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9)
회귀해서 건물주-9화(9/740)
저벅.
천천히 한발을 떼자 손끝에 침대가 닿았다. 역시 투박한 느낌이 손끝을 타고 전달됐다.
탁탁.
손바닥으로 침대 바닥을 두드리자 딱딱한 촉감이 그대로 온몸으로 느껴졌다.
쿠션?
그런 거 없다. 당연히 매트리스도 없다.
맞다.
나무 침대다.
중학교 입학 선물로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준 것이다.
현성은 어려서 TV에 나오는 침대가 그렇게 가지고 싶었다. 물론 그 당시엔 침대를 가진 친구들도 없었다. 유별나게 혼자 침대에 집착했었다.
중학교 입학하기 전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각목이 하나씩 집 마당에 싸이기 시작했다.
2주쯤 지났을까.
일요일이었는데, 아버지는 어디서 커다란 합판을 들고 들어왔다.
뚝딱뚝딱.
현성은 그제야 알았다. 아버지가 지금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를 말이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마당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느낌이었다.
“아버지!”
현성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다 주셨는데······.
왜 항상 받은 게 없다고만 생각했을까?
정작 현성 자신은 아버지를 위해서 무었을 했는가?
절레절레.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 있게 떠오르는 게 없었다.
픽.
현성은 헛웃음이 나왔다.
“앞으로 잘해라!”
묘한 표정으로 현성은 중얼거렸다.
이제는 안다.
지난 후에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말이다.
있을 때,
할 수 있을 때,
미루지 말고 해야 된다는 것을 말이다.
현성은 아주 오랜만에 아버지가 만들어준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음! 역시 좋네!”
모처럼 느껴보는 편안함이었다. 딱딱한데도 이상하게 전혀 딱딱한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두꺼운 매트리스 침대보다도 촉감이 부드러웠다.
그래서였을까.
현성은 그대로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
“뭐야?”
눈을 뜬 현성은 잠시 멍했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엔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모처럼 단잠에 푹 파진 듯했다.
거울을 보니 옷도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였다.
불도 그대로 켜져 있었다.
“아! 집이었지.”
조금 시간이 지나자 정신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7시가 채 안 된 시간이었다.
웅성웅성.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현성은 무슨 소린가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 아니, 어쩌자는 거야?
– 형님, 죄송합니다. 이달 말일까지는 어떡하든 꼭 해결하겠습니다.
– 필요 없고, 여기 각서에 도장이나 찍어.
대충 들어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방에서 밖의 대화를 듣던 현성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저 회귀에 취해있던 현성에게 현실은 바로 이런 거라고 경고하는 듯했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이 정도였나?’
어렵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상한 건, 지금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 상황이 현성의 기억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아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유야 간단했다.
전생에서는 지금 이 시간에 현성은 집에 없었던 것이다. 친구 이정우와 강릉 경포대에 있을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전생에서는 물에 빠졌다가 겨우 살아났음에도 그대로 여행 일정을 다 채우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이 현성의 머릿속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던 것이다.
잠깐!
지금 밖에서 일방적으로 퍼붓고 있는 저 인간, 그런데 누구더라······.
“아!”
박희철이다.
현성은 기억에서 박희철의 기억을 찾아냈다.
다름 아닌 윗마을에 사는 사채업자다. 그렇다고 정식 대부업자도 아니고,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이자 놀이를 하는 자다.
물론 이 마을뿐만이 아니라 홍천 군내에 구석구석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던 자다.
이자?
당연히 상상을 초월했다. 남의 눈에서 말 그대로 피눈물을 뽑는 그런 인간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박희철의 악질적인 운용 행태는 실로 대단했었다. 복리이자는 기본이고 날짜를 어기는 날에는 각서라는 족쇄를 들이밀며 집에서 키우던 가축들까지 끌고 갔던 인간말종(人間末種)이었다.
엄연히 불법이지만, 그 불법이 통하던 시대였다.
가난이 죄라는 이유로 감히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이다.
– 형님, 이달 말까지만······.
사정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자꾸 귓가로 파고들었다.
“미치겠네.”
한참을 듣던 현성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이대로 있을 순 없다.
그렇다고 화가 난다고 해서 애처럼 지금 밖으로 나가본들 아버지한테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오히려 아버지를 더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그럴 순 없었다.
아버지의 자존심, 최소한 그건 지켜 드리는 게 자식의 도리다.
그렇다면······.
찾아야 한다. 어떡하든 돈을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버지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해서 이유 불문하고 찾아내야 한다. 여기서 찾지 못하면 전생의 암울한 생활은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찌 됐건 30년이 넘는 세월을 거꾸로 되돌아왔는데 설마 아무것도 없지는 않지 않겠는가 말이다.
현성은 기억을 뒤지기 시작했다.
찾자!
아니, 찾아야만 한다!
분명 뭔가 있을 거다. 현성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번쩍.
현성의 눈이 떠졌다. 그런 그의 입꼬리가 양쪽으로 살짝 올라갔다.
“그래! 그거다!”
군대를 막 제대했을 때였다.
노느니 염불한다고 동네 형인 김민수를 따라 산에 간 적이 있었다.
김민수는 현성보다는 여덟 살이 많았다.
초등학교 졸업하고는 바로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약초를 캐기 시작했던 약초꾼이다.
시대적으로 시골에선 그런 경우가 흔했던 때다.
그날은 김민수가 작정하고 깊은 산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보통 한 번 들어가면 일주일은 기본이라고 했다.
현성은 그때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자청해서 따라나섰었다.
일주일이 되던 날이었다.
김민수는 드디어 찾아내고야 말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현성이 먼저 발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현성은 정확히 산삼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몰랐다.
물론 TV에서 본 적은 있었다.
산삼을 찾던 중에 산삼 비슷한 것을 현성이 먼저 발견했다. 그래서 바로 김민수를 불러 확인한 결과, 산삼이 맞다는 결론이었다.
그것도 한두 뿌리가 아닌 자그마치 여덟 뿌리. 흔히 얘기하는 산삼 군락지를 발견한 것이다.
“맞아, 그래!”
기억을 뒤지던 현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물론 앞으로 몇 년 후에나 일어날 일이지만, 산삼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어차피 산삼은 틀림없이 그곳에 있을 것이다.
불끈!
현성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됐다!”
현성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도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그때, 김민수는 현성을 불러 삼겹살을 실컷 먹으라며 사 줬었다. 진짜 실컷 먹었다. 배탈이 날 정도로.
이틀 후, 김민수는 산삼을 팔러 서울로 올라갔다.
현성으로서도 당연히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산삼을 먼저 발견했으니 최소한 50%는 당연히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현성이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성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현성이 모르는 게 있었다.
돈 앞에서 상식 같은 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김민수가 서울로 떠나고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처음엔 설마 했었다.
무슨 일이 생겼겠지.
내일은 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기다렸다.
한 달이 지났다.
김민수는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의 집으로 찾아갔지만, 집에서도 연락이 안 된다는 소리만 들었다.
또 한 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났다.
김민수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돌아온 건, 3년 후였다.
막말로 그지 새끼가 돼서 돌아온 것이다.
현성과 김민수, 두 사람 관계도 그 후론 볼일이 없었다.
빙긋!
현성의 입가에 저절로 웃음꽃이 만개하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돌고 도는 게 인생사(人生事)라지만, 세상을 거꾸로 돌아와서 이렇게 입장이 바뀔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말이다.
“민수 형, 이번엔 내 차례네.”
현성의 한쪽 입꼬리가 심하게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탁!
현성은 있는 힘껏 방문을 세게 밀어젖혔다. 미닫이문이라 문 열리는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 당연히 시선이 집중될 줄 알았다.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박희철에 대한 분노였다.
어쩌면 세상을 향한 포효였다.
‘뭐야?’
아무도 그런 현성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현 상황이 심각하다는 얘기였다.
‘이게 아닌데······.’
그렇다고 티를 낼 수도 없고, 멋쩍어진 현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조용히 아버지 옆으로 다가갔다.
아버지는 여전히 사채업자 박희철한테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그게 싫으면 갚으라고, 갚으면 어차피 이 종이는 휴지 조각 아닌가?”
“그렇지만······.”
“나, 바쁘니까 읽어봤으면, 여기에다 얼른 도장이나 찍어.”
아버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박희철이 내민 종이를 들고 있었다. 그게 뭔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아마도 각서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별 의미도 없는 것인데, 아버지가 그걸 알 리 없었다.
파르르.
각서를 쥐고 있는 아버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당장이라도 박희철의 면상을 후려갈기고 싶었다.
순간적으로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전생의 기억에서 이미 이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자, 아무리 어른이라 해도 인간 대우를 해주고 싶지 않았다.
현성은 아버지가 들고 있던 종이를 슬쩍 옆에서 봤다. 역시나 맨 위에 ‘각서’라고 적혀 있었다.
안 봐도 대충 내용은 짐작이 갔다.
스윽.
현성은 아버지가 들고 있는 각서를 낚아채듯 손에 쥐었다.
“아버지 잠깐만요.”
“어?”
아버지는 현성의 돌출행동에 순간 놀랐다. 그렇지 않아도 혹시나 깰까 봐 마음이 불안 불안했었다.
결코,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비가 돼서 이런 모습을 자식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조금 전에도 방에서 나오는 것도 애써 모른 체했었다.
가난이 죄다.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아버지였다.
반면, 현성은 아버지로부터 건네받은 각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어나갔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허!”
각서를 다 읽은 현성의 입에서 어이없다는 듯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스윽.
현성은 박희철을 노려봤다.
예의?
지나가는 개한테나 줘버려라.
이미 전생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다. 그렇다면 더 두고 볼 것도 없다.
깐다.
깔 땐 사정없이 까야 뒤탈이 없다.
하지만 까는 데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상대를 봐 가면서.
지금 박희철의 가장 약한 곳, 그곳을 찾아야 한다. 찍소리도 못할 곳······.
‘어딜까?’
잠깐 생각하던 현성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래!’
현성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절로 묻어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두려울 게 없는 박희철의 기세는 여전히 하늘을 찔렀다.
어린 현성이라고 해서 봐줄 그런 위인이 아니었다.
박희철이 눈을 치켜뜨며 현성을 바라봤다.
“뭐 하는 짓이야?”
“아저씨는요?”
“머, 뭐라고?”
박희철의 커다란 눈알이 금방이라도 앞으로 ‘툭’ 튀어나올 판이었다.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항상 그래왔듯이 대충 도장만 받아 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곤 한 달 후에 와서 각서대로 송아지만 끌고 가면 되는 거였다.
아무 하자가 없는 방법이었다. 늘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