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534)
회귀해서 건물주-534화(53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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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그 사람 한보그룹의 회장이잖아?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은 왜?”
문희열은 되물으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 이유는 지금 이 자리에서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인물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현성의 답변이 이어졌다.
“그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가 맡고 있던 한보그룹을 얘기하고 싶은 겁니다.”
“한보? 어차피 1월에 부도났잖아?”
“그러니까요, 조금 전에 형이 뭐라고 그랬어요? 2월부터 어음 결제가 늘었다고 했지요?”
“물론 그랬지, 그런데 그게 왜?”
문희열은 한 번 더 고개를 갸웃했다. 어음 결제가 늘어난 것이 부도난 한보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그 연관성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현성이 앞에 놓인 소주잔을 비운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한보철강이 부도난 게 언제인지 아세요?”
“글쎄다, 그 날짜까지는 정확히…….”
“1월 23일이에요. 그리고 일주일 뒤인 30일에 한보그룹 전체가 부도가 났고요.”
“그러고 보니 그런 거 같다. 그런데 그게 우리 어음 결제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물론 형네 공장과 직접 연관이 있는 건 아니죠. 하지만 한보가 쓰러지면서 그 여파가 대한민국 전체에 미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거야 아무래도 작은 기업은 아니었으니까…….”
문희열은 일리가 있는 얘기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현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형, 혹시 한보가 우리나라에서 재계 서열 몇 위인지 아세요?”
“아마 14위로 들었던 거 같은데?”
“네, 맞아요. 14위가 쓰러진 겁니다. 진짜 엄청난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떤 일이 일어날 거 같습니까?”
“어? 글쎄…….”
문희열은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머리를 슬쩍 긁적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그 여파가 만만치는 않겠지만 그래도 정부에서 막아주지 않을까?”
“아니요!”
현성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 당시 정부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전까지도 외환위기는 없다고 호언장담을 하던 정부였으니 말이다.
현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도미도 현상 아시죠?”
“도미노? 그 말은 결국…….”
“네, 줄줄이 도산이 시작될 겁니다. 앞으로 재계 서열 30위 중에 13개가 쓰러질 겁니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하청업체들은 물론이고 다른 중소기업들도 연쇄적으로 쓰러질 겁니다. 그 숫자가 무려 3천 개가 넘을 거고요.”
“뭐? 3천 개?”
문희열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벌린 입을 닫을 줄 몰랐다. 그만큼 그에겐 지금 현성의 말이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이라는 얘기였다.
그런 그가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다음 다시 물었다.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얘기하는 겁니다. 오늘만 해도 두 개가 부도났다고 방송에 나왔죠? 이게 앞으로 1년 동안은 일상처럼 TV 뉴스에 나올 거란 얘깁니다.”
현성은 말끝에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본 다음 앞에 놓인 소주병을 들었다. 그리곤 문희열의 잔과 자신의 잔에 차례로 술을 따른 후 소주병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형, 얘도 내일이면 쓰러져요.”
“쓰러져? 그 말은 혹시……?”
“네, 부도가 날 겁니다.”
“…….”
문희열은 말 대신 현성이 들고 있던 소주병을 바라봤다. 그 소주병에는 ‘眞露’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그 말은 결국 내일이면 진로가 부도난다는 얘기다.
문희열은 잠시 생각이라도 하려는 듯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소주잔을 비운 문희열이 현성을 보며 물었다.
“이유가 뭐야?”
“이유요?”
“그래, 오늘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이유 말이야?”
문희열의 목소리에 진중함이 잔뜩 묻어났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조금 전에 그의 입에서 앞으로 3천 개가 넘는 회사가 부도를 맞는다고 했다. 그 말은 자신의 공장 또한 그 3천 개 속에 속하지 말란 법이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성의 답변이 이어졌다.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 굳이 제 설명이 더 필요한 건가요?”
“그 말은 결국 우리 공장도…….”
문희열은 말을 중간에서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차마 자신의 입으로 직접 ‘부도’라는 말을 꺼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현성이 조용히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잔을 비운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미리 대비를 하란 얘깁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문희열의 공장 같은 경우는 내년 1월에 부도를 맞는다. 그것도 가장 추울 때 공장 문을 내리게 된다. 아직도 그때 울면서 절망하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선할 정도다. 그만큼 현성 또한 그의 고통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땐 그를 위해 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 또한 영화마음에 치여 자신의 코가 석 자였으니 말이다.
“너 뭐야?”
탁!
문희열이 빈 술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런데 그 눈빛이 현성을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 마치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얘기를 하니 그가 바로 믿기에는 당연히 무리일 것이다.
현성은 바로 물었다.
“왜요? 안 믿깁니까? 아니면 믿고 싶지 않은 겁니까?”
“둘 다야, 믿기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아. 그런데 말이 안 되는 건 네가 어떻게 그 엄청난 일들을 미리 알 수 있는 거냔 말이야. 이건 말이 안 되잖아? 분명히 아까 저녁 뉴스에도 우리나라 경제는 튼튼하다고 강경식 부총리가…….”
문희열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뉴스에 나왔던 얘기를 길게 꺼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 모든 게 정부의 잘못된 대응이었고 결국은 얼마 못 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마는 것을.
문희열의 말이 끝나자 현성이 바로 말했다.
“그 자식들 다 뻥입니다.”
“뭐? 뻥?”
“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 말입니다. 결국 지금 부도의 길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잠깐!”
문희열은 뭔가 생각을 하는 듯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런 그가 생각을 정리한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부도의 길로 가고 있다고 했어?”
“네, 지금 이 순간에도 말입니다.”
“그 부도가 설마…… 대한민국?”
현성은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문희열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진짜야?”
“네, 사실입니다. 하지만 부도까지는 안 낼 겁니다. 부도나기 직전에 손을 벌릴 겁니다.”
“손을 벌려? 어디에?”
“형도 들어봤을 겁니다, IMF요. 국제통화기금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IMF 체제에 들어간다는 거야?”
“네, 불행하게도 호랑이 입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결과 수많은 기업들이 강제 구조조정이 되면서 파산을 하게 될 겁니다. 대한민국 경제에 핵폭탄이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인 거죠.”
“…….”
문희열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에 생각에 잠긴 듯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아랫입술을 깨문 모습이 현성의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내적 갈등에 빠진 듯싶었다. 믿을 것인지 아니면 믿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고민이 깊은 듯 침묵의 시간이 꽤나 길어졌다.
얼마 후.
눈을 뜬 문희열이 현성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저히 나는 못 믿겠어.”
“그럴 겁니다. 당연히 쉽지는 않겠죠.”
“이건 말이 안 돼, 어떻게 우리나라가 부도…….”
문희열은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저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성 또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전생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런 그를 설득시켜야 하니 말이다.
현성은 이번에 다른 말을 끄집어냈다.
“형, 주식하죠?”
“어? 어…….”
“공장 운영에 관해서는 일단 아버님께 잘 말씀드리고 형은 일단 주식부터 정리하세요.”
“주식을 정리하라고?”
“네, 지금 가지고 있는 그거라도 건지려면 내일이라도 당장 몽땅 정리하세요. 앞으로 1년 동안은 죽어도 올라갈 일은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더군다나 3개월 뒤인 7월에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홍콩 등 동남아시아의 외환위기가 연쇄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그때는 이미 모든 게 늦습니다. 그땐 증권이 아니라 그냥 휴짓조각이 될 테니 말입니다.”
“…….”
문희열은 다시 또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들으면 들을수록 믿을 수 없는 황당한 말들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젠 국내를 벗어나 동남아시아까지도 언급을 하고 있으니 어찌 황당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이해가 안 되는 게 또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자신이 소유한 주식에 대한 정보다.
주위에 누구한테도 주식의 소유를 얘기한 적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는 그 주식의 존재를 알고 있단 말인가.
현성을 알 게 된 지 이제 고작 한 달도 안 됐다. 물론 비디오 가게에 거의 매일 다니는 바람에 그와 친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주식 얘기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주식을 하는지 알고 있단 말인가.
다른 내용도 내용이지만 우선 어떻게 자신이 주식을 한다는 걸 알았는지 그게 더 궁금했다.
문희열은 궁금한 마음에 바로 물었다.
“내가 주식에 투자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어떡하든 살아남는 게 중요한 거 아닙니까?”
어차피 그가 주식을 한다는 건 전생에서 알았다. 그 또한 이미 휴짓조각이 된 다음에 말이다. 그렇다 보니 지금으로선 현성으로서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시간이 많이 없기 때문에 모든 과정을 무시하고 그냥 직접 얘기를 했던 것이다. 어차피 가장 중요한 건 전생과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성의 생각인 것이고 문희열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닌 듯했다.
“아니, 난 중요해. 난 분명히 동생한테 내가 주식에 투자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거든. 그런데 동생이 어떻게 알았는지 말이야.”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형이 빈 깡통을 차는 것보다 말입니까?”
“어? 그건…….”
문희열은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두 가지를 놓고 비교한다면 아무래도 후자 쪽이 더 중요한 건 사실이니 말이다.
그때 현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형, 일단은 살고 봅시다!”
현성의 말에 간절함이 묻어났다. 그만큼 현성으로선 시간이 없다는 걸 알기에 절박하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래를 알고 있는 현성의 입장인 듯했다.
문희열은 어떡하든 궁금증부터 풀고 싶은 듯 똑같은 말을 다시 물었다.
“당연히 살고 봐야지, 그런데 진짜 너는 내가 주식한다는 걸 어떻게 안 거야?”
“지금은 말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그건 얘기할게요.”
“나중에?”
“네, 지금은 저도 사정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건 일단 나중으로 미룹시다. 지금 급한 건 그게 아니라 형이 사는 게 우선이니까 말입니다. 네? 형?”
현성은 다시 간절하게 얘기했다.
그 마음이 전달이라도 된 걸까.
잠깐 생각을 하던 문희열의 표정이 바뀌는가 싶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짧게 말을 이었다.
“알았어.”
“알았다고요?”
“그래, 하지만 나한테도 시간을 좀 줘. 나도 나름대로 알아봐야 하니까.”
“아니, 형…… 네, 알았어요.”
현성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 그만두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차피 여기서 더 강하게 얘기를 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만 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문희열이 조용히 다시 물었다.
“혹시 너도 주식하냐?”
“했었죠.”
“했었다? 그 말은 지금은 안 한다는 얘기네?”
“올해 초에 한보 부도나기 전에 이미 다 정리해서 갈아탔어요.”
“갈아타? 뭐로?”
“달러요.”
1월 초에 이미 모든 주식을 정리해 달러로 바꿨다. 어차피 앞으로 최소한 1년 동안 달러의 가치는 계속 오를 테니까 말이다.
처음엔 고민도 많았다. 나라가 망하는 상황에서 그걸 이용해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개인이 어찌하기에는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달러였다. 어차피 나라에서도 나중에 필요한 게 달러일 테니 말이다.
문희열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현성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결국 너는 한보의 부도를 예측했다는 거네?”
“예측이 아니라 알고 있었어요.”
“알고 있었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까지 제가 한 얘기들은 예측이 아니라 앞으로 실제로 일어날 일들입니다. 그러니 그 이유를 묻지 말고 형이…….”
“잠깐!”
문희열이 갑자기 손을 들어 현성의 말을 끊었다. 그리곤 바로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내일이라도 당장 청와대로 가야 하는 거 아냐?”
피식.
현성은 미소를 지소 말았다. 지금 문희열이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나라의 부도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현성이 대답 대신 웃음을 보이자 문희열이 다시 물었다.
“뭐야? 그 웃음은?”
“청와대 간다고 그분을 만날 수나 있을 거 같아요?”
“당연히 나라가 부도가 날 판인데…….”
“미친놈이라고 바로 잡아갈 겁니다. 형이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부총리란 사람이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제 말을 듣겠습니까?”
“어? 그러고 보니…….”
문희열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의 부총리까지 나서서 이상이 없다고 하는 상황이 아닌가 말이다. 그 말은 정부에서는 이미 방향을 그쪽으로 잡았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현성의 말이 이어졌다.
“형은 어때요? 믿을 수 있겠어요?”
“어? 그게…….”
문희열은 자신 있게 대답을 이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아무리 생각해도 믿음이 가지 않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그때 현성이 다시 말했다.
“제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부턴 형이 알아서 하세요.”
“어? 내가?”
“믿고 안 믿고는 형의 자유이니까 말입니다. 대신 앞으로 형한테 일어나는 일은 형의 책임입니다. 저는 분명히 얘기했으니까 말입니다.”
현성은 그 말을 끝으로 앞에 놓인 술병을 들었다. 그리곤 잠깐 술병을 바라본 다음 문희열을 향해 다시 말했다.
“형, 요놈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자, 한잔 받으세요.”
쪼르륵~~~!!!
현성은 문희열의 술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느낌 때문일까, 술잔에 떨어지는 소리가 왠지 슬프게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