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ing with Ego Sword RAW novel - Chapter 4
제3화. 마검 라스칼 (1)
또다시 교실의 모든 학생들이 나를 주목했다.
얼떨결에 일어났는데 대답하려고 일어난 걸로 착각한 거다.
데릭 쿠퍼가 되물었다.
“브리켄슈타인 제국 출신으로 서클링 스텝을 가장 잘하던 기사가 누구지?”
갑자기 훅 하고 들어온 질문에 입술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누구였더라?
데릭 쿠퍼에게 찍힐 뻔했던 게 불과 몇 분 전이었다.
질문에 대답을 하려고 일어났는데 제대로 못 한다면 찍히는 게 아니라 저 인간 검에 찔릴 거다.
데릭 쿠퍼는 자신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하려는 학생들을 좋아한다.
나는 대답하려고 일어난 게 아니다.
내 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서 일어난 거다.
이 목소리는 날 죽였던 마검이었으니까.
“브리스톨 군.”
“에? 아, 예!”
“내 질문을 못 들은 건가? 아니면 대답을 못하는 건가?”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대답해보게.”
“그게….”
데릭 쿠퍼가 다시 내게 걸어온다.
여기서 모르겠다고 대답하기엔 이미 늦었다.
자신을 농락한 걸로 받아들일 거다.
어떻게든 대답을 해야 하는데 생각이 안 난다.
뭐였지? 누구였더라?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리우스가 브리켄슈타인 놈들 중 서클링은 젤 잘했는데.]그렇지!
나는 본능적으로 외쳤다.
마검의 목소리란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
“마리우스입니다!”
다가오던 데릭 쿠퍼의 발이 멈췄다.
그의 표정에 만족감이 번졌다.
얼떨결에 대답했지만 위기를 넘긴 듯 했다.
“정답이네. 브리켄슈타인이 낳은 걸출한 천재 기사이자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던 마리우스는 당대 적수가 없던 최강의 기사로 역사에 기록되었지.”
데릭 쿠퍼는 다시 칠판으로 향했다.
여기서 저 인간의 질문이 끝날 리가 없다.
“그런데 이 걸출한 천재가 마계 토벌에 나섰다가 갑자기 죽은 채로 발견되었네. 뭐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지?”
데릭 쿠퍼가 또 내게 물었다.
내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자신이 대답하는 것처럼.
[내가 죽였지.]“제가 죽였습니다.”
만족감이 번지던 데릭 쿠퍼의 표정이 뒤틀렸다.
나를 쳐다보는 학생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렀다.
“미친…. 쟤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데릭 쿠퍼를 상대로 말장난을 하다니…. 아무리 브리스톨 가문이라지만 간이 커도 너무 크네.”
“큭큭큭. 아 웃겨. 브리스톨 가문도 피곤하겠다. 저런 멍청이를 끼고 살아야 되니.”
데릭 쿠퍼가 내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브리스톨 군. 자네 방금 뭐라고 하였는가?”
“아니, 아닙니다. 말이 헛 나왔습니다.”
“마리우스 기사단장은 죽은 지 100년이 넘은 인물인데… 자네가 죽였다고?”
데릭 쿠퍼의 말이 끝나자마자 교실에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하!!”
옆자리에서 턱을 괴고 날 지켜보던 리사 그란델도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이 와중에도 마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큭큭. 멍청한 놈.]이런 빌어먹을….
“모두 조용.”
시끄럽던 웃음이 꺼졌다.
“마리우스 단장은 여기 있는 브리스톨 군이 아니라 마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네. 이만 앉게, 브리스톨 군. 마리우스 단장을 죽이느라 힘들었을 테니까.”
“쿠훕!”
“큭큭큭큭”
뒷자리에서 비웃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젠장, 첫날부터 무슨 개망신이냐.
나는 앉아서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데릭 쿠퍼는 다시 칠판으로 몸을 돌리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들 알다시피 마리우스는 마검에 의해 죽었다. 자, 그러면 여기서 마리우스를 죽인 마검은 뭘까?”
“그냥 마검이죠.”
누군가의 대답에 데릭 쿠퍼가 쓴웃음을 지었다.
“마검은 맞네. 하지만 검에도 이름이란 게 있지. 이 위대한 기사를 찔러 죽인 마검 또한 전해지는 이름이 있는데 아는 사람 있는가?”
이름이라….
그러고 보니 날 찔렀던 이 마검의 이름이 라스칼이었지.
죽기 전 마신에게서 들었던 이름이었다.
‘자기가 죽였다고 하는 걸 보면 혹시…?’
밑져야 본전.
나는 손을 들었다.
“음, 브리스톨 군. 수업을 향한 열정은 마음에 드는데 이번엔 진지한 대답을 기대하지.”
“큭큭큭.”
주변에서 짧은 웃음들이 새어나온다.
나는 이들을 무시하고 대답했다.
“라스칼입니다.”
여전히 끊이지 않는 웃음.
반면 데릭 쿠퍼는 놀라운 눈으로 되물었다.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알았나?”
순간 웃음이 싹 사라졌다.
“그게….”
이번엔 또 뭐가 문제야. 그냥 맞다고 하고 넘어가주지. 좀!
데릭 쿠퍼는 사소한 질문조차도 끊임없이 학생들이 대답하게끔 만드는 데 천재였다.
그의 검술 스타일과 똑같아서 붙은 별명이 있었다.
‘흑여우의 검’ 데릭.
중후장대한 체구와 어울리지 않게 치밀하고 교묘한 검술로 항상 적의 공격을 끄집어내 틈을 찾아 찔러 넣는 카운터 공격의 천재.
하마처럼 두꺼운 그의 허리에 매달린 레이피어가 그의 검술을 대변했다.
무지막지한 대검을 한 손으로도 휘두를 것처럼 생긴 거구였지만 그의 검은 정반대였으니 세상의 주목을 받을 만했다.
“브리스톨 군.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네.”
여기서 더 우물쭈물 하면 체벌을 받게 된다.
난 이미 한 번 데릭 쿠퍼에게 장난을 친 학생이 되어버렸다.
첫날부터 지각했고 그 다음 시덥잖은 말장난을 던졌고 게다가 대답마저 얼버무린다?
어떤 체벌을 받을지 기대하는 게 더 속 편할 거다.
“브리스톨가의 도서관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으음~ 그랬었군.”
그제야 데릭 쿠퍼는 알겠다는 듯이 묻지 않았다.
브리스톨 가문에는 오래된 고서들이 잔뜩 쌓여있는 서고가 있었다.
이 서고에는 세계 각국의 기사 가문에 전해져오는 검술의 정보가 담긴 책들이 많았고 그다음으로 역사에 전해지는 명검들의 이름과 능력, 이야기가 기록된 사서들이 많았다.
검술을 숭상하는 가문답게 서고의 모든 책들은 다 검술 관련된 것들이었고 황실의 서고보다 더 많은 책들이 있다고 세간에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데릭 쿠퍼 교수는 군말 없이 인정한 것이다.
“브리스톨 공작가의 서고에서 본 것이라면 그럴 만하군. 그 서고에는 검술과 검에 관련된 세상 모든 책들이 모여 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니까.”
데릭 쿠퍼 교수의 말에 또다시 모든 학생들이 날 바라본다.
얘들아 그만 좀 쳐다봐라. 내 피부 주름지겠어.
나는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데릭 쿠퍼는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이 마검 라스칼은 지금껏 실물로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직 구전으로만 전해져 오는 독특한 검이지.”
“쿠퍼 교수님. 그 마검은 무슨 능력이 있나요?”
“정확한 건 아니지만 그 마검에는 검의 정령이 있다고 하더군.”
“정령이라면 마법사들이 부리는 존재들 아닌가요? 검에도 정령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나도 들은 거라서 정확하게 알진 못하네. 하지만 가문의 서고에서 라스칼에 대해 읽었다는 브리스톨 군이라면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예?”
또 나다.
와, 지각 한 번 했다고 넘어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건 틀림없이 데릭 쿠퍼한테 찍혔다는 증거다.
“브리스톨 군. 자네가 읽었다는 책에는 라스칼에 대해 어떤 정보가 있던가? 여기 있는 학생들에게 알려준다면 훌륭한 지식이 될 거라 믿네.”
데릭 쿠퍼의 말에 또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과거에는 이렇게 존재감 발휘한 적이 없었다.
본의 아니게 모두의 시선을 받게 된 건 기사단에 들어가 사고 쳤을 때 외에는 없었으니까.
“그게… 그러니까….”
나는 공작가의 서고에서 라스칼 이야기를 읽은 적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이 회귀한 첫날인데 무슨 얼어 죽을 서고에 가겠나?
아직 혈족들과 인사 한 번 못 나눴는데.
결국 지어내야 한다. 어떻게든.
“에…. 제가 읽은 책에는….”
모두가 내 입을 주목하니 입술이 바짝 말라왔다.
아 몰라. 그냥 되는 데로 지껄이자.
내 입술이 열리는 찰나였다.
[이 몸에 대해 궁금한가 보군. 나 라스칼은….]갑자기 내 책상 옆의 설치된 칼꽂이에 꽂혀있던 검에서 마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잠깐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데릭 쿠퍼에게 대답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약탈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검이라고 합니다.”
나는 지금 마검이 알려주는 걸 받아쓰기 하듯이 대답하고 있었다.
“풉! 그런 검이 어디 있어?”
구석진 곳에서 모여 앉은 남학생들 사이에 비웃음이 터졌다.
그러자 마검의 목소리가 귀 따갑게 들려왔다.
[저것들이 죽고 싶냐! 야, 애송이. 날 뽑아라. 저 꼬맹이들의 피 맛이 궁금하다.]나도 모르게 속으로 대꾸했다.
‘이거 미친 놈 아냐?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칼을 뽑으라는 거야.’
[어디든 알게 뭐냐? 빨리 뽑아라. 저놈들을 죽여버릴 거니까.]이거 아무래도 미친 칼 같다.
그러니 마검이라 불리겠지만.
‘야, 너 시끄러우니까 좀 닥치고 있어. 날 죽인 놈 말을 들을 거 같냐?’
[어쭈? 아직 덜 죽었나 보네. 한 번 더 죽여줄까?]라스칼은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자신을 비웃었단 이유만으로 죽여 버리겠다고 날뛰는 꼴이라니.
마신이 쓰던 검 아니랄까봐 성질도 걸레 같다.
“조용하게. 라스칼에 관련된 전설에도 브리스톨 군이 말한 것과 같은 이야기들이 많다네.”
“쿠퍼 교수님. 기사에게 있어서 검이란 어떤 검을 쓰냐가 아니라 누가 어떻게 쓰냐가 중요하다고 배웠습니다.”
옆에 앉은 리사 그란델이 대답하자 데릭 쿠퍼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원론적이지만 정답일세. 그란델 양. 결국 검이란 쓰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승패가 나뉘게 되지. 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에게 의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기본적인 기사의 덕목이지. 역시 명문가의 후계자답군.”
“과찬이십니다.”
쌀쌀맞은 말투였지만 리사 그란델은 날 힐끔 보면서 오뚝한 콧날을 높이 세워보였다.
내 기억에 그녀는 검술 학교 칼론에서의 3년 동안 가장 뛰어난 여기사로 활약을 한다.
검술 학교에서 매년 개최되는 칼론 토너먼트에서 남녀 불문 3년 연속 우승을 했었으니까.
동년배의 기사들 중 가장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그란델 가문 소속의 여기사단 ‘회색 장미’ 에 최연소로 들어갔으니까.
그 이후엔….
뭐 이런 건 중요하지 않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어쨌든 지금 내게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니까.
[애송아 내 말 못 들었냐? 뽑으라고. 뽑아 인마.]나는 책상에 앉아 눈을 감고 주먹을 쥐었다.
‘시끄러우니까 좀 닥쳐. 대장장이한테 폐기처분 시켜달라고 하기 전에.’
[너부터 죽여줄까? 일단 뽑아봐.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지.]일단 마검의 목소리를 가볍게 무시했다.
조금 있으면 수업 끝나니까 참자.
키아아악-!!
칠판 위쪽 벽면에 설치된 고블린의 대가리 박제가 갑자기 울부짖었다.
마침내 수업이 끝났다.
“다음 시간에는 본격적인 검술 이론을 들어갈 테니 모두 예습을 철저히 해오도록.”
“수고하셨습니다!”
우렁찬 대답이 들려온다.
나는 일어났다.
바람 좀 쐬고 싶었다.
기껏 회귀했는데 이 꼴이 대체 뭐란 말인가?
날 죽였던 마검과 같이 회귀해버리다니.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싶지도 않다.
‘이 마검을 어떻게든 없애버려야겠어. 그런데 어떻게 없애지? 이거 아바마마께서 칼론 입학 선물로 직접 주문 제작한 검이라고 하던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