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602)
회귀해서 건물주-602화(602/740)
604
다음날 새벽.
“후후!”
아침운동을 위해 코너를 돌아 유승일이 운영하는 북카페 앞을 막 지날 때였다.
“김 사장!”
현성의 앞을 가로막은 건 유승일이었다. 무슨 볼 일이 있을 때면 이 시간에 기다리는 걸 알기에 이젠 새롭지도 않은 듯 현성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십니까?”
“커피나 한잔 하고 가라고.”
어차피 커피는 핑계일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현성이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승일의 뒤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음, 커피 향이 좋습니다.”
책방을 북카페로 바꾸면서 커피머신을 들여놓다 보니 바뀐 환경이었다.
“내가 요즘 김 사장 덕분에 원두 맛에 빠졌다네.”
“그렇다고 너무 많이 드시지는 마시고요.”
“그거야 당연하지. 그렇지 않아도 건강을 생각해서 하루에 세 잔만 마시네. 자, 한잔 하게. 연하게 내렸으니까 빈속에 먹어도 괜찮을 걸세.”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잠시 후.
현성은 어차피 이 시간에 자신을 기다린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기에 유승일한테 바로 물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저를 기다리신 겁니까?”
“허허, 뭐가 그리 급한가? 일단 커피라도 마시고…….”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신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저를 기다리셨는지 말입니다.”
“다른 게 아니고 순철이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네.”
“아, 어제 저를 찾아왔던 이순철 씨 말이죠?”
“그래, 그 친구를 자네가 또 구해줬더구먼. 그래서 고맙다는 말이라도 하기 위해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네.”
“굳이 그러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어차피 현성 또한 사람이 필요하긴 했었다. 무료 나문 가게에 자신이 묶여있다 보면 다른 일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성의 생각인 것이고.
유승일은 그렇게 생각을 안 한다는 듯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아닐세. 사람이 사람을 소개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세. 내가 비록 김 사장한테 전화를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순철이를 김 사장한테 보내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네.”
유승일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김 사장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 친구는 내가 자네한테 전화를 하겠다고 하니 말리던 친구일세.”
“네, 그 얘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그런 친구일세. 자신의 처지가 절박한데도 불구하고 나한테 부담을 주기 싫었던 게야. 보통은 그러기 힘들거든.”
그건 유승일의 말이 맞을 것이다. 사람이라는 게 내 처지가 절박하면 남의 사정을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도 이순철은 그 상황에서도 유승일이 직접 현성한테 전화하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유승일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저도 처음엔 그 얘기를 듣고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곧이어 그게 이순철 씨의 본모습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요.”
그건 사실이다.
처음엔 의아하게만 생각했었다. 사람을 소개받았는데 정작 소개한 사람한테는 어떤 연락도 못 받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호감이 더 갔던 건 사실이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니 말이다.
물론 결정적으로 그를 채용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됨됨이 때문이었다.
가정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어떡하든 강원도까지라도 가서 취직을 하려는 그의 절박함이 마음을 움직였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건 그의 마지막 행동 때문이었다.
나이 많은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 누가 시키기도 전에 알아서 할머니의 짐을 들고 따라나서는 그를 보며 최종 결심을 했었다.
“어찌 됐건 김 사장이 그 사람을 살렸네.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려고 이 시간에 기다리고 있었네.”
“비록 반나절 정도 같이 있었지만 사람은 진국이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그거야 두 말하면 잔소리지. 그 정도 사람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 친구를 김 사장한테 보냈겠는가?”
“하여튼 그렇지 않아도 저도 사람이 필요하던 차에 아저씨 덕분에 좋은 분을 만난 거 같아서 오히려 제가 고맙다고 인사를 드려야 할 입장입니다.”
그 또한 사실이다.
현성으로서도 언제까지 한 곳에 묶여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비디오 가게도 가게지만 강원도 식당에 급한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야 할 테니 말이다.
“허허, 그렇게까지 김 사장이 얘기를 해주니 내 입장이 기분이 좋구먼. 늘 느끼는 거지만 김 사장은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재주가 있네.”
“재주요?”
“그래, 그게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여간 내가 비록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그런 건 김 사장한테 많이 배우고 있네.”
“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건 그렇고 요즘 매출은 어떻습니까?”
매출 얘기가 나오자 유승일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런 그가 바로 입을 열었다.
“김 사장 말이 정확히 맞았네.”
“그 말씀은?”
“남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우리는 대박일세. 요즘 평균 백만 원은 나오네. 역시 자네 말대로 북카페로 바꾸고 나니 홀에서 나오는 매출이 장난이 아니네. 특히 점심 저녁으로 식사 시간만 되면 라면 끓이기 바쁘다네. 오죽하면 이젠 집사람까지도 나와서 라면을 끓인다네.”
IMF 사태로 인한 특수였다. 직장을 다니던 사람들이 갑자기 직장에 나가지 못하자 일시적으로 만화방이나 북카페로 몰린 것이다.
더군다나 일반 식당보다는 좀 더 저렴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몰렸던 것이다.
“혹시나 해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람이 많이 온다고 해서 욕심내시면 안 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그렇지 않아도 김 사장이 얘기한 대로 대여료도 내렸고 라면값도 싸게 받고 있다네.”
“네, 잘하셨습니다. 그 사람들도 오죽하면 만화를 보러 오겠습니까? 지금 이런 시국에 그 사람들을 이용하면 천벌을 받을 겁니다. 아저씨야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몇몇 가게들은 지금 그 짓을 하고 있으니 한심할 뿐입니다.”
공간은 한정돼 있고 사람들은 모이다 보니 일부 만화방을 중심으로 그런 행태가 이루어졌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장사라고 하지만 이런 시국에 그 사람들을 상대로 가격을 올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어떤 놈들이 그런 짓을?”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건 그런 인간들이 버젓이 있다는 겁니다.”
“천벌을 받을 놈들!”
“그러니 우리라도 그러지 말자는 겁니다. 당연히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조금 전에도 얘기했지만 그건 걱정하지 말게. 내가 그 어려운 사람들을 상대로 내 욕심을 채우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현성은 그 말을 끝으로 가게를 나오려고 했지만 유승일이 다시 부르는 바람에 나올 수가 없었다.
“저기 잠깐만!”
“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이거 가져가게.”
유승일은 현성 앞으로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우리 집사람이 시장 갔다가 자네를 위해서 하나 샀다고 하더군, 열어보게.”
툭.
현성은 바로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검은 모자가 하나 들어 있었다.
“이건 모자가 아닙니까?”
“아침마다 운동하려면 추울 거 같다면서 집사람이 하나…….”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사 주신 장갑 덕분에 올겨울 따뜻하게 보내고 있었는데 이렇게 또 모자까지…… 하여튼 아주머니께 감사하다고 꼭 전해주십시오,”
“그런 소리 하지 말게. 우리 집사람은 자네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야.”
“그건 좀 너무…….”
“아닐세, 빈말이 아니고 그건 사실이지 않은가? 나를 암에서 낳게 해 주고 이렇게 장사도 잘되도록 만들어 줬으니 자네는 우리 생명의 은인이 맞네.”
“아니, 아저씨까지 왜?”
“됐네, 그 얘기는 하려면 끝이 없을 테니 여기서 그만 하고 하던 운동이나 계속하게.”
유승일은 그 말을 끝으로 현성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고맙다는 그의 표현 방식이었다.
씨익.
유승일의 가게를 나온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고 말았다.
전생에서는 원수나 마찬가지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이른 시간에 커피를 함께 마시고 그의 아내 되는 사람으로부터 모자까지 선물을 받았다. 게다가 그가 소개한 사람까지 직원으로 고용하게 되고.
변화라면 너무도 큰 변화였다. 그렇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던 것이다.
***
유승일의 북카페를 나와 이세이의 빵집 앞을 막 지날 때였다.
“사장님!”
이번엔 빵집 사장인 이세이가 기다리기라도 한 듯 반갑게 현성을 맞았다.
그러자 현성 또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입니다!”
“저는 추운데요?”
“하하, 그게 또 그런가요? 그건 그렇고 혹시 저를 기다리신 건가요?”
“네, 맞아요. 드릴 게 있어서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이세이는 그 말을 끝으로 빵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이거요.”
빵 가게에서 나온 그녀의 양손에는 빵이 가득 들려있었다.
“웬 빵입니까?”
“기부 빵이요.”
“기부 빵이요? 그럼 지금 이 빵을 기부하시겠다는 건가요?”
“네, 맞아요. 조금 전에 막 나온 빵이에요. 앞으로는 제일 먼저 기부하는 빵을 먼저 사장님께 드리고 장사를 시작하려고요.”
현성으로선 쉽게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물론 이세이가 어제도 빵을 가져왔었다. 그런데 어제 그 빵은 그날 만든 빵이 아니라 전날에 팔다 남은 빵을 가져왔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빵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다음 날 먹어도 아무 지장이 없는 것이니 말이다.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오늘은?
아예 오늘 만든 빵을 기부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것도 지금 새벽에 막 구운 빵을 말이다.
그 얘기는 그녀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일 터.
현성은 궁금한 마음에 바로 물었다.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왜 굳이 팔나 남은 빵이 아니라 새벽에 가장 먼저 구운 빵을 내놓겠다는 것인지……?”
“양심에 찔려서 안 되겠어요.”
“양심에요?”
“네, 사실은 어제 그 전날의 빵을 기부한 후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았어요. 내가 굳이 왜 그런 욕심을 부렸을까 하고 말이에요.”
“그렇다고 그 빵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하루 지났다고 해서 빵이 상한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제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하루 종일 여기 가슴에 뭔가 막힌 것처럼 갑갑했어요.”
이세이는 가슴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그 전날의 빵을 기부했다는 사실에 많이 불편했던 것 같았다.
그런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욕심이 또 지나쳤던 거 같아요.”
“글쎄요, 제 생각엔 그건 아닌 거 같은데요.”
“아니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사장님께서 저한테 처음에 했던 말을 제가 또 잊고 있었던 거 같아요. 혹시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물론 기억이 난다. 처음 그녀를 도와줄 때 그런 말을 했었다. 이왕 사는 거 이웃들과 더불어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네, 물론 그런 얘기는 했습니다만…….”
“그런데 제가 깜박하고 있었어요. 사실 사장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유명한 체인점이 치고 들어왔지만 잘 버티고 있어요. 매출도 꾸준히 괜찮고요. 그런데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이세이가 잠깐 호흡을 조절한 다음 바로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 제가 사장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때 결심한 게 있었어요.”
“무슨……?”
“그건 바로 저 또한 지금까지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형편이 조금만 펴면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살겠다고 말이에요. 그런데 막상 형편이 조금 나아지고 나니 욕심이 또 생긴 거예요. 그러면서 사장님께서 무료 나눔 가게를 오픈했는데도 저는 그 전날 팔다 남은 빵을 가져간 거예요.”
“…….”
“그게 말이 되냔 말이에요? 불과 제 스스로 결심을 한 게 채 한 달도 안 됐는데 말이에요.”
“…….”
현성으로선 심각한 그녀의 표정 때문인지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선 안 되는 것이었어요. 팔다 남은 빵을 기부한다는 자체가 저의 욕심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오늘은 아예 처음 나온 빵을 준비한 거예요. 그래 봤자 사장님이 하시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요.”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한다는 건 쉽지 않다. 그건 이세이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고. 이렇게까지 그녀의 생각이 바뀌었다면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잠깐 생각을 하던 현성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게…….”
이세이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현성이 말이 바로 이어졌다.
“혹시 말씀하시기 부담스러우면 굳이 안 하셔도 됩니다.”
“그건 아니고…… 사실은 사장님 때문입니다.”
“네? 제가요? 저는 아무 말도 한 적이 없는데요.”
황당한 건 현성이었다. 어제 이세이가 빵을 가져왔을 때 어떤 말도 한 적이 없었다. 그저 반갑게 빵을 받은 게 다였다.
“맞아요. 사장님은 어제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대신에 너무도 반갑게 빵을 받으셨어요. 제가 분명히 어제 팔다가 남은 빵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말이에요.”
“그거야 빵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저로서는 당연히 반갑게 받았지요. 그리고 그렇게 동참을 해 주신다는 것 자체에 너무 감사했고요.”
“바로 그거예요.”
“그거요?”
현성은 무슨 소린지 얼핏 이해가 안 가 이세이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러자 이세이가 약간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때 사장님의 눈빛을 봤습니다.”
“네? 눈빛이요? 갑자기 웬 눈빛이요?”
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세이가 말하는 ‘눈빛’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빙긋.
갑자기 이세이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현성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웃음은 무슨 의미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