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87)
회귀해서 건물주-87화(87/740)
츄릅.
현성은 먼저 미역국부터 맛을 봤다.
“음…….”
첫 맛은 고소함이었다. 아마도 참기름에 미역을 먼저 볶은 듯했다. 미리 볶지 않고서는 이런 고소한 맛이 나올 수 없다.
그다음 느껴지는 맛은 깊은 맛이었다.
현성은 김일수를 보며 물었다.
“혹시 육수 따로 냈냐?”
“육수는 무슨……, 쌀뜨물로 끓였지.”
어쩐지 국물이 뽀얗다 싶었다. 역시 미역국은 쌀뜨물로 끊이면 맛이 깊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아내 윤지수도 미역국이라도 끓이는 날이면 밥을 좀 많이 했었다. 쌀뜨물을 받기 위함이었다.
그때 옆에 있던 할머니 신유복이 현성을 보며 말했다.
“우리 일수가 이젠 이 할미보다도 요리를 더 잘한다니까. 어려서부터 내가 뭐만 만들면 그거 어떻게 만드느냐고 꼭 묻고는 하더니, 어느 날 부터는 직접 만들기 시작하더라고.”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반찬들을 맛보기 시작했다.
먼저 감자볶음부터 시작해서 두부조림 그리고 계란말이까지 맛을 봤다.
현성은 김일수를 바라봤다.
그러자 김일수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왜, 이상해?”
“아니…….”
현성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아내 윤지수한테는 미안하지만 김일수가 만든 반찬이 더 맛있었다. 아내 윤지수의 음식 솜씨도 보통은 넘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김일수가 만든 것에 비하면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똑같은 재료로 만드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게 손맛이라는 건가?’
현성은 다시 한 번 김일수의 손을 바라봤다.
허!
투박한 저 손에서 이 반찬들이 나왔다고 생각하니 그저 헛웃음밖에 안 나오는 현성이었다. 그렇다고 어디서 요리를 배운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김일수한테 이런 재주가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었다.
‘그렇다면…….’
현성의 머릿속에 한 가지 흥미로운 생각이 뇌리를 파고드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괜찮겠네.’
현성은 어느 정도 식사를 끝내자 김일수를 보며 물었다.
“혹시 말인데……, 요리하는 거 좋아하냐?”
“거창하게 요리는 무슨…, 그냥 대충하는 거지.”
“어쨌든 좋아하냐고?”
“뭐 특별히 싫지는 않아. 그냥 대충 느낌대로 만들고 그러는데, 할머니가 좋아하시니까 그걸로 만족해.”
대충?
느낌대로?
‘요놈 봐라.’
그게 바로 타고난 감각이란 것을 현성은 알고 있다.
배워서 하는 것과 타고난 감각으로 요리를 한다는 것은 시작부터 다르다.
흔한 말로 재료만 있으면 배우지 않아도 감으로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맛은 기본 이상을 전제로 한다.
현성은 김일수를 바라봤다.
덩치도 그만하면 풍채도 있고, 그 머리 위에 길쭉한 하얀 모자를 씌워놔도 제법 잘 어울릴 듯했다.
타고난 감각이 있다는 얘기는 방향만 잘 잡아주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음…….’
의외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오늘 눈앞에서 일어났다.
하긴,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전생에서야 김일수와 엮일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어떡하든 피하고 싶었던 녀석이었으니까 말이다. 악연이라 생각했었으니까.
저녁을 먹은 후, 두 사람은 김일수 방으로 들어왔다.
엄청난 변화다.
현성 자신이 김일수 방에 함께 있을 줄 어디 상상이나 했겠는가.
김일수의 방은 깔끔했다.
조금은 의외였다. 이래서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된다는 걸 순간적으로 다시 깨닫게 되는 현성이었다.
한쪽 벽에 옷장 비슷한 게 하나 있었고, 그 반대쪽에는 책상이 하나 놓여 있는 게 다였다.
이불은 윗목에 나란히 개켜져 있었다.
“하하, 하하하…….”
그런데 그 모습을 본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그건 다름 아닌 이불을 개켜놓은 각 때문이었다. 마치 군대에 있을 때 모포를 개켜놓은 모습을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현성은 김일수를 보며 말했다.
“야, 너 군 생활은 잘하겠다. 그나저나 저 이불 각은 왜 잡은 거야?”
“좋잖아.”
그걸로 김일수의 대답은 끝이었다.
성향(性向)이라는 얘기다. 다른 이유 없이 그래야 마음이 흡족하다는 의미다.
“다행이네.”
“뭐가?”
“그런 게 있다.”
“싱겁기는…….”
현성은 순간 주방이 더러워질 걱정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방의 생명은 처음부터 끝가지 청결이니 말이다.
그리고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현성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따로 있었다.
창가쪽에 자리 잡은 화분 두 개였다.
흔히 말하는 분재(盆栽). 두 개 다 소나무였다.
현성은 김일수를 보며 물었다.
“이 화분들은 뭐냐?”
“보다시피!”
김일수의 대답에 왠지 이상한 감정이 느껴졌다. 뭐라 딱 꼬집어 말하기는 뭐하지만 그냥 단순하게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현성은 다시 물었다.
“분재에 언제부터 관심이 있던 거야?”
“중학교 때부터…….”
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답하는 김일수의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조금 전엔 혹시 잘못 느낀 건 아닌가 싶었는데, 역시 뭔가 있는 게 분명한 듯싶었다.
그렇다고 그 이유를 묻기엔 또 아닌 듯하여 화제를 살짝 돌렸다.
“혹시 자웅동주(雌雄同株)라는 말 아냐?”
“자웅동주? 그게 무슨 말이야?”
“이 소나무처럼 암꽃과 수꽃이 한 그루에 피는 걸 자웅동주라고 한다고 하더라.”
“그래? 처음 알았네.”
김일수는 현성을 힐긋 바라봤다. 요즘 들어 볼 때마다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만 해도 세 번째다.
첫 번째는 라면 가게였다. 처음엔 믿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이해가 안 가는 건 여전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할머니의 초코파이 케이크였다.
어찌 보면 유치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중요한 건 할머니가 너무도 즐거워하신다는 거였다.
그런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 신기할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소나무에 대한 현성의 설명이다.
5년째 소나무를 키우고 있었지만 암수가 같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열심히 햇볕 쬐어주고 비 오는 날이면 밖에 내놓고 비를 맞히면서 애지중지 키우기만 했었다.
그때, 현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소나무의 특성 중 아주 중요한 게 있는데, 그게 뭔지 알아?”
“뭐가 또 있는 거야?”
“소나무는 암수가 같이 있지만 수꽃이 다 지고 나야 암꽃이 핀다는 거야. 그 이유가 뭐 일 거 같아?”
“글쎄…….”
김일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김일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현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쉽게 얘기하면 근친상간은 안 한다는 거지. 즉, 암꽃이 늦게 피는 이유는 다른 나무의 송홧가루와 수정하기 위해서라는 거야. 그래서 소나무마다 꽃 피는 시기가 다르대. 말 못 하는 식물인데도 보다 우수한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한 방법이라는 거야. 신기하지 않냐?”
현성이 소나무 분재에 관심을 가진 때는 아내 윤지수를 만나고 그다음 해부터였다.
윤지수는 꽃을 좋아했었다.
그래서 특히 봄이면 화원에 자주 찾아가곤 했었다.
그때 현성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각종 분재였다. 그중에서도 현성은 소나무 분재를 좋아했었다.
그때 화원 사장한테 이것저것 많이 배웠었다.
김일수는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의외다. 네가 소나무에 대해서 이렇게 박식하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그건 그렇고 이 나무 모양은 네가 다 잡은 거야?”
“응. 그냥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이 또한 타고난 감각이라는 얘기다.
요리에 이어 소나무 분재까지.
의외로 비슷한 구석이 많은 김일수를 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현성이었다.
분재에 대한 사연은 분명히 있기는 한 거 같은데,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윽.
현성은 고개를 슬쩍 돌렸다.
‘음?’
그때 책상 위에 작은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흑백으로 찍힌 가족사진이었다.
현성은 김일수를 보며 물었다.
“너야?”
“응, 3살 때 찍은 사진이래. 그 옆에는 엄마 아빠고.”
“어머니가 예쁘셨네. 아버지도 멋지시고. 그런데 지금은 어디…….”
아차!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저번에 감자밭에서 부모님 얘기가 잠깐 나왔을 때도 민감했던 김일수였다.
현성은 바로 말했다.
“아, 미안 나도 모르게…….”
“…….”
잠시 생각하던 김일수가 입을 열었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이었어.”
“졸업식 날?”
“응, 졸업식에 꼭 오신다고 했는데 안 오시는 거야.”“어디 멀리 계셨던 거야?”
“서울 홍제동, 처음엔 급하게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했지. 그런데 …….”
김일수는 자신의 얘기를 말하기 시작했다.
엄마 아버지는 한동네에 살던 동갑내기라고 했다.
그때 나이가 열일곱.
물론 그때는 그 나이에도 결혼을 하는 사람도 가끔 있었기에 그게 문제 될 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 아버지는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고 했다.
흔히 얘기하는 불장난.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던 것일까?
두 사람은 김일수가 태어나고 세 살이 되던 해에 어느 날 가족사진과 함께 편지 한 통을 남긴 채 떠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자신은 외할머니 손에 컸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서울 올라가고 1년 만에 새벽에 출근하다가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그 후론 엄마 혼자 공장 다니면서 생활비를 보내왔다고 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빠 없는 것 빼고는 그런대로 잘 살아왔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졸업식 전날에 야근하고 퇴근하는 새벽길에 어머니도 아버지처럼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CCTV도 거의 없는 시기라 범인은 당연히 찾지도 못했다고 했다.
졸업식 날 온다던 어머니를 졸업식을 마친 그다음 날 병원에 가서 주검으로 확인했다고 했다.
김일수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때부터였어.”
“……?”
“엄청나게 먹기 시작했지. 3개월 만에 20kg 늘었고. 그때부터 친구들이 뚱보라고 놀리기 시작하더라.”
“…….”
그러고 보니 현성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듯했다. 아마도 김일수가 변한 건 중2 겨울 방학이 막 끝난 후였을 것이다.
갑자기 방학 전보다 20cm는 키가 커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더니 그동안 자신을 놀리던 친구들을 패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자 어느새 김일수는 누구도 건들 수 없는 괴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젠 오히려 보상심리인지 모르겠지만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