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83)
회귀해서 건물주-83화(83/740)
“김일수! 네가 여길 왜?”
순간 현성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설마……?’
만약, 이 모든 게 김일수의 작품이라면…….
등골이 서늘하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어내리는 듯했다.
현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닐 거야.’
아무리 김일수가 막돼먹기는 했어도 이렇게까지 막장 망나니는 아닐 거라는 게 현성의 생각이었다.
뚜벅뚜벅.
덩치가 있어 그런지 묵직한 발걸음이 오늘따라 더 무겁게 느껴지는 듯했다. 하지만 걷는 그 속도만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정했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다는 건 거리낌이 없다는 건데…….
거리낌이 없다는 건 둘 중에 하나일 테고.
이놈들과 같은 편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자신감이…….
그때였다.
턱.
김일수가 공터에 들어서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현성을 둘러싸고 있던 녀석들이 일제히 양쪽으로 정렬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지나갈 길을 만들 듯이 말이다.
물론 그 길의 끝에는 한명수가 서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척.
맨 앞에 있던 녀석이 김일수를 보자 허리를 90도로 사정없이 꺾어버린 것이다.
척. 척. 척…….
그러자 양쪽에 늘어선 녀석들이 마치 연습이라도 한 듯 일제히 허리를 꺾었다.
“헉!”
현성의 입에서 저절로 헛바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설마 했는데…….
저벅저벅.
김일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녀석들이 만들어준 그 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홱.
현성은 잽싸게 시선을 돌려 한명수를 바라봤다.
상황 판단을 하기 위함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라면 더 이상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어떡하든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피식.
긴장했던 현성의 얼굴에 갑자기 미소가 번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명수의 표정이 지금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일수의 등장이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이 좁혀질 때로 좁혀진 상태였다.
그때 김일수가 한명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한명수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모습을 바라본 현성.
‘뭐야? 이 자식들.’
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표정으로 봐서는 아군도 아니다.
그런데 인사를 한다?
단순히 선배라고 해서 인사할 한명수도 아니다.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보통 사이는 아니라는 느낌이 팍 들었다.
“뭐해?”
한명수 앞으로 다가선 김일수가 먼저 물었다.
그러자 한명수가 기분 나쁘다는 투로 김일수의 말을 받았다.
“형님이야말로 어쩐 일이십니까? 이러시면 안 되는 거잖아요. 오늘은 1학년 얘들까지도 불렀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가시죠?”
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님은 뭐고, 이러면 안 된다는 얘기는 또 뭔지 감이 안 잡히는 순간이었다.
일단은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그때 김일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명수, 많이 컸네.”
“이러지 마십시오. 얘들도 보고 있는데…….”
김일수는 시선을 돌려 현성 주위에 있는 녀석들을 한눈에 훑었다. 대충 봐도 스무 명은 훌쩍 넘는 인원이었다.
한명수의 특징이다.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명분보다는 철저히 실리를 우선으로 하는 놈이다. 보통 주먹을 쓴다는 놈들의 특성이 명분을 중요시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데 반해 이놈만은 예외다.
오늘만 해도 현성 한 사람을 위해 스무 명이 넘는 녀석들을 동원한 놈이다.
1년 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한명수가 찾아왔었다.
용건은 간단했다.
잔디파의 대장이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때가 자신이 서명고를 평정한 후였다.
알아서 기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단, 조건이 하나 있었다.
어떤 이유로든 일진의 자리를 빼앗기는 순간 자동으로 대장의 자리는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당연한 얘기였기에 그 조건에 응했었다.
그리고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절대적인 믿음도 있었고 말이다.
그러다 얼마 전에 현성이한테 보기 좋게 발리면서 모든 게 끝이 났다.
모든 조직이 그렇듯, 잔디파에도 불문율이 하나 있다.
그건 의외로 간단하다.
접근불허.
조직에서 한 번 물러나게 되면 조직 앞에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질척거리지 말고 깔끔하게 꺼지라는 얘기다.
어차피 얼굴 마담이 필요했던 터라 한명수로서는 자신을 이용했을 것이다. 알면서도 응했던 이유는 어차피 고등학교 졸업하면 더는 미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로가 피 안 흘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각자 얻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그 불문율을 지금 김일수가 어기도 있는 것이다.
한명수가 김일수를 보며 낮게 말했다.
“마지막 배려이자 경고입니다. 형님이 얘들 앞에서 추해지는 건, 저도 원치 않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럼 뭡니까?”
한명수의 말에 김일수는 저만치 서 있는 현성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한명수는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김일수를 바라봤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저 자식 때문에 여기를 오신 겁니까?”
“말조심해라. 내 친구다.”
“아니, 저 자식은…….”
한명수는 황당할 뿐이었다.
김현성이 누구인가.
잔디파에서 김일수를 끄집어 내린 장본인이다. 그런데 그런 현성을 위해 자신의 발로 스스로 사지(死地) 속으로 들어왔다는 말에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한명수였다.
저벅.
김일수는 발걸음을 옮겨 현성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별 다른 말없이 현성과 등을 마주하고 섰다.
그 의미를 모를 리 없는 현성.
“지금 뭐하냐?”
“정신 똑바로 챙겨라. 여차하면 병신 되는 거야.”
“너도 잔디파였냐? 밟아도 뿌리 뻗는…….”
“개소리 말고, 이 새끼들 장난 아니니까 상황 봐서 튈 수 있으면 튀어. 여긴 나한테 맡기고. 내말 명심해라. 튈 수 있을 때 튀어. 꼭!”
말이 짧던 김일수가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의미였다.
현성은 궁금한 게 있었다.
한명수와 나누는 얘기를 들어보니 한 식구였던 게 틀림없다. 그런데 그런 한명수와 척을 지고 자신과 함께하겠다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 그 이유를 물어볼 수도 없고.
스윽.
한명수가 드디어 먼저 움직였다.
하지만 저 인간은 직접 나서지 않을 것이다. 저 인간이 나서는 시점은 두 사람의 힘이 다 빠진 다음일 것이다.
끄덕.
한명수가 김태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충견은 김태진이었다.
김태진이 눈짓을 보내자 조금 전 김일수에게 길을 터줬던 녀석들의 움직임이 다시 빨라졌다.
굳이 말이 필요 없었다.
그만큼 평상시에 훈련이 돼 있었다는 얘기다.
현성의 눈빛도 조금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허!
현성의 입에서 헛바람이 나왔다.
김태진의 손에는 어느새 각목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야, 이 새끼들 중학생 맞아?”
“긴장해라!”
김일수의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였다.
일촉즉발 (一觸卽發).
뇌관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탁. 탁. 탁…….
“음……, 이건 또 뭐야?”
어디선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만 들어서는 영락없이 어린아이의 발소리였다.
현성의 동공이 흔들린 건 그때였다.
“오빠아~~~.”
“너는 또 왜…….”
서인혜였다.
타다닥.
공터로 들어선 서인혜는 바로 현성 앞으로 달려왔다.
“오빠 괜찮아?”
“야, 네가 여길 왜 와?”
“괜찮냐고? 어디 다친 데 없어? 어디 봐.”
서인혜는 현성의 온몸을 손으로 훑으며 안전을 확인했다.
그러자 현성이 그런 서인혜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괜찮아. 근데 네가 여길 어떻게 알고 왔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진짜 오빠 괜찮은 거지? 어디 다친 데 없는 거지?”
한결같은 서인혜였다.
어째 분위기가 갑자기 이상하게 돌아갔다.
조금 전까지도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한명수의 마지막 신호로 이미 안전핀마저 제거된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서인혜의 등장으로 분위기는 삽시간에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이 자리를 준비한 한명수조차도 말이다.
그런데 그때 한 사람이 움직였다.
저벅!
움직인 건 김일수였다.
김일수의 발걸음이 한명수를 향했다.
한명수 앞에서 걸음을 멈춘 김일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럿 피 보지 말고 두 사람이 끝내라.”
“그 말은…….”
“그래, 너 한명수와 김현성 두 사람이다. 마침 당사자도 와 있으니 이 자리에서 사내새끼답게 깔끔하게 끝내라. 너 깔끔한 거 좋아하잖아?”
피식.
김일수는 속으로 웃었다.
평상시라면 절대 통하지 않을 방법이다.
누구보다도 한명수를 잘 안다. 어차피 이 자식한테 명분은 필요 없다. 오로지 실리만을 추구하는 놈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자 앞에서까지 명분을 저버린다는 건, 결코 쉽지 않으리란 게 김일수의 판단이었다.
그것도 자기가 좋아하는 서인혜 앞에서는 특히 더 말이다.
김일수는 현성을 바라봤다.
물론 1:1 구도를 만든 이유는 현성의 실력을 믿기 때문이다. 당해봤기에 누구보다도 현성의 실력을 잘 알고 있다.
적어도 한명수한테만큼은 지지 않으리란 게 김일수의 판단이었다.
김일수는 현성을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의외의 반전이다.
역시 곰은 재주를 부릴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최악의 상황에서 말 몇 마디로 판을 뒤집어버린 김일수다.
많은 녀석들을 상대로 설사 이겼다 치더라도 마지막 관문은 어차피 한명수다. 운이 좋아 거기까지 간다고 하더라도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아무리 동체 시력이 뛰어나다 해도 그땐 이미 동체 시력이 아니라 동태 시력이 돼 있을 게 빤하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선 절대로 한명수를 이길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수고를 덜고 마지막 관문으로 바로 직행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얼마든지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기회는 김일수가 만들어 줬다.
그렇다면 이제 그 기회를 살리는 건 현성 자신의 몫이라는 얘기다.
현성은 한명수를 바라봤다.
표정이 가관이다. 똥을 씹으면 저런 표정이 나올까 싶은 얼굴이었다.
김일수의 말을 무시했다면 저런 표정이 나올 리가 없다. 김일수의 재주가 먹혔다는 얘기다.
현성이 한명수를 향해 한 발을 막 떼려 할 때였다.
짝!
누군가 등짝을 후려갈겼다.
그리고 바로 째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미쳤어?”
돌아보니 서인혜가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너 진짜…….”
“오빠 바보야? 저 새끼 깡패잖아. 그런 놈하고 지금 싸우겠다는 거야? 오빠가 깡패야?”
물론 아니지. 하지만 이 상황에 어쩌라고. 난들 이러고 싶어서 이렇겠냐고 말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중딩하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
덥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