귀해서 건물주-500화(500/740)
502
“……없어요.”
이성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당연히 있으면 안 될 것이다. 그가 이 장부를 만든 건 올 1월 1일부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전의 장부가 있다면 이 장부가 가짜라는 걸 바로 알 수 있기에 그전의 장부는 이미 폐기했거나 따로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충분히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그의 입으로 직접 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다음 질문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성은 그 이유를 듣기 위해 다시 물었다.
“왜요? 왜 없는 겁니까?”
“폐기했어요. 저는 원래 한 해가 바뀌면 그전에 쓰던 장부는 버리고 다시…….”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지껄이고 있는 이성수였다.
세상에 어느 누가 해가 바뀐다고 쓰던 장부를 버리고 다시 바꾸겠는가. 아니, 백번 양보해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장부를 폐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장부라는 건 보관하는 것이 원칙이니 말이다.
결국 그는 지금 누가 봐도 논리에 맞지 않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 장부가 아니라 그 장부가 없다는 사실, 그게 바로 현성이 이성수로부터 직접 확인하려던 거였다.
그래야 지금의 이 3개월짜리 장부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현성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사장님 말씀으로는 그 전의 장부는 없고 3개월짜리 이 장부 하나가 다라는 말씀인 거죠?”
“네, 맞아요.”“해가 바뀌면 그전에 쓰던 장부는 폐기하는 게 사장님의 개인적인 스타일이시고요?”
“네, 맞아요.”
이성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있게 똑같은 대답을 이어갔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가 여기서 다른 말을 하면 안 된다.
개인적인 스타일.
이것이 바로 현성이 그에게 확인하고자 했던 핵심이었다.
현성은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물었다.
“다 그런가요?”
“네? 뭐가 말입니까?”
“다른 대여점들 말입니다. 다른 대여점들도 사장님처럼 해가 바뀌면 그전에 쓰던 장부를 다 버리고 다시 장부를 만드는지를 여쭙고 있는 겁니다.”
“글쎄요…….”
“그 말씀은 모르신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렇죠. 내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그의 대답은 안 들어도 빤한 내용이었다. 자신은 자신만의 개인적인 스타일일 뿐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그거까지는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확인을 하겠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보통 가게를 넘길 생각이 있었다면 객관적인 매매가를 산정하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그전의 장부를 보관하는 게 제 생각에는 맞을 거 같은데, 사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음……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도 있다? 그 말씀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네요?”
“일반적인 경우는 그렇지만 저같이 특별한 경우는 다르겠지요.”
일반적인 경우와 특별한 경우를 분리하는 것, 현성이 원하는 대답이었다. 그래야 그다음 질문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특별한 경우라고 하셨는데, 그 특별한 경우는 어떤 경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내가 광고지에도 썼지만 장사가 안 돼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특별한 사정으로…….”
광고지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얘기하고 있는 이성수였다.
다시 한번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 특별한 경우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것으로 듣고 싶은 얘기는 다 들었고 확인도 끝냈다.
이제 남은 건 이 3개월짜리 장부가 매매가를 산정하는 데 사용될 수 없다는 것만 증명하면 되는 것이다.
현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사장님은 가게를 넘길 생각이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개인적인 특별한 사정이 생겨 가게를 넘기게 되었고 그래서 그전의 장부도 보관을 안 했다는 거죠?”
“바로 그겁니다. 젊은 분이라 그런지 빠르게 이해를 하시는군요.”
“그렇다면 답은 나왔네요.”
“답이요? 어떤 답이요?”
이성수는 궁금하다는 듯 현성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대답을 이었다.
“이 장부 말입니다. 이 3개월짜리 장부로는 매매가를 산정하는데 객관적인 정보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겁니다. 즉 이 장부는 지금으로선 무용지물이라는 얘깁니다. 그 이유는 사장님이 조금 전에 말씀하셨던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 사장님의 특별한 경우이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저의 개인적인 특별한 사정 때문에 가게를 넘기는 것이니 이 3개월짜리 장부는 객관성이 없어서 매매가 산정 근거에 사용할 수 없다는 얘깁니까?”
“그렇죠, 바로 그겁니다. 역시 장사를 하시던 분이라 이해가 빠르시군요.”
조금 전에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어차피 자신의 입으로 지금까지 다 했던 말이니 부인은 못 할 것이다. 말 그대로 그의 개인적인 특별한 사정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개인적인 특별한 사정은 말 그대로 특수한 경우,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이 아니라는 경우는 결국 객관성이 없다는 것, 그러므로 예전의 장부가 없는 이 3개월짜리 장부는 매매가를 산정하는 데 사용할 수 없다는 결론인 것이다.
끙.
미치겠는 건 이성수 자신이었다.
어쩌다 보니 스스로 인정을 하고 말았다. 광고지에 광고를 낼 때만 해도 개인적인 사정을 핑계로 이곳에서 빠져나가려고 했었다.
그래서 3개월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매일 허위 매출을 작성했던 것이다. 그런데 결국은 그 장부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객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후!’
이성수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원하시는 금액이 얼마입니까?”
“잠깐만요, 금액을 말하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그건 바로 매매가 산정 기준입니다. 제가 볼 때 이제 매매가를 산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는 비디오 보유 수량밖에 없을 거 같은데 인정하십니까?”
“음…….”
이성수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물었다.
“혹시 사장님이 생각하시는 다른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객관적인 정보가 있다면 얼마든지 고려해볼 테니까 말입니다.”
“음…… 좋습니다. 그렇다고 치고, 원하는 금액이 얼맙니까?”
“그렇다고 치고요? 그건 무슨 의미입니까? 혹시 인정을 안 하시겠다는 말씀인가요?”
현성은 일부러 한 번 더 물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확실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생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니 고스란히 당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성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인정하죠, 이제 원하는 금액을…….”
“천오백입니다.”
“네? 얼마요?”
이성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현성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왜 천오백인지 궁금하신가요? 궁금하시다면 그 근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말씀을 안 하시는 거 보니 아무래도 설명을 드려야 할 거 같군요. 제가 천오백을 말씀드린 이유는 지금 가지고 있는 비디오 중에 40%는 버려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 이유까지는 굳이 설명을 안 드려도 될 거 같고요.”
현성은 이성수를 힐긋 바라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가 인정하는 건 60%입니다. 그렇다 보니 사장님이 광고지에 제시했던 이천오백의 60%, 정확히 천오백이 나온 거고요.”
“…….”
“제 계산이 틀렸습니까?”
“…….”
할 말이 없는 이성수였다.
정확한 숫자다. 그동안 주변의 가게들을 돌며 헐값에 사 온 비디오가 대략 거의 5천 장이다.
그런데 그게 고스란히 쓰레기가 될 줄이야.
이성수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피식.
현성은 아무 말이 없는 이성수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물론 대놓고 웃을 수는 없었기에 고개를 살짝 돌리는 센스는 기본이었다.
전생에서는 그 쓰레기조차 돈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니 그저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쩌시겠습니까?”
현성은 당당하게 다시 물었다.
어차피 전생과 달리 이제 칼자루를 쥔 건 자신이다. 전생에서야 아무것도 모르니 고스란히 당했지만 이제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더군다나 그가 말한 특별한 사정이라는 걸 현성은 이미 알고 있다.
그건 바로 앞으로 한 달 후에 100미터 거리에 비디오 가게가 하다 더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체인점인 영화마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사실을 이성수는 3개월 전에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그곳엔 미장원이 있는데 계약기간이 끝나고 나면 영화마음이 들어오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성수는 어차피 영화마음과 경쟁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미리 3개월 전부터 작업을 해서 지금 빠져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지금 현성이 당당하게 묻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성수는 지금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이성수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 글쎄요.”
“글쎄요? 그 말씀은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제 생각이 맞습니까?”
“금액이 너무 차이가 나다 보니…….”
“네, 알겠습니다. 그럼 앞으로 30분의 시간을 더 드리겠습니다. 저는 저 앞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올 테니 그때까지 결정을 부탁드립니다. 만약 그때까지 결정을 안 하시면 저는 없던 일로 하고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다.”
현성은 그 말끝에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오백만 원입니다. 일단 계약금으로 드리고 밥 먹고 와서 잔금은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그때까지 결정해 주세요.”
현성은 나가려다 다시 돌아서 말을 이었다.
“참, 그 특별한 개인 사정이 뭔지 궁금한데 혹시 알려주실 수 있나요?”
“네? 그건 개인적인 일이라…….”
이성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연히 죽어도 말을 못 할 것이다. 전생에서도 영화마음이 들어온 후 그는 현성을 피해 다녔으니 말이다.
현성은 그런 그를 뒤로 한 채 비디오 가게를 나섰다.
현성이 나가고 혼자 남은 이성수.
“미치겠네!”
이성수의 표정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처음 광고지를 보고 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쉽게 계약이 이루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생각은 불과 몇 분 만에 깨지고 말았다. 그 시작은 그가 비디오 수량을 셀 때부터였다.
5분도 안 지나서 비디오 수량을 파악하는 순간 불안하기 시작했었다. 아무리 선수라도 그 정도의 양을 세려면 최소한 10분 정도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동안 열심히 만든 장부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순간 모든 건 어긋나고 말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런 그의 말에 반박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 틀린 말이 없으니 말이다.
스윽.
이성수는 한 손에 쥔 수표로 시선을 돌렸다.
생각 같아서는 받고 싶지 않았다. 단칼에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한 달 후면 바로 근처에 또 다른 대여점이 치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반 개인이 아닌 체인점인 영화마음이 말이다.
‘어쩐다?’
잠시 고민을 하던 이성수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응, 나야.”
-당신이 이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사실은 작자가 나타났는데…….”
-어? 그게 정말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근데 그게 문제가 생겼어. 사실은…….”
이성수는 지금까지 현성과 있었던 얘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의 설명이 끝나자 그의 아내인 김미숙의 입에서 바로 욕이 튀어나왔다.
-무슨 그런 새끼가 다 있어요?
“내 말이. 그래서 나도 미치겠어, 지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 영화마음은 언제 들어온다고 그랬지요?
“이제 한 달도 안 남았어. 이번 달 25일부터 인테리어 공사 들어간다고 하더라고.”
-아 씨 진짜!
김미숙의 목소리에 짜증이 잔뜩 묻어났다.
그런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한 달도 안 남았으면 더 이상 버틸 수도 없다는 얘기잖아요?
“그렇지, 그러다가 작자 안 나타나면 우리만 엿 되는 거니까.”
-재수가 없으려니 와도 어서 그런 놈이…….
“당신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휴우!
김미숙은 대답 대신 한숨을 길게 내쉬고 말았다.
그러자 이성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을 거 같아. 그 돈이라도 받아서 여기를 나가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
-잠깐만요!
김미숙이 이성수의 말을 끊었다. 그리곤 바로 다시 말을 이었다.
-혹시 백만 원이라도 더 달라고 하면…… 안 될까요?
“백만 원?”
-밤마다 비디오 가게 돌면서 비디오 얻어오느라 고생한 게 너무 억울해서요. 이럴 줄 알았으면 쪽팔리게 그런 짓은 안 했을 텐데…….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혹시 모르니까 일단 얘기는 해볼게.”
-아, 진짜 생각할수록 짜증 나네요. 내가 그 장부 적으면서도…….
두 사람의 불만은 그 후로도 한참 동안 계속 이어졌다.
얼마 후.
“휴우!”
아내와의 전화를 끊은 이성수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길게 나오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숨밖에 안 나왔다. 어떡하든 천만 원을 더 받으려고 그동안 벌인 일을 생각하니 한심할 뿐이었다.
밤마다 아내와 비디오를 실어 나르고 장부에는 오지도 않은 사람들의 이름을 적으며 가짜 장부를 만들었었다.
그런데 하필 와도 어디서 그런 놈이…….
그때였다.
딸랑.
가게 문이 열리면서 현성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