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53)
회귀해서 건물주-53화(53/740)
밖으로 나온 김지연은 집을 벗어나 신작로로 나왔다.
캄캄한 밤하늘엔 별이 쏟아질 듯 빛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별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북극성이다.
옛날에 많은 여행자들의 길잡이 노릇을 했다는 별. 특히 사막에서의 북극성은 나침반과 다름없다고 들었다.
그나마 저 별이 눈에 들어온 지도 며칠 안 됐다.
포기했던 꿈을 다시 찾으면서부터다.
오빠 덕분이다.
그리고 오늘 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항상 혼자라고만 생각했었다.
중3이 되면서부터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중 가장 많이 신경이 쓰였던 것은 당연 고등학교 진로 문제였다. 가고 싶은 학교는 춘천여고였다.
그런데 어려운 가정 형편을 뻔히 알면서 부모님께 차마 춘천으로 진학하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말해봤자 서로 상처만 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마음이 아팠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외로움이었다.
가난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엄마 아빠의 무관심은 정말 참기 힘들었다. 때로는 집을 나갈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알게 됐다.
그동안 혼자서 그렇게 원망하고 힘들어했던 시간들이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자신의 착각 때문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저 무관심한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엄마 아빠는 몇 년 전부터 이미 자신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보~!”
김지연은 자신의 머리를 툭 쳤다.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원망만 했던 자신이 한심할 뿐이었다.
한 마디만 물어봤어도, 그렇게 서운해하지는 않았을 텐데, 혼자 고민하고 원망만 했던 시간들이 후회스러웠다.
후!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라도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평생을 두고 원망만 했을 것이다.
“미안해! 엄마 아빠! 그리고 고마워!”
김지연은 혼자 중얼거리며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시각.
현성은 책상 위에 놓인 돈뭉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어 보니 78,500원이었다.
현성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자식이 뭔지.’
그 어려움 속에서도 한 푼 한 푼 아껴가며 모았다는 생각을 하니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이제라도 동생 김지연이 오해를 풀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생에서처럼 평생을 두고 마음의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다행이다.”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윽.
현성은 책상 위에 있는 낡은 지폐들을 가지런히 해서 봉투 안에 넣었다. 그리곤 그 봉투를 다시 한 번 바라봤다.
몇 번을 사양했지만, 결국은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라도 부모 노릇을 하게 해달라는 어머니의 말에 더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탁.
현성은 책상 서랍 안에 봉투를 넣고는 서랍장을 닫았다.
“그래!”
이제 시작이다.
기회도 왔고, 이미 상가도 잡아 놨다.
초기자본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도 전혀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마지막 방법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면 그 방법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담보를 이용한 대출.
담보는 물론 박희철이 명의이전까지 끝낸 산 중턱의 땅이다. 아마도 2,000평이니 시세로 따지자면 적어도 500만 원 이상은 갈 것이다.
물론 공시지가로 따지자면 그 이하이겠지만, 그래도 최소 100만 원의 담보 가치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처음 그 문서를 돌려준 이유는 간단했었다.
박희철의 과거 때문이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번 돈으로 산 땅이었기 때문이다.
욕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양심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박희철이 달라졌다.
표독스럽고 돈밖에 모르던 사람이 이제는 주위를 챙기기 시작했다. 이자도 그렇고 기부도 그렇고, 심지어는 어려운 가정에 쌀까지.
–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믿었었다. 그런데 그걸 박희철이 지금 그렇지 않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다.
현성이 이제 그 땅을 받기로 한 이유다.
더 이상의 양심?
그 정도로 앞뒤로 막힌 바보는 아니다.
“줘도 못 먹는 건 뭐다?”
그 정도 븅신은 아니란 얘기다.
물고기도 정제된 일급수에선 살 수 없다. 아니, 살기는 살더라도 오래 살지는 못한다.
뭐든 적당히!
짝!
현성은 가볍게 손뼉을 마주한 다음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상가 문제는 그렇게 진행이 될 것이고, 이제 바로 코앞에 닥친 문제가 남았다.
공부다.
이것만큼은 전생의 경험이 도움이 안 되는 부분이다. 오로지 시간을 다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계를 보니 9시를 막 넘기도 있었다.
현성은 고개를 돌려 방문 쪽을 쳐다봤다.
“좀 늦네…….”
바로 오늘부터 현성을 가르쳐 주기로 한 동생 김지연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역시 양반은 못되나 보다.
똑똑.
“오빠 나야.”
들어오는 동생의 표정이 약간은 멋쩍어 보였다. 아무래도 조금 전에 눈물을 보이고 나간 탓일 것이다.
이럴 땐 모른 척 화제를 바꾸는 것도 괜찮다.
“별 구경은 많이 했어?”
“별……?”
“혹시 좋아하는 별자리 있어?”
현성의 엉뚱한 질문에 잠깐 고민하던 김지연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북극성.”
“북극성? 어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거야?”
“응, 길잡이잖아. 사막에서도 길을 잃으면 북극성 보고 길을 찾는대. 그래서 난 좋더라고. 선생이 되려는 것도 어쩌면 그런 의미도 있고. 물론 될지 안 될지는 나한테 달렸지만….”
그러고 보니 동생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하늘의 별에서도 의미를 찾고 그것을 또 자신의 꿈에 담는 동생인 줄은 몰랐다.
그때였다.
김지연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현성한테 내밀었다.
“오빠, 이거.”
“야! 김지연!”
현성은 김지연을 보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자 김지연은 눈도 끔쩍 않고 다시 말을 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 돈 많이 벌어. 난 이자까지 다 받을 거니까.”
김지연이 내민 건 바로 며칠 전에 현성이 줬던 통장이었다.
현성은 얼떨결에 자신의 손에 쥐어진 통장을 바라봤다. 처음 자신이 아버지한테 줬던 그 통장이다. 아버진 그 통장의 금액 중 반을 남겨 현성에게 다시 돌려줬다.
그리고 현성은 그 통장을 동생 김지연에게 줬고. 그런데 그 통장이 다시 자신의 손으로 돌아왔다.
돌고 돌아 결국, 현성의 손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건 나이가 들어도 좀처럼 적응이 안 된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이 그토록 꿈꾸었던 미래를 위한 돈이었다. 그것을 처음 받았을 땐 세상을 다 얻은 듯 좋아하던 동생이었다.
순간이었지만 아직도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그걸 지금 들고 온 것이다.
그때 김지연의 말이 이어졌다.
“오빠, 미안해.”“어?”
현성은 무슨 소린가 싶었다.
미안하다니?
얼핏 생각해도 이 상황에 나올 말은 아니었다.
현성은 동생 김지연을 바라봤다.
그러자 잠깐 입을 달싹이던 김지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모르게 고민이 되더라. 그러면 안 되는데 말이야.”
“지연아….”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다.
하지만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현성이 뭐라 말하려 하자 김지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빠, 나 너무 이기적인 거 맞지?”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아니야, 그 돈을 누가 줬는데, 그 상황에 그걸 왜 고민하냐고? 이럴 때 보면 난 참 나쁜 년이야!”
홱!
현성의 고개가 순간적으로 돌아갔다.
동생 김지연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나쁜 뭐?”
“그렇잖아. 그 상황에도 나부터 생각하게 되더라니까. 혹시라도 오빠가 이 돈을 달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그런 마음이 들더라니까. 나도 나 자신에 놀랐어.”
“내가? 그 돈을…?”
“응.”
김지연의 말에 현성은 할 말이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인간의 본능일 지도.
더군다나 이제 겨우 중3이다. 열여섯 살. 그 나이면 당연한 거 아닌가…….
잠깐!
그런데 지금 김지연은 자신의 입으로 그 순간의 복잡한 심리를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 말은 이미 그 갈등의 과정을 뛰어넘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지금 이 통장을 들고 온 것이고.
어쩐지 늦는다 싶었다.
늦어진 시간만큼 김지연은 혼자 고민을 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결국,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이고.
현성은 갑자기 궁금해졌다.
“무엇이 우리 지연이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간단하더라고.”
“…음?”
의외의 답변이었다.
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김지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엔 복잡하게 이것저것 막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나중엔 하나로 결론 나더라고.”
“하나로?”
“응, 가족. 오빠가 나한테 아무 조건 없이 통장을 내밀었던 것도 그렇고, 엄마 아빠가 그 어려운 데도 한 푼씩 모을 수 있었던 마음이 뭘까 생각해 봤어.”
“그 결론이…….”
“맞아. 남이라면 그렇게 못 했을 거 아냐?”
맞는 말이다.
동생의 말처럼 남이라면 조건 없이 그렇게 행동하지는 못할 것이다. 가족이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현성은 김지연을 보며 빙긋 웃었다.
“그럼 이제 이 돈은 오빠가 써도 되는 거지?”
“물론이지. 우린 가족이잖아. 히히….”
자신이 생각해도 조금은 오글거리긴 했나 보다.
얼굴이 살짝 붉어지는 김지연이었다.
“오케이, 알았어. 대신, 이 오빠가 꼭 대박 나서 우리 지연이 고등학교도 보내주고 대학교까지 책임지면 되는 거지?”
“어? 이자치고는 너무 센데?”
“원래 아는 사람이 더 무서운 거야. 어디 사채이자 한 번 써볼까. 하하…….”
현성은 기분 좋다는 듯 호쾌하게 큰소리로 웃었다.
그러자 동생 김지연의 얼굴에도 그제야 웃음이 만연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현성은 통장을 책상 서랍 깊숙이 밀어 넣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돈을 쓸 일은 없다. 이것만큼은 손대지 않을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의 꿈을 실현해 줄 희망이다.
오빠로서 동생의 희망에 빨대를 꼽을 순 없는 거다. 어떤 이유로도 말이다.
아무리 전생에서 대박이 난 자리긴 하지만 100%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더욱 더 이 돈에 손을 댈 수 없는 것이다.
그때였다.
꼬르륵.
“헤헤, 미안 오빠. 나도 모르게 그만…….”
“미안할 거야 없고, 혹시 저녁 안 먹었어?”
“요즘 살이 자꾸 찌는 거 같아서.”
현성은 김지연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곤 자리에서 슬쩍 일어났다.
그러자 김지연이 물었다.
“공부해야지, 어디 가?”
“저녁을 부실하게 먹었더니 안 되겠다. 라면이나 끓여 먹을까 하고.”
“뭐? 오빠, 제발 그것만은…, 나 좀 살려주라. 응?”
덥석.
김지연은 현성의 발을 붙잡고 늘어졌다.
절레절레.
현성이 내려다보자 김지연은 강렬한 눈빛으로 애원하고 있었다.
“오빠, 제발 나가지 마.”
“그거 알아?”
“뭘?”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한다는 말!”
현성은 그 말을 끝으로 부엌으로 사라졌다.
방에 혼자 남은 김지연.
천장을 쳐다보던 김지연의 눈매가 가늘어지는 순간이었다.
“나쁜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