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95)
회귀해서 건물주-95화(95/740)
95
며칠 후.
수업을 마친 현성은 교장실로 향했다.
오늘 학교 정문에서 설문 조사한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설문 조사 방법은 간단했다. 메모지에 교장에게 바라는 내용을 하나씩 적어서 준비된 종이 상자에 넣으면 되는 것이었다.
의외로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학생들이 설문에 적극적이자 가장 좋아했던 사람은 아무래도 교장 박상현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교장 박상현은 걱정이 많았었다. 혹시라도 학생들의 반응이 미온적일 경우엔 처음부터 하지 않으니만 못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우려했던 일은 없었다.
똑똑.
현성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교장 박상현이 반가운 목소리로 현성을 반겼다.
“현성 군, 어서 오게!”
“네,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 어떻게 결과는 나왔습니까?”
궁금하기는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교장 박상현에게 먼저 제의를 했던 사람이 현성 자신이다 보니 궁금한 건 당연했다.
교장 박상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왔네. 나오긴 나왔는데 말이야, 그 1위가……, 허허.”
교장 박상현은 말을 하다 말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 말은 뭔가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는 얘기일 터.
현성은 교장 박상현을 보며 바로 물었다.
“왜요? 뭐가 이상한 게 나왔습니까?”
현성은 당연히 화장실 문제일 거라 예상했었다. 토요일 HR 시간에도 보면 학생들의 건의사항 중 1순위는 단연코 화장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장 박상현의 웃는 모습으로 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나온 듯싶었다.
“그 전에 내가 하나 먼저 물어도 되겠는가?”
“네, 무슨…….”
“아침 조회 시간에 말이야, 내 말이 그렇게 지루하게 들렸는가?”
“네? 그건 또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얼핏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교장 박상현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메모지 한 장을 현성에게 내밀었다.
풉!
메모지를 확인하던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터진 웃음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현성은 겨우 웃음을 멈춘 후 교장 박상현에게 물었다.
“이게 지금 설문 결과 1위라는 말씀인가요?”
“그렇다니까. 오죽하면 내가 자네한테 먼저 물어봤겠는가.”
“정말 저로서도 뜻밖인데요.”
현성이 들고 있는 메모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조회시간에 훈화말씀이 너무 길어요.
최소한 일주일에 두 번은 학교 운동장에서 전체 조회를 한다. 월요일과 금요일, 거기다 특별한 경우에는 중간에 추가될 때도 있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교장 선생의 훈화 시간이다.
그러고 보니 현성도 생각이 났다.
솔직히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는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5분이 지나고 나면 그때부터는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현성은 메모지를 다시 한 번 더 확인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그때, 교장 박상현이 다시 물었다.
“자네 생각도 같은가?”
“외람되지만, 그게…….”
“됐네. 그 정도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네. 굳이 확인 사살까지 받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현성의 말을 중간에서 끊는 교장 박상현이었다.
현성은 그런 그를 살짝 바라봤다.
평상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교장 박상현이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화가 나거나 실망스런 표정은 아니었다. 그저 몰랐던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교장 박상현이 다시 현성을 보며 물었다.
“그 정도였는가?”
아무래도 인정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이럴 땐 적당한 위로도 나쁘지 않다는 게 현성의 생각이었다.
“제 생각엔 꼭 교장 선생님한테만 드리는 말씀은 아닌 거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10년을 넘게 들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무슨 말인들 좋게 들리겠습니까?”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그리고 이제 고1이면 10년, 더군다나 고3이면 12년째인데 어느 누가 지겹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지금…….”
“네, 누적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듣고 있다고 생각해 보시면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누적효과라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누적효과라……, 허! 참, 그럴듯하네, 그려.”
책임분산.
교장 박상현의 표정이 한결 나아진 듯 보였다. 그만큼 어깨가 가벼워졌으리라.
이제 마무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현성은 다시 말을 이었다.
“교장 선생님한테는 오히려 잘 되신 거 같은데요?”
“잘 되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십 년 묵은 체증을 한 방에 해결할 기회를 얻는 거 아니겠습니까?”
“나보고 생색이라도 내란 말인가?”
현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거라는 게 현성의 판단이었다.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기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한테도 좋고, 교장 선생님한테 도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성의 말에 교장 박상현이 웃으며 말했다.
“결국, 자네도 내 말이 별로 영양가 없이 괜한 잔소리로만 들렸다는 거지?”
“뭐 꼭 그렇다는 건…….”
“됐네, 이 사람아. 무슨 말인지 알았으니까 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결하는 거로 하겠네. 자네 말처럼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현성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솔직히 짧으면 20분, 어떤 때는 30분 이상씩 이건 도저히 아니었다. 특히 여름날이면 그 고통은 더 했던 게 사실이다.
어떤 경우엔 그 시간을 못 버티고 쓰러지는 학생들도 있었으니 오죽했겠는가 말이다. 웃기는 건 쓰러지는 학생들을 보면서도 계속해서 말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아닌 건 아닌 거다.
듣고 보니 학생들이 왜 1순위로 이것을 선택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현성이 다시 물었다.
“그럼, 2위는 무엇입니까?”
“화장실.”
역시 화장실 문제가 바로 나왔다. 이거야말로 가장 급한 게 사실이다. 학교 측에서도 분명히 알고 있는 문제일 테고 여러 번 위에 보고도 했을 것이다.
전생에서도 보면 앞으로 5년 뒤에나 가능했던 얘기다.
문제는 역시 돈, 예산이 내려오기 전에는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교장 박상현의 얼굴이 조금 전과는 다르게 어두워져 있었다.
돈 앞에 장사 없다는 얘기다.
교장 박상현이 힘없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문제는…….”
“…….”
현성도 할 말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말이 없는 두 사람.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르고,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교장 박상현을 바라봤다.
교장의 표정도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그냥 없던 일로 하기에는 참여해준 학생들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교장 선생은 모르겠지만 현성의 경우엔 어느 정도 예상도 했던 부분이지 않은가.
뻔히 예상을 했으면서도 설문을 진행했었다.
만약 이게 1위로 나왔다면 어쩔 뻔했는가 말이다. 설문을 해놓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한 것밖에 안 된다.
실수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전교생을 상대로 이건 사기극이나 마찬가지인 거다.
시작 전에 충분히 예상을 했으면서도 무책임하게 그대로 진행을 했다. 단순하게 예산을 핑계로 변명을 늘어놓기에는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인 거다.
“저……, 교장 선생님.”
현성은 조심스럽게 교장 박상현을 불렀다.
“어? 그, 그래. 무슨 일인가?”
“제가 아무래도 큰 실수를 저지른 거 같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
“솔직히 저는 …….”
현성은 처음부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교장 박상현한테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성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교장 박상현의 표정은 더욱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설명이 끝나자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 쪽으로 가서 밖을 내다보는 교장 박상현이었다.
아무래도 큰 실수를 한 듯싶어 뭐라 할 말도 없는 현성으로서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가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계속 앉아 있자니 그것도 못 할 짓이었다.
그때 교장 박상현이 발길을 돌려 현성 앞으로 걸어왔다.
“김현성 학생.”
“네, 교장 선생님.”
“실은 말이야……, 나도 마찬가질세.”
“네?”
현성은 순간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때 교장 박상현이 다시 말했다.
“나도 자네가 처음 설문을 제안할 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말일세.”
“그 말씀은…….”
“그렇다네. 나라고 왜 모르고 있었겠는가? 보고를 받아도 몇 번씩이나 받았고 예산도 여러 번 요구도 해봤지.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건 보류라는 답변이었네.”
“아, 네.”
하긴, 화장실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교장 박상현이 자신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최종 결재권자인데 당연할 것이다.
교장 박상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실수라면 내가 더 큰 실수를 저지른 셈이지. 자네야 어디까지나 나를 위해서 제안을 했을 뿐이고 말이네. 안 그런가?”
일반적인 경우라면 지금 교장이 하는 말이 맞다. 어차피 현성은 제안을 했을 뿐이고, 그 설문을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은 교장 박상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일반적인 경우에 현성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장으로서야 현성이 그저 일반 학생과 같아 보이겠지만, 정작 본인 당사자인 현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눈 딱 감고 그냥 지나가면 그만이다.
누가 뭐라 그럴 사람도 없고, 누구도 현성의 탓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성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엔 양심에서 스스로가 인정이 안 된다는 것이다.
양심(良心).
어떤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씨.
눈으론 보이진 않지만, 그 사람의 인성을 구성하는 그 양심이란 것이 현성의 마음을 그대로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성이 말했다.
“물론 그렇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게 전혀 책임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의를 하기 전에 이미 예상을 했었으니까 말입니다.”
교장 박상현은 현성을 힐끗 바라봤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잘못될 경우 어떡하든 그 책임으로부터 빠져나가려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현성은 그와 반대로 괜찮다고 하는데도 자꾸 그 책임의 중심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모습이 낯설게 보이는 건 당연했다.
“자네도 참…….”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이대로 그냥 넘어가기엔 친구들한테도 그렇고 후배나 선배들한테도 너무 미안해서 말입니다.”
“그러게 말일세. 우리가 아니, 내가 처음부터 좀 더 신중해야 했는데 막상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
“…….”
말이 없는 두 사람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현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