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638)
회귀해서 건물주-639화(639/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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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어느 날.
스윽.
현성은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마감 시간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마감 시간을 확인하는 이유는 단 하나, 마감을 해야 아내 윤지수와 데이트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 윤지수를 처음 본 게 그녀가 이사 오던 4월이었으니 어느덧 넉 달이 지났다.
기간으로 따지면 4개월이다.
4개월,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짧다면 짧은 시간일 것이다. 어차피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각은 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다를 테니 말이다.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이야 어떻든지 간에 현성으로선 4개월이란 그동안의 시간이 짧게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 얘기는 곧 그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만큼 즐거웠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늘도 그분을 만나시는 겁니까?”
직원인 김민기가 현성을 보며 슬쩍 물었다. 아무래도 현성이 자꾸 시계를 바라보자 눈치를 챈 듯싶었다.
“어? 아니, 그냥…….”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사장님 눈빛을 보아하니 오늘도 그분을 만나시는 게 딱 티가 나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티가 나냐?”
“그럼요, 사장님 얼굴에 벌써 설레는 모습이 가득한걸요. 사장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데이트 있는 날은 그날 저녁부터 벌써 얼굴빛이 확 달라지는걸요.”
피식.
현성은 가볍게 웃고 말았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그냥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던 것이다.
김민기가 다시 물었다.
“그렇게 그분이 좋으십니까?”
“그걸 꼭 말을 해야 아냐?”
“하긴 사장님 얼굴만 봐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김민기가 무슨 이유인지 말을 하다 말고 현성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물었다.
“뭐야? 왜, 말을 하다 말고 내 눈치를 봐?”
“그게 좀…….”
“뭔데?”
“말씀드리기 좀 그렇지만, 그분 나이가 좀 많으신 거 같아서 말입니다. 요즘 아무리 연상연하 커플이 유행이라고 하지만, 7살 연상은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자식, 별소릴 다 한다. 남녀 사이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라고…….”
현성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가볍게 툭 말했다. 그러자 김민기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사장님은 진짜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당연하지, 만약 그게 이상했으면 처음부터 내가 지수 씨를 만났겠냐? 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다시는 내 앞에서 그런 얘기 하지 마라.”
“…….”
김민기는 현성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알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런 그가 바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요?”
“이번엔 또 뭐야?”
“굳이 왜 영업이 끝난 후에 그분을 만나는 겁니까? 그냥 저희가 있으니까 저녁시간에 일찍 만나셔도 될 거 같은데 말입니다.”
“그건 지수 씨가 그러자고 그랬어. 혹시라도 영업에 방해를 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윤지수한테 그 얘기를 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자신 때문에 비디오 영업에 지장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영업을 마친 후에 윤지수를 만났던 것이다.
“아, 그러셨습니까? 저는 사모님께서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지도 모르고…….”
“뭐? 사모님?”
현성은 ‘사모님’이란 말에 김민기를 슬쩍 바라봤다. 그의 입에서 막상 ‘사모님’이란 소리를 들이니 조금 이상했기 때문이다.
김민기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네, 제 입장에서는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어서 말입니다. 사실은 그래서 조금은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불편하다고? 언제?”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김민기의 대답이 바로 이어졌다.
“사장님께서 안 계실 때 사모님이 비디오를 빌리러 오시면 말입니다.”
“그때 왜?”
“이름을 부르기고 좀 뭐하고, 그렇다고 아직은 사모님이라고 부르기엔 좀 이른 거 같고 그래서 말입니다.”
“별 걱정을 다 한다. 그냥 이름 부르면 되지, 그런 걸로 왜 걱정을 해?”
“제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겁니다.”
피식.
현성은 가볍게 웃고 말았다. 말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렇게 말했지만, 김민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윽.
현성은 다시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아직 영업을 마치려면 30분이나 남은 상태였다.
바로 그때였다.
딸랑!
가게 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 사람을 보는 순간 현성은 깜짝 놀랐다.
“아니, 당신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몇 달 전에 비디오 가게를 오픈하겠다고 하면서 자신한테 사기를 쳤던 이상호였다.
현성은 바로 물었다.
“이 늦은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그때 제대로 사장님께 사과를 못 하고 도망치듯 떠난 게 마음에 걸려 이렇게 5개월 만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현성으로선 이상호의 행동이 쉽게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어차피 그때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사기를 치려고 했지만, 다행히도 먼저 그 사실을 아는 바람에 사기도 당하지 않았었다.
물론 그때 그의 행동이 괘씸했던 건 사실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려고 했는데 그것을 악용하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다시 볼 사람도 아니었기기에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그 사람이 다시 찾아오니 현성으로선 이해가 안 갔던 것이다.
이상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물론 사장님께선 제가 왜 찾아왔는지 이해가 안 가실 겁니다. 어차피 저 같은 인간은 그때 바로 잊으셨을 테니 말입니다.”
“…….”
현성으로선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걸 겉으로 끄집어낼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제가 이렇게 사장님을 다시 찾아온 이유는 저는 그때 사장님으로 인해 제 인생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저 때문에요?”
전혀 예상도 못 했던 말이었다. 그렇다 보니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고 말았다.
이상호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네, 그렇습니다. 혹시 그때 사장님께서 마지막으로 저한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핏 생각해도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사장님께서 저한테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포기하지 말라’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사기 칠 생각만 하지 말고 제대로 살아보라고 말입니다. 아직도 기억 안 나십니까?”
“아, 네…….”
현성은 그제야 기억이 났다.
마지막으로 그로부터 받은 돈을 되돌려 주면서 그런 말을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 말 때문에 변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었다. 아니, 기대조차 하지 않았었다. 단지 그렇게 사는 이상호가 측은하기에 어차피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그냥 했던 말이었다.
“저도 처음엔 그 말을 듣고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을 두고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지금까지 살아온 제 인생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래서 예전에도 한 번 말씀드렸지만, 중국집에 주방 보조로 취직을 했던 겁니다.”
물론 중국집에 취직했다는 얘기는 예전에 전화로 들었었다. 하지만 그때도 그러든가 말든가 별로 신경을 안 썼었다. 어차피 그 사람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기대도 미련도 없었으니 말이다.
이상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처음이었습니다.”
“처음이요?”
“네,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얘기를 들은 게 말입니다. 특히, 아직 늦지 않았다는 그 말이 저한테는 희망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상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제 나이 올해로 서른다섯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어차피 늦었다는 생각에 뭔가를 다시 시도하거나 저 자신을 바꿀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었습니다. 이미 포기를 한 거죠.”
“…….”
“그런데 그날 사장님께서 그 말씀을 해주신 겁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말이 여기 제 가슴에 와닿은 거고 말입니다.”
이상호는 자신의 가슴을 몇 번 두드리며 말했다. 그런 그의 표정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진중한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솔직히 저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제가 그때 무슨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어쨌거나 그때부터 저의 인생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다행이네요.”
현성은 이상호의 말을 들으면서도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사람이란 원래 쉽게 변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니 말이다.
오죽하면 ‘사람은 변하면 죽는다’라는 말까지 있겠는가 말이다.
이상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신기한 일이요?”
“네, 그렇습니다. 멀쩡히 일하던 주방장이 오늘 사장님과 대판 싸운 다음에 그만둔 겁니다.”
주방장이 그만뒀다? 그 얘기는 그 자리가 비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다음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고 말이다.
“혹시……?”
“네, 맞습니다. 제가 내일부터는 주방을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조금 전에 사장님과 그렇게 하기로 계약서를 다시 쓰고 오는 길입니다. 이제부터 저는 주방 보조가 아닌 주방장이 됐다는 얘깁니다.”
말하는 이상호의 표정에서 그가 지금 얼마나 좋아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주머니에서 갑자기 하얀 봉투를 꺼내 현성한테 내밀었다.
“이거 받으십시오,”
“이게 뭡니까?”
물론 그게 돈이라는 건 이상호가 봉투를 내미는 순간 바로 알았다. 하지만 지금 현성이 묻는 건 그 돈의 의미를 묻는 것이었다.
“20만 원입니다. 기부금으로 받아 주십시오.”
“기부금이요?”
“네, 얼마 안 되지만 이 돈으로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무료 나눔 가게에서 물품을 구매한 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써 주십시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렇다 보니 현성으로선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이상호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상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동안 주방 보조 일을 하면서 다짐을 했었습니다. 제가 만약 주방장이 된다면 그날은 저도 당당하게 사장님을 찾아뵙고 기부금을 내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찾아오신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솔직히 기부금도 기부금이지만 사장님 덕분에 이렇게 제가 바뀌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상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물론 우리 가게가 작아서 제가 바로 주방장이 되긴 했지만, 그 맛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열심히 일하면서 정식으로 중식 조리기능사 시험도 준비할 겁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흔 전에 제 가게를 꼭 낼 겁니다.”
“가게까지요?”
“네, 사장님 말씀처럼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도전을 할 생각입니다.”
“음…….”
잠깐 생각을 하던 현성은 고개를 끄덕인 후 바로 말을 이었다.
“만약에 말입니다. 혹시라도 가게를 오픈하는데 자금이 부족하시거든 저를 찾아오십시오. 이번엔 저도 제대로 투자를 하고 싶습니다.”
“하하…….”
갑자기 웃기 시작하는 이상호였다. 그런 그가 바로 말을 이었다.
“이번엔 제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네? 왜요?”
“제 힘으로 당당하게 일어설 생각입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말입니다.”
“…….”
현성은 말없이 이상호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런 현성의 입가에는 어느 순간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스윽.
현성은 이상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한 것이다. 그러자 이상호가 현성의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바로 말을 이었다.
“사장님, 고맙습니다.”
“저야 말로 고맙습니다. 5개월 만에 이렇게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신 모습을 보여주셔서 말입니다.”
“앞으로 지켜봐 주십시오. 당당하게 성공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만의 하나 혹시라도 제 도움이 필요하시거든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이번엔 진짜 제대로 도와드리겠습니다.”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저도 당당하게 제 스스로 서고 싶습니다. 그러니 지켜봐 주십시오.”
이상호는 그 말과 함께 현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현성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한번 이상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네, 좋습니다. 그럼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나중에 가게를 오픈하시거든 꼭 연락 주십시오.”
“네, 물론입니다. 꼭 초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건투를 빕니다.”
현성은 이상호의 손을 잡고 힘차게 흔들었다. 그런 두 사람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잠시 후.
이상호가 가게를 나가자 김민기가 바로 말을 이었다.
“사람이 저렇게 변하기도 하는군요?”
“그러게 말이다. 어쨌거나 기분은 좋다.”
바로 그때였다.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현성을 향해 말했다.
“사장님,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벌써 12시 넘었습니다.”
“어? 그래?”
시계는 어느새 12시 5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야, 나 먼저 갈 테니까 마감하고 퇴근들 해. 내일 보자.”
현성은 그 말을 끝으로 가게를 나와 윤지수가 있는 빌라로 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빌라 앞에서 만난 두 사람.
현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많이 보고 싶었어요?”
“또또…….”
윤지수는 눈을 흘기며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은 씩 웃으며 등을 돌린 후 한쪽 팔을 살짝 벌렸다. 팔짱을 끼라는 의미였다.
바로 그때였다.
짝!
현성의 등짝으로 윤지수의 손바닥이 닿으며 그녀의 목소리가 함께 들렸다.
“아직은 아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