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92)
회귀해서 건물주-92화(92/740)
일요일 아침.
아침부터 유독 바쁜 한 사람이 있었다.
“당신 왜 그래요?”
“내가 뭘…….”
아버지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괜히 분주한 척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람을 정신없게 만드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이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였다.
오늘 아침만 해도 부엌에 벌써 몇 번째 들락날락하는지 모른다.
어머니가 그런 아버지를 보며 물었다.
“그렇게 좋아요?”
“왜, 티 많이 나는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나가서 거울 한 번 확인해 봐요. 연애할 때도 멀쩡하던 사람이 아들하고 낚시 간다고 하니까 얼굴까지 벌게지면서, 내가 참 어이가 없어서…….”
그렇다.
아버지는 오늘 현성과 낚시를 하러 가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아침부터 혼자 그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근데 이 녀석은 아직도 자는가?”
“자긴요? 벌써 일어나 아침 운동 갔지요. 일요일이면 원래 더 바쁜 얘잖아요.”“그랬는가?”
아버지가 부엌을 막 나가려 하자 어머니가 아버지를 불렀다.
“이거 먹고 나가요?”
“뭔데?”
“뭐긴 뭐에요? 특식이지. 오늘 아들하고 고기 많이 잡으라고…….”
어머니는 밥공기에 날계란을 깨 넣고는 참기름 한 방울과 소금을 약간 친 다음 아버지한테 내밀었다.
어머니가 가족들한테 가끔 주는 특식이다.
계란도 귀하던 시기다. 집에서 닭을 키우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계란을 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도 모았다가 장날이면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후루룩!
맛있게 밥공기를 비우는 아버지였다.
그 시각.
후후!
현성은 저수지 둑에서 달리고 있었다.
평일에는 학교까지 자전거 타는 거로 운동을 대신 하지만 일요일이면 이곳 저수지 둑에 와서 달리기를 한다.
둑 길이만 해도 500m가 넘는다. 길이도 길이지만 잔디가 심어져 있기에 달리기에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이 둑도 지금은 이렇게 조용하지만, 훗날에는 이곳도 주말이면 텐트족들로 몸살을 앓게 된다.
전생에서는 달리고 싶어도 달리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이를 먹으면서부터는 심장까지 약해져서 더욱 더 운동을 할 수 없었다.
회귀해서 가장 좋았던 것이 마음껏 달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후후!
왕복 네 번째다. 거리로 따지면 4km.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호흡은 아직 일정했다. 그만큼 건강하다는 방증이다.
이토록 현성이 기초 체력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생에서 이미 겪어봤기에 그 소중함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현성이었다.
단순히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경험에서 얻은 소중함의 가치는 확실히 달랐다.
현성이 오늘도 힘차게 달리는 이유다.
현성이 저수지에서 내려와 집에 거의 다 왔을 때였다.
“안녕하세요?”
“운동하고 오냐?”
“네, 이장님.”
마을 이장 최민석이었다. 그러고 보면 인물은 인물이었다. 지금은 비록 마을 이장이지만 앞으로 22년 뒤에는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영예(榮譽)를 안게 되는 사람이다.
그가 당선되던 2008년 4월, 그날은 그 개인만의 영예가 아니라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말 그대로 개천에서 용이 난 것이다.
최민석이 현성을 보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낮에 집으로 찾아가려고 했는데 잘 만났구나.”
“네? 저를 말입니까?”
“그래.”
얼핏 생각해도 최민석이 자신을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한 현성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신데요?”
“박 회장님 때문에 말이야.”
“박 회장님이라면 혹시 박희철 아저씨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저씨?”
최민석의 입장에서는 현성이 박희철을 보고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나 보다. 왜냐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그를 회장님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현성이 다시 말했다.
“네, 저는 그렇게……, 그런데 그 아저씨하고 저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고 저를…….”
“그래, 부르는 거야 네 마음이니까. 혹시 박 회장님이 마을에 기부했다는 얘기는 들었지?”
어째 얘기가 점점 산으로 가고 있었다.
얼핏 생각해도 박희철이 기부한 것과 자신과는 교점이 있을 게 없다. 물론 현성이 죽을 운명을 바꿔주면서 박희철이 한 행동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얘기를 최민석한테까지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얘기를 자신한테 한다는 얘기는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것일 것이다.
현성이 최민석을 보며 말했다.
“그 얘기는 저도 들었습니다만.”
“그래서 말인데, 박 회장님이 글쎄 말이야, …….”
최민석은 현성을 보며 박희철이 한 말을 세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박희철이 마을에 오백만 원을 기부했다고 했다.
의외였다.
처음 소문으로 기부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많아야 백만 원쯤일 것이라 예상했었다.
이때 지방 국립대 등록금이 30만 원 정도였다. 그렇단 얘기는 백만 원이란 금액도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박희철은 오백만 원을 기부한 것이다.
단순하게 죽을 운명이 바뀌었다고 해서 흔쾌히 기부할 금액은 아니란 얘기다. 더군다나 현성이 알고 있는 박희철이라면 그 기대치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다.
그런데 박희철은 현성의 예상과는 다르게 행동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현성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어쩌면 박희철은 현성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그릇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물론, 종지인지 사발인지는 앞으로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최민석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말은 길었지만, 요지(要旨)는 하나였다.
마을 잔치를 하기에는 금액이 너무 많다는 것이고, 그래서 박희철한테 어떻게 사용했으면 좋겠냐고 물으니, 그 사용처는 현성 자신과 논의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최민석의 설명을 다 들은 현성은 황당할 뿐이었다.
‘왜?’
‘왜’라는 한 글자만이 머릿속에서 뱅뱅 돌았다.
“…….”
말없이 잠깐 고민을 하던 현성이 최민석을 보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미안하지만 그건 나도 동감일세. 그런데 중요한 건 그 말을 틀림없이 박 회장님이 직접 했다는 것일세.”
휴우!
현성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런 고민은 살면서 또 처음이다. 내 돈도 아니고 남의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는 자체가 웃기는 일이었다.
차라리 내 돈이라면 고민이 적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돈 같은 경우에는 어느 개인의 돈도 아니고 마을 공동의 돈이다. 그 말은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 얘기다.
현성의 고민이 더욱더 깊어지는 이유다.
현성은 최민석을 보며 물었다.
“혹시 따로 생각한 방법이 있으십니까?”
현성은 우선 최민석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러자 최민석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네.”
역시 최민석도 고민이 많다는 얘기다.
현성은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바로 결정할 문제는 아닌 거 같고, 앞으로 좀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지가 않네.”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이제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는가?”“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추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궁금한 현성이었다.
최민석이 다시 말했다.
“마을 잔치를 하면서 마을 사람들한테 앞으로의 계획을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네.”
“아아, 네…….”
“적어도 다음 주말까지는 결론이 나와야 할 거 같네. 그래서 말인데, 대충이라도 뭐 생각나는 거 없겠나?”
“대충이라도 말입니까?”
“일단 방향만이라도 잡으면 그다음부턴 쉬울 거 같아서 말이야.”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뭐든 방향이 중요하다. 방법이야 방향만 정해진다면 크게 어려울 것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현성의 머릿속에 의문이 하나 들었다.
“저기 뭐하나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럼, 당연하지.”
“혹시 이 문제를 이번 추석 때까지 마을 사람들한테 보고해야 한다고 박 씨 아저씨가 시킨 겁니까?”
“그, 그건 아니고, 내가 그냥 그래야 할 거 같아서…….”
최민석이 너무 시간에 쫓기길래 혹시나 박희철이 시킨 줄 알았다. 만약 그랬다면 현성은 더 이상은 협조할 생각이 없었다.
그건 기본이 안 돼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부는 말 그대로 기부다. 기부를 했다고 해서 어떤 권리가 있는 건 아니다. 만약 기부를 하고 어떤 권리를 주장한다면 그건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순수한 기부가 아니란 거다.
그런데 다행히도 박희철은 그러지 않았다.
결국, 최민석이 혼자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문제는 시간에 쫓겨 결론을 내서는 안 되는 문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마을 사람들의 의견이다.
그 과정이 빠진다면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문제의 소지(素地)는 있게 마련이다.
현성은 최민석을 보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제 생각에는 보고 시점을 이번 추석이 아니라 연말로 미루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연말로 말인가?”
“네, 이 문제는 서두를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마을 사람들의 의견일 테니 말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의견이라…….”
최민석은 현성의 말을 곱씹었다.
아무래도 실수를 한 듯하다.
빨리 마무리하고 싶었다. 보란 듯이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올해 처음으로 이장이 되면서 생각했던 부분이 일 처리 하는 데 있어서 신속이었다.
그전에 보면 무슨 일을 하더라도 너무 늦은 게 늘 불만이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출사표를 냈던 것이고, 운 좋게 30대 중반이란 어린 나이에 이장으로 당선됐다.
옛 속담에,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다. 자신이 지금 딱 그 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모든 과정을 건너뛰려 했었다.
생각해 보니 그 시간 또한 누구도 강요한 사람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임의대로 그렇게 정했던 것이고, 그 시간 안에 갇힌 것도 자기 자신이었다.
최민석이 현성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과정을 밟아나가자는 거지?”
“이 문제만큼은 속도보다도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속도보다 과정이라……, 그 말이 정답인 거 같네. 생각해 보니 이번 일은 내가 실수를 할 뻔했네.”
최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현성이 다시 물었다.
“혹시 마을 잔치 계획은 다 세우셨는지요?”
“물론이지. 내가 그것 때문에 밤잠을 며칠이나 잠 못 잤는지 아는가?”
“그것도 그럼 혹시 혼자서…….”
“내가 했지.”
아니길 바랐는데 최민석의 대답은 너무나 간결했다.
현성은 그의 대답에 어이가 없었다.
역시 나이 탓인가 싶었다. 박민석은 올해 아마 30대 중반을 갓 넘겼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좋게 말하면 의욕이 넘치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철모르는 망아지라는 느낌밖에 없었다.
물론 악의가 없다는 건 잘 안다.
그때 최민석이 말했다.
“혹시 계획안 좀 볼 텐가?”
“네? 지금 말입니까?”
“정식으로 다 만든 건 아니고 메모 형식으로 정리한 건데 보기엔 아무 지장이 없을 걸세.”
최민석은 자랑하듯 현성에게 서류봉투 안에서 종이 세 장을 꺼내 내밀었다.
종이에 빼곡히 적힌 메모만 보더라도 최민석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총 3부로 행사는 구성돼 있었다.
누가 봐도 무난한 행사 진행이었다.
어디 흠잡을 데도 없고, 특히 음식에 신경을 많이 쓴 듯했다.
단, 아쉬움이 있다면 그 모든 걸 최민석 혼자서 몇 날 며칠을 고생했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일하는 스타일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서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또 어떤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있다.
최민석은 전자인 듯했다. 물론 일장일단은 있을 것이고, 어느 방법이 더 낫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현성이 최민석에게 종이를 돌려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