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ing with Ego Sword RAW novel - Chapter 20
제19화. 감찰관 (2)
황실에서 파견 나온 감찰관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루안을 바라봤다.
‘저 자가 브리스톨 가문의 7공자라던 마법사 잡종인가?’
루안에게 마법사의 피가 섞였다는 소문은 황실에도 공공연하게 퍼져있었다.
긍지 높은 기사 가문이자 제국의 초대 황제의 목숨을 몇 번이고 구하며 대공의 지위를 획득했다 알려진 대 브리스톨 가의 적법한 혈통이 아닌 7공자 루안 브리스톨.
황실 사람들과 다른 고위 귀족들이 루안을 지칭하는 표현은 마법사와 기사의 혼혈, 잡종이었다.
감찰관의 시선이 루안을 향했다.
곱상한 외모는 기사의 격에 맞지 않았고 다부진 체격은 마법사의 것이라 보기 어려웠다.
데릭 쿠퍼의 목소리가 커졌다.
“루안 브리스톨. 방금 뭐라 대답하였어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수님.”
“아뇨, 제가 들었어요. 너. 나 .하 .라 .고. 맞죠?”
루안의 대답을 잘게 짓씹는 데릭 쿠퍼.
“옆에 앉은 리사 그란델. 방금 루안의 대답을 내가 맞게 기억하고 있죠?”
데릭 쿠퍼의 확인 사살이 들어왔다.
루안과 리사가 눈을 마주쳤다.
리사는 루안을 보며 대답했다.
“교수님. 제가….”
그녀의 대답을 묵살시키는 대답이 울려 퍼졌다.
“들었습니다!”
루안과 리사가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톰 젠킨스가 앉아 있었다.
루안을 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는 놈의 입이 벙긋거렸다.
‘넌 죽었어.’
스미스의 테스트에서 차별 당했다 여기는 젠킨스.
지금이 놈이 생각하는 최적의 복수 시간이겠지.
데릭 쿠퍼는 톰 젠킨스를 보며 다른 학생들에게 말했다.
“좋아요. 루안 브리스톨 뒤에 앉아있는 톰 젠킨스가 저리 말하니 여러분들도 알겠군요. 루안 브리스톨이 감히 내게 반항을 했다는 사실을.”
데릭 쿠퍼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칼론에 교수직을 맡은 이래 처음이었다.
자신에게 이토록 도전적으로 대드는 학생은.
그것도 감찰관이 지켜보는 수업에서 루안의 대답은 교수의 직위를 향한 도전이었다.
‘데릭 쿠퍼의 앞에서 저리도 겁 없는 반항을 하다니….’
리처드 브리스톨 대공의 격이 7공자의 혈통 때문에 훼손되었다 여기는 고위 귀족과 황족들도 있었으니 황실 직속 감찰관의 눈에 루안이 곱게 보일 리 없다.
기사의 실력이 혈통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위 귀족, 그것도 황제와 가장 가까운 전우였던 리처드 브리스톨 가문이라면 적법한 혈통을 지키는 것이 대외에 알려진 귀족의 이미지를 지키는 것이기도 했다.
리처드 브리스톨은 제국을 대표하는 공작가이자 가장 강력한 기사의 힘을 보유한 귀족이었으니 이를 지켜보는 황궁의 시선은 많았다.
제국의 위신을 높일지 떨어뜨릴지 브리스톨 검공가의 일족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루안 브리스톨의 행동을 바라보자니 감찰관의 눈에는 여간 개탄스러운 게 아니었다.
“감찰관님.”
데릭 쿠퍼가 연무장에 검을 들고 올라왔다.
“본의 아니게 감찰관님께 폐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니오. 하던 거 계속 하시오.”
감찰관은 손에 든 양피지 공책에 뭔가를 끄적였다.
데릭 쿠퍼의 눈썹이 구겨졌다.
“루안 브리스톨. 당장 연무장으로 올라와라.”
“네?”
“네는 뭐가 네야?! 아니지. 네놈이 너나 하라고 했으니 내가 직접 해주마. 당장 올라와!”
데릭 쿠퍼의 노기 어린 목소리가 포효처럼 터졌다.
조금 전까지 상냥한 어투로 닭살 돋던 데릭 쿠퍼는 사라지고 송곳니를 드러낸 맹수의 위엄이 어려 있는 기사가 서 있었다.
비록 목검을 들고 있었지만 데릭 쿠퍼의 전신에 뿜어져 나오는 흉맹한 투기가 웅성대던 학생들을 침묵시켰다.
톰 젠킨스는 큭큭거렸다.
“고맙다. 데릭 쿠퍼가 은여우의 검이라 불리는 이유를 구경하게 해줘서.”
루안은 젠킨스 일행을 무시하고 일어났다.
리사는 턱을 괴고 연무장에 마주한 루안과 데릭 쿠퍼를 바라봤다.
모두의 시선이 연무장으로 모였다.
데릭 쿠퍼는 목검을 들어 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위대한 제국 브리켄슈타인의 기사들의 요람이요, 젖줄이자 본가 칼론의 명예로운 교수 데릭 쿠퍼, 지금부터 교수가 아닌 어엿한 기사의 몸으로 연무장에 올라왔음을 선포하노라.”
아, 어쩌냐?
아무래도 진짜 열 받은 거 같은데.
데릭 쿠퍼의 말에 루안은 목검을 바로 세우고만 있었다.
“브리켄슈타인 황궁 직속 궁정기사단 출신이자 제 4정찰대를 이끌던 은여우 데릭 쿠퍼가 지금부터 명망 높은 대 브리스톨 검공가의 7공자요, 칼론의 기사로 태어난 루안 브리스톨과 공식적인 대전을 신청하노라. 루안 브리스톨은 답하라.”
감찰관이 있기 때문일까?
데릭 쿠퍼의 비장한 자세에 루안은 얼떨결에 대답했다.
“네.”
짤막한 대답에 데릭 쿠퍼의 포효가 들려왔다.
“루안 브리스톨!! 감히 나를 깔보는 것이냐!”
“아닙니다!”
“연무장의 대전은 곧 기사의 신성한 대결과도 같다. 당장 네 신분과 본가를 밝혀 답례를 하라.”
데릭 쿠퍼의 엄숙한 말에 그제야 루안은 뭘 빼먹었는지 알아차렸다.
라스칼의 핀잔을 들으며 루안은 목검을 들어 코앞에 붙였다.
[큭큭, 수업보다 이게 더 재밌네. 루안 넌 이제 죽은 거 같다.]“브리켄슈타인 제국의 칼날이요, 긍지 높은 소드 마스터의 시작이자 드래곤 슬레이어의 역사를 세운 브리스톨 가문의 제 7공자 루안 브리스톨이 칼론의 학생의 신분을 벗고 기사의 갑옷을 입어 이 자리에 섰으니 대전을 허락합니다.”
칼론은 기사 학교였지만 연무장은 기사들의 결투를 상징하는 시작의 장소.
이곳에서 데릭 쿠퍼가 자신의 신분과 소속을 밝혔으니 루안이 그에 걸맞는 답례를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쳇, 저렇게 들으니 가문의 무게는 어마어마하네.”
“제국의 칼날에 소드 마스터에 드래곤 슬레이어… 하나만 넣어도 엄청난 가문이 될 건데 이게 저 가문에 다 들어가다니….”
루안의 신분을 듣고 있던 학생들은 감탄을 흘렸다.
“흥, 그래봤자 마법사 잡종이잖아.”
톰 젠킨스가 이죽거렸다.
루안을 망신 주려고 했는데 어째 반응이 의도와는 달랐다.
그건 루안의 가문 브리스톨이 갖고 있는 긍지의 역사이자 힘의 무게 때문.
고대부터 대륙 최초로 포악한 거룡(巨龍)을 참살하여 드래곤 슬레이어의 위명을 알렸으며, 시시각각 출몰하는 몬스터들을 학살하며 사냥당하던 인간들의 거처를 마련하고 국가를 세워 대륙의 역사를 열어버린 가문이 브리스톨이었으니까.
루안의 입으로 읊어지는 간결한 신분과 본가의 배경은 황실 직속 감찰관마저 위압했다.
‘잡종 주제에 가문의 이력은 잘도 읊어대는군. 허기야 잡종 따위가 기댈 곳이 가문의 역사 말고 어디 있겠냐마는….’
감찰관은 루안을 잡종이라고 깎아댔다.
하지만 루안이 뱉은 브리스톨의 검들이 가진 힘의 역사는 깎이질 않았다.
잡종이라 한들 어엿한 브리스톨 가문의 혈족.
감히 브리스톨의 가주 앞에서 루안을 잡종이라 일컬을 수 있을까?
황제가 뜯어 말릴 도발이다.
“이제 대전을 시작한다.”
데릭 쿠퍼가 먼저 앞으로 나왔다.
루안이 따라 나와 마주 섰다.
목검이 서로를 향해 겨눠졌다.
“시작은 내가 하도록 하지.”
“하십시오.”
루안의 대답에 데릭 쿠퍼가 외쳤다.
“시작!”
동시에 데릭 쿠퍼의 목검이 바늘처럼 찔러 왔다.
루안이 반사적으로 몸을 눕혀 목검으로 막았다.
타각-
목검이 부딪히며 루안은 몸을 일으켰다.
데릭 쿠퍼의 발놀림이 민첩해졌다.
라스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자는 강하다. 네놈의 수련 상대로 딱이군. 내게 배웠던 걸 실전에서 얼마나 써먹을 수 있는지 보자고.]루안은 데릭 쿠퍼의 목검을 관찰하며 방어를 했다.
‘은여우의 검이라더니 과연….’
데릭 쿠퍼의 거구와 어울리지 않는 민첩하고 교묘한 검술.
여우의 꼬리처럼 목검이 루안의 시야를 교란했다.
동시에 데릭 쿠퍼의 앞발이 사각으로 침범했다.
루안은 발데스의 보법으로 빠져나갔다.
“대단하다. 쿠퍼 교수님의 발 기술을 저렇게 피하다니….”
“듣던 것보다 훨씬 교묘한데, 은여우의 검이라 불릴 만하군.”
“저걸 빠져나가는 루안이 더 대단한 거 아니야?”
모두가 데릭 쿠퍼의 화려한 검술과 교묘한 발놀림을 보던 순간.
루안의 방어 기술을 주목하는 이가 있었다.
리사 그란델이었다.
그녀는 루안의 방어가 독특하다고 여겼다.
‘마치 쿠퍼 교수님의 검술을 알고 있는 거 같아….’
루안의 방어는 데릭 쿠퍼의 발놀림과 검술에 의거하여 형성되고 있었다.
라스칼에게 맞고 터져가며 수련에 매진했던 약탈의 검술.
[큭큭. 역시 패면서 가르치니까 실력이 엄청 늘었네.]‘닥쳐.’
루안은 데릭 쿠퍼의 검과 발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관찰하는 즉시 자신의 것처럼 베낄 수 있었다.
라스칼에게 들었던 약탈의 기본.
적의 동작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라스칼이 낄낄거렸다.
[내가 말했잖아. 훔치려면 먼저 베끼라고. ]‘시끄러, 구경이나 해.’
루안은 자신감이 붙었다.
데릭 쿠퍼의 교묘한 발 기술은 루안의 발목을 걸어 채려고 했다.
이것이 은여우의 검 데릭 쿠퍼가 자랑하는 교묘한 소드 레슬링(Sword Wrestling) 이었다
루안의 발의 각도를 망가뜨리며 공격 자세를 무너뜨리는 것.
아무리 목검을 휘둘러도 자세가 망가지면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실전에서 자세의 기본은 스텝에 있었으니 데릭 쿠퍼의 발은 루안의 발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제 네놈이 해봐.]루안이 목검을 돌려 발을 움직였다.
“음?”
데릭 쿠퍼의 눈동자가 커졌다.
루안의 발이 역으로 자신의 발목을 침습하는 게 아닌가?
‘뭣이?’
설마 하고 물러나 루안을 관찰하는 데릭 쿠퍼.
목검을 들고 빠르게 전진하며 자신이 썼던 화려한 검풍을 목격하고 말았다.
여우의 흩날리는 꼬리처럼 부드럽고 은밀하게 얼굴로 덮쳐오는 루안의 목검.
‘어째서?’
목검을 걷어내는 순간 자신의 발목이 뭔가에 걸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빌어먹을 놈이… 설마?’
루안의 동작을 발견한 데릭 쿠퍼는 목검을 거둬 뒤로 물러났다.
의심 많은 여우처럼 그는 전투에서 벌어지는 약간의 낌새를 소홀히 여기는 법이 없었다.
루안이 돌격했다.
데릭 쿠퍼는 자신의 검술을 모방하려는 루안에게 처음으로 흥미를 느꼈다.
‘이놈이 이런 재능이 있었던가?’
그는 루안이 2학년 들어와 처음으로 수업을 담당한 교수였다.
루안이 1학년일 때 가르치던 교수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브리스톨 가문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검술에 재능이 없다는 이야기를.
‘대체 그 인간들은 이놈 가르칠 때 뭘 했던 거야?’
데릭 쿠퍼는 루안의 공격을 차분하게 방어했다.
자신이 검술을 가르치며 지금처럼 빠르게 동작을 모방하며 실전에 써먹는 학생은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검술의 천재라 해도 동작을 익히는 데 걸리는 최소한의 시간이란 게 있었다.
그것도 갑자기 눈앞에 튀어나온 생소한 검술이라면 익힌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디 좀 더 확인해볼까?’
데릭 쿠퍼가 자신의 목검에 마나를 흘려 넣었다.
“쿠퍼 교수님이 지금 뭘 하시려는 거야?”
“저거 마나를 넣었잖아. 이건 대전일 뿐인데 진짜 결투로 나가는 건 아니겠지?”
“루안 저 자식 쿠퍼 교수한테 엄청 찍혔네.”
“그래도 다치진 않겠지.”
데릭 쿠퍼의 목검에서 검기가 뻗어 나왔다.
“여우의 꼬리가 적의 시선을 유혹하리라, 폭스 테일.”
낮게 읊조린 데릭 쿠퍼의 목소리 끝에 목검이 휘둘러졌다.
목검에서 여우의 꼬리 형태의 검기가 길게 뻗어 나와 루안의 얼굴을 목도리처럼 휘감았다.
“흐읍.”
짧게 호흡을 뱉으며 목검을 끌어당기는 데릭 쿠퍼.
루안이 얼굴에 검기가 덮인 채 끌려왔다.
‘이걸로 끝.’
데릭 쿠퍼가 한 손으로 목검을 쥐고 다른 손으로 루안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