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55)
회귀해서 건물주-55화(55/740)
한편 김일수도 마음이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다.
처음 딱 현성을 마주하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공터에서 현성의 마지막 모습이 순간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말이 삐딱할 수밖에 없었다.
알량한 자존심.
항상 밑바닥이라 생각했던 현성한테 까였다고 생각하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분명한 건 그게 사실이라는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
알고 있다.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때 현성이 김일수를 보며 다시 물었다.
“왜 이렇게 꼬인 거야?”
“꼬이긴 뭐가 꼬여?”
“너는 지금 네 행동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물론 우리가 싸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찾아온 친구한테 꺼지라니? 진짜 이렇게 형편없는 놈이었던 거야?”
“…….”
김일수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기를 잠깐.
빠드득.
어금니를 꽉 깨문 김일수가 입을 살짝 열었다.
“개새끼, 말은 잘하네.”
“너 진짜……!”
“너 같으면 어떨 거 같아?”
“그건 갑자기 또 무슨 헛소리야?”
현성은 김일수의 갑작스러운 말에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때 김일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너 같으면 쉽게 인정이 되겠냐고, 이 새끼야?”
“인정?”
“주둥이 놀릴 땐 언제고, 이럴 땐 또 이게 뱅글뱅글 안 돌아가나 보지?”
김일수는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때 현성이 뭔가 생각 난 듯 손가락으로 김일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혹시 지금 …….”
현성은 말을 하다말고 관자놀이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조금 전 김일수는 ‘인정’이란 말을 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때 다시 생각난 말이 ‘너 같으면’이라는 말이었다.
허!
현성의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곤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지금 나를 인정하기가 힘들다는 거네? 맨날 심심풀이 땅콩이었는데 갑자기 그런 나한테 까였다는 게 인정하기 힘들다는 거지? 아니, 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
“대답이 없다는 건 그렇다는 말일 테고.”
이제야 현성은 김일수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인정하기 싫었던 거다. 아니, 인정이 안 됐던 거다.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을 테고. 그러다 보니 말도 아무렇게나 막 나왔을 테고 말이다.
피식.
현성은 김일수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야, 김일수 잘 들어. 지금 내 마음 같아서는 너를 그냥 이 감자밭에 묻어버리고 싶거든. 무슨 말인지 알겠냐?”
“…….”
“모르겠지? 어차피 사람이라는 족속이 그래. 너는 지금 너 자존심만 생각하는 거지? 조금 전에 네가 그랬지? 너 같으면 인정하겠냐고?”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는 김일수였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게 유식한 말로 역지사지라고 하는 거다. 그런 말 하기 전에 너도 잘 생각해 봐. 그동안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나와 이정우를 비롯해 반 친구들한테 한 짓을 말이야.”
“…….”
“진짜 네가 사람 새끼라면 이제는 한번 뒤돌아봐. 네가 장난감처럼 대했던 그 친구들이 얼마나 비참했을지 말이야.”
현성의 말이 끝나자 김일수는 먼 산을 바라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김일수의 생각이 길어지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김일수가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이 물었다.
“이제 뭐가 좀 느껴지냐?”
“솔직히…….”
“솔직히 뭐?”
“아직 뭐라고 말하기엔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 안 된다. 나도 이런 내가 이해가 안 된다.”
푸웁.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지랄도 풍년이라는 말이 딱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이런 내가 이해가 안 된단다.
쓰읍.
현성은 입을 한 손으로 쓸었다.
뭐라 할 말이 없는 현성이었다.
하긴….
어쩌면 저게 당연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잠깐 고민한다고 그 생각이 바뀐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할지도.
욕심이었나 보다.
그래, 나만의 욕심.
오래 살아본 내가 이해해야지.
현성은 김일수를 보며 말을 건넸다.
“알았다. 더 생각해 봐. 밤새도록 생각해라. 그래도 정리가 안 되거든 그땐 나한테 말해. 내가 확실하게 정리해 줄게.”
“그게 무슨……?”
“어차피 장식이라면 그 머리 굳이 무겁게 달고 다닐 필요 없잖아. 이번 기회에 정리하자.”
“미친….”
끝까지 발끈하는 김일수였다.
현성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김일수를 데리고 더 이상 무슨 얘기를 한단 말인가. 어차피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현성의 생각이었다.
현성은 방향을 틀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나, 간다. 참, 내일은 학교 나오는 거 잊지 말고. 더는 사람 피곤하게 하지 마라. 제발 부탁 좀 하자.”
현성은 더는 할 말이 없었기에 김일수를 뒤로한 채 발길을 돌렸다.
그때였다.
“안 가!”
갑자기 뒤에서 이상한 말이 들려왔다.
홱.
현성의 목이 자동으로 돌아갔다.
“지금 뭐라 그랬냐?”
“안 간다고.”
“그 의미는 뭐야? 학교를 때려치우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어차피 의미도 없잖아?”
현성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김일수의 말을 다시 들어보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도대체…….
현성은 김일수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야, 다시 말해 봐!”
“졸업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냐고? 중졸이나 고졸이나 뭐가 달라져? 그럴 바에야 차라리 빨리 사회에 나가서 돈이라도 버는 게 낫지.”
“누가 그래?”
“뭐?”
김일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입을 열었다.
“어떤 미친놈이 중졸이나 고졸이나 같다고 그래? 그리고 뭐,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어? 사회가 너 같은 놈 받아주기나 할 거 같아?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냐?”
“민영이 형은 잘만 살더라.”
“누구?”
“민영이 형, 우리 2년 선배 최민영 말이야.”
순간 현성의 머릿속에 최민영이라는 인물이 떠올랐다.
“혹시 그 선배, 서울 마포에서 사업한다는 형 아니야?”
“어? 네가 그걸 어떻게…….”
왜 모르겠는가?
지금으로부터 아마도 5년 후쯤 될 것이다.
군대를 막 제대하고 가을 추석 때였다. 시골에선 주로 명절인 추석에 동문회를 갖는다. 그래야 외지에 나가 있던 사람들이 동문회에 참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성도 그때 동문회에 참석했었다.
그때 화두가 최민영의 사기 사건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웬만한 동문들한테는 다 연락이 갔던 것이다. 흔히 말하는 피라미드.
알고 보니 그 피해를 본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 얼마나 교묘한지 사기죄로 고소도 못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금전적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각자의 몫이었던 것이다.
현성은 김일수를 보며 물었다.
“혹시 그 새끼한테 연락 왔었냐?”
“선배한테 무슨 말이 그래? 너 미쳤어?”
“선배 같은 소리하고 있네. 하긴 넌 아직 모르겠구나.”
“뭘?”
김일수는 현성을 빤히 바라봤다.
현성은 그제야 김일수가 전생에서 왜 친구들한테 옥장판 사업에 뛰어들 게 했는지 감이 잡혔다.
원흉은 최민영이었다.
김일수도 최민영한테 당했던 거다.
현성은 김일수를 보며 다시 말했다.
“그 새끼 사기꾼이잖아. 혹시 옥장판 얘기하지 않았어?”
“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역시 예상대로다.
현성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어느 지역에 독점으로 영업권을 준다는 말도 했지?”
“뭐야? 너한테도 연락이 갔던 거야?”
“보증금도 몇백 요구했을 테고, 그리고 아마 이런 말도 했을걸. 일 년이면 그 보증금 다 뽑고 그다음부턴 파는 만큼 남는 거라고.”
김일수는 현성의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이번 여름방학 때 최민영이 했던 말과 너무 똑같았기 때문이다.
한 가지만 빼고.
그때 현성의 입이 다시 열렸다.
“고향 동생이니까 보증금도 어느 정도는 빼준다고 했을걸.”
김일수의 동공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흔들렸다.
정확히는 50%다.
300만 원.
최민영이 얘기했던 금액이다. 남들은 600만 원이지만 자신은 50%인 300만 원만 들고 올라오면 언제든지 바로 영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추가로 했던 말이 굳이 고등학교 졸업장은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대학 나온 사람들도 다 똑같다고 했다. 누가 먼저 좋은 상권을 잡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고민 중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사실을 현성이 어찌 안단 말인가?
자신한테만 얘기하는 거니까 남들한테는 절대 비밀이라고 했었다.
김일수는 현성을 보며 물었다.
“야, 네가 어떻게 안 거야?”
“김일수 잘 들어. 지금 이 문제의 핵심은 내가 어떻게 알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최민영 그 새끼가 사기꾼이라는 거야. 우리 학교 선배 후배 가리지 않고 작업 들어간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냐?”
“사기꾼이라고? 그 형이 설마 나한테…….”
김일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동네에서 살던 형이다.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앞개울에서 멱도 같이 감고 여름이면 천렵도 같이하며 놀던 형이다.
그런 형이 자신한테 사기를 친다고?
김일수의 고개가 천천히 좌우로 움직일 때였다.
현성이 다시 말했다.
“못 믿겠지? 아니, 안 믿어지지?”
“당연히…….”
“그게 이 사회라는 거야. 고향 동생?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해. 너는 단지 그저 최민영이라는 사기꾼의 또 다른 먹잇감일 뿐인 거야.”
“…….”
김일수는 아무 말 없이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떻게 그 형이 나한테…….
아닐 거야.
뭔가 착오가 있지 않고서는 이건 말이 안 된다. 어려서부터 친동생처럼 자신을 돌봐줬던 형이다. 그런데 그 형이 사기꾼이라니.
김일수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현성은 고민에 빠진 김일수를 바라봤다.
당연히 믿기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같은 동네 형이고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다 보니 그 마음은 더할 것이다.
현성도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설마 했었다.
동문이라는 사람이 선배 후배 안 가리고 작업을 한다는 말에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모든 게 사실이었다.
그때 김일수가 현성을 보며 말했다.
“좋다. 네 말대로 민영이 형이 사기꾼이라고 치자. 그런데 제일 궁금한 건 네가 지금까지 한 말들이야.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안 가. 네가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하냔 말이야?”
김일수가 흥분한 것과는 다르게 현성은 차분히 말했다.
“일수야, 이해하지 마라. 나도 더는 강요 안 할 거야.”
“뭐?”
“대신, 이거 하나만은 부탁하자. 네가 지금 나를 못 믿는 것처럼 최민영이도 믿지 마. 이게 지금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충고다.”
김일수는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철석같이 믿었었다.
그리고 희망이었다.
이곳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이 감자만 다 캐고 나면 할머니한테 이 밭을 팔아달라고 말할 참이었다. 눈 딱 감고 몇 년만 고생하면 할머니 모시고 이곳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흔들리고 말았다.
현성 때문이다.
무시하면 되겠지만, 그러기엔 현성의 말이 너무 사실적이라 무시할 수가 없다. 만에 하나 현성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완전 망하게 된다.
재산이라곤 감자밭 그거 하나가 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성의 말을 무시하기에 더 찝찝한 건, 현성은 지금 자신한테 거짓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최민영은 어떤가?
현성의 말처럼 최민영이 사기꾼이라면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이 시점에서 거짓말을 해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굴까?
최소한 김현성은 아니다.
흠…….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최민영!
현성이 말한 사기꾼.
좀 더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는 얘기다.
김일수는 결심한 듯 현성을 바라봤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김현성, 알았다. 일단 서울 가는 건 보류한다.”
“자식, 그래도 머리가 장식은 아니구나. 생각이란 걸 하기는 하네.”
“너, 이 자식…….”
쩝.
김일수는 입을 다물었다.
부모님이 남겨준 유일한 땅이다.
만약에 오늘 현성이 안 왔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를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휴우.
김일수는 감자밭을 한 바퀴 둘러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어, 뭐?”
“아니다. 나중에…….”
스윽.
김일수는 무슨 말을 하려다 고개를 슬쩍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