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74)
회귀해서 건물주-74화(74/740)
피식.
학생이 오라면 가야지.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교장인데.
현성은 교장실로 향했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굵직한 목소리가 문밖에서도 확실히 들렸다.
언제 들어도 교장 박상현의 목소리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현성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교장 박상현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반갑게 현성을 맞이했다.
“어서 오게, 현성 군!”
“안녕하십니까? 교장 선생님.”
“여기 이쪽으로 앉게.”
“아…, 네.”
근엄하기보다는 자상함으로 학생들의 사랑을 받는 교장 박상현답게 세세한 부분까지도 일일이 챙기는 모습이 고마웠다.
교장 박상현은 이미 준비한 듯 차까지 현성의 앞으로 내밀었다.
“이거 올봄에 보성에서 지인이 직접 보내준 우전차(雨前茶)인데, 입맛에 맞으려나 모르겠네.”
“아니, 이 귀한 걸……, 감사합니다.”
“허허, 우전차를 혹시 아는가?”
“녹차 중에서는 최고라고 알고 있습니다. 곡우(穀雨) 전에 처음 피는 어린잎으로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한때는 현성도 녹차에 관심이 있던 터라 그때 알게 된 것이다. 녹차는 따는 시기에 따라 네 종류(우전, 세작, 중작, 대작)로 나뉜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중에 최고는 이른 봄에 새순으로 만든 우전차가 맛이 가장 부드럽고 향도 좋다. 아무래도 첫 순이니 그런 듯했다. 그렇다 보니 가격 또한 가장 비쌀 수밖에 없다.
현성의 대답을 들은 교장 박상현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다행이군.”
“네?”
“귀한 몸을 이렇게 알아주니 말이네.”
맞는 말이다.
귀한 걸 내줬는데, 그 가치를 몰라준다면 그것처럼 서운한 게 없을 것이다. 예전에 원주민들이 다이아몬드로 공기놀이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현성이 고마운 건 우전차보다도 교장 박상현의 마음이었다.
예상컨대, 교장 박상현은 현성이 당연히 우전차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교장 박상현은 현성이 올 시간에 맞춰 찻물을 준비하고 차를 우려냈다는 것이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차를 말이다.
차 한 잔으로 교장 박상현의 인품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현성은 고개를 숙이며 다시 말했다.
“그럼, 귀한 차 맛 좀 보겠습니다.”
현성은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우선 마시기 전에 향기부터 맡았다.
“역시 첫 잎이라 그런지 향이 은은한 게 참으로 좋습니다.”
“허허, 이거 참…….”
아무래도 현성의 행동이 조금은 이상했는지 헛웃음을 짓는 교장 박상현이었다.
하긴, 어린 녀석이 앉아서 차향을 말하고 있으니 기도 안 찰 것이다.
현성은 이번엔 차를 한 모금 입에 물었다.
오물오물.
바로 삼키지 않고 입안에서 굴리며 맛을 음미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제대로 된 차 맛이었다.
또한, 교장 박상현의 섬세함이 더욱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녹차는 너무 뜨겁게 마시면 안 된다. 적정 온도는 60~70도가 적당하다.
너무 뜨거울 경우 열에 약한 찻잎의 여러 영양성분이 파괴되고 카페인 성분도 더 많이 용출되기 때문이다.
현성은 박상현을 보며 말했다.
“온도도 신경을 많이 쓰셨군요.”
“자네, 혹시 녹차에 대해서 연구라도 했는가?”
“하하, 그럴 리가요. 그냥 TV에서 본 걸 조금 흉내만 내봤습니다.”
“어쨌건 귀한 차를 제대로 마셔주니 기분이 참으로 좋네. 참, 그리고 오늘 수혁이 학생 말인데…….”
교장 박상현의 얘기가 길어졌다.
말은 길었지만 요지(要旨)는 하나였다.
– 어떻게 그렇게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었느냐?
현성은 별 고민 없이 바로 말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으로 돌렸다.
괜히 말도 안 되는 말로 떠들어봤자, 결국 피곤한 건 자기 자신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운이라고 했는가?”
“네, 수혁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오른쪽 옆구리를 부여잡고 엄청 아파하더라고요.”
“단순히 오른쪽 옆구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맹장이라 생각했다는 거고?”
“네, 제가 알고 있는 게 그거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운이 좋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그리고 설사 맹장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병원으로 옮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현성의 말을 듣던 교장 박상현은 황당할 뿐이었다.
하지만 현성의 말이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기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현성의 말대로 꼭 맹장염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정도의 통증이라면 병원으로 가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박상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거참…, 듣고 보니 그럴듯하긴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해서 말이야. 어떻게 어린 친구가 그 상황에 그렇게 빠른 판단을 할 수 있었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안 돼서 말이야.”
“세상에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허허, 이 친구 갈수록…….”
교장 박상현은 현성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고2 학생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또 굳이 물어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오늘 득을 본 건 자신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송이 늦어 환자가 잘못되기라도 했더라면 그 최종 책임자는 교장인 자신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정년퇴직도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큰 오점을 남길 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걸 이 어린 친구가 막아준 것이다.
교장 박상현은 현성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내가 오늘 자네한테 큰 은혜를 입었네. 정말 고맙네.”
현성은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교장 박상현의 손을 잡았다.
“저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친구 덕분에 이렇게 교장 선생님과 좋은 차도 마실 수 있는 기회도 생기고, 수혁이 퇴원하면 오히려 제가 고맙다고 해야겠는데요.”
“허허, 그렇게 말해주니 오히려 내가 더 고맙군. 그리고 앞으로는 언제든 차 생각나거든 찾아오게. 아무래도 자네하고는 좋은 친구가 될 거 같네.”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교장 박상현의 표정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얼굴에 미소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전생에서야 교장 박상현과 엮일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딱히 싫은 기억도 없었다. 지나가다가도 인사를 하면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던 교장 박상현이었다.
‘어?’
그러고 보니 교장 박상현의 정년도 얼마 안 남았다. 현성 자신이 졸업하던 해에 박상현도 정년퇴직을 했었다.
그때 교장 박상현이 현성을 보며 말했다.
“혹시 1시간 정도 여유가 되겠는가?”
“1시간이요?”
현성은 얼른 시계를 확인했다.
복덕방에서 아버지를 만나기로 한 시간이 20여분 정도밖에 안 남은 상태였다.
현성은 바로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은 아버지하고 약속이 있어서요.”
“아, 그런가? 실은 지금 수혁이 아버님이 이리로 오시고 계시거든. 자네를 꼭 보고 싶다고 해서 말이야.”
“아, 그러셨군요. 그리고 혹시라도 수혁이 일 때문이라면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 …….”
“그거야 자네 생각일 테고, 부모 입장에서는 또 다르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니 그건 교장 박상현의 말이 맞는 듯했다. 어찌 됐건 현성 때문에 이수혁의 수술 경과가 좋은 건 사실이니 말이다.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럼 나중에 기회 되면 잠깐이라도 뵙는 거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수혁이 아버님 오시면 내가 그리 전하겠네.”
두 사람은 조금 더 얘기를 나눴다.
현성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볼일도 끝난 듯했고, 약속시간도 얼마 안 남았기 때문이다.
“그럼 저는 이만, 그리고 오늘 귀한 차 잘 마셨습니다.”
“나도 학생 때문에 모처럼 즐거웠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오늘 정말 고마웠네.”
현성이 가볍게 인사를 한 후 막 돌아설 때였다.
“저기 말일세…….”
“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그게…….”
교장 박상현은 여전히 말을 못하고 입만 달싹일 뿐이었다.
현성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아무래도 무슨 할 말이 있는 듯한 상황에서 계속 서 있는 다는 자체가 교장 박상현에게는 부담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교장 박상현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혹시 나 좀 도와줄 수 있겠는가?”
“네? 제가 말입니까?”
“사실은 내가 그동안 계속 망설이고 있던 일이 하나 있네.”
현성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교장 박상현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에 내가 자네한테 큰 은혜를 받고 보니 더 이상은 미루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네.”
“저야 그저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자네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네. 만약에 수혁이 학생이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그 최종 책임은 누구한테 있겠는가? 바로 나일세.”
맞는 말이다.
전생에서도 그 문제 때문에 교육청에서 나와 이것저것 조사하고 학교를 발칵 뒤집어놨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이수혁의 어머니 파워도 한몫 했었다.
현성은 교장 박상현을 보며 물었다.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을 좀 부탁하네.”
“설문이요?”
“내가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에 학생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했는데, 아무래도 직접 물어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말이야.”
현성은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하지만 때로는 알아도 모르는 척, 확인을 해줘야 할 때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어디 다른 학교로 가십니까?”
“허허, 그건 아니고…, 이젠 물러나야지.”
“혹시 정년퇴직이라도…….”
교장 박상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바로 말을 이었다.
“이제 그만 쉬라니 어쩔 수 있겠나, 그래서 말이네만, 도와 줄 수 있겠는가?”
“도와드리는 거야 당연히 도와드리죠. 그런데 그 정년은 연장 안 되는 겁니까?”
“허허, 이 친구가……, 그게 무슨 소린가?”
“이렇게 훌륭한 교장 선생님이라면 정년도 연장 돼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물론 말도 안 되는 궤변이지만, 한편으론 솔직한 마음도 있었다. 학생들을 위해선 이만한 교장 선생님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교장 박상현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건 어쩌면 또 당연한 일.
“빈말이라도 고맙네.”
“빈말 아닙니다. 학생들이 교장 선생님을 얼마나 좋아하는 데요.”
“허허, 참……, 이거 부끄럽게 왜 자꾸 이러는가. 그나저나 자네 약속 있다고 했잖은가?”
“아, 참!”
현성은 시간을 확인했다.
5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현성은 급하게 말을 이었다.
“교장 선생님, 그럼 저도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얼마든지 말해 보게.”
“설문조사를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랑 말인가?”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교장 박상현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직접 하기엔 아무래도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이 있어서 현성한테 부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현성이 설문조사를 같이 하자고 하니 교장 박상현의 입장에서는 황당했던 것이다.
반면, 현성의 생각은 달랐다.
설문조사야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번 같은 경우엔 그 과정이 결과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두고두고 평생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거라는 게 현성의 생각이었다.
현성은 교장 박상현을 보며 말했다.
“제 생각엔 이런 기회는 다시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두고두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으실 겁니다.”
“소중한 추억이라 …….”
교장 박상현이 잠깐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기를 잠깐.
현성은 시계를 얼른 들여다봤다.
이미 약속 시간은 지나 있었다.
그러자 교장 박상현이 얼른 말했다.
“내 정신 좀 보게. 내 욕심에 약속 있다는 사람을 이렇게 붙잡고 있었구먼. 어서 가보게. 그리고 이 문제는 내가 조금만 더 생각해보고 답을 주겠네.”“네,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고맙네. 어서 가보게. 괜히 나 때문에…….”
“다시 말씀드리지만 분명히 소중한 추억이 되실 겁니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꾸벅.
현성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교장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