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ing with Ego Sword RAW novel - Chapter 10
제9화. 의문 (2)
모두가 루안을 바라볼 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간신히 입을 연 것은 마샤 교수였다.
“루, 루안 브리스톨….”
“교수님. 제가 이겼죠?”
“아, 그… 그래….”
마샤는 침착하게 표정 관리를 하며 루안에게 말했다.
“루안 브리스톨. 자네는 조금 있다 수업이 끝나면 나와 교수실로 간다.”
“알겠습니다.”
* * *
허수아비 골렘 수업이 끝나고 루안은 마샤를 따라 칼론의 교수실로 들어갔다.
칼론의 교수실 문은 사각형의 방패가 박혀 있는 것처럼 생겼다.
방패의 가운데에 손잡이를 마샤가 잡아당겼다.
덜컹-
그르르-
방패가 서서히 뒤쪽으로 열렸다.
“들어와.”
마샤를 따라 들어간 교수실은 한쪽 벽면에는 사다리가 설치된 서재가 있었다.
서재 안에는 낡은 고서적들이 가득했다.
맞은편 벽면에는 마샤의 책상과 허수아비 밭에 뿌리는 씨앗들이 보관된 사육장이 있었다.
“편히 앉아.”
마샤 교수는 검을 벽장에 걸어 두고 가죽으로 된 의자에 앉았다.
루안이 따라 앉았다.
“너와 약속한 대로 상을 주마.”
루안이 기대에 찬 눈으로 마샤 교수를 바라봤다.
마샤는 서재로 가더니 고서적 한 권을 골라 가져왔다.
고서적을 펼치자 뽀얀 먼지가 부드럽게 일었다.
“이건 고대 검술에 대해 기록된 책이지. ‘소드 바이블(Sword Bible)’이라고 하는 고서다.”
“무슨 책인데요?”
마샤는 책장을 넘겼다.
사락-사락-
책장을 넘길 때마다 먼지가 일어났다.
“찾았다. 여기 내용을 읽어봐.”
마샤가 책을 거꾸로 돌려 루안에게 보여줬다.
“음… 이거 고대 룬어로 기록된 거라서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요.”
“자네… 룬 문자 수업 안 받았나? 칼론에 다닌 지 벌써 2학년 1분기가 끝나가고 2분기가 시작되려는데 룬 문자로 된 책을 못 읽어?”
“아… 그게….”
칼론의 과목 중 루안이 가장 싫어하는 게 룬어였다.
룬어는 온갖 고대의 룬 문자들과 룬 의미를 가진 그림들을 해독 및 해석하는 과목이다.
가장 기본적인 과목인 이유는 바로 룬어로 기록된 고대 검술에 대해 읽고 자기만의 검술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
만약 룬어로 된 검술서를 획득했는데 읽지 못한다면 결국 그림의 떡이 된다.
루안은 과거에도 룬어를 읽는 걸 싫어했다.
너무 어려웠으니까.
회귀한 지금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게다가 라스칼과 1대 1 수련을 하느라 룬어를 보지 않았다.
루안은 룬어가 검술과 그리 상관 있는 과목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
브리스톨 가문의 이복형제들도 룬어를 잘하지 않았다.
이들은 굳이 자기만의 검술을 만들기 위해 룬어로 기록된 고대 검술서적을 읽을 필요를 못 느꼈다.
브리스톨 가문의 서고에 보관된 가전검술의 서적들만 읽어도 됐으니까.
이 책들은 룬어로 기록되지 않고 알기 쉽게 번역이 되었고 연구가 되었으니 편리한 해설서가 많아서 브리스톨 가문의 혈통들은 이 검술 서적들을 많이 봤다.
룬어라는 것은 브리스톨 가문처럼 특출난 검공가의 혈족이 아닌 기사들에게만 필수 과목으로 여겨진 것.
마샤가 이걸 뒤늦게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 그렇지. 자넨 브리스톨이었지. 그러니 모르지. 미안하군. 잠시 자네의 혈통을 잊어서. 하하하하!”
마샤가 호탕하게 웃었다.
여기사라고 믿기 힘든 우렁찬 웃음.
성량만 놓고 보면 적들을 웃음소리로 제압해도 될 것 같았다.
그녀에게 붙여진 이명은 ‘우레의 기사’ 마샤.
우레와 같은 기합을 터뜨리며 적군을 제압하고 들어가 베어 넘긴다 하여 붙여졌다.
과거 칼론의 교장 람버트를 암살하기 위해 잠입했던 바이에른 황가의 암살대가 마샤에게 몰살당한 사건이 있었다.
그녀의 기합을 듣자마자 암살대는 예상치 못한 음공에 고막이 파열되고 내장이 터져 즉사해버렸다.
음파를 사용한 검술을 펼쳤고 그 사건 이후로 마샤의 이름이 브리켄슈타인 황가와 적대하고 있는 나머지 2개의 황국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를 누비는 크고 작은 왕국과 기사단, 용병단, 길드, 마법사들, 음지의 마도사들까지 오늘날 마샤의 이름은 곳곳에 닿아 있었다.
칼론의 교수들이 뛰어난 기사라는 사실은 언제나 칼론을 지키는 방패의 역할을 하며 대륙 3대 기사 학교라는 위명을 떨치게 만드니까.
“브리스톨은 항상 가문의 검술을 익히니 예외일 순 있지. 하지만 자네는 다른 브리스톨의 혈통들과 달리 재능이 부족하다고 들었는데. 아 물론 오해는 말게. 이건 엄연히 내가 들은 사실대로 자네에게 말해주고 있는 거니까.”
“오해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루안은 덤덤하게 흘려 넘겼다.
마샤는 그런 루안을 바라보며 의외라는 눈빛을 지었다.
‘브리스톨은 재능과 혈통을 중시하는 냉혹한 쓰레기들. 그 틈바구니에 재능 없는 꼬마가 끼었다면 꽤 민감한 반응이 나왔을 텐데… 보기보다 그릇이 큰 건가?’
마샤는 루안의 행동과 반응을 볼수록 호기심이 커졌다.
그녀는 귀족 출신이 아니었다.
브리스톨, 그란델처럼 버젓이 황제의 인정과 존중을 받는 가문도 없었다.
전쟁고아였던 그녀를 어느 마법사가 거둬 키웠고 마법에 재능이 없었던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마검술을 익히게 된 것이다.
마법에 재능은 없지만 검술에 재능이 있던 그녀는 자신만의 경지를 이룩하게 되고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그러던 중 마샤는 어느 마법사 길드에서 칼론의 교장 람버트를 만나게 되고 이곳의 교수로 오게 된 것이었다.
“룬어를 모른다고 하니 내가 직접 읽어주지.”
책을 다시 돌려놓고 마샤는 루안에게 책을 읽어줬다.
마치 아이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엄마처럼.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마샤의 낭독은 일반적으로 책을 읽는 것과 달랐다.
책을 읽기보다는 노래를 하는 것처럼 들렸다.
성악가들이 무대 위에서 부드러운 톤의 노래를 읊조리듯이 마샤의 낭독은 교수실 안에서 잔잔하게 퍼져나갔다.
루안은 편하게 앉은 채 마샤의 낭독을 듣다가 스르륵 잠에 들었다.
잠이 든 루안의 시야에 라스칼이 나타났다.
“야, 야. 일어나.”
“으음….”
“퍼질러 자고 있을 때냐! 꼬맹아!”
“나 17살 아니 27살이다. 꼬맹이라고 하면 죽는다.”
“기껏해야 100년도 못 살아본 주제에 큭큭. 내 나이에 비하면 네놈은 꼬맹이가 아니고 신생아, 아니지. 태아다. 태아.”
“휴우, 너랑 말장난할 기분 아니야. 근데 여긴 어디야?”
“네놈의 내면 속이다. 넌 지금 저 여자에게 조사를 받고 있다고.”
“뭐라고?”
라스칼이 손바닥을 펼쳐 흐릿한 잔상을 소환했다.
“이 여자가 네놈이 다니는 칼론의 교수 맞냐?”
“맞아. 마샤 고든. 허수아비 베기 수업 담당하고 있고.”
“그러냐? 근데 여기에 잠든 네놈에게 하는 짓은 수업하고 전혀 상관없는 거 같은데?”
라스칼이 손바닥을 루안에게 보여주자 잔상이 훅 하고 커졌다.
잔상은 마샤의 낭독과 잠에 든 루안이 앉아있는 모습으로 변했다.
마치 눈앞에서 구경하는 것 같았다.
“이거 어떻게 한 거야?”
“내 능력 중 한 가지라고 해두지.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고 저 여자가 문제다.”
라스칼은 마샤를 가리켰다.
마샤는 잠이 들은 루안을 보며 부드럽고 잔잔한 노래를 이어가고 있었다.
“내가 룬어를 모른다고 하니까 고대 검술 책을 읽어주겠다고 한 건데.”
“멍청한 놈. 저건 책을 읽어주는 게 아니다. 네놈에게 수면 마법을 건 거야.”
“뭐?”
라스칼이 손가락으로 마샤의 잔상을 콕 찍었다.
그러자 마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에 취한 자여. 그대의 입술은 언제나 진실만을 답할 것을 맹세하는가?”
어라? 소드바이블에 기록된 내용들이 아니다.
“뭐야? 저거.”
“수면 마법을 네놈에게 걸고 있는 거야. 이제 네놈은 잠에 빠진 채 무의식적으로 저 여자의 물음에 답하게 된다.”
“설마… 너와 내 계약 같은 걸 발설하게 되는 건….”
“맞아. 내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넌 순진한 꼬맹이답게 묻는 대로 대답하겠지.”
“야, 그러면 뭐라도 해야 되잖아.”
“이미 해뒀다. 꼬맹아. 네놈이 순진하게 저 여자의 꾐에 넘어가기 전에.”
“마샤 교수가 나한테 뭘 알아내려고 하는 거야? 그리고 수면 마법은 칼론에서 금지된 사항일 텐데… 학생에게 수면마법을 걸면 해고가 아니라 처형당한다고.”
“그딴 건 내 알 바 아니고. 저 여자는 마검사다. 무늬만 마검사인 놈들과 달리 진짜 마검사. 게다가 어느 정도 수준의 마법을 익혔군. 누구에게 배웠지?”
“마법사의 수양딸로 키워졌다고 들었어.”
“흐음, 누군지 몰라도 저 정도 마법을 익힐 정도면 최소한 2서클 이상의 마법사다.”
“마법사 길드에서 칼론의 교장이 데려온 여자야. 너 혹시 아는 거 있냐?”
“쉿.”
라스칼이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가며 루안에게 잔상을 보라고 손짓했다.
잔상에는 마샤가 잠 든 루안에게 무언가 물어보고 있었다.
마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안 군. 누구에게 마검술을 배웠지?”
“마샤는 살쪘어.”
잠꼬대 하는 것처럼 루안이 대답하자 마샤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큭큭큭큭.”
라스칼이 옆에서 배를 잡고 깔깔거렸다.
“야, 조치를 취해놨다는 게 저거냐?”
“웃기지 않냐? 큭큭.”
마샤는 잠든 루안에게 다시 질문했다.
“루안 브리스톨. 드높은 검공가의 혈족이여. 그대에게 진실의 서약을 읊었으니 오직 진실만을 답하라.”
마샤는 루안에게 재차 수면마법의 주문 중 일부를 다시 걸었다.
그녀의 입술에서 마나의 입자가 뿜어지며 루안의 입술로 스며들었다.
“오~ 방금 봤냐? 저 여자가 너랑 간접 키스를 했어. 큭큭.”
“저게 키스냐?”
“입에서 입으로 훅 하고 전해진 거 못 봤냐?”
“마나잖아.”
“키스다.”
라스칼이 깔깔거렸고 루안은 잔상에 주목했다.
마샤가 재차 물었지만 잠든 루안은 여전히 같은 답을 했다.
“마샤는 살쪘어….”
“젠장! 대체 이게 뭐지? 수면 마법이 안 통하다니.”
마샤가 벌떡 일어났다.
무언가 잘못된 거라고 느꼈다.
한편 라스칼이 웃음을 멈추고 루안에게 말했다.
“이제 집에 갈 준비나 해라.”
“뭔 소리냐?”
라스칼의 잔상 속에 루안이 다시 잠꼬대를 하듯 물었다.
“마샤… 넌 누구야…?”
그 순간 마샤의 눈빛이 번쩍였다.
후와앙-
벽에 걸려있던 그녀의 검에서 음파덩어리가 뭉쳐지며 날아왔다.
동시에 잠든 루안의 얼굴을 덮칠 듯이 겨눠졌다.
후우웅-
무시무시한 오러와 마력이 섞인 입자들이 회오리치듯이 그녀와 루안의 주변을 에워쌌다.
교수실이 터져나갈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
당장이라도 루안을 형체를 못 찾을 만큼 터뜨려버릴 것 같았다.
“야, 저, 저거 나 죽이려는 거야?”
라스칼이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기다려. 아직 안 끝났으니까.”
루안이 잔상을 쳐다봤다.
“나는…. 루안이라고 해… 키히히….”
이어서 흘러나오는 루안의 잠꼬대에 마샤의 눈빛이 풀어졌다.
마음을 놓았는지 루안을 죽이려던 음파덩어리가 흩어졌다.
“이제 곧 깨어날 거다. 집에서 보자.”
라스칼이 잔상을 없애는 순간.
시야가 밝아졌다.
루안이 잠에서 깨어났다.
이럴 땐 모른 척 시치미를 뚝 떼는 게 기본이다.
“으음… 냐….”
“일어났니?”
시치미를 떼는 건 마샤도 마찬가지.
라스칼이 만들어낸 내면의 잔상으로 무슨 짓을 했는지 다 봤는데 뻔뻔하긴.
“아, 죄송합니다. 교수님께서 책 읽어주신다고 했는데 제가 그만….”
“후후, 아니야. 룬어가 지루하니까 이해한다. 피곤한 것 같으니 이만 집에 가는 게 좋겠구나.”
“그러면 다음 수업 시간에 뵙겠습니다.”
루안이 나가고 마샤는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어…. 수면 마법에 확실히 걸려 있었는데…. 좀 더 알아봐야겠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