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86)
회귀해서 건물주-86화(86/740)
툭.
현성은 어깨에서 김일수의 손을 털어내며 말했다.
“야, 너 진짜 곰이냐?”
“이 자식이…….”
“생각해 봐. 너는 남의 가게 들어가면서 열쇠로 문 열고 들어가니?”
“그러니까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인마, 여기 내 가게다. 내 사업장이라고. 아직도 모르겠냐? 이 곰탱아.”
“이 자식이 진짜…….”
김일수는 말을 다 하지 못했다.
현성의 다음 행동 때문이었다.
이미 현성은 가게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헐!
상식적으로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딸깍.
현성은 들어가자마자 불부터 켰다.
그리곤 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예전에 있던 주방을 없애고 나니 안채로 향하는 동선(動線)이 확실히 제대로 각이 나왔다.
처음엔 비용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부분이다. 하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과감하게 결정했던 것인데 역시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성은 다시 오늘 마감한 주방 바닥을 확인했다.
우선적으로 신경을 썼던 부분은 하수 배관이었다. 처음부터 굵은 거로 해야 나중에라도 편하기에 설비업자한테 특별히 부탁했던 부분이다.
그리고 하는 김에 수도 배관까지 바닥으로 깔았다. 그 덕분인지 주방이 훨씬 깔끔해졌다.
“좋네.”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 중얼거릴 때였다.
“야!”
김일수가 다가오며 현성을 불렀다.
현성이 바라보자 김일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진짜야?”
“왜, 신기하냐?”
“말이 안 되잖아. 고등학생이 무슨 가게야? 학교는 어떡하고? 그리고 네가 뭘 할 줄 안다고? 이게 말이 돼?”
평상시답지 않게 김일수의 말이 길어졌다.
그만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일 테고.
당연한 반응이다.
어차피 시간이 약이다. 아무리 지금 얘기해봤자 입만 아플 뿐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럴 땐 그저 뒤로 잠시 미루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현성은 김일수를 보며 말했다.
“일수야, 일단 두고 봐. 몇 주 남지도 않았으니까 그때 보면 알 거야.”
절레절레.
김일수는 말 대신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현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나가자. 할머니 기다리시겠다.”
“어? 그, 그래.”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김일수였다.
밖으로 나온 현성이 다시 가게 문을 잠그고 막 발을 떼려 할 때였다.
“저기……, 저건 뭐야?”
김일수가 현성을 붙잡았다.
현성이 돌아보자 김일수는 간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면 말이지?”
“신라면? 저런 라면이 있었냐?”
“없지. 아직까지는.”
“그 말은…….”
“응, 이제 곧 나올 거야. 광고도 TV에서 빵빵하게 틀어 줄 테고 말이야.”
대답하는 현성을 바라보던 김일수가 피식 웃고 말았다.
“야, 김현성. 너 머리 아픈 거 아니지?”
“자식, 끝까지 못 믿겠다 이거지? 하긴…….”
쩝.
현성도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까 한바탕 한 탓에 배도 고팠고.
현성은 서둘러 골목을 빠져 나갔다.
골목을 벗어난 현성은 슈퍼로 향했다.
슈퍼로 들어가자 뒤따라오던 김일수가 물었다.
“여긴 왜?”
“할머니 생신이라며? 빈손으로 갈 순 없지 않겠냐?”
“하여간 가지가지해요.”
현성은 두유와 초코파이를 사서 계산한 후 슈퍼를 나왔다.
슈퍼를 나오자 김일수가 또 물었다.
“초코파이는 왜?”
“가보면 알아. 그리고 너 오늘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내가 뭘?”
“잠시도 가만히 안 있잖아. 너 평상시하고 너무 다른 거 알아?”
김일수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말했다.
“너, 아까 사이다 뿜을 때부터 이상하긴 했어.”
“뭔 소리야?”
“인혜를 바라보는 눈빛이 만만치 않았다고. 내 말이 틀려?”
“뭐? ……미친놈.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와. 저기 버스 오네.”
그때 완행버스가 두 사람을 향해 오고 있었다.
버스에 먼저 올라탄 김일수는 맨 뒷자리로 가서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현성의 시선을 피하기라도 하려는 듯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김일수를 보며 현성은 피식 웃으며 반대편 창가 쪽에 앉았다.
“야!”
현성은 김일수를 낮게 불렀다.
그러자 김일수가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바라본 현성은 입을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발그레한 김일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웃음이 터지고 만 것이다.
그런 현성을 보며 김일수가 인상을 썼지만, 그럴 수록에 현성의 손은 입을 더욱 세게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김일수는 얼굴을 양손으로 비볐다.
분명히 현성이 놀리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숨길 수가 없었다.
현성의 말이 사실이다.
서인혜를 생각하면 자꾸 얼굴에 열이 난다.
이런 기분은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이다.
속이 간질간질한 거 같아 긁어도 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 이상한 기분은 더욱 깊이 가슴 속으로 숨어 버리는 듯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느낌이 싫지 않다는 거다.
‘이게 그건가…….’
얼마 후.
집에 도착한 김일수는 마당에 들어서자 할머니 신유복을 큰 소리로 불렀다.
“할머니!”
벌컥.
김일수의 목소리가 나자마자 방문이 열리며 신유복이 김일수를 반겼다.
“아이고, 내 새끼!”
“할머니, 현성이 데리고 왔어. 할머니가 매일 두유 학생이라고 부르던 얘 말이야.”
“아아, 그 두유 학생.”
현성은 웃으며 신유복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어서 와, 두유 학생. 이렇게 또 보니 반갑네.”
“저도요, 할머니. 그리고 오늘 생신이라면서요? 생신 축하드립니다. 할머니!”
현성은 두유 박스를 신유복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신유복은 부끄럽다는 듯 살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뭐 이런 걸 또……, 하여간 매번 고마우이.”
“별말씀을요. 제가 다음번에 올 때는 고기 사 올 게요. 그땐 여기 마당에서 고기 파티해요. 할머니.”
“그러지 마.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김일수가 끼어들며 말을 이었다.
“할머니, 글쎄 이 자식이 식당을 한다고 그러는데 할머니는 어떻게 생각해?”
“뭐를 한다고?”
“라면 전문점을 한다는 거야, 글쎄. 그게 말이 되냐고. 안 그래? 할머니.”
“호호, 그거 재밌겠네. 학생들이 라면 좋아하니까 학생만 많으면 그것도 괜찮겠는데…….”
신유복의 답변에 현성과 김일수는 서로 눈을 마주했다.
김일수의 표정은 일그러졌고, 현성은 웃으며 신유복의 말을 받았다.
“그죠? 할머니. 괜찮을 거 같죠?”
“그럼! 학생이라고 공부만 하란 법이 어디 있나? 더군다나 일반 식당도 아니고 라면만 끓일 거 같으면 해볼 만 할 거 같은데…….”
신유복의 대답에 할 말이 없어진 김일수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부엌으로 향했다.
그런 김일수의 뒷모습을 보며 현성은 빙긋 웃고 말았다.
그때였다.
덥석.
김일수의 할머니 신유복이 현성의 손을 잡고는 끌다시피 방으로 들어갔다.
영문을 모르는 현성은 자리에 앉자마자 신유복에게 급히 물었다.
“할머니, 왜요?”
“너무 고마워서 말이야.”
언뜻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단순하게 오늘 다시 찾아온 것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닌 듯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왜, 저번에 학생이 처음 왔던 날 말이야, 그날 학생이…….”
신유복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이었다.
그러니까 현성이 김일수네 집에 처음으로 왔을 때였다. 김일수와 감자밭에서 얘기를 끝낸 후, 집으로 돌아가기 전이었다.
현성은 바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김일수의 할머니인 신유복을 한 번 더 보고 갔다.
그러면서 그때 했던 말이 만약에 김일수가 학교에 안 가거든 할머니가 직접 나서 달라고 부탁했었다.
다른 사람 말은 안 들어도 할머니인 신유복의 말만큼은 들을 것이란 게 현성의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 김일수에겐 통했던 것이다.
신유복의 설명이 끝나자 현성이 물었다.
“눈물까지 보이셨단 말입니까?”
“일부러 흘린 것도 아니고, 말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그냥 나오더구먼…….”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김일수의 마음을 움직인 건 할머니인 신유복의 눈물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손주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신유복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드르륵.
그때, 방문이 열리면서 김일수가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밥상에 둘러앉은 세 사람.
“잠깐만…….”
현성은 밥상에다 초코파이를 층층이 수북하게 쌓았다. 그리곤 맨 위 초코파이에는 성냥개비 두 개를 꽂았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일수가 물었다.
“초코파이 산 이유가 이거였냐?”
“꿩 대신 닭이라고, 케이크가 없으니 이것으로라도 대신 해야지 않겠냐.”
시골이라 제과점도 없는 곳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초코파이 케이크였다.
“자식,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냐? 어쨌든 고맙다. 그런데 성냥개비는 왜 두 개야?”
김일수의 질문에 현성은 피식 웃었다.
솔직히 몇 개를 꽂을지 잠시 고민했었다. 그렇다고 실제 나이대로 성냥개비를 꽂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거의 폭발 수준일 것이 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시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두 개였다.
현성은 신유복을 보며 말했다.
“할머니, 아직 마음은 20대죠? 그죠 할머니?”
현성의 말에 신유복이 웃으며 말했다.
“호호, 어찌 알았누? 마음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하더니, 진짜 그런가 보네. 비록 주름은 이렇게 깊게 파였지만 마음만은 우리 일수 외할아버지 만났을 때, 그 마음 그대로 라니까.”
신유복은 약간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자 김일수가 현성을 보며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하여간…….”
현성은 김일수를 보며 말 대신 턱으로 초코파이를 가리켰다.
다음은 알아서 진행하라는 의미였다.
그러자 김일수도 눈치를 챈 듯 할머니 신유복을 보며 말했다.
“할머니, 여기다 불붙이면 얼른 소원 빌고 불 꺼. 성냥이라 빨리 꺼지니까 소원 너무 길게 빌면 안 돼. 알았지?”
평상시엔 보지 못했던 김일수의 세심함이었다.
그러자 할머니 신유복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려, 소원이야 하나밖에 없으니까 금방 끝날 거여.”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할머니 신유복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그 모습이 마치 언젠가 사진으로 봤던 기도하는 소녀상을 보는 듯했다.
비록 초코파이 위에 성냥개비 앞이지만, 기도하는 그 간절함 만큼은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였지만 현성과 김일수는 축하 노래까지 부르며 할머니 신유복의 생일을 축하했다.
칠순을 넘긴 할머니와 그의 손자 18살의 소년.
어찌 보면 아이들 소꿉장난같이 유치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즐거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현성 또한 어느 때보다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슈퍼에서 초코파이를 사면서도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건 현성의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거다.
잠시 후.
김일수가 할머니 신유복을 보며 말했다.
“할머니, 이제 어서 저녁 드세요.”
“그래, 고맙다. 내 새끼. 그리고 두유 학생도 정말 고맙네.”
신유복은 한 번 더 현성을 바라보며 미소를 잊지 않았다.
그때 김일수가 현성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 미역국 먹어 봐. 나름대로 끓인다고 끓였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뭐? 네가 끓였다고?”
현성은 황당할 뿐이었다.
당연히 할머니 신유복이 끓인 줄 알았다. 그저 단순히 데워서 들고 들어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직접 끓였다니, 귀로 직접 들으면서도 쉽게 믿어지지 않는 말이었다.
현성은 김일수의 손을 바라봤다.
저 곰 같은 투박한 손으로 요리를 했다고 생각하니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현성은 다시 물었다.
“그럼 혹시 여기 있는 이 반찬들도…….”
김일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
현성은 헛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이 녀석은 곰이 맞다. 그것도 재주를 아주 잘 부리는 곰 말이다.
미역국은 그렇다 쳐도 계란말이며 감자볶음도 그렇고 두부조림까지.
어떻게 보면 평범한 반찬들이지만, 그 걸 모두 김일수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특별한 요리를 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