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ing with Ego Sword RAW novel - Chapter 43
제42화. 한 여름밤의 수련
클레이 황자가 물었다.
“어째서 대답이 없는 것이지?”
“아…폐하. 아니, 황자님. 갑자기 그렇게 물으시니….”
“함께 하겠는가?”
제레마이어는 대답을 회피했지만 클레이는 직설적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브리스톨을 제거하겠다니…. 황자께서 그럴 만한 힘이 없으실 텐데….’
클레이의 질문은 제레마이어를 난감하게 몰아갔다.
브리스톨은 단순한 귀족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클레이가 브리스톨을 제거하려는 일에 함께 하자는 말은 심각한 제안.
“제레마이어 가문조차 머뭇거리게 만들다니… 브리스톨이 대단하긴 대단하군.”
클레이는 제레마이어 공작이 들으란 듯이 말했다.
제레마이어 공작이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황자님. 브리스톨을 제거하시겠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여쭙겠습니다.”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것인가? 브리스톨 가문을 제국에서 치워버리겠다는 거다.”
“어째서 브리스톨을 제거하려고 하시는지요?”
“나의 제국은 지나치게 브리스톨 가문에게 의존하고 있으니 그걸 바로잡을 것이다.”
“브리스톨은 제국의 검이자 현재 살아 계신 황제 폐하의 가장 가까운 친우이신 리처드 브리스톨 대공의 가문입니다. 브리스톨을 치시겠다는 것은 폐하께 반역….”
클레이의 눈이 싸늘해졌다.
“반역이라고? 그대는 내가 반역자라는 것인가?”
“아…. 죄, 죄송합니다! 황자님. 죽여주시옵소서.”
브리스톨을 제거하겠다는 클레이의 말에 당황하여 말실수를 저지른 제레마이어.
빠르게 엎드려 클레이에게 복종의 뜻을 전했다.
제레마이어 가문은 상위 귀족임에도 대륙의 주인은 황제라는 것을 가장 노골적으로 주장했던 가문.
그런 가문의 수장이 황자 앞에서 반역이란 표현을 썼으니 죽어도 할 말 없는 말실수였다.
하지만 노련한 제레마이어 공작이 황당한 말실수를 할 만큼 브리스톨을 제거하겠다는 클레이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후후후, 제국에서 브리스톨 다음 가는 제레마이어를 어째서 죽일 수 있겠는가? 그대가 나의 뜻에 동참하겠다는 맹세를 한다면 그대의 말실수는 못 들은 걸로 하겠다.”
클레이의 말에 제레마이어는 곤혹스러웠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구나….’
다른 황자도 아니고 클레이 황자 앞에서 반역이란 표현을 꺼낸 것은 끔찍한 실수.
하지만 브리스톨 가문에서 1황자를 지지할 때 제레마이어 가문은 클레이를 지지했었던 것이 자신의 목숨을 살릴 기회라고 느꼈다.
‘이미 클레이 황자를 지지했고 황자께서는 차기 황제에 오르실 분. 게다가 브리스톨 가문만 없다면 나의 가문은 제국 최고의 귀족으로 오를 것이다.’
제레마이어의 숨겨진 욕망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는지 클레이가 말했다.
“언제까지 항상 브리스톨의 그늘에 가려 빛을 피할 것인가? 나는 새롭게 떠오르는 제국의 태양이다. 그대 가문을 밝혀줄 수 있는 태양 말이다.”
클레이의 말에 제레마이어가 확신했다.
‘황자께서 저 말을 내게 꺼내셨으니 여기서 물러나면 나 또한 죽은 목숨. 물러날 곳이 없으니 가문의 기회로 여기고 나아가자.’
제레마이어가 대답했다.
“로버트 제레마이어, 가문의 명예를 걸고 위대한 브리켄슈타인 제국의 제4황자이신 클레이 브리켄슈타인의 뜻에 동참할 것을 맹세하나이다.”
클레이가 냉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새로운 태양의 빛은 제레마이어 가문에 닿을 것이다.”
* * *
루안은 스미스와 같이 라비뇽 후작을 찾아갔다.
스미스가 말했다.
“정말 이렇게 할 거냐?”
“네. 라비뇽이 저를 제거하려고 한 건지 알아내려면 이것밖에 없어요.”
“흐음, 뭐 네 계획이 먹히기를 바라마.”
“교관님은 제가 말한 대로 해주세요.”
“알았어.”
루안과 스미스가 라비뇽 후작을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브리스톨 군!”
멀리서 라비뇽 후작이 달려오고 있었다.
스미스가 낮은 목소리로 루안에게 말했다.
“후작은 이미 알고 있어.”
“알아요.”
라비뇽 후작이 루안에게 달려오더니 갑자기 와락 하고 끌어안았다.
루안이 스미스와 눈을 마주쳤다.
스미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라비뇽은 이미 자신의 집사 크렌포드의 암살이 실패한 것을 알고 있었다.
“간밤에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는가?”
“네? 어떻게 아셨죠?”
“하하하, 이곳은 뷰론 공화국이네. 내 호위를 맡았던 기사가 위험에 처한다면 가장 먼저 아는 사람은 바로 나 라비뇽이지.”
“아, 그러셨군요.”
루안의 인공적인 미소를 보면서 라비뇽 후작이 껄껄거렸다.
“하하하, 그래도 이렇게 무사하니 참으로 마음이 놓인다네. 내 호위를 맡겼던 기사와 용병들이 괴한들에게 기습을 당하다니… 그것도 내 나라에서 말이지! 이런 겁도 없는 짓을 저지를 놈은 많지가 않다네.”
라비뇽 후작은 능숙한 말투로 루안에게 물었다.
“암살자들의 정체를 밝혀냈는가?”
루안은 라비뇽의 의도를 파악했다.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거지?’
라비뇽은 능글맞은 웃음을 띄우고 루안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요. 아직 못 알아냈습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루안이 물었다.
“혹시, 후작님께서….”
“응?”
골몰한 표정을 짓던 라비뇽이 루안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옆에 있던 집사 크렌포드 역시 루안을 바라봤다.
루안은 라비뇽의 시선을 통해 표정을 빠르게 훑었다.
스미스는 루안이 말한 대로 크렌포드의 시선과 표정을 곁에서 지켜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루안과 스미스는 라비뇽과 크렌포드에게서 느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짐작 가는 놈들이 있으십니까?”
“으응? 아~ 하하하!”
라비뇽 후작은 루안의 이어지는 말을 듣고 나서야 호탕하게 웃었다.
루안은 칼론에 처음 입학했을 때 리처드 브리스톨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네 앞에서 웃는 귀족들을 경계해라.’
리처드 브리스톨의 말에 루안은 경계해야 하는 이유를 물었었다.
‘위험한 귀족일수록 모든 것을 웃음 속에 숨겨둔다. 그러니 네게 접근하거나 마주치는 귀족들이 언제 웃는지, 어떻게 웃는지 항상 기억해라.’
리처드의 말대로 루안은 라비뇽의 웃음에서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루안의 질문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레녹 왕국으로 가던 길에 라비뇽 후작의 암살자들이 나타났었고 뷰론으로 돌아와서 임무가 끝나자마자 자신을 노리는 암살자들이 또 나타났었다.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라비뇽이 루안에게 대답했다.
“흐음, 짐작 가는 놈들이 있기는 하네만 여기서 말하기엔 민감하니 들어가서 알려주겠네.”
루안과 스미스가 라비뇽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크렌포드, 마실 것을 가져와주겠나?”
곁에 있던 크렌포드가 밖을 나가고 나서 라비뇽이 말문을 열었다.
“브리스톨 군을 노린 암살자들에 대해 내가 사람들을 시켜 알아보고 있네. 아직 확실한 물증이 없어서 말하기가 조심스럽네만….”
“짐작 가는 사람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 또한 확실한 대답을 해주고 싶으니까요.”
라비뇽이 루안의 말을 들으면서 은밀하게 눈을 빛냈다.
“흐음…. 확실한 대답이라면… 보복을 에둘러 표현한 것인가?”
“저는 브리스톨 가의 사람입니다. 내게 검을 겨눴던 놈에겐 반드시 검으로 돌려주라고 배웠습니다.”
루안이 브리스톨을 거론하자 라비뇽의 표정이 빠르게 변했다.
“하하하, 그렇지. 내가 짐작 가는 사람은 뷰론 공화국의 사람이 아니라네.”
끼이익-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시녀들이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접시에 담아 가져왔다.
시녀들을 훑어보면서 라비뇽이 능글맞은 웃음을 띄웠다.
루안은 라비뇽의 표정을 잔잔하게 읽어내면서 관찰하고 있었다.
시녀들이 나가고 나서야 라비뇽의 말문이 열렸다.
“바로 클레이 황자라네.”
라비뇽의 대답에 루안이 스미스와 눈을 마주쳤다.
“클레이 황자님이요?”
“이거 참…. 자네가 제국 사람이니 뭐라 말하기가 민망하군.”
“후작님께서는 클레이 황자가 저를 죽이려고 했다는 말씀이신가요?”
루안의 말에 라비뇽이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댔다.
“목소리를 낮춰.”
“이해가 안 가서 여쭤보겠습니다. 후작님의 암살 모의 사건에 배후로 지금 클레이 황자가 유력한 상황인데 무슨 이유로 저를 노리고 있는 걸까요?”
루안의 말을 들은 라비뇽이 미소를 지었다.
‘보기보다 순진한 놈이로군. 애는 애라니까.’
라비뇽이 클레이 브리켄슈타인을 거론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생각해보게. 날 암살하려 든 놈들을 누가 막았는가? 자네들 아니었던가?”
라비뇽이 너스레를 떨며 루안 옆에 있던 스미스를 향해 손짓했다.
“자네들이 없었다면 나는 죽은 목숨이었다네. 하지만 클레이 황자는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지. 다음 계획을 세웠을 것이고 그 계획을 성공시키려면 날 호위했던 실력자들을 제거하는 것이 핵심이겠지.”
루안은 라비뇽의 말을 들으며 더는 물어볼 수 없었다.
라비뇽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가려낼 수 없음은 물론이고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레이 황자가 후작님의 암살 음모의 배후로 알려졌는데 호위 용병들을 제거한다는 것은 무모한 행동 아닐까요?”
“브리스톨 군. 그러니까 은밀하게 처리하려고 암살자를 보냈던 것이지. 클레이 황자는 항상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닌 사람이네.”
“그럼 실패했으니 클레이 황자의 다음 전략은 뭘까요?”
라비뇽이 차를 한 잔 들이키면서 대답했다.
“클레이 황자의 속내를 어느 누가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자넬 노렸다면 그것도 이유가 있을 것이니 당분간 주의하게.”
그런 이유 따위 있을 리가 없다.
라비뇽의 말은 루안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꾸며낸 거짓이었으니까.
크렌포드 집사의 계획이 실패하고 라비뇽은 루안과 스미스가 자신을 의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뒀었다.
그의 예상대로 루안과 스미스가 찾아왔고 라비뇽은 이것을 기회로 역이용하기로 했다.
바로 자신의 암살 모의를 꾸며서 클레이 황자를 모함하는 것에 더하기로.
루안은 라비뇽에게 물어보는 것이 의미 없다고 느꼈다.
‘내가 의심하는 걸 알고 클레이 황자를 끌어들여서 교란시킬 전략인건가?’
라비뇽 곁에 있던 크렌포드가 말했다.
“후작님. 곧 의회당으로 가실 시간입니다.”
“아, 그렇지. 브리스톨 군. 내가 시간이 없어서….”
“아닙니다. 저희도 이제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언제든지 와도 좋다네. 뷰론 공화국에 있는 동안만큼은 내가 있으니 안전할 거야.”
루안과 스미스가 집무실을 나가자 크렌포드가 말했다.
“후작님, 알아챘을까요?”
“알아챘으니 여기를 왔겠지.”
“죄송합니다. 후작님. 평소처럼 처리한다고 했던 것이 그만….”
“저놈은 브리스톨 가문의 혈통이다. 용병 놈들과 같이 다니니 자네가 망각했던 것이지. 실수를 잊지 말고 당분간 지켜만 봐. 그리고 저번 록 마운틴 암살 모의 사건에 썼던 놈들은….”
“처리했습니다.”
“좋아, 이제 흔적은 안 남겼으니 내가 의장에 오르는 날까지 기다리는 일만 남았군.”
* * *
루안은 암살자의 기습 사건을 겪고 난 뒤 밤마다 라스칼과 몰래 수련을 하고 있었다.
“하악… 하악….”
“루안, 이렇게 하다가 죽을 걸?”
“라스칼 네가 느꼈던 기척을 나는 전혀 느끼질 못했어. 솔직히 이제 와서 말하자면 네가 아니었으면….”
“죽을 뻔했지?”
라스칼이 낄낄거리면 루안을 쳐다봤다.
저 표정을 또 봐야 하다니.
“맞아. 나도 그런 기척을 느끼는 감각을 키우고 싶어.”
“그런 감각은 꽤 시간이 걸려.”
“그러니까 해야지.”
“흐음, 그럼 따라와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