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75)
회귀해서 건물주-75화(75/740)
혼자 남은 박상현.
“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었다.
박상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봤다. 오늘따라 운동장이 더욱 정겹게 느껴졌다.
4년 전 부임해 올 때만 해도 참 낯설고 어색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벌써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미련이겠지…….”
요즘 들어 부쩍 헛헛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게 이상할 것이다.
휴우…….
저절로 한숨이 길게 나왔다.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벌써 정년이라니…….
박상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이라도 상념을 털어내기 위함이었다.
언제까지 이런 감정으로 아무것도 못 하고 시간을 소모할 수는 없다.
박상현은 조금 전에 현성이 한 말을 떠올렸다.
“소중한 추억이라…….”
한참을 생각하던 박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교장실을 나온 현성은 뛰기 시작했다.
교장 박상현과 얘기하다 보니 아버지와의 약속시간에 조금 늦었기 때문이다.
현성이 복덕방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아버지!”
이미 도착했을 것이라 생각했던 아버지가 복덕방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도착한 아버지가 현성을 보며 말했다.
“어, 그래 현성아. 내가 혹시 늦은 거 아닌지 모르겠다. 하필 오늘따라 버스가 늦게 오지 뭐냐.”
“아닙니다. 저도 이제 막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웬 땀을 이렇게 흘리세요?”
“늦을까 봐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빨리 오다 보니….”
“좀 늦으면 어때서요?”
현성은 얼른 아버지 이마의 땀을 팔뚝으로 스윽 닦았다.
아버지로서는 조금 늦은 게 많이 신경 쓰였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터미널에서부터 뛰었을 것이고.
그런 아버지다.
현성은 아버지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아버지 들어가요.”
두 사람은 복덕방으로 들어갔다.
계약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기본적인 거야 미리 복덕방 사장 박인수로부터 다 들었던 터라 크게 조율할 건 없었다.
특이사항은 계약 기간이었다.
아예 5년으로 계약을 했다.
혹시라도 건물주의 갑질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지금이야 장기간 임대가 안 됐던 상태라 무조건 알았다고 하지만 언제든지 변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 미리 안전장치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임차인이 계약 기간 내에라도 양도는 가능하다는 단서 조항을 추가했다. 혹시라도 사람의 일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에 미리 대비를 한 것이다.
건물주 입장에서야 손해 볼 게 없으니 흔쾌히 동의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채의 사용에 관한 권리도 명시했다. 임차인이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든 임대인은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혹시라도 영업장으로 쓸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계약을 마무리한 후 현성은 건물주 오명선에게 물었다.
“사장님, 혹시 매매도 하십니까?”
“왜? 사려고?”
“헤헤, 혹시 압니까? 제가 장사 잘해서 나중에…, 물론 희망 사항입니다.”
“허허, 이 친구 꿈이 야무지구먼. 그래, 안채까지 포함해서 세 장만 들고 오게.”
“세 장이라면, 3천을 말씀하시는 거네요?”
“그렇지. 언제든 그거만 주면 바로 넘겨주겠네.”
현성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앞으로 10년 뒤에도 이 가격은 불가능하다. 그 말은 팔 의향이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곳은 나중에 도로로 수용되기 때문에 돈도 별로 안 되는 곳이다.
현성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파실 생각이 없다는 말씀으로 알아듣겠습니다.”
“역시, 대단한 친구일세. 벌써 여기 시세까지도 알고 있다는 얘기군. 자네 말이 맞네. 난 이 땅을 팔 생각이 없네. 어차피 아무리 늦어도 10년 내에는 여기도 개발이 되지 않겠나?”
정확히는 14년 뒤다. 2000년이 시작되면서 이곳은 도로로 수용되게 된다.
“아마도……, 그렇겠죠.”
현성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복덕방을 나온 현성은 아버지와 함께 계약한 가게로 향했다.
아버지한테 가게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길을 걷던 중에 아버지가 물었다.
“확실한 거지?”
“뭐가요?”
“지금 가게가 대박 나는 거 말이야.”
“왜요? 아직 불안한 겁니까?”
“그게…….”
현성은 고개를 돌려 아버지의 표정을 살폈다.
굳게 다문 입술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복덕방에서도 그랬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동안 아버지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현성이 바라보면 애써 괜찮다는 듯 억지로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계약서에 아버지의 이름을 쓰면서도 손의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불안한 거다.
하긴, 고2짜리가 장사를 하겠다고 하는데 세상천지에 어느 부모가 걱정이 안 되겠는가.
당연한 거다.
지금은 무슨 말로도 위안이 안 될 것이다.
스윽.
현성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헛기침으로 무안함을 대신했다.
“흠흠….”
“아버지!”
“어? 왜……?”
“그냥요.”
“다 큰 녀석이 싱겁기는…….”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보기는 처음이다. 전생에선 특히 말수고 적었던 터라 더 그랬을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어찌 보면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인 듯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게 하나 있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었다.
마흔 전까지는 몰랐다.
마흔이 넘으면서 어느 날부턴가 거울 속에서 아버지를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됐다.
그러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쉰을 넘기면서부터는 거울을 볼 때마다 헛웃음만 나왔다.
세수를 하다가도 거울을 보면 아버지가 그 안에 있었다.
그땐 이미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수년이 지난 후였다.
현성은 아버지를 잡은 손에 힘을 더 주며 말했다.
“아버지, 이번 주 일요일에 낚시 갈까요?”
“네가 웬일이냐? 너 낚시 싫어하잖아?”
유독 낚시만큼은 취미가 없던 현성이었다. 그렇다 보니 어려서 아버지가 낚시라도 가자고 하면 어떡하든 도망갈 궁리만 했었다.
“이제부터라도 좋아해 보려고요.”
“아버지야 좋지. 그렇지 않아도 요즘 낚시 한지가 좀 됐는데 잘됐구나.”
“그래요 그럼, 이번 주 일요일에 저수지로 낚시 가요.”
“허허, 벌써 일요일이 기다려지는구나.”
조금 전 굳어있던 아버지의 표정은 어느새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가게 앞에 도착한 두 사람.
“여깁니다. 아버지.”
“그래…….”
아버지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러자 현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골목 안쪽이긴 하지만 이 골목으로 학생들이 워낙 많이 다니기 때문에 상관없습니다.”
“알았다. 이제 와서 걱정한다고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닐 테고, 이왕 시작했으니 열심히 해 보거라. 그리고 혹시라도 이 아비 도움이 필요하거든 언제든지 말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뭐든 도와줄 테니 말이다.”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저도 힘이 막 납니다.”
현성은 가게 문을 열고 아버지를 안채로 안내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물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여기서 숙식을 할 거란 말이지?”
“아무래도 장사를 시작하면 그래야 할 거 같습니다. 집하고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어쩔 수 없을 거 같습니다.”
“하긴 그렇겠구나. 그나마 학교는 가까워서 다행이다.”
“네, 등교시간이 1시간 정도 줄어든 셈이죠.”
오늘 아침에 안채를 확인하면서 기뻤던 게 공간 확보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도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먼 거리를 통학하면서 장사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비라도 오거나 한겨울에는 도저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엔 방을 따로 얻어야하나 하는 생각까지도 했었다.
천만다행으로 안채가 있는 바람에 숙식과 영업장의 협소한 문제까지 한 번에 해결하게 됐다.
안채를 꼼꼼히 살피던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혹시 너 여기에서도 손님 받을 생각을 하는 것이냐?”
“어? 어떻게 아셨어요?”
“아까 계약서 쓸 때 조금 이상하다 싶었는데, 와서 보니까 왜 그랬는지 알거 같아서 말이야.”
“하하, 역시 아버지 예리하신데요. 사실 홀이 너무 좁아서 걱정을 했었거든요.”
“그 정도로……, 아 아니다. 여기까지 꽉 찼으면 좋겠구나.”
아버지가 중간에서 말을 바꾼 이유는 빤했다.
그만큼 장사가 될 것인지 불안한 것이다.
그 마음을 모를 리 없는 현성.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까지 꽉꽉 찰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까요.”
“허허, 녀석 눈치 하나는……, 알았다. 그럼 이만 나가자. 가서 짬뽕이라도 한 그릇씩 먹자꾸나.”
“어떡하죠? 저는 잠깐 누구 좀 만나고 갈 사람이 있어서요.”
“왜, 누가 또 오기로 한 게냐?”
“설비 업자요. 견적 좀 받아보려고요.”
“빈틈이 없구나. 우리 현성이가 언제 이렇게 컸는지 모르겠구나. 그래 그럼, 난 먼저 갈 테니까 이따 집에서 보자꾸나.”
현성은 아버지를 큰길까지 배웅하고 다시 골목 안쪽으로 향했다.
가게 앞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저 인간이 또 왜?’
가게 앞에는 아침에 봤던 민두식이 서 있었다. 전생에 이곳에서 라면 장사를 했던 그 인간이다.
더 이상은 볼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현성 혼자만의 생각이었나 보다.
현성은 민두식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아직 볼 일이 남았습니까?”
“기어이 계약을 했더군?”
이 말은 지금 복덕방에 들러 이미 확인을 했다는 얘기가 아닌가.
도대체 이 인간이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걸 또 묻기도 싫었다.
“그만 가시죠.”
“내 경고를 무시했다 이거지?”
“그만 가라니까!”
현성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황당한 건 민두식의 다음 행동이었다.
툭.
손가락으로 현성의 이마를 밀었다.
“너 이 새끼 어른이 우습지?”
“한 번만 더 내 몸에 손 돼봐라. 그땐 나도 가만히 안 있을 테니.”
“허! 이 새끼 봐라. 가만히 안 있으면, 어쩔 건데?”
스윽.
민두식은 손가락을 다시 내밀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현성의 이마에 닿지 못했다.
“아아, 너 이 새끼 이거 안 놔?”
“그러게 왜 사람 말을 안 들어?”
두둑.
현성은 민두식의 손가락을 서서히 꺾기 시작했다. 그러자 민두식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너…, 너 이 새끼 이게 무슨 짓이야?”
민두식은 황당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 녀석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한두 살 차이도 아니고 20년 이상이나 차이가 난다.
물론 아침에 싸가지가 없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막 나올 줄은 몰랐다.
현성은 손목에 힘을 더 줬다.
툭.
“악!”
민두식이 비명을 질렀다.
여기서 조금만 더 꺾으면 손가락은 뒤로 꺾이고 만다. 그래서 인지 민두식이 악착같이 힘으로 버티고 있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아아 씨발 내 손가락. 이거 안 놔?”
현성은 그런 민두식을 보며 말했다.
“그러게 왜 손가락을 함부로 놀려? 어디 한 번만 더 해 보던가?”
현성은 민두식의 손가락을 뿌리쳤다.
마음 같아서는 뒤로 확 꺾어버리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았다.
그랬다가는 꼬락서니를 보니 고소한다고 난리치고도 남을 놈이었다.
“너, 이 새끼 여기 꼼짝 말고 있어.”
민두식은 손가락을 감싸 쥔 채로 씩씩거리며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드르륵.
현성은 가게 문을 활짝 열었다.
우선 급한 대로 내부의 곰팡내부터 없앨 요량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비어있던 가게라 퀴퀴한 곰팡내가 장난 아니었다.
40대 중반의 남자가 다가온 건 그때였다.
“혹시, 김현성 씨?”
“네, 설비하시는 분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박희철 어르신 소개로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