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557)
회귀해서 건물주-557화(557/740)
559
며칠 후.
현성이 아침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막 끝냈을 때였다.
삐리릭.
누군가 현관의 벨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현성의 시선은 바로 벽에 걸린 시계로 향했다. 시계는 이제 막 6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누구지?’
현성은 누군가 찾아오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현관문을 열었다.
“어? 아버님이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현관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막내인 유영석의 아버지인 유상혁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 5월 9일이었다. 어버이날에 시골에서 인천으로 올라오던 날 유영석과 통화를 하면서 그다음 날 바로 그의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갈 것을 권했었다. 망설이는 그 때문에 명령이라는 말까지 써 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다음 날 유영석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바로 입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기간 술로 인해 간(肝)의 상태가 너무도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조금만 더 진행을 하면 간경변증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로 그날 병원으로 달려갔었고 입원 수속과 모든 검사도 할 수 있도록 도와줬었다.
그리고 어제 유영석으로부터 아버지가 완치되어 퇴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 그가 오늘 아침 일찍 찾아온 것이다.
“사람이 그 정도로 도움을 받았으면 당연히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게 도리지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장님!”
유상혁이 현성을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곤 바로 다시 말을 이었다.
“사장님 덕분에 제가 살았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아버님 왜 이러십니까?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안으로 들어온 유상혁은 그 후로도 계속 비슷한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말이 그저 빈말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한참 동안 그의 말이 이어진 다음 현성이 바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아버님이 완쾌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이게 다 사장님 덕분입니다.”
“제가 뭘 했다고…….”
“사실은…… 포기를 했었습니다.”
유상혁이 현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먼저 말을 이었다. 그런 그의 표정은 조금 전의 얘기할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뭐랄까, 힘들게 고백을 하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성으로선 지금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네? 포기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3개월 전 119에 실려 갔을 때, 그때 이미 저는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포기를 했었습니다.”
“아니, 왜요?”
“돈도 돈이지만 죗값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참 나쁘게 살았거든요. 사실은…….”
유상혁은 그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설명을 이어갔다. 어느 정도는 예전에 유영석으로부터 이미 들었던 얘기고 처음 듣는 얘기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이한 건 유상혁 또한 그전에 그의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흔히 얘기하는 가정폭력의 대물림 현상이었다.
결국 유상혁은 어려서 당한 폭력을 그의 아들인 유영석과 그의 아내한테 그대로 행사했던 것이다.
유상혁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아내와 이혼을 하고 영석이와 집사람이 집을 나간 후에야 내가 그동안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습니다.”
“…….”
“그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나 자신이 말입니다.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당한 폭력을 내가 똑같이 저질렀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술을 더 먹게 됐고 결국은 119에…….”
유상혁은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잠깐 숙였다.
그러기를 잠시.
그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어버이날에 영석이가 찾아온 겁니다. 꿈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사장님께서 시킨 거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래도 최종적으로 결정한 건 영석이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중요한 건 영석이가 다시 저를 찾아왔다는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간사한 게 나중에 사장님이 쫓아오셔서 입원 수속을 밟고 검사를 받다 보니 마음이 또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유상혁이 잠시 쉬었다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엔 그동안 잘못 산 죗값이라 생각하고 죽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치료를 한다고 하니까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겁니다.”
“욕심이 아니라 당연히 사셔야지요. 영석이를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영석이 이제 겨우 스물입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제가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걸 사장님께서 깨우쳐주셨습니다.”
“그건 아닙니다. 저는 단지…….”
“사장님!”
유상혁이 갑자기 현성의 손을 잡았다. 그리곤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사장님은 저와 영석이를 다시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유상혁의 말이 다시 길어졌다. 그만큼 그의 입장에서는 할 말이 많다는 얘기였다.
잠시 후.
유상혁이 말을 끝내며 현성 앞으로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사장님, 이거 받으십시오.”
“이게 뭡니까?”
“제 각오입니다.”
“각오요?”
현성은 각오라는 말에 봉투를 받아 내용물을 확인했다. 봉투 안에는 100만 원짜리 수표 한 장과 차용증이 적혀있었다. 차용증에는 두 달 조금 넘게 들어간 병원비용이 적혀있었다.
유상혁은 그동안 현성이 지불한 병원비 총액을 차용증으로 작성하여 가져온 것이었다. 그 말을 결국 나중에라도 그 병원비를 갚겠다는 의미였다.
내용을 확인한 현성은 유상혁을 보며 물었다.
“이 돈은 뭐고 이 차용증은 또 뭡니까?”
“그 돈은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 차용증은 보시다시피 사장님께서 대신 계산한 병원비입니다.”
“그러니까 이걸 왜 저한테…….”
“돈은 제 마음을 표현한 거고 차용증은 제가 앞으로 일을 해서 꼭 갚겠다는 의미입니다.”
“…….”
현성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한 현성은 봉투를 다시 유상혁한테 내밀며 말했다.
“이거는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도로 넣어두십시오.”
“아닙니다, 이건 받아주셔야 합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안 하면 제가 영석이 앞에 얼굴을 못 듭니다.”
“영석이가 왜요? 혹시 영석이가 그렇게 하라고 한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 스스로가 아비로서 영석이 앞에 체면이 안 섭니다.”
체면이라는 말에 현성은 유상혁을 힐끔 바라봤다. 그리곤 바로 말을 이었다.
“체면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자식 앞이니까요.”
“과연 영석이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그건…….”
유상혁은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물었다.
“왜 말씀을 못하십니까?”
“그건 영석이 생각을 알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아버님 혼자만의 생각이라는 거죠?”
“그렇긴 하지만 영석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요, 제가 아는 영석이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영석이가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 아십니까?”
“그날이요?”
유상혁이 궁금하다는 듯 현성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입을 열었다.
“검사하고 결과 나오던 날 말입니다. 그날 나중에 전화로 엄청 울더군요.”
“혹시 그 이유가…….”
“암인 줄 알았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지금까지 아빠한테 가졌던 모든 서운함이 싹 없어졌다는 겁니다. 그냥 살아만 주신 걸로 감사하다고요. 그런 녀석입니다.”
“…….”
“그런 영석이한테 굳이 체면을 세우기 위해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 체면이라는 게 결국은 영석이가 아닌 아버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
유상혁은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체면이라는 게 상대방을 위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처지를 떳떳하게 하려는 게 목적이니 말이다.
그때 현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제가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당연히…….”
“그 돈으로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 지금 아버님의 몸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다음 영석이가 가장 원하는 것을 해주십시오.”
“영석이가 가장 원하는 거요?”
유상혁은 고개를 갸웃하며 현성을 바라봤다. 그게 뭔지 궁금하다는 의미였다.
현성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지금 영석이가 가장 원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그건…….”
“제가 생각할 때는 어머니일 겁니다.”
“아…… 네.”
유상혁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현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더 늦기 전에 영석이 어머님을 찾아가십시오. 그리고 변화된 아버님의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그런다고 돌아선 마음이…….”
“노력해야지요, 그 마음이 돌아설 때까지 말입니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아니, 열 번 백 번까지도 어머님의 마음이 돌아설 때까지 하셔야 합니다. 저는 그게 아버님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재결합을 말씀하시는 거죠?”
“네, 맞습니다. 그건 제가 원하는 게 아니라 영석이가 지금 가장 바라는 걸 겁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거면 충분합니다.”
“…….”
유상혁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유상혁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부끄럽습니다.”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입니다. 중요한 건 그 실수를 인정하고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 저는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영석이 말이 틀림없었습니다.”
“네? 그게 무슨?”
“영석이가 그러더라고요. 사장님이 나이는 아직 많지 않지만 꼭 아빠처럼 생각된다고 하더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거 같습니다.”
“…….”
현성으로선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유상혁이 다시 봉투를 내밀며 말했다.
“이 차용증은 받아 주십시오. 이 돈은 제가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고 싶으신 겁니까?”
“아까는 체면 때문이었지만 이젠 체면도 체면이지만 그보다 저 자신과의 약속을 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약속이요?”
“네, 그렇게 해야 제가 더 열심히 살 거 같아서 말입니다.”
“흠…….”
잠시 생각을 하던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유상혁이 내민 봉투를 받으며 말을 이었다.
“네, 좋습니다. 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받겠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네, 대신 3개월 안에 가정을 다시 합치는 조건입니다. 물론 어머님의 마음이 스스로 움직여야 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아버님의 노력이 많이 필요할 테고 말입니다.”
“음……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3개월을 기준으로 한 건 어떤 이유가 있는 겁니까?”
“영석이요.”
“영석이가 왜요?”
유상혁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현성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말을 이었다.
“영석이 군대 가기 전에 어머니가 해준 밥이라도 먹게 해주고 싶어서 말입니다.”
“…….”
유상혁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비가 돼서 아들의 군대 소식을 다른 사람한테 듣는다는 자체가 아비로서 얼마나 자격이 없는지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까지 이게 자신의 모습인 것을 말이다.
잠깐 생각을 하던 유상혁이 현성을 보며 말했다.
“잠깐 핸드폰 좀…….”
“아, 네.”
현성은 바로 핸드폰을 유상혁한테 건넸다. 하지만 핸드폰을 건네받은 유상혁은 전화를 걸려다가 핸드폰을 다시 현성한테 내밀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아들 핸드폰 번호도 모르네요. 제가 이런 아비랍니다. 미안하지만 우리 아들한테 전화 좀 걸어 주시겠습니까?”
현성은 바로 전화를 받아 유영석의 번호를 눌렀다. 그리곤 바로 핸드폰을 유상혁한테 건네준 후 주방으로 향했다.
핸드폰을 받아 든 유상혁.
신호가 두 번 울리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빠다.”
-아빠? 지금 어디세요?
“여기 사장님 댁이다.”
-네? 이 시간에 아빠가 거기를 왜요?
“인사드리러 왔지, 그건 그렇고 먹고 싶은 거 없냐?”
-네? 갑자기요?
“그래, 이제 여기서 출발할 건데 우리 아들이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이렇게 전화했다.”
유상혁은 조금 전 현성으로부터 아들이 3개월 후에 군대 간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아비가 돼서 자식의 군대 얘기를 다른 사람한테 들었으니 오죽했겠는가.
하지만 그 순간 다른 생각이 또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건 바로 이제부터라도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비록 인간 구실을 못했지만 지금부터라도 노력을 하면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때 문득 생각난 게 음식이었다. 그래서 바로 전화를 했던 것이고.
-떡볶이요, 맵지 않게.
“그래, 알았다. 내가 맵지 않게 떡볶이 사서 갈도록 하마. 그리고…….”
유상혁은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다. 그러자 유영석이 바로 물었다.
-아빠, 그리고 뭐요?
“어…… 그게 미안하다고.”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저는 지금이 좋아요. 아빠, 빨리 오세요.
“그래, 그리고 하나 더.”
-네? 또 뭐가 있어요?
“네 엄마한테 오늘이라도 찾아가려고 한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찾아가서 용서를 구하려고 한다. 3개월 전에는 어떡하든 우리 가족 다시…….”
그때였다.
훌쩍.
핸드폰 너머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유상혁도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손으로 눈가를 닦기 시작했다.
주방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번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