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88)
회귀해서 건물주-88화(88/740)
김일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게 2년을 당하다가 2학기 겨울 방학을 시작하면서 키가 확 큰 거야.”
“그때부터 네가 변했지.”“기억하는구나.”
“다는 아니고 대충……, 그런데 말이다…….”
얘기를 하다 보니 은근히 화가 나는 현성이었다.
현성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얘들을 괴롭힌 거야? 누구보다도 그 고통을 잘 아는 놈이 말이야.”
“두려웠거든.”
“뭐가?”
“옛날로 돌아갈까 봐. 내가 다른 녀석들보다 성장이 빨랐을 뿐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렇게 되면 다른 녀석들도 금방 또 클 테고 말이야.”
“그래서 그게 두려워서 아예 친구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김일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라, 이 나쁜 새끼야. 그게 지금 네가 한 짓에 대해 정당화될 거라고 생각해?”
“그땐 그게 옳다고 생각했어.”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 못 할 말은 아니었다. 어쩌면 당해봤기에 느낄 수 있는 공포감 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되돌아갈까 봐 두려웠을 것이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친구를 괴롭힌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거다. 잘못된 건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돼서는 안 되는 거다.
현성은 김일수를 보며 물었다.
“지금은?”
“후회하지. 그게 잘못 된 판단이었다는 걸 요즘에서야 깨달았어. 너를 보면서 말이야.”
“뭐?”
“진짜 강함이 뭔지를 말이야. 약자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보살피고 지켜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허! 이 새끼…….”
현성은 할 말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라도 그게 잘못 됐다는 걸 깨달았다니 말이다.
물론 과거의 잘못에 대해선 친구들한테 어떤 식으로든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몰랐다면 모를까, 이젠 그게 잘못 됐다는 걸 깨달았다니 스스로 용서를 구할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면 될 것이고.
잠시 후.
현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일수야, 부모님 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얘기해줘서 고맙다.”
“나도 남한테 엄마 아빠 얘기하기는 이번이 처음인데, 막상 너한테 얘기하고 나니까 오히려 속이 후련하다.”
“그러면 다행이고, 그리고 이런 말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뭐든 억지로 숨기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그럴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다.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할게.”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일수를 바라봤다. 김일수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하다가 누가 먼저일 것도 없이 주먹을 가볍게 맞댔다.
***
다음 날.
현성과 김일수가 학교 정문 앞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저것들 뭐냐?”
현성이 말하자 김일수가 그의 말을 받았다.
“저 새끼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나 본데.”
“글쎄, 그건 또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두 놈밖에 없잖아.”
정문에는 어제 공원에서 한 판 붙었던 한명수와 김태진이 서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가관도 아니었다.
한명수는 목발에 깁스까지 한 상태였고, 김태진은 한쪽 턱이 시커멓게 멍들어 있었다.
꾸벅.
현성과 김일수가 정문에 도착하자 두 녀석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허리를 굽혔다.
스윽.
김일수가 먼저 두 사람 앞으로 걸어갔다.
“뭐냐?”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한명수가 김일수를 향해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어제 노병이라고 비아냥대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명수가 급하게 다시 말을 이었다.
“형님, 죄송하지만 현성 형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현성이한테?”
“네, 그렇습니다.”
김일수는 무슨 상황인지 충분히 예상되는 순간이었다. 아마도 틀림없이 조직을 부탁할 것이다. 전에 자신한테 했듯이 말이다.
현성이야 그런데 취미가 없으니 당연히 거절할 테고
그렇다고 현성을 대신해서 자신이 결정할 수는 없는 문제다. 어디까지나 이제 서열 1위는 누가 뭐라 해도 현성이니까 말이다.
김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명수와 김태진이 현성 앞으로 다가갔다.
꾸벅.
“형님!”
“형님!”
한명수와 김태진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꿈틀.
현성의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눈치를 챘던 것일까?
현성이 입을 열기 전에 한명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형님, 잠깐이면 됩니다. 저쪽으로 저희와 함께 잠시 가주시겠습니까?”
저쪽이라 하면 공터를 말하는 것일 테고, 이유야 빤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거절한다 해도 한 번으로 끝낼 녀석들도 아니다.
귀찮게 생겼다.
이런 건 딱 질색인데, 어차피 지금 해결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매일 등굣길이 피곤할 건 빤한 일이고.
그렇다면…….
“앞장서라.”
“네, 형님.”
현성은 한명수와 김태진의 뒤를 따랐다.
‘이게 아닌데…….’
그 뒤를 따르는 김일수는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분명히 현성이 거절할 줄 알았는데 자신의 예상이 빗나가자 김일수는 황당했던 것이다.
잠시 후.
“헐!”
공터에 도착한 현성은 한 번 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은 인원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명이냐?”
“저희까지 총 30명입니다.”
현성이 묻자 한명수가 바로 답했다.
“이게 다야?”
“네, 각 학년별로 10명씩, 총 30명이 저희 잔디파 소속입니다.”
벅벅.
현성은 머리를 긁었다. 어쩌다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아침부터 이게 얘들 데리고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현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할 말이 뭐야?”
대충 예상은 했지만 모른 척 물을 수밖에 없었다.
현성의 말이 끝나자 한명수가 김태진을 보며 눈짓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태진이 오른손을 슬쩍 올렸다가 내렸다.
그러자 갑자기 군무가 펼쳐졌다.
척!
척 척 척…….
맨 앞줄부터 무릎을 꿇기 시작하자 뒷줄에 있던 녀석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척! 척!
한명수와 김태진이 마지막으로 무릎을 꿇었다.
휴우!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일수는 깊은 한숨과 함께 등을 돌렸다. 1년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다음 수준은 한명수가 조직을 맡아 달라고 청할 것이다. 물론 조건도 함께 제시할 것이다. 그 조건이야 일진 자리를 빼앗기는 순간……. 안 들어도 빤할 테고.
그런데 이 상황이 지금 이해가 안 되는 건 현성의 태도다. 당연히 정문에서 거절할 줄 알았다. 이 상황 자체가 만들어지면 안 되는 거였다.
김일수가 등을 돌린 이유다.
그때였다.
역시나 예상대로 한명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 저희 조직을 맡아주십시오.”
“내가 잔디파를?”
“네, 형님. 대신, 한 가지 조건이…….”
한명수는 중간에서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현성이 먼저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잠깐!”
“네, 형님. 말씀하십시오.”
“한명수!”
“네, 형님!”
“내 조건이 먼저 아닌가?”
“네?”
한명수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지금 현성은 분명히 자신의 조건이 먼저라고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변수다.
현성이 먼저 조건을 내세우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었다.
그때 현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내 조건이 먼저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형님의 조, 조건 말입니까?”
“그게 맞는 거지. 누가 아쉬운지는 네가 더 잘 알 테고.”
“그거야 …….”
한명수는 순간 할 말이 없었다. 현성의 말대로 지금 아쉬운 사람은 누가 봐도 자신이기 때문이다.
현성이 다시 말했다.
“어떡할래?”
한명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저 현성의 조건이 어렵지 않은 것이길 기대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네, 말씀하십시오.”
말을 하면서도 한명수는 입이 바짝 마르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꿀꺽.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꽤나 크게 들렸다. 그런데 그 소리의 주인공은 한명수가 아니었다.
조금 전에 등을 돌렸던 김일수의 목구멍에서 나온 소리였다.
그러자 모든 시선이 김일수한테 쏠렸지만, 김일수의 관심사는 이미 다른데 있었기에 그들의 눈총은 얼마든지 무지할 수 있었다.
그때, 현성이 손가락 두 개를 펴며 입을 열었다.
“내 조건은 딱 두 가지다.”
“네?”
한 가지도 아니고 두 가지란다.
한명수의 눈이 더욱 초롱초롱해지는 순간이었다.
현성이 다시 말했다.
“첫째는 호칭에서 ‘형님’은 앞으로 쓰지 말 것.”
“네? TV나 영화에서 보면…….”
현성이 다시 손을 들었다. 그러자 한명수는 바로 하던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우린 TV속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우린 단지 학생이다. 시답잖게 어른들 흉내나 내는 그런 짓은 하지 말자. 그리고 조건이 하나 더 늘었다.”
“네? 갑자기 왜요?”
“너 때문에, 둘째는 토 달지 말 것. 까라면 그냥 까면 된다. 한명수 특히 너.”
“…….”
입 닫으라는 얘기다.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입을 닫을 수밖에 없는 한명수였다.
그때 현성이 다시 말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공부다.”
“혀…, 아니, 선배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한명수, 중간고사 이제 얼마나 남았지?”
한명수는 옆에 있는 김태진을 잽싸게 바라봤다. 그러자 김태진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공부에 관심이 없으니 시험 기간을 알 리가 없었다.
현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앞으로 한 달하고 1주일 뒤다. 그때까지 잔디파 전원은 지금 성적에서 더도 말고 딱 5등씩만 올린다. 그게 내 마지막 조건이다.”
“서…, 선배님? 이건 말이 안 되는데요.”
“해보긴 했고?”
“우리가 어떻게 5등씩이나…….”
한명수는 생각할수록 황당했다. 이건 처음부터 잔디파를 맡을 생각이 없었다는 거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조건을 내세울 수 있단 말인가 말이다.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건 한명수뿐만이 아니었다. 무릎을 꿇고 있던 다른 녀석들도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좌우로 젓고 있었다.
하지만 딱 한사람, 한명수 옆에 있는 김태진만은 그렇지 않았다.
당연히 군계일학.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현성이 김태진을 보며 물었다.
“어때 가능하겠냐?”
“5명만 재끼면 되는 거죠?”
“간단하지?”
“간단한 건 아닌데, 잔디파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못 할 것도 없죠.”
찌릿.
한명수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김태진을 보며 주먹을 흔들었다.
딱.
현성의 손바닥이 한명수의 이마를 내리쳤다.
“야, 한명수 내 두 번째 조건이 뭐야?”
“토 달지 말 것…….”
“지켜라. 그리고 특별히 너는 5등이 아니라 10등이다.”
“네? 왜 저만…….”
“이 자식아, 조직을 이끄는 놈이 모범을 보여야 할 거 아니야. 이것으로 내 조건은 끝이다. 질문은 안 받는다. 중간고사 끝나고 보자.”
발길을 떼려던 현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한명수, 조건이 어렵냐?”
“다른 건 괜찮은데 공부는…….”
“그럼 하지 마. 그럼 간단하잖아. 너와 나 더는 엮일 일도 없을 테고 말이야. 안 그래?”
‘아! 씨불 개새끼!’
한명수는 속으로 욕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는 처음부터 잔디파를 맡을 생각이 없었다는 게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현성과 김일수가 떠나고.
웅성웅성.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듯했다.
그 중심에는 김태진이 있었다.
“야, 5명만 재끼면 된다잖아.”
“5명, 잘하면…….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가능할 것도 같지 않냐?”
“그렇게만 되면 현성 형님이 잔디파로 온다는 거잖아. 와~~!”
딱!
한명수가 김태진의 이마를 후려갈겼다.
“형님이라 부르지 말라잖아. 흉내 내는 거 싫다잖아. 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