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62)
회귀해서 건물주-62화(62/740)
현성이 학교 정문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저기….”
“누구……?”
“저는 지연이 친구 서인혜라고 합니다. 지연이 오빠 맞으시죠?”
‘퀸?’
현성의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른 단어였다.
어젯밤 동생 김지연이 했던 말.
이제야 알았다.
동생이 왜 어젯밤에 그토록 진짜 모르냐고 몇 번씩이나 되물었는지 말이다.
직접 눈으로 보니 알겠다.
대충 봐도 165cm는 넘어 보이고, 오뚝한 콧날에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볼록한 작은 입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눈이었다.
마치 만화 속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온 듯한 쌍꺼풀 없는 큰 눈은 누가 봐도 금방 빠져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당장 연예계로 진출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외모였다.
현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지연이 오빠는 맞는데…….”
“내일 시간 없다고 하셨다면 서요?”
뭐야?
분위기가 왠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갔다. 마치 추궁이라도 당하는 듯한 그런 분위기.
하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당할 현성이 아니었다.
고개를 살짝 들며 여유롭게 대답했다.
“그래, 내가 내일은 어디 좀 갈 때가 있어서 말이야.”
현성의 대답을 들은 서인혜는 빙긋 웃었다. 그러자 보조개가 살짝 들어갔다. 역시 신은 공평하지 않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서인혜가 다시 말했다.
“고맙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
어째 서로 대화의 초점이 안 맞는 듯했다.
“응? 뭐가 고맙다는 거야?”
“시간이 없는 거지 제가 싫은 건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제 말이 맞죠? 네 오빠?”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말이 많다는 거.
그런데 자신이 한 말이 또 그런 식으로 해석될 줄은 몰랐다.
역시 당돌하다.
조금은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현성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드리워졌다.
그러자 서인혜가 바로 입을 열었다.
“어머! 미소가…….”
입을 손으로 가린 채 말을 중간에서 끊어주는 센스.
내숭까지도 탑재한 서인혜였다.
앞으로 남자 여럿 울리고도 남을 모습이었다.
그나마 살아본 세월 탓일까.
우뇌보다는 좌뇌에서 판단이 빨랐다.
그래봤자 딸뻘이다.
감성에 빠지기보다는 이성적 논리로 먼저 정신을 차린 현성이었다.
“우리 지연이 친구 인혜라고? 예쁘고 귀엽네, 공부는 잘하지?”
“네?”
서인혜는 현성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무슨 큰오빠도 아니고, 말투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런 현성의 모습이 싫지 않다는 것이었다. 또래 친구들 사이에선 볼 수 없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서인혜는 바로 말을 이었다.
“오빠, 저보다 두 살 많은 거 맞죠?”
“응? 왜 아닌 거 같아?”
“제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10년은 더 차이 나는 거 같아서요.”
“뭐? 10년? 하하…….”
현성은 서인혜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외모야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어쨌거나 살아온 세월이 50년은 넘었다. 지금 서인혜의 말대로라면 최소한 20년 이상은 젊어진 셈이다.
그러자 그 모습을 지켜본 서인혜도 배시시 웃고 말았다.
역시 보조개는 예술이었다.
그때 현성이 다시 말했다.
“우리 지연이는?”
“지연이요?”
“왜 같이 안 왔어?”
“그게…….”
당연히 같이 왔을 거라는 생각에 현성은 물었던 것이다. 그 나이에 아침부터 혼자서 남의 학교 정문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건 쉽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때였다.
교문 뒤에서 누군가 톡 튀어나왔다.
바로 동생 김지연이었다.
그럼 그렇지.
현성은 김지연을 보며 말했다.
“거기서 뭐 해?”
“뭐하긴? 그냥…… 있었지.”
현성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침부터 머리 쓰느라 고생했다.”
“흥, 그럼 어떡해? 오빠는 시간 없다고 하고, 이 년은 날 잡아먹으려 하고, 어쩔 수 없잖아. 이렇게라도 해야…….”
김지연은 억울하다는 듯 혼자 식식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아침부터 바빴을 것이다. 핸드폰이 있는 시기도 아니고 집 전화로 등교하기 전에 통화했을 테고, 아침 일찍 학교에서 만나고, 그리고 이 자리까지 오기까지.
안 봐도 비디오다.
현성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수고했다고.”
“오라버니 됐네요. 그건 그렇고, 내 친구 인혜, 진짜 예쁘지?”
“응, 예쁘네.”
“근데……, 뭐가 좀 이상하다.”
“뭐가?”
김지연은 왠지 김빠진 사이다를 먹는 기분이었다.
보통은 조금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긴장된 모습도 보이고 그래야 맞는데, 이건 뭐 딸내미 친구 만나듯이 너무 편한 현성의 모습에 낯설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걸 콕 집어서 물어보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건 그거고, 일단 계획대로 일은 진행해야 했다.
김지연은 서인혜를 바라보며 윙크를 했다. 그러자 서인혜가 현성한테 뭔가를 내밀었다.
“오빠, 이거요.”
초콜릿이었다.
현성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뭐 이런 걸 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김지연이 소리를 빽 질렀다.
“오빠! 말이 왜 그래?”
“왜?”
“왜라니? 무슨 오빠가 할아버지야? 말투가 그게 뭐냐고?”
그때 옆에 서 있던 서인혜가 김지연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그리곤 조용히 말했다.
“지연아, 난 좋은데 왜 그래?”
“뭐? 넌 또 그게 좋아? 이런 미친…….”
그때 누군가 뒤에서 현성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서인혜가 현성을 보며 말했다.
“오빠, 다음에…….”
서인혜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김지연의 손을 잡고는 끌다시피 교문을 벗어나 중학교 건물 쪽으로 총총 걸어갔다.
거리가 조금 멀어지자 서인혜가 먼저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김지연도 손짓을 하며 뛰어가기 시작했다.
“좋을 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은 피식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
“김현성 뭐야?”
반장 이영민이었다.
“내가 뭘?”
“지금 막 여기 있던 얘, 서인혜 아니야?”
“알아?”
“야, 우리 학교 남학생 중에서 서명중의 퀸카인 서인혜를 모르는 사람도 있냐?”
이영민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현성의 기억 속에는 어디에도 서인혜라는 존재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고 해서 단순하게 기억이 안 나는 건 아닌 듯했다. 이름이야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전무(全無).
전혀 기억에 없었다.
그렇다고 현성 자신이 회귀했다고 해서 찬조출연을 한 것도 아닐 테고 말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딱 하나인데…….
이성에 대한 무관심?
막말로 고자도 아니고 그건 또 아니었다.
‘뭐지?’
잠시 생각하던 현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모든 상황을 다 퍼즐 맞추듯이 맞추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이 살면서 가끔은 빈틈이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게 현성의 생각이었다.
완벽?
피곤할 뿐이다.
그때 반장 이영민의 시선이 현성의 손으로 쏠렸다.
“야, 이거 뭐야?”
“가나….”
“누가 가나초콜릿인 거 몰라? 이거 혹시 서인혜가 준 거야?”
현성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뒤에서 바람소리가 들리는 가 싶더니 뒤통수에 뭔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퍽.
현성의 인상이 구겨지는 순간이었다.
“이 새끼가……, 죽을래?”
“야, 김현성, 진짜 서인혜가 이걸 줬단 말이지?”
“이 자식은 속고만 살았나, 왜 사람 말을 못 믿고 그래?”
“캬, 서인혜가 드디어 간택을 한 건가…….”
“뭐, 간택? 아침부터 웬 헛소리?”
탁.
현성은 이영민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후려 갈겼다.
그러자 이영민이 현성을 째려봤다.
“아침부터 재수 없게…….”
“이 자식 봐라. 먼저 시작한 게 누군데, 너 이리와. 종일 재수 없게 만들어 줄 테니까.”
“어허, 이거 일진께서 왜 이러시나? 힘없는 중생을 보살펴야지, 괴롭히면 되겠냐?”
“어쭈, 이젠 놀리기까지.”
한 마디를 지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잠깐 걷던 중에 이영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그 자식 학교에 오려나?”
“누구…, 김일수 그 자식 말이야?”
“그래, 그날 이후로 일주일 내내 오지를 않네. 덩치는 산만한 새끼가 소심하긴….”
“알아서 하겠지. 애도 아니고 말이야.”
잠깐 생각하던 이영민이 다시 말했다.
“야, 오늘 토요일이니까 수업 끝나고 일수네 집에 같이 안 가볼래?”
“기다려 봐. 내가 엊그제 알아듣게 얘기 했으니까, 그 자식도 생각이 있으면 올 거야. 만약 그래도 안 온다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이틀 전이었다.
현성이 감자 밭에서 막 돌아서기 전에 김일수한테 말했었다.
– 명심해라. 이번 주까지다.
– 알았으니까 신경 꺼.
– 그래, 물론 내가 네 인생에 끼어들 생각도 없다마는, 이거 하나만 명심해라. 자존심도 지킬 게 있을 때 부리는 거야. 개뿔도 없으면서 열등감 때문에 자존심만 내세우는 그런 븅신은 되지 말라는 거야.
– …….
– 그리고 하나 더, 남 탓하지 마. 어차피 네 인생이야. 이제 18살이고, 앞으로 시간은 충분해. 성공도 실패도 네 손에 달렸다는 거 명심해라.
어차피 김일수 자신의 몫이다.
더 이상의 강요나 간섭은 불필요하다는 게 현성의 생각이었다.
현성이 교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이정우가 다가왔다.
“오늘부터 운동 시작하자고 그랬지?”
“이왕 할 거면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게 낫지 싶어서.”
“근데 뭐부터 하지?”
“내 생각엔 일단 다리 근력부터 키워야 되니까, 학교 뒤쪽에 있는 야산부터 올라가자고. 경사도 그리 높지 않으니까 네가 걷기에도 큰 무리는 없을 거야.”
어제 5교시 체육시간이었다.
수업에서 열외 되는 이정우를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주일 동안 체육시간마다 눈여겨봤었다.
체육 선생은 이정우를 생각해서 벤치에 앉아 있게끔 배려를 했지만, 그게 결코 이정우를 위해서도 좋은 건 아닐 것이란 게 현성의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거기서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문제를 개선할 방법도 없으면서 문제만 제기한다면, 그건 체육선생은 물론이고 이정우한테도 결코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했었다.
그리고 찾아낸 방법이 운동이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상대를 위한 행동이라 하더라도 이정우의 동의가 우선이었다.
그래서 어제 수업 끝나고 이정우와 조용히 얘기를 나누었었다.
이정우 자신도 싫다고 했다.
벤치에 앉아 있을 때마다 진짜 창피하기도 하고 가시 방석에 앉아 있는 거 같다고 했다. 그런데 더 속상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구기 종목도 그렇고, 육상 종목도 그렇고 일단 다리에 힘이 없으니 어느 것을 하더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현성이 슬쩍 제안한 것이 방과 후 같이 운동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정우도 좋다고 했었다.
현성이 다리 근력부터 키우자는 말에 이정우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럼 좋아질까?”
“당연하지 인마, 너 용불용설 몰라? 쓰면 그만큼 튼튼해지는 거야. 부지런히 운동해서 우리 나중에 설악산 대청봉 한번 올라가자.”
“뭐, 대청봉?”
“그래, 못 갈 것도 없지, 안 그래?”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다. 김현성, 적당히 하자. 응?”
이정우가 웃으며 현성의 어깨를 ‘툭’쳤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