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686)
회귀해서 건물주-687화(687/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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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점심시간이 지나자 꼬마 손님들이 본격적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궁금증은 오로지 하나였다.
진짜 무료로 비디오를 빌려주는지.
가게 앞에 분명히 ‘무료 대여’라는 안내 현수막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듯했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무료 대여!
아무리 어린이날이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그 어느 비디오 가게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이벤트이니 말이다.
10살쯤 돼 보이는 사내아이가 비디오 세 개를 들고 카운터로 다가와 현성 앞으로 내밀었다.
“사장님, 이거요.”
“어, 그래. 잠깐만. 네 이름이 진호였지?”
“네, 맞아요. 김진호. 그런데 제 이름을 기억하시네요? 여기 1년 만에 오는 건데…….”
김진호는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현성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왔는데 현성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주니 신기한 듯했다.
“당연히 기억하지. 이 형이 기억력이 좀 좋거든.”
현성은 비디오 세 개를 스캐너로 찍은 다음 봉투에 넣어주며 다시 말했다.
“근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어?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온 거야?”
“좀 아팠어요.”
“아파? 어디가?”
“여기 심장이요. 그래서 수술했어요.”
김진호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살짝 두드렸다.
현성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다른 곳도 아니고 심장을 수술했다는 말에 걱정이 됐던 것이다.
현성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로 물었다.
“그럼 이제는 괜찮은 거야?”
“네, 이젠 막 뛰어다녀도 안 아파요. 의사 선생님이 수술 잘됐으니까 앞으로는 병원에 안 와도 된다고 그랬어요.”
현성의 표정이 바로 밝아졌다.
“그래? 잘됐네. 다행이다. 정말 잘됐다. 그리고 건강한 모습으로 이렇게 다시 와줘서 고마워.”
“네, 헤헤.”
김진호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살짝 웃었다. 그런 그가 바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진짜 오늘은 비디오 대여가 공짜예요? 돈 안 내도 되는 거예요?”
김진호의 표정이 나름 진중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런 이벤트가 처음이다 보니 다시 한번 확인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오늘은 어린이날이라 이 형이 주는 선물이야.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즐겁게 보기만 하면 돼.”
현성의 말이 끝나자 김진호의 표정이 밝아졌다.
“와! 고맙습니다. 물론 밖에 현수막을 보긴 했지만, 혹시나 했었거든요. 대신 반납은 내일 꼭 할게요.”
“아니야, 내일 꼭 안 줘도 되니까 천천히 봐도 돼.”
“아니에요. 비디오도 공짜로 보는데 내일 꼭 반납할게요. 그리고…….”
김진호는 말을 하다 말고 무슨 일인지 현성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현성이 고개를 앞으로 쭉 빼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형한테 무슨 할 말 있어?”
“……고마워요!”
김진호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부끄러운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제 이름을 기억해줘서요. 저는 당연히 기억 못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김진호의 입장에서는 1년 만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준 것에 대해 나름대로 많은 감동을 받은 듯했다.
현성은 미소를 지으며 바로 말을 이었다.
“진호는 특별했거든.”
“제가요?”
“그래, 다른 친구들보다 인사도 잘하고 얼굴도 남자답게 생겼잖아. 게다가 공부도 잘하고 말이야. 그래서 이 형이 특별히 기억하고 있었지.”
“어? 다른 건 몰라도 얼굴은 제가 좀 아닌데…….”
“아니야, 이 형이 보기엔 진호 얼굴이 남자답게 잘 생겼어. 앞으로 클수록 점점 더 멋있어질 거야. 그러니까 충분히 자신감을 갖아도 돼. 알았지?”
“…… 네, 알겠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김진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그의 표정은 조금 전보다 확실히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꾸벅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가는 그의 뒷모습에 현성은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때였다.
따르릉.
가게 전화가 울렸다.
현성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시네마천국입니다.”
-거기 비디오 가게죠?
“네, 그렇습니다.”
-저는 미진이 엄마예요. 한미진 아시죠?
“네, 물론입니다.”
현성은 대답을 하면서도 걱정부터 앞섰다.
그 이유는 보통 비디오를 빌려간 아이의 엄마로부터 전화가 올 경우는 거의 불만을 얘기하는 전화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제가 전화를 한 이유는 비디오 때문이에요.
역시 예상한 대로 비디오가 문제인 듯했다.
현성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비디오에 무슨 문제라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우리 미진이가 조금 전에 비디오를 빌려왔더라고요. 그런데 이 녀석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예요.
“이상한 소리요? 미진이가 뭐라고 했는데요?”
-사장님이 비디오 대여료를 안 받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확인을 하려고요. 혹시 이 녀석이 비디오를 그냥 들고 온 건 아닌가 싶어서요.
후……!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혹시나 무슨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앞섰는데 막상 통화를 하고 나니 그게 아니라는 걸 바로 알았기 때문이다.
“미진이 말이 맞습니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라…….”
현성은 이벤트 내용을 바로 설명했다. 그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한미진의 어머니가 바로 반응을 보였다.
-어머! 그게 진짜예요?
“네, 진짭니다. 그러니까 어머님은 아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혹시나 우리 미진이가 나쁜 짓이라도 했을까 봐 걱정을 했지 뭐예요. 그나저나 한두 명도 아닐 텐데 어떻게 그런 이벤트를…….
그녀는 좀 더 얘기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끝낸 현성은 시선을 어느 한 곳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2시간 전에 가게에 들어온 강만수가 있었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그의 가방 안에는 많은 비디오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
너무도 대비되는 상황이었다.
누구는 혹시라도 아이가 비디오를 그냥 가져왔을까 봐 확인 전화까지 하는 마당에 누구는 그 나이에 비디오를 열심히 훔치고 있으니 말이다.
피식.
현성은 한쪽 귀퉁이에서 꽤나 바쁜 강만수의 모습을 보며 웃음밖에 안 나왔다.
그 나이 먹고 그 짓을 하고 싶은지 묻고 싶을 뿐이었다.
스윽.
현성은 강만수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훔치는 거 마음껏 훔치도록 놔둘 작정이었다.
따르릉!
바로 그때 가게 전화가 다시 울렸다.
“네, 시네마 천국입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저는 김진호 엄마 되는 사람입니다.
현성은 이번에도 조금 전과 같이 걱정이 앞섰다.
혹시 비디오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 아닌지.
현성은 바로 물었다.
“네, 어머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에 진호 학생이 비디오 빌려서 갔는데요.”
-고마워서 전화드렸어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진호가 이번에 큰 수술을 받고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조금 전에 비디오 가게를 다녀온 뒤로는 기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비디오 가게 사장님이 칭찬을 해줬다는 거예요. 얼굴이 남자답게 잘 생겼다고 말입니다.
“아아, 네…….”
대답하는 현성의 입가에 미소가 바로 번졌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는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듣고 보니 다행히도 염려할 일은 아닌 듯싶어 바로 미소가 지어졌던 것이다.
-사실은 우리 진호가 그동안 얼굴 때문에 콤플렉스가 있었거든요. 근데 조금 전에 사장님의 칭찬으로 그 문제가 해결된 거 같아요.
“저는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요.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니고요.”
사실이다. 물론, 김진호가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남자로서는 그 정도면 충분히 개성이 있는 얼굴이기에 그런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 전생에서도 이미 확인을 했었다.
김진호 같은 경우는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남자다운 모습으로 변해갔었다.
-굳이 저한테까지 빈말은 안 하셔도 되는데…….
“빈말이요? 저는 빈말 아닌데요. 저는 솔직하게 말씀드린 겁니다. 두고 보십시오. 진호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얼굴이 필 겁니다.”
-어머! 사장님도…….
“어머님은 지금 제 말을 안 믿으시는 거죠?”
-아무리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이쁘다고 하지만…….
“진호 어머님!”
현성은 그녀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그리곤 바로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절대로 빈말하는 거 아닙니다. 진호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얼굴이 변하기 시작할 겁니다.”
-진짜요?
“그럼요. 혹시 진호 아버님이 젊으셨을 때 어떠셨나요?”
-그이는 남자답게 생겼었어요. 사실은 그래서 제가 좋아했던 거고, 그런데 우리 진호는 솔직히…….
“아직 어려서 그래요. 남자는 커 가면서 아버지를 꼭 닮아가거든요. 오죽하면 씨도둑은 못 한다는 말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빈말로 한 말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얘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냥 대충 넘어가도 누가 뭐라 그럴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현성은 그럴 수 없었다.
왜냐?
어쩌면 이게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나이라면 더욱.
-그럴까요?
“네,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어머님부터 진호를 믿어주셔야 합니다. 진심으로 말입니다. 그래야 진호 또한 자신감이 생겨 힘이 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진호의 인생이 확실히 바뀔 겁니다.”
현성은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효과가 있었던 걸까.
-사장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럴 것도 같네요.
“그럴 것도 같은 게 아니라 그렇습니다. 진호 같이 예민한 시기에는 더더욱 말입니다.”
-네, 알겠어요. 제가 지금까지 실수를 하고 있었던 거 같네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네요.
“이제라도 안 늦었습니다. 진호한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세요. 그러면 분명히 진호는 멋지게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네, 알았어요. 그럴게요. 그나저나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을 너무 빼앗아서 어떡해요? 정말 고마워요. 시간 내서 한번 인사드리러 갈게요. 그럼 이만…….
뚝.
전화가 끊기자 현성은 미소를 지었다.
처음부터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김진호한테는 도움이 될 것이다. 현성이 미소를 짓는 이유였다.
“사장님, 저 아저씨 뭐 하는 거예요?”
직원인 김민기가 두 시간 전부터 계속 가게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강만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현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기다려 봐.”
“네? 뭐를 말입니까?”
“조금 있으면 재미있는 일이 생길 테니까.”
“재미있는 일이요?”
김민기는 현성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할 것이다. 그는 지금 강만수가 비디오를 훔치고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 기다려보면 알아. 조금만 기다려 봐.”
바로 그 순간.
현성의 눈빛이 반짝였다.
드디어 강만수가 캐리어를 끌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드디어 때가 왔구나.’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카운터에서 나와 입구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런 그의 얼굴엔 조소가 가득했다.
잠시 후.
드르륵.
강만수는 캐리어를 끌며 카운터로 향했다. 그의 손에는 비디오가 하나 들려있었다. 그런 그의 표정은 여유가 넘쳤다.
“이거 하나 빌려 주소.”
강만수가 비디오 하나를 카운터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러자 직원인 김민기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 이유는 두 시간 이상이나 있던 사람이 달랑 비디오 하나를 골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말은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선택은 손님의 권리이니 말이다.
“처음 오셨지요? 여기 고객카드 좀 적어 주세요. 그리고 신분증도 잠깐 부탁드리고요.”
“신분증이요?”
“네, 처음에는 저희도 확인을 해야 하니까요.”
신규 회원일 경우엔 기본적인 절차다. 판매가 아닌 대여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신분을 확실히 하기 위함이다.
강만수가 갑자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허, 이거 어쩌나. 신분증을 안 가지고 나왔는데…….”
“아니면 보증금을 맡기셔도 됩니다. 나중에 신분증 가져오시면 그때 확인하고 보증금은 다시 돌려드립니다.”
“보증금이 얼마요?”
“2만 원입니다.”
피식.
카운터를 바라보던 현성의 한쪽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어차피 전생에서 한 번 겪었던 일이다.
결국, 강만수는 비디오를 안 빌릴 것이다. 신분증도 없다고 할 것이고 보증금 낼 돈도 없다고 할 것이다. 그리곤 그냥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한 후에 가게를 나가려고 할 것이다.
어차피 그의 목적은 따로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강만수의 입에서 전생과 똑같은 말이 나왔다.
“신분증도 없고 보증금 낼 돈도 없으니 어쩔 수 없네요. 오늘은 그냥 가고 다음에 다시 오죠.”
“네, 죄송합니다.”
“자, 그럼 다음에…….”
드르륵!
강만수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캐리어를 끌고 입구로 향했다. 저승사자가 입구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강만수가 입구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턱!
현성이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캐리어를 손으로 낚아챘다. 그러자 강만수가 현성을 쳐다보며 인상을 썼다.
“지금 뭐 하는 거요?”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