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ing with Ego Sword RAW novel - Chapter 3
제2화. 칼론 (2)
데릭 쿠퍼 교수의 수업은 검술 이론이었다.
수업은 지루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이번 생에는 학교를 빨리 졸업해야하는 목적이 있었기에 가급적 문제없이 학교생활을 해야 한다.
“검술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뭘까?”
쿠퍼 교수의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학생들은 죄다 책상만 쳐다본다.
“기본기입니다.”
나는 옆을 쳐다봤다.
눈에 쏙 들어오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자였다.
반짝이는 금발에 고혹적인 눈빛은 날카로운 검 같아 쳐다보는 시선마저 베어버릴 기세였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리사 그란델입니다.”
“아… 그란델 백작가의 딸이로군. 대답은 빨라서 좋지만 내용이 너무 원론적이군. 기본기 중에서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지?”
“스텝입니다.”
“그것도 원론적이군. 스텝의 어떤 요소가 핵심인가?”
“서클링입니다.”
리사 그란델의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하지만 질문자는 데릭 쿠퍼다.
나는 데릭 쿠퍼의 성향을 꽤 잘 알고 있었다.
‘저 인간이 여기서 질문을 그칠 리가 없지.’
“서클링까진 훌륭하군. 그러면 서클링의 핵심은 뭐지?”
항상 이렇다.
데릭 쿠퍼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질문을 받는 게 아니라 던지는 쪽이었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대는 탓에 학생들은 대답을 하느라 애를 먹었다.
만약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처음엔 데릭 쿠퍼의 수업 스타일을 겪어본 적 없는 학생들이 많았었다.
이들 모두 수업 준비에 철저해지기까지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왜냐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즉시 낙제 점수를 줘서 데릭 쿠퍼의 수업을 다시 들어야 하니까.
검술 학교 칼론의 교칙 중 한 가지는 학생이 듣는 과목 중 단 하나라도 낙제 점수인 F 등급을 받는다면 유급을 하게 된다.
특히 검술 이론처럼 기사의 두뇌를 측정하는 기본 중의 기본 과목에서 낙제 점수가 나온다면 학교 측으로부터 경고를 받을 확률이 높다.
칼론의 경고는 오직 한 번 뿐.
두 번째 경고를 받는 즉시 퇴학이었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나 같은 예외가.
데릭 쿠퍼는 자신이 담당하는 검술학 과목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선생이었다.
그와의 과거 이력에 대해 밝히자면….
아니다, 안 좋았던 기억들까지 떠오르게 되니 접어둬야지.
“서클링의 핵심은 언제나 발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단 한 순간도 양발을 땅에 붙이지 않아야 합니다.”
리사 그란델의 대답은 여전히 막힘이 없었다.
데릭 쿠퍼는 점점 그녀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잘 알고 있군. 그란델 양. 자네 말대로 서클링의 핵심은 발을 움직이는 것이지. 잠시라도 땅에 양발을 붙이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즉시 자네의 목이 바닥에 달라붙을 수 있을 테니까.”
데릭 쿠퍼는 교단에서 내려와 학생들이 앉은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러면 발을 움직이되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그의 질문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리사 그란델의 대답이 막히기 전까지는.
“서클링의 스텝은 내가 둥근 원 가운데 서 있다 생각하고 그 범위 안에서 시계 방향으로 반원을 그리듯 움직이는 것이 기본입니다.”
데릭 쿠퍼가 수염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맞아. 항상 발을 모든 방향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듯이 움직여야지. 하지만 그 안에서도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도 아는가?”
“서클링은 원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기본 스텝이지만 적들이 직선으로 움직이면 공격의 중심이 무너질 위험이 있습니다.”
데릭 쿠퍼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인다.
계속하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크로스 스텝을 결합시켜야 합니다.”
“크로스를 서클링과 어떻게 결합시켜야 하나?”
“서클링은 원을 그리듯 움직이는 것이라면 크로스는 십자 형태로 앞뒤 좌우 방향으로 움직이는 스텝이죠. 따라서 제가 원 가운데 서 있다고 생각하되 십자가의 가운데에도 같이 서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면 십자 방향과 원의 범위 모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개념이 잡히니까요.”
리사 그란델의 대답은 물처럼 흘러갔다.
데릭 쿠퍼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란델 백작이 총애하는 막내딸이라더니 이제야 공감이 가는군.”
“과찬이십니다.”
그란델 백작은 남자가 아닌 여자다.
이 가문은 대대적으로 모계 중심인 만큼 가주의 자리는 항상 여자가 맡는 것이 특징이었다.
브리켄슈타인 제국은 물론이고 리니아 대륙을 통틀어 여자가 이끄는 가문은 많지 않다.
그 가운데 검술로 독보적인 명성을 떨쳐온 것이 그란델 가문이었다.
오직 여기사들로만 구성된 ‘회색 장미’ 기사단을 창설하여 브리켄슈타인 제국의 3대 검존에 올라선 여기사 케니스 그란델이 그녀의 어머니였다.
‘내가 얘 옆자리를 앉게 될 줄이야. 과거와는 다르군.’
과거에 나는 리사 그란델과 같은 수업을 듣기는 했었다.
당시엔 서로 떨어져 앉아서 관심이 없었는데 옆에서 마주 보니 외모 하난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란델 양. 자네는 첫날부터 내게 훌륭한 점수를 얻었네.”
“감사합니다. 데릭 쿠퍼 교수님.”
“그란델 백작가의 대답은 훌륭했으니…. 이제 브리스톨 공작가의 대답도 들어볼까?”
턱을 괴고 칠판을 바라보던 내 동공이 커졌다.
“예?”
“루안 브리스톨 군. 옆에 앉은 그란델 양의 대답을 들으니 어떤가?”
“잘 아는 것 같습니다.”
리사 그란델이 내 옆통수를 힐끔거리는 게 느껴진다.
“어떻게 아는 것 같은데?”
젠장, 저 망할 인간 말장난이 시작되는군.
“그게…. 검술학의 이론이 탄탄한 것 같습니다.”
데릭 쿠퍼가 내게 다가온다.
“어떻게 튼튼한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냥 솔직하게 모른다고 대답했다.
아는 것을 대답하면 데릭 쿠퍼는 집요하게 물어볼 것이니까.
그냥 모르겠다고 하고 욕먹는 게 훨씬 편했다.
내 옆통수가 점점 따끔해지는 거 같다.
“킥킥!”
“풉!”
여기저기 입술에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모두들 조용.”
다시 조용해지고 데릭 쿠퍼의 목소리만 들린다.
“루안 브리스톨. 내 수업 시간에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건 아니다.”
모르니까 모른다고 한 건데 데릭 쿠퍼는 내 대답을 거슬려 했다.
나는 과거 전장에서 겪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실전에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냥 솔직하게 모른다고 해야 동료들과 손발이 더 잘 맞았다.
어설프게 아는 것들을 꺼낼수록 나와 동료들이 훨씬 위험해졌었다.
확실하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걸 경험한 입장에서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교수님. 모르는 것이 자랑스러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도 아닙니다.”
내 말에 갑자기 교실의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데릭 쿠퍼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뭐라고? 부끄럽지 않으면 떳떳하다는 건가?”
데릭 쿠퍼가 내 책상 앞에 바로 섰다.
“감히 내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이 지각을 한 것도 모자라 아는 것도 없으면서 모른다고 당당하게 대답하다니, 역시 가문의 배경이 좋기는 좋구먼.”
모두가 나만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데릭 쿠퍼는 평생을 기사도라 불리는 길만 걸어온 인물. 그것도 세간의 기사도가 아닌 자기만의 기사도를 만들어 걸어왔다.
그 가운데 철칙이 있었으니 기사는 반드시 제 시간에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전장에서 아군이 위기에 처했을 때 늦는다면 몰살당하고 몬스터 토벌 시 늦는다면 동료들이 먹이가 된다.
데릭 쿠퍼는 기사가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지각은 기사의 자질 중 가장 핵심적인 시간 감각 여부를 가려낼 수 있는 테스트라고 여겼다.
물론 나 또한 공감하지만 데릭 쿠퍼는 쓸데없는 것들까지 감정적으로 대할 때가 많아 피곤한 타입이었다.
“브리스톨 군. 자네에게 물어볼 게 생각났군. 기사로서 지켜야 할 수칙은 뭐가 있지?”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검을 놓지 않는다. 조국을 지킨다. 기사도가 아닌 길은 가지 않는다 입니다.”
“기사도가 아닌 길은 가지 않는다…. 자네는 오늘 그 길로 온 거 같은데?”
나는 데릭 쿠퍼를 싫어했었다.
과거에도 사이는 좋지 않았지만 그의 검술학 수업은 이론적인 부분은 인정하는 편이었다.
‘젠장, 담당 교수를 바꿀 수도 없고….’
검술 학교 칼론의 교수들은 학교 안에서만큼은 특권을 지니고 있다.
그건 바로 그 어떤 귀족, 황족의 자제라 할지라도 교수들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
브리켄슈타인 제국은 검으로 세워진 나라였다.
그 검의 뿌리가 되는 게 칼론이었기에 황자, 황녀라 해도 칼론의 학생이 되는 순간부터는 교수들의 명을 따라야 했다.
그러니 공작가든 백작가든, 나머지 귀족 가문이라 한들 데릭 쿠퍼가 눈치 볼 이유는 없다.
물론 나도 데릭 쿠퍼의 눈치 따위 안 본다.
왜냐고?
나는 데릭 쿠퍼를 과거에 한 번 상대해봤으니까.
“쿠퍼 교수님. 외람되지만 기사도는 모두에게 똑같이 정해진 길이 아닙니다.”
기사도를 평생 중요하게 여겼던 외골수 데릭 쿠퍼에겐 정공법이 즉효다.
내 입에서 기사도의 개념에 대해 나오자 그가 관심을 보였다.
“흥미로운 대답이군. 브리스톨 군. 자네 말대로 기사도는 모든 기사들이 똑같이 걸어야 하진 않지. 하지만 그건 자기만의 기사도를 발견했을 때 이야기일세. 하급기사인 자네가 기사도에 대해 논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하네만.”
“저는 기사도를 논하는 것에 연령과 시기 따위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정면으로 데릭 쿠퍼의 말을 반박했다.
과거에 데릭 쿠퍼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대로 따라했다.
“계속하게.”
데릭 쿠퍼는 리사 그란델과는 전혀 다른 주제의 내용이 내게서 나오자 꽤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수업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기사도란 남이 세운 검의 길이 아닌 내가 세울 검의 길을 찾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칼론에 입학하면서 여기 이 검을 차고 왔습니다. 기사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기사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입학하면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네는 그 길을 찾았는가?”
데릭 쿠퍼의 질문에 나는 기다렸단 듯이 대답했다.
“그 길을 찾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교실을 맴돌았다.
싸늘했던 데릭 쿠퍼의 눈빛이 여전히 나를 노려봤다.
“카하하하!!!”
갑자기 목 놓아 웃기 시작하는 데릭 쿠퍼.
그의 웃음이 얼마나 큰지 넓은 교실 끝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창문이 미세하게 떨릴 정도였다.
“루안 브리스톨 군.”
“예.”
“브리스톨 가문답지 않은 구석이 있군.”
“아무래도 제 피가 반반 섞였잖습니까? 그 때문인가 봅니다.”
내 대답에 데릭 쿠퍼의 눈동자가 커졌다.
브리스톨 가문의 첩이 낳은 제 7공자인 내 입에서 스스럼없이 혈통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예상 못한 눈치였다.
데릭 쿠퍼는 눈동자는 커졌지만 표정은 여전히 완고했다.
“하하하! 자네의 대답이 마음에 드니 지각한 건 넘어가지. 다음부터는 오늘과 같은 답은 통하지 않을 걸세.”
“감사합니다.”
따가웠던 옆통수의 시선이 사라졌다.
교실에 있던 모든 학생들끼리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브리스톨 공작가의 첩이 낳은 자식이라더니… 그래도 브리스톨 가문이다 이건가?”
“좀 의왼데? 배 다른 혈통이라고 쫄아 있을 줄 알았더니 그런 게 전혀 없잖아.”
“지켜보는 눈이 많으니까 센 척하는 거지 뭐.”
학생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오는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거 되게 시끄럽네. 쫑알쫑알 어디 병아리들이 잠에서 깼나. 좀 안 닥치냐!! 잠 좀 자자!]난 반사적으로 옆을 쳐다봤다.
앞을 보던 리사 그란델과 눈이 마주쳤다.
‘얘는 아니고.’
다른 학생들을 쳐다봤지만 모두 데릭 쿠퍼만 바라볼 뿐 그 누구도 목소릴 내지 않았다.
‘이 목소리 뭐야? 대체 누가….’
순간 내 귀를 의심케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잠깐. 이 심장 소리…. 혹시 너 마지막으로 봤던 그 애송이 아니냐?]틀림없다.
이 새끼가 그 새끼, 아니지… 그 칼이다.
날 죽였던 마검.
놈의 목소리에 이어 데릭 쿠퍼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들도 알다시피 그란델 양이 말한 서클링의 기본은 언제나….”
난 데릭 쿠퍼의 눈치를 보면서 속으로 물었다.
‘너 혹시 그 마신이 갖고 있던 검 아니냐?’
바로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 왜 안 죽었냐? 내가 심장을 찔렀는데. 근데 여긴 어디야?]난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벌떡 일어났다.
“오, 브리스톨 군. 오늘 수업에 임하는 태도가 훌륭하군. 자네가 대답해보게.”
“예?”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