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85)
회귀해서 건물주-85화(85/740)
“우어억!”
괴기한 소리를 내며 한명수가 무릎을 잡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때였다.
“꺄악!”
갑자기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가 공터에 울려 퍼졌다.
휙!
그와 동시에 곰 한 마리가 몸을 날렸고, 곧이어 누군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스윽.
현성은 뒤를 돌아보았다.
바닥엔 아까 각목을 들고 서 있던 김태진이 눈을 까뒤집고 쓰러져 있었다.
서인혜가 비명을 지르고 김일수가 동시에 몸을 날렸고, 그리고 김태진이 쓰러지기까지 불과 1,2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조금 전이었다.
한명수가 니킥을 날리기 직전 왼손을 잠시 들었었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 한 사람을 빼고는 말이다.
김태진은 한명수가 왼손을 드는 순간 현성 뒤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곤 양손으로 각목을 단단히 틀어쥐었다.
한명수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는 순간 대신 마무리를 하기 위함이었다.
항상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한명수가 선택하는 방법이었다.
차선(次善).
하지만 김태진은 성공할 수 없었다.
각목을 휘두르려는 순간 이미 김일수의 주먹이 김태진 자신의 턱에 먼저 닿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양아치 새끼들이!”
김일수는 바닥에 뒹구는 한명수와 김태진을 바라보며 일갈을 날렸다.
그런 김일수를 현성은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김일수가 조금만 늦었더라도 바닥에 뒹구는 건 김태진이 아니라 현성 자신이었을 것이다.
뒤에서 누군가 공격하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 했었다.
“괜찮냐?”
현성이 묻자 김일수는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곤 턱으로 반대편을 가리켰다.
현성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서인혜가 멍하니 서서 울고만 있었다.
아마도 많이 놀란 듯했다.
저벅.
현성이 다가가자 서인혜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오빠…….”
“놀랬지?”
“…….”
말 대신 눈물로 대답하는 서인혜였다.
낮에 계란말이를 전해주며 오늘부턴 말을 놓겠다던 맹랑한 16살 서인혜가 아니었다. 파르르 떨고 있는 그녀의 어깨가 지금의 심정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다.
톡톡.
서인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거로 위로의 말을 대신하는 현성이었다.
잠시 후.
슈퍼 앞 파라솔 아래 자리를 잡은 세 사람.
“이거 마셔.”
현성은 빨대를 꽂은 사이다병을 서인혜에게 내밀었다.
“헤헤, 고마워 오빠!”
어느새 미소를 되찾은 서인혜였다.
현성은 이번엔 김일수에게 사이다를 내밀었다.
“마셔.”
“어!”
“근데 어떻게 알았냐?”
현성은 지금 조금 전에 김태진이 현성 자신을 뒤에서 공격하리란 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는 것이다.
김일수가 짧게 대답했다.
“습관이야.”“습관?”
“어, 여러 놈들과 싸울 때는 앞에 있는 놈보다 뒤에 있는 놈이 더 무섭거든.”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김일수의 말이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다. 눈에 보이는 놈들이야 어떤 식으로든 대처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정말 치명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수다.
한명수를 믿었었다. 1:1 구도로 각이 잡히면서 당연히 그렇게 전개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한명수는 차선의 방법을 이미 준비했던 것이다.
명분, 명예?
역시, 그런 건 영화에서나 있는 거였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을 놓치지 않았던 김일수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성은 김일수를 보며 말했다.
“고맙다. 오늘은 네 덕분에 내가 살았다. 역시 싸움도 해본 놈이 다르긴 다르구나.”
“별소릴…….”
“별소리가 아니고 진짜 고맙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뭐 도와줄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 은혜는 갚아야 하지 않겠냐?”
“…….”
잠시 말이 없던 김일수가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다.
현성 자신과 싸운 후부터는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던 김일수다. 그런 그가 웃는다는 건 그만큼 심리적으로 평온을 되찾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 김일수를 보며 현성이 다시 물었다.
“뭐야? 김일수, 그 웃음의 의미는?”
“이렇게 우리가 나란히 앉아서 이런 얘기를 나눈다는 게 웃겨서 말이야.”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네.”
사실 현성도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악연이라 생각했었고 전생에서 받았던 고통을 돌려주고 싶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막상 집에 찾아갔을 때 김일수 할머니도 보고, 조금씩 상대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그 마음이 조금씩 옅어진 건 사실이다.
그리고 어찌 됐건 오늘 일을 겪고 나니 그동안 김일수에게 가지고 있던 나쁜 감정마저 완전히 사라진 듯했다.
같이 있으면서도 불편하거나 싫지 않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현성은 김일수를 보며 갑자기 무엇이 생각난 듯 물었다.
“참! 할머니 허리는 좀 어떠셔?”
“요즘은 또 괜찮아. 무리하시면 가끔 그러시더라고.”
“그래도 다행이네.”
“저기…….”
김일수는 무슨 말을 하려다 멈췄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물었다.
“뭔데 말을 하다가 말아?”
“그게 말이야……, 오늘 우리 집에 안 갈래?”
김일수는 어렵게 말을 이었다.
의외였다.
김일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곤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현성은 물었다.
“너희 집? 왜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은 아니고, 오늘이 우리 할머니 생신이거든.”
“할머니 생신?”
김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성은 궁금한 게 있었다.
물론, 할머니 생신에 가는 거야 어렵지 않다. 언뜻 이해가 안 가는 건 그걸 김일수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한다는 것이다.
할머니 생신에 친구를 부른다는 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기 때문이다.
현성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김일수가 먼저 말을 이었다.
“할머니가 네 얘기를 하시더라고.”
“할머니가?”“응. 두유를 드실 때마다 그 학생 언제 한번 집에 데리고 오라고 말이야. 밥 한 끼 먹이고 싶다고 말이야.”
“밥…….”
밥이란 말에 현성은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밥이란 그 말 한마디에 할머니의 마음이 다 담겨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자. 가서 할머니랑 밥 먹자. 생신 축하도 해드리고.”
“할머니가 좋아하시겠네.”
김일수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때였다.
“오빠!”
옆에서 사이다를 먹던 서인혜가 발끈했다.
“왜, 사이다 한 병 더 줘?”
“내가 무슨 사이다 귀신인 줄 알아? 진짜 너무 하는 거 아냐?”
“왜 그러는데?”
“입에다 사이다 한 병 물려놓고 이렇게 방치해도 되는 거냐고? 나한테는 말도 한마디 안 하고 둘이서만 얘기하더니, 이젠 뭐, 집으로 밥 먹으러 간다고?”
현성은 그런 서인혜를 보며 빙긋 웃었다.
작은 입으로 투덜대는 모습이 나름 귀여웠기 때문이다.
그러자 가만히 있을 서인혜가 아니었다.
“웃지 마. 기분 나쁘니까. 자꾸 이러면 우리 애들 확 푸는 수가 있어.”
“얘들?”
“그래, 내가 어떻게 오빠가 공터에 간 걸 알았겠어? 내 정보력 무시하지 마.”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그거였다.
서인혜가 어떻게 알고 공터로 달려올 수 있었는지 그게 의문이긴 했었다.
그런데 지금 서인혜는 정보력이라고 했다. 그 말은 한두 사람이 아니라는 얘긴데, 얼핏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조금 전에는 ‘우리 애들’이란 말까지 썼다.
그 말은…….
“인혜야, 혹시 너도 조직 있니?”
말하고 나서도 부끄러운 건 현성의 몫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신이 생각해도 유치했기 때문이다.
그때 서인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비밀. 하여튼 그러니까 앞으론 신경 좀 씁시다. 네? 오빠.”
“…….”
신경 좀 쓰란다.
할 말이 없는 현성이었다.
그렇다고 거기다 더 묻는다는 것도 나이 먹고 할 짓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사람.
현성은 이번엔 김일수를 바라봤다.
궁금하기로 따지자면 김일수가 한 수 위였다. 김일수 같은 경우엔 뛰지도 않았었다. 마치 지켜보다 시간 맞춰 오듯이 정확한 타이밍에 나타나지 않았던가 말이다.
현성은 김일수를 보며 물었다.
“너는 어떻게 된 거야?”
현성이 묻자 김일수는 대답 대신 씨익 웃고 말았다.
오늘 점심시간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찾아왔다길래 나가보니 잔디파에서 자신을 유독 따르던 후배 녀석이었다.
오늘 수업 끝나고 공터에서 거사가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대상은 현성이었다.
이유를 물어 보니 서인혜라는 여학생 때문이라고 했다.
솔직히 처음에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곳에 간다는 것은 스스로가 잔디파의 불문율을 깨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민이 길었지만 가기로 선택한 이유는 현성 때문에 자신의 삶에도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우선은 감자밭을 지킬 수 있었다. 만약 현성이 그때 최민영에 대해서 얘기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쯤이면 감자밭은 벌써 날아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혈육이라곤 하나밖에 없는 할머닌데, 만약 잘못 됐더라면 그 충격에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아주 오래 전에 가졌던 꿈도 요즘 들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에게 변화를 만들어준 게 현성이었다.
잔디파의 불문율보다 현성이 중요한 이유였다.
김일수가 현성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나도 비밀.”
“에라이…….”
현성은 욕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킥킥.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서인혜가 결국 웃음을 터드리고 말았다. 그러자 김일수도 현성을 바라보며 놀리듯 웃고 말았다.
현성은 어이가 없었지만 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알고 그 시간에 공터로 달려왔는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이 두 사람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서인혜가 자리에서 발딱 일어났다.
“오빠, 나 그만 갈래.”
“어? 그래. 조심해서 가고…….”
“조심해서 가고?”
“응. 왜?”
현성은 서인혜를 바라봤다.
그러자 갑자기 서인혜의 눈매가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터미널까지 안 바래다 줄 거야?”
“내가?”
“그럼 여기 곰 오빠한테 부탁할까?”
“누구……?”
현성은 서인혜가 가리키는 김일수를 바라봤다. 그러자 사이다를 먹던 김일수의 눈빛이 묘하게 변하는가 싶더니 입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휙.
그 모습을 본 현성이 막 돌아설 때였다.
푸우!
김일수의 입이 먼저 열렸다.
들어간 게 많으니 당연히 나오는 것도 많을 수밖에.
졸지에 사이다 파편에 희생양이 된 두 사람.
가만히 있을 서인혜가 아니었다.
“곰 오빠, 앞으로 사이다는 빨대로 조금씩 먹어. 알았죠?”
“어!”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대답을 잊지 않는 김일수였다. 그런데 이상한 건 서인혜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었다.
자고로 시선이 머무는 곳에 마음도 머문다고 했다.
피식.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은 웃고 말았다.
그리곤 김일수를 불렀다.
“야!”
“어…, 왜?”
“부지런히 재주 부려봐.”
“미친……, 무슨 헛소리야?”
애써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김일수를 보며 현성은 웃음밖에 안 나왔다.
혹시 아는가.
곰이 재주를 부리면 여우도 넘어갈지.
***
서인혜를 터미널에 데려다주고 현성은 가게로 향했다.
물론 김일수와 함께.
가게 앞에 도착하니 가게 문은 닫혀 있었다.
시계를 보니 설비업자 유민철과 약속한 시간은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다행히도 가게 앞은 예전과 달리 상당히 밝았다.
간판 때문이었다.
스윽.
현성은 고개를 들어 정면 간판을 바라봤다.
– 사나이 울리는 씬라면
현성이 선택한 간판은 앞으로 농씸에서 대대적으로 광고할 광고 문구를 그대로 옮겨 적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씬라면? 이게 무슨 라면이야?”
그럴 때마다 현성은 웃으며 ‘이제 곧 나올 겁니다’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멀지도 않았다.
이제 몇 주 내로 TV에서 대대적으로 광고를 시작할 것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
현성은 열쇠로 잠긴 자물쇠를 열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에 있던 김일수가 현성의 어깨를 잡았다.
“야! 너 남의 가게에서 뭐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