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58)
회귀해서 건물주-58화(58/740)
최민영은 눈알이 튀어나올 판이었다. 지금까지 먹은 고기값만도 10만 원이 넘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여기서 끝날 기세가 아니었다.
그런데 말이 안 되는 건 김일수의 대답이었다.
평상시엔 이렇게 많이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왜?
최민영은 다시 물었다.
“오늘은 왜?”
“제가 열 받으면 폭식하는 습관이 있거든요.”
“열 받으면?”“제가 오늘 어떤 새끼 때문에 열 받았거든요. 그 새끼 생각하니까 그냥 무한대로 들어가네요.”
김일수는 진짜 무서운 속도로 고기를 먹고 있었다.
아니, 거의 블랙홀 수준이었다.
고기가 김일수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최민영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단 말인가?
생각 같아서는 그 어떤 새끼가 누구인지 잡아서 이 고기값을 받아내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 하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헉.
최민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석쇠에 고기가 벌써 바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김일수가 종업원을 보며 손바닥을 펼쳐 들었다.
종업원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주방으로 사라졌다.
“어떤 새끼야? 그 열 받게 했다는 새끼가?”
최민영의 인내에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마지막 남은 떡밥을 뿌려주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은 말해도 모르는 새끼예요. 그래도 오늘 형을 만나서 이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어 천만다행이네요. 그리고 참, 내 친구도 데리고 와도 돼요?”
“친구?”
“네, 게네 집이 꽤 부잔데, 저번에 슬쩍 물어봤더니 엄청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600만 원 정도는 지금 자기 통장에도 있다고 하던데요.”
“정말?”
반짝.
최민영의 눈빛이 다시 반짝였다.
지금 이까짓 고깃값에 연연할 때가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표정을 확인한 김일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참! 형. 만 원만 빌려줘요. 이 돈은 제가 올라오는 대로 바로 갚을게요.”
휙.
김일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최민영은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꺼내 김일수에게 내밀었다.
“안 갚아도 돼. 우리 사이에 무슨…….”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다.
하지만 또 지킬 건 지키는 척은 해야 했다.
“아니죠, 친할수록 금전 관계는 확실히 해야죠. 이건 제가 꼭 갚을게요.”
“됐고, 그 친구 말이야.”
“걱정하지 말아요. 이번에 내려가서 제가 확실하게 말할게요. 대신 소개비는 확실히 챙겨주셔야 합니다.”
“자식, 그거야 당연하지.”
역시 스스로 사기꾼임을 자신의 입으로 밝히고 있는 최민영이었다.
여름방학 때 분명히 자신의 입으로 아무한테도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런데 친구를 데리고 간다고 하니 눈빛부터 달라지는 최민영이다.
이런 놈을 믿고 학교까지 때려치우려고 했던 자신이 한심스러울 뿐이었다.
그때 종업원이 고기를 가지고 왔다.
어차피 이 고기는 처음부터 먹을 생각이 없었다. 더 이상 먹는 다는 건 사람의 할 짓이 아니었다.
그래도 고기를 더 시켰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탁.
김일수는 젓가락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
“더 이상 못 먹겠는데요.”
그러자 인상이 변한 건 최민영이 아니라 종업원이었다.
“저기…….”
그 의미를 충분히 알기에 김일수는 바로 말했다.
“포장되죠?”
“포장이요? 당연히 됩니다. 이거 포장해 드릴까요?”
어두워졌던 종업원의 표정이 금방 밝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손님상으로 나온 고기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손도 안 댔으니 계산에서 빼달라고 할 경우 골치 아픈 건 종업원 자신이기 때문이다.
김일수는 배를 두드리며 여유 있게 말했다.
“그거 포장해 주시고요, 콜라 서비스되죠?”
“물론이죠, 손님. 바로 콜라 대령하겠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최민영이 피식 웃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 고깃값 때문에 불안해하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역시 마지막 떡밥이 효과를 제대로 발휘했던 것이다.
그런 최민영을 보며 김일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형, 이 고기 우리 할머니 갔다 드려도 되죠?”
“어? 그, 그래. 되지. 당연히 되지.”
“역시 형은 예의도 밝아요. 할머니한테 형이 사줬다고 꼭 말할게요.”
“뭘 그걸 가지고…….”
쩝.
할 말이 없는 최민영이었다.
그때 김일수가 콜라가 든 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형, 우리 건배해요.”
“좋지!”
두 사람은 잔을 높이 들었다.
그러자 최민영이 말했다.
“우리의 사업을 위하여!”
똥을 싸서 뭉개고 있었다.
우리의 사업이란다.
해맑은 최민영의 표정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 연극의 마무리 대사는 김일수의 몫이었다.
최민영을 바라보며 김일수는 마지막 대사를 힘차게 읊었다.
“위하여!”
챙.
두 잔이 허공에서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김일수는 콜라를 마시며 최민영을 슬쩍 바라봤다. 그 표정이 가관이었다. 마치 큰 사업을 하나 따내기라도 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최민영을 보며 김일수의 입가에도 미소가 천천히 번지기 시작했다.
최민영은 이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믿음에 대한 배신의 대가가 할부 카드 명세서로 날아올 줄을 말이다. 아마 그때마다 김일수의 얼굴이 떠오르리라는 사실도 말이다.
***
상봉고속버스터미널.
최민영과 헤어진 김일수는 택시를 타고 바로 고속 터미널로 왔다.
택시를 타고 오는 내내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오죽 했으면 택시 기사가 무슨 좋은 일 있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고기도 실컷 먹어봤고, 왕복 차비하고도 남을 정도로 돈도 받아냈다. 게다가 할머니 드실 소고기까지 챙겼다. 그것도 최고급 꽃등심으로 말이다.
웃음이 안 나오면 그게 이상할 터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하긴, 그렇게 먹어 됐으니 속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결국 터미널 근처 약국에서 소화제를 사 먹은 후에야 속이 좀 편안해 지는 듯했다.
원주행 고속버스에 올라탔다.
번호를 보니 37번이었다.
시계를 보니 차가 출발하려면 1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의자를 뒤로 살짝 젖혀 편안한 자세로 각도를 잡고 비스듬하게 앉았다. 일반 버스와는 다르게 역시 승차감이 탁월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김일수의 동공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저 인간이 왜?’
설마 아니겠지.
옆자리는 여전히 비어있었다.
38번.
이 많은 자리 중에 저 사람이 38번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로망이 있었다.
비슷한 또래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위로 10년 정도까지는 감당이 될 듯싶었다. 그 정도면 감지덕지라 생각했다. 그저 잠을 자더라도 향긋한 향기를 맡으며 자고 싶었다.
그러다 어쩌다 살갗이라도 닿는 날에는 더할 나위 없을 테고.
나름 소박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그런 건 TV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건가 보다.
김일수는 눈을 살짝 감았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인간이 점점 다가오더니 자신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야! 김일수.”
“어? 선생님.”
로망을 깨는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왜 하필 담임인가 말이다.
김일수의 옆자리 38번은 담임 신민호의 자리였던 것이다.
신민호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이 시간에 서울은 웬일이야?”
“뭣 좀 확인할 게 있어서요. 선생님은 학교에 안 계시고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야, 누가 들으면 내가 학생인 줄 알겠다.”
“그게 그렇게 되나요.”
듣고 보니 신민호의 말이 맞았다.
그래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일 있으신 겁니까?”
“어머니 병원 때문에. 근데 지금 확인이라고 그랬냐?”
확인이라는 말에 신민호는 얼핏 이해가 안 갔다. 학교도 안 나온 놈이 서울까지 와서 확인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혹시……?’
신민호는 다시 물었다.
“너 혹시 일자리라도 구하러 왔던 거냐?”
“뭐 그냥…….”
시큰둥한 김일수의 대답에 신민호는 다시 말했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을 게다.”
“…그러게요.”
“자식, 누가 보면 세상 다 산 줄 알겠다.”
“쉬운 건 없나 봅니다.”
“쉬운 거? 그런 게 세상에 있지도 않겠지만,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가짜일 게다. 진짜를 가장한 가짜. 흔히 사기꾼들이 써먹는 수법이지.”
사기꾼이라는 말에 김일수는 담임 신민호를 쳐다봤다.
진짜를 가장한 가짜.
최민영이 그런 놈이었다. 처음엔 진짜 그런 줄 알았다. 최민영의 말대로라면 금방 돈을 벌 수 있을 거 같았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시골에서 벗어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모든 게 사기였다.
신민호가 말한 진짜를 가장한 가짜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가짜를 미리 알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도 거기까지였다. 버스 안이라 더 이상의 대화는 민폐였다.
배도 부르고 의자도 편안한 게 잠자기 딱이었다. 한 가지 아쉽다면 기대했던 향기와는 너무나 다른 노총각의 체취라는 게 불만이었다.
그건 담임 신민호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어떡하든 살갗을 안 닿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하는 모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김일수의 덩치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어깨를 포갠 채 잠들고 말았다.
원주에 도착하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었다.
여기서 횡성을 들러 집까지 가려면 아직도 3시간 이상은 더 가야 했다.
담임 신민호가 김일수를 보며 말했다.
“따라와.”
“네? 어디로요?”
“저녁이나 먹고 가자. 너랑 내가 오늘 아니면 언제 또 밥 먹을 시간이 있겠냐?”
“…… 네.”
김일수의 대답이 겨우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담임과 밥 먹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여선생이라면 모를까.
김일수의 발걸음이 느린 이유였다.
“빨리 안 와?”
신민호는 터미널 옆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소머리국밥 집이었다.
자리에 앉은 신민호는 식당 주인을 보며 말했다.
“여기 소머리 두 개요. 그리고 소주도 한 병이요.”
김일수의 의견은 굳이 필요 없었다.
식당 주인이 깍두기와 새우젓 그리고 소주를 먼저 들고 왔다. 김일수를 힐긋 바라본 식당 주인이 신민호를 보며 물었다.
“잔은 몇 개 드릴까요?”
“가져오신 거, 두 개 다 주세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이니까 괜찮습니다.”
식당 주인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기에 신민호는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 의미를 모를 리 없는 김일수.
드륵.
의자를 당기며 테이블 가까이 다가앉는 김일수였다.
그 모습을 바라본 신민호가 씨익 웃었다.
“한 잔만 마셔.”
“그럼 안 마실 랍니다.”
드륵.
김일수는 의자를 다시 뒤로 뺐다.
그 모습을 본 신민호는 어이가 없었다.
당돌하다 못해 그 시건방이 하늘을 찌를 듯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지 그 모습이 또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솔직한 모습에 호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밉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신민호는 빙긋 웃으며 소주병을 들었다.
“쉐끼, 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나. 자-.”
김일수는 벌떡 일어나 앞에 놓인 소주잔을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쪼르륵.
며칠 만에 맡아보는 주향(酒香)이었다.
그때 주문한 소머리국밥이 나왔다.
“한잔해.”
신민호가 잔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김일수도 얼른 잔을 가볍게 부딪쳤다.
톡.
김일수는 고개를 돌려 한 번에 소주잔을 털어 넣었다.
크윽.
역시 소주는 경월이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25도 알코올의 짜릿함이 온몸을 깨우는 듯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신민호는 혀를 찰 뿐이었다.
“인마, 안주 먹어.”
“헤헤…….”
김일수도 안다.
아무리 술 문화가 관대한 시절이라 해도 지금 담임 신민호가 얼마나 큰 은혜를 베푸는지 말이다. 말은 안 했지만 고속버스에서 처음 만날 때만 해도 욕부터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신민호는 그러지 않았다.
물론 다른 속뜻이야 모르겠지만, 일단은 무시하지 않는 그 모습 자체가 고마웠다.
김일수는 뚝배기에서 소 귀때기를 한 점 꺼내 새우젓에 찍었다.
날름.
“맛있네요.”
역시 이 맛이다. 씹히는 식감이 가히 일품이었다.
아마도 이 모습을 서울에 있는 최민영이 봤다면 아마도 때려죽이려 덤벼들 것이다. 소머리에 알레르기 있다고 꽃등심으로 먹었으니 말이다.
김일수는 일어나 소주병을 들었다.
“한 잔 받으세요.”
그러자 신민호는 씨익 웃으며 잔을 내밀었다.
쪼르륵.
톡.
신민호가 바로 한입에 소주를 마신 다음 입을 열었다.
“김일수!”
“네.”
“내가 짧게 몇 마디만 할게.”
“…….”
김일수는 눈을 감았다 떴다.
각오했던 바다.
신민호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미리 말하지만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 네.”
“너 자신부터 돌아봐.”
“…….”
김일수는 움찔했다.
각오는 했지만 이렇게 직구로 바로 들어올 줄은 몰랐다.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다고 생각해?”
“……글쎄요.”
“미안하지만 없어!”
“선생님!”
“왜 내가 너무 심한 거 같아? 그런데 너보다 더 살아본 인생 선배로서 본다면, 내 결론은 그거야.”
김일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속에선 자존심이 상하는데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담임 신민호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신민호가 다시 말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해?”
“그거야 저는…….”
“아직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야.”
“네?”
김일수는 신민호를 빤히 쳐다봤다. 조금 전에 했던 말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말이었기 때문이다.
신민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아직 안 늦었어. 앞으로 정신 차리면 돼.”
“앞으로 말입니까?”
“그래, 이제 겨우 고2잖아. 시간은 충분해. 그렇다고 굳이 대학에 가라는 얘기는 아니야.”
“제가 뭘……?”
“내가 알기론 너도 꿈이 있었던 거로 아는데…….”
“꿈이요?”
신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였다.
현성이 교무실에서 나간 후, 김일수의 생활기록부를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때 1학년 기록이 눈에 들어왔다. 장래희망을 적는 곳이었다.
그곳엔 분명히 김일수의 장래희망이 적혀 있었다.
신민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꿈을 다시 찾아.”
“꿈을 말입니까?”
“그러면 너의 방황도 끝날 거야. 내가 볼 때 너는 방향을 못 찾아서 지금 헤매고 있는 거야. 그 방향만 찾는 다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달려갈 놈이야.”
김일수는 자신도 모르게 앞에 놓인 술잔을 들이켰다.
처음이다.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게.
잠깐이지만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때 신민호가 소주병을 들었다.
쪼르륵.
김일수의 잔에 술이 가득 차자 신민호가 자신의 잔을 내밀었다.
“이젠 내가 너희들을 포기 안 할 거야.”
“네?”
“어떤 자식이 그러더라. 선생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학생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고 말이야. 그러지 않으면 직무 유기고 방임죄란다.”
“누가 말입니까?”
“있어. 어떤 싸가지. 그러니까 너도 네 인생 너무 일찍 포기하지 마. 내말 무슨 말인지 알지?”
김일수는 잠깐 신민호를 바라본 다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의 담임 신민호가 아니었다.
학기 초에 신민호가 자신을 부른 적이 있었다. 그리곤 한다는 말이 가관이었다.
– 적당히 해라.
그러면 자신도 조용히 있다가 떠나겠다고 했었다.
그땐 무슨 이런 인간이 있나 싶었다. 이런 인간도 선생이 되는 구나 싶었다.
그 생각도 잠시였다.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그래서 마음껏 휘젓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랬던 담임이었는데…….
그런 그가 지금 눈앞에 있다.
너무 일찍 인생을 포기하지 말란다. 그러면서 자신도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한다.
김일수는 조용히 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비록 다 식은 국밥이었지만 이상하게 꽃등심보다도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밥을 먹으면서도 생각은 한 가지 뿐이었다.
꿈.
‘나에게도 꿈이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