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97)
회귀해서 건물주-97화(97/740)
97
현성은 한명수를 바라봤다. 얼핏 생각해도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게…….”
한명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한명수가 현성에게 까이고 다음 날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현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것을 하나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건 다름 아닌 라면 가게를 곧 현성이 오픈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학교엔 취미가 없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성적도 개판일 것이라 생각했었다는 것이고.
그런데 의외로 성적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잔디파 아이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학교 적응을 못해서 일찌감치 학교를 포기하고 라면 가게를 하는 줄 알았다가 그게 아니란 것을 알고는 현성이 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명수의 설명을 다 들은 현성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한명수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래서 애들이 선배님을 본받겠다고 지금 공부를 하겠다고 난리입니다. 특히 1학년 애들은 환장을 합니다.”
“공부, 아니면 라면 가게?”
“당연히 라면 가게입니다. 어떡하든 선배님을 우리 잔디파로 모시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단 이번 중간고사를 위해 공부를 하겠다는 거고?”
“네, 아주 목숨을 걸겠다는 겁니다.”
생각할수록 웃음밖에 안 나온다. 공부하고는 담을 쌓은 녀석들이다. 그런데 그런 녀석들이 스스로 투표해서 공부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솔직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껄렁껄렁 놀던 놈들이 공부라니.
어찌 보면 이해되는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게 공부만 하라고 했다면 절대로 씨알도 안 먹힐 녀석들이었다.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뭐니 뭐니 해도, 라면 가게다. 라면 가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생활과 연관된 직업이라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아직은 어린 녀석들이지만 나름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는 얘기인 것이다.
골치 아프게 생겼다.
무조건 내 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르칠 능력은 아직 안 되고, 더군다나 한두 명도 아니고 30명이다.
“야, 한명수 내가 진짜로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데, 다른 방법은 없겠냐?”
“다른 방법이요?”
“그래, 나 말고 너희들 가르칠 사람 말이야. 너네 3학년 중에 공부 잘하는 애들 있을 거 아냐, 걔들한테 부탁하면 어떨까 싶어서 말이야.”
그때 지금까지 한마디도 안 하고 있던 김태진이 나섰다.
“선배님, 그 말씀 진심입니까?”
“당연하지. 왜 누가 있는 거야?”
“있기는 있는데 그러려면 선배님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선배님만 허락한다면 제가 직접 부탁해볼 의향이 있습니다.”
“내 허락이 필요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유는 묻지 마시고요, 허락만 해주십시오. 누구든 저희가 선택해서 공부할 수 있게 말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김태진은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렇게만 해주면 자신은 이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민할 게 뭐 있겠는가?
현성은 한명수를 보며 물었다.
“태진이 말이 사실이야?”
“네, 저희야 선배님이 가르쳐주면 제일 좋겠지만, 정말 그게 어렵다면 그 방법도 하나의 방법이긴 합니다.”“뭐야? 그 말은 처음부터 두 사람 간에는 얘기가 됐었다는 말이네.”
“혹시나 해서 차선을 생각해 뒀던 겁니다. 아가들의 성화가 워낙 커서요.”
“뭐, 아가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알았으니까 너희들이 누구한테 부탁하든 난 상관없으니까 알아서들 해. 그럼 이제 된 거지?”
“네, 선배님. 그럼 중간고사 끝나고 뵙겠습니다.”
의외로 일이 막판에 쉽게 풀렸다.
차선까지 준비했을 줄은 몰랐다. 그 차선이 누구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다. 끝까지 붙들고 늘어졌더라면 어쩔 수 없이 현성의 입장에서는 승낙하고 말았을 것이다.
거절할 명분이 너무 없었던 탓이다.
그런데 은근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저러다 정말 중간고사를 잘 봐서 조건을 만족하기라고 한다면 그땐 진짜 낭패일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김일수가 한 말이 생각났다.
혹시 만약에라도 애들이 조건을 만족하면 어떡할 거냐고 놀리면서 웃던 모습 말이다.
현성은 고개를 저으며 정문을 벗어나 공사 중인 라면 가게가 있는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현성이 떠나고 남은 두 사람.
짝!
두 사람은 하이파이브로 기쁨을 나눴다.
한명수가 먼저 김태진을 보며 말했다.
“잘했어. 이런 거 보면 네 머리도 보통은 아니야.”
“내가 뭐라 그랬어. 저 형은 우리 싫어할 거라 했잖아.”
“근데 저 형이 끝까지 거절할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
“뻔하잖아. 저 형이 우리가 좋아서 공부하라는 조건을 내걸었겠냐고? 우리가 정말 싫었던 거지. 그런 형이 우리를 위해서 공부를 가르쳐 줄 리가 없잖아. 안 그래?”
한명수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입가에 번졌다.
사실 조금 전까지도 불안했었다. 혹시라도 현성이 만에 하나 자신의 부탁에 못이기는 척하고 응하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었던 것이다.
김태진이 걱정하지 말라며 밀어 붙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하긴 했지만 말하는 내내 불안했던 건 사실이다.
한숨 돌린 한명수가 김태진을 보며 다시 말했다.
“이제 네 계획대로 됐으니까 다음 계획도 차질 없는 거지?”
“걱정하지 마. 나만 믿어.”
“그나저나 지 동생이 우리를 가르친다는 걸 알면 가만히 있을까?”
“가만히 안 있으면 어쩔 거야. 자신의 입으로 분명히 허락한 건데. 미치고 환장하겠지만 뭐라고 할 명분이 없잖아.”
김태진은 입가에 미소까지 머금으며 여유를 부렸다.
그러자 한명수가 그런 그를 보며 다시 물었다.
“진짜 자신 있는 거지?”
“그럼, 당연하지. 김지연이는 나한테 맡기고 이제부터 너는 10등 올릴 생각이나 해. 난 그게 제일 걱정이다.”
“그러니까 말이야. 왜 나만 10등이냐고…….”
한명수는 불만이 가득 찬 표정으로 조금 전 현성이 사라진 쪽을 쳐다보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김태진의 표정도 썩 좋지는 않았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뭐 빠지게 열심히 해서 성적을 올린다 하더라도 한명수가 목표치에 올라가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그거야 더 두고 볼 일이고, 분명한건 잔디파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현성은 라면 가게에 들러 설비업자 유민철과 남은 공사에 대해서 논의한 후 이정우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분식가게로 향했다.
오늘 여기서 이정우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드르륵.
현성이 들어가자 이정우 어머니 신명순이 현성을 반갑게 맞이했다.
“사장님 오셨어요?”“어머니 진짜 자꾸 저 놀리실 겁니까?”
“놀리는 게 아니라 사실이잖아.”
“그러지 마시고 예전처럼 편하게 불러주세요. 자꾸 그러시면 제가 불편합니다.”
요즘 이정우의 어머니 신명순의 얼굴이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아무래도 현성이 운영하는 라면 가게에서 일을 하기로 마음을 굳히자 마음이 한결 편해진 듯했다.
그런 신명순을 보며 현성이 말했다.
“정우는 아직 안 왔어요?”
“거의 올 시간이 됐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올 거야.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 정우 신경 써줘서 정말 고마워.”“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아니야, 요즘 정우가 저렇게 열심히 운동하는 것도 현성이 덕분이잖아. 하여간 여러모로 고마워. 이 은혜는 내가 평생 잊지 않을게.”
톡톡.
신명순은 현성의 어깨를 살짝 토닥였다. 지금으로선 신명순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마음 표시였다.
요즘 들어 이정우를 볼 때마다 너무 행복하다.
그렇지 않아도 늘 걱정스러웠던 게 이정우의 건강이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얼마 전부터 수업이 끝나자마자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며칠하다 말겠지 생각했었다. 운동을 워낙 싫어하기도 했지만 예전에도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혼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운동을 권했던 것도 현성이었고 같이 운동을 한 것도 그리고 자신이 가게 때문에 바쁘게 되자 다른 친구한테 부탁을 했던 것도 현성이었다.
그러니 어머니인 신명순의 입장에서는 현성이 한없이 고마웠던 것이다.
드르륵.
문이 열리면서 이정우가 들어왔다.
이정우가 현성을 보자마자 반갑게 말했다.
“하이! 많이 기다렸냐?”
예전에 비하면 목소리 톤부터 바뀐 이정우다.
그런 이정우를 현성도 반겼다.
“그래, 이제 운동 끝난 거야?”
“응. 오늘은 조금 더 돌다 보니 시간이 좀 늦었네.”
“참, 근데 철민이는 같이 안 왔어?”“오늘은 집에 가서 할 일이 있다고 그래서 먼저 갔어.”
두 사람이 얘기하는 걸 듣던 신명순이 나서며 말했다.
“오늘은 뭐 해줄까?”
“우리야 라면이지. 너도 좋지?”
“물론이지.”
“잠깐만 기다려. 엄마가 금방 라면 끓여줄게.”
그러면서 신명순은 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잠시 후.
드르륵.
그때 가게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건물주 오상철이었다.
“신 사장 있는가?”
오상철은 신명순을 부르며 주방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신명순이 주방에서 나오며 물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은, 지나가다 잠깐 들렸지. 그나저나 얘기 들었는가?”
“무슨 얘기요?”
“저 길 건너 안쪽 골목에 라면집이 들어온다는 얘기 말이야. 어느 미친놈인지 한심하네.”
신명순의 미간이 갑자기 좁아졌다. 그리고는 현성을 힐끗 바라봤다. 현성은 미동도 안 하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자 신명순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며 모르는 척 오상철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렇잖아. 미치지 않고서야 사람이 죽어 나간 자리에 들어오겠어? 그리고 그 안쪽 골목에서 무슨 장사가 되겠냐고?”
“그거야 모르죠. 그래도 남의 자리 빼앗는 도둑놈 심보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신명순은 일부러 오상철 들으라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오상철은 신명순을 빤히 쳐다봤다.
“지금 혹시 그 말은 …….”
“참! 라면 다 끓었겠네.”
신명순은 그 말과 함께 오상철을 뒤로하고 주방으로 사라졌다.
그때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하며 신명순한테 물었다.
“어머니, 아직도 그런 인간이 있어요?”
그러자 신명순이 주방에서 라면을 들고나오며 현성의 말에 대답했다.
“있더라고. 악질 중에서도 아주 순 악질이야. 나중에 벽에 똥칠할 거다, 그 인간!”
“잘 아는 사람인가 봐요?”
“잘 알지. 그런데 이제부턴 인간 취급 안 하려고.”
큭큭.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이정우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오상철을 보며 말했다.
“아저씨, 안 가세요?”
“어?”
오상철은 황당할 뿐이었다.
분명 두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자신을 두고 얘기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렇다고 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화를 내게 되면 본인 스스로가 자백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욕심이 나서 그렇게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걸 자신의 입으로 인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흠흠.
당황했는지 오상철은 헛기침을 하며 신명순한테 말했다.
“다음 달 말일까지 확실히 정리해 주고…….”
“이젠 있으라고 해도 안 있어요. 어차피 장사는 다음 달 초까지만 하는데 가게는 못 비워줘요. 아주 다음 달 말일까지 꽉꽉 채우고 나갈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말이 좀 …….”
“지금 이 상황에 내가 좋은 말 나오게 생겼어요? 기껏 자리잡아놨더니 엉뚱한 놈이 채가는 데?”
신명순의 목소리가 하늘로 뻗쳤다.
오상철은 여기서 더 있다가는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럼 난 이만…….”
“가든 말든, 맘대로 해!”
드디어 반말까지 터지는 신명순이었다.
그러자 이번엔 못 참겠는지 오상철이 발끈했다.
“신 사장, 말이 너무 심한데?”
“그래도 난 도둑질은 안 해. 이 양반아!”
신명순은 어차피 이판사판이었다.
그 전에야 어떡하든 비유라도 맞춰서 좀 더 버티려고 했었지만 이젠 다르다. 어차피 이젠 갈 곳도 마련해 뒀다. 아쉬울 게 없는 신명순이었다.
10년을 공들였던 가게를 고스란히 빼앗기게 생겼는데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 말이다.
스윽.
그때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이 나섰다.
“아자씨!”
현성 특유의 말버릇이 나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