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51)
회귀해서 건물주-51화(51/740)
산 증인이라니?
허!
박희철은 어이가 없는지 테이블에 있는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곤 현성을 쳐다봤다.
“계속해 보게.”
“제가 어떻게 아저씨 사고를 미리 알았을까요?”
“뭐라? 지금 그 말은 …….”
“네, 미리 꿈에서 봤거든요. 그래서 아저씨 관광을 못 가시게 막았던 거구요.”
박희철은 혼란스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말은 안 했지만 가장 궁금했던 게 그것이었다. 처음에야 정신이 없어서 그냥 넘어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문은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현성은 지금 꿈에서 그걸 미리 봤다고 얘기하고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그때였다.
똑똑.
방문이 열리면서 주문한 음식이 들어왔다.
하지만 박희철의 눈에 음식이 들어올 리 만무했다.
반면 현성은 달랐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박희철도 어쩔 수 없이 현성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누가 뭐라 해도 박희철 자신이 누구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긴 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산 증인의 당사자이니 말이다.
현성이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이유다.
박희철을 보며 현성이 말했다.
“어서 짬뽕 드세요.”
“이 판국에 그게 넘어가겠는가? 그러지 말고 자세히 좀 말해보게.”
“일단 드세요. 드시고 나시면 그때 말씀드릴게요.”
“난 됐네!”
박희철은 아예 젓가락을 들지도 않았다. 그런 상황에 싸가지 없이 혼자 쩝쩝대고 먹는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현성은 어쩔 수 없이 박희철을 보며 그간의 얘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잘 들으세요. 제가 …….”
현성의 설명이 끝나자 박희철은 바로 물었다.
“뭐? 그러니까 빚을 갚은 것도 꿈 덕분이란 말이지?”
“네, 그렇지 않았으면 제가 어떻게 산삼을 캤겠습니까?”
“나를 구해준 것도 미리 꿈에서 사고 장면을 봤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고?”
“당연하지요.”
현성은 자신 있게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곤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제 짬뽕 드세요.”
“자네 말을 빌리자면 조금 전에 계약한 그 상가도 꿈에 미리 봤다는 얘기가 되는 거고?”
“이제야 제 말을 믿으시는군요.”
“허허 참! 내가 살다 살다 별일을 다 겪네, 그려.”
박희철은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꿈이라니?
근데 미치겠는 건 그것을 또 무조건 부정할 수 없다는 거다. 그 꿈의 수혜자는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믿자니 황당하고, 그렇다고 안 믿자니 자신이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이유가 설명이 안 되고, 이래저래 복잡한 박희철이었다.
“여기!”
박희철이 갑자기 중국집 사장을 불렀다.
그러자 금방 방문이 열리고 중국집 사장이 다가왔다.
“형님, 뭐 더 필요한 거 있으세요?”
“금복주 한 병.”
“네, 형님.”
“그리고 그 방문 좀 열어놔. 갑자기 열이 확 오르네.”
박희철도 박희철이지만 현성도 이 상황이 마냥 편한 건 아니었다.
앞에 두고도 못 먹는 심정.
짬뽕 국물은 이미 보이지도 않았다.
그때 홀에서 TV 소리가 들렸다.
요즘 한창 난리인 범서방파의 김태촌에 관한 뉴스였다.
순간 박희철이 현성을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현성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말인데……, 그 꿈에 김태촌이는 안 나왔는가?”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님을 단박에 알아차린 현성이었다.
현성은 그런 박희철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모를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당시 최고의 관심사였으니 말이다.
김태촌.
범서방파의 두목이다.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 등과 함께 7~80년대 3대 폭력조직 중 하나다.
지금 뉴스에서 얘기하는 사건은 1986년 7월 ‘인천 뉴송도호텔 사장 피습 사건’이다. 서방파 두목 김태촌이 박 모 검사의 사주를 받고, 박 검사와 사업상 갈등 관계였던 황 모 호텔 사장을 피습한 사건이었다.
현성은 박희철을 보며 여유롭게 물었다.
“뭐가 궁금하신 겁니까?”
“혹시 말이야, 김태촌이 언제쯤 잡히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현성은 씩 웃으며 일부러 시간을 끈 후 대답했다.
“잠깐만요……, 음……, 이번 주 일요일인데요.”
“뭐?”
답변을 원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저 말도 안 되는 꿈 얘기를 하기에 반박할 말은 없고 해서 그냥 놀림 삼아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 너무나 자신 있게 답변을 하는 현성이었다.
현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일요일에 뉴스로 확인해 보세요.”
“…….”
허!
이 정도면 결론이 나왔다는 얘기다.
처음 현성이 얘기했을 때가 생각났다. 관광을 못 가게 막던 그 날이었다.
종일 9시 뉴스를 기다리던 그 날.
하루가 그렇게 긴 줄 몰랐다.
결국, 7시에 미리 사고 소식을 접하고는 허겁지겁 현성한테 달려갔던 그 날 말이다.
일요일?
하아!
앞으로 4일 남았다. 하루하루가 1년같이 느껴질 생각을 하니 한숨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박희철이었다.
홀짝.
박희철은 죄 없는 금복주만 잡을 뿐이었다.
잠시 후.
현성은 박희철을 보며 물었다.
“아까는 왜 그러셨어요?”
“뭘 말인가?”
“보증 말입니다.”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사채업자인 박희철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보증을 선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박희철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네니까.”
“네?”
“자네는 내 하늘이거든. 그런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박희철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왔다. 그런 말이 나오리라곤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갑자기 훅 들어온 박희철 때문에 현성은 조용히 남은 짬뽕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나 싶었다. 물론 사지(死地)에서 꺼내준 것은 맞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변하리라곤 예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기대도 안 했었다.
사람이란 족속이 원래 망각의 동물 아니던가 말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보고 하늘이란다.
그래서 이유가 필요 없단다.
박희철!
현성의 머릿속에 이름 석 자가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
박희철과 헤어진 현성은 이정우네 분식 가게로 향했다.
이정우 어머니인 신명순에게 마지막으로 확인할 게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가게 안은 한가해 보였다.
현성은 가게 안으로 들어서며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어서 와, 그런데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신명순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굳이 묻지 않아도 그 이유야 다 알고 있기에 현성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머니한테 여쭤볼 말이 있어서요.”
“나한테?”
“네. 어머니가 확실히 결정해주셔야 제가 그다음 일을 진행할 수 있거든요.”
“내가?”
현성의 말에 신명순의 눈빛은 조금 전과 다르게 반짝였다.
신명순은 사실 오늘 종일 넋이 나간 기분이었다.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긴 열었는데, 손님이 들어와도 반갑기보다는 귀찮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10년을 운영해 오던 가게다. 그런데 이젠 정말 끝이라고 생각하니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현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우선, 하나 여쭤볼게요.”
“음, 그래. 뭔데?”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당연히 신명순의 의중이 우선이었다. 아무리 뜻이 좋다 하더라도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현성의 질문에 신명순은 다소 힘이 빠지는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사실, 그동안 나도 많이 알아봤어.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답이 없더라. 너도 알다시피 시골이라 빈 상가도 없고 말이야. 있기는 두 군데가 있어 둘러봤는데, 내가 들어갈 자리는 아니더라고.”
“아아, 그러셨군요.”
“그래서 지금 생각하는 건, 홍천이나 원주 쪽으로 나가볼까도 고려를 하는데, 그게 또 여러 가지로 걸린다. 우선 돈도 돈이지만, 그보다도 …….”
신명순은 끝말을 흐렸다.
아마도 이정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학을 가야 하는데, 당연히 어머니 입장으로선 불편한 이정우가 겪게 될 고통을 감내하기가 힘들 것이다.
현성은 신명순을 바라봤다.
신명순의 상황은 이제 충분히 들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현성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꿀꺽.
하필 그때 갈증이 났다. 아마도 아까 먹은 짬뽕이 조금 짰었나 보다.
“어머니, 저 물 좀 마시겠습니다.”
현성은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그러자 신명순이 급히 따라오며 말했다.
“이런, 내 정신 좀 봐라. 정신이 없다 보니 저녁도 안 주고, 잠깐만 기다려라. 금방 내가 김밥이라도 말아 줄 테니까.”
“아, 아닙니다. 어머니. 저 조금 전에 막 저녁 먹고 오는 길입니다. 그냥 물 한 컵 마시면 됩니다. 아무래도 저녁 먹은 게 좀 짰었나 봅니다.”
“정말이야? 혹시 안 먹었는데 먹었다고 그러는 거 아니지?”
“그럼요.”
예전에야 어쩌다 그런 적도 있었지만 지금이야 그럴 일은 없었다.
현성은 얼른 물을 마시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바로 신명순을 보며 말했다.
“어머니, 저 계약했습니다.”
“계약?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사실은 …….”
현성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신명순에게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성의 설명이 끝나자 신명순은 아무 말도 못하고 머리만 긁적일 뿐이었다.
신명순은 황당했다.
처음엔 어제 봤던 그 상가라는 말에 그저 장난이지 싶었다. 그런데 얘기가 길어질수록 현성의 모습은 점점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위약금 얘기가 나왔을 땐 진짜 미쳤다고 생각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사람이 죽어 나간 자리에 들어가겠다니, 더군다나 이제 겨우 고2, 열여덟 살이다.
좋다!
백번 양보해서 가게를 연다 치자. 그렇다면 학교는 또 어쩌고?
이것저것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답이 없는 문제였다.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