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ing with Ego Sword RAW novel - Chapter 5
제4화. 마검 라스칼 (2)
나는 수업을 마치고 공작가로 돌아왔다.
“도련님. 오늘 첫날인데 수업은 잘 들으셨어요?”
“그럭저럭.”
방에 들어와 가방을 휙 하고 던진 뒤 검을 노려봤다.
이번엔 마검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다시 잠들었나?
“도련님. 대공님께서 찾으십니다.”
시녀가 방에 찾아와 인사를 하며 말했다.
“알았어.”
나는 케일을 데리고 리처드 브리스톨이 머무르는 안가로 향했다.
* * *
사방이 탁 트인 넓은 화원.
곳곳에 다양한 석조 건축으로 만들어진 조각상들이 물을 뿜어내는 분수가 보였다.
분수를 둘러싼 화려한 꽃들이 나비와 꿀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꽃들의 향기를 맡으며 걷다 보면 웅장한 저택이 나온다.
브리스톨 가문의 저택 가운데 가장 거대한 리처드 브리스톨의 안가.
정문을 지키는 호위기사들이 날 보자 가슴에 팔뚝을 붙이며 인사를 했다.
“7공자 도련님을 뵙습니다.”
짧고 간결한 인사.
나는 기사들과 눈빛을 주고받은 뒤 이들 사이를 가로질러 안으로 들어갔다.
집사 케일이 나를 앞장섰다.
“대공님. 7공자 도련님께서 오셨습니다.”
케일이 먼저 리처드 브리스톨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가 있는 방은 활짝 열려 있었다.
열려 있는 문에는 드래곤의 머리를 조각한 문고리가 달려 있었다.
문으로 들어서자 맞은편에 열린 창문으로 산들바람이 불어와 내 얼굴을 덮쳤다.
리처드 브리스톨이 그 바람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흑갈색의 짧은 머리 아래로 번쩍이는 안광.
그의 시선은 책상을 향하고 있었다.
책상에 놓인 칼집은 황금으로 칠해져 있었고 그가 꺼내 닦고 있는 검 ‘살라딘’은 서슬이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리처드 브리스톨은 살라딘을 소중하게 닦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 곁에는 호위기사 제럴드가 지키고 있었다.
브리스톨 가주를 지킨다는 것은 가주 다음으로 강하다는 뜻.
제럴드는 ‘황제의 검’ 칭호를 부여받은 몇 안 되는 기사 중 하나였다.
“루안 브리스톨. 아바마마를 뵙습니다.”
나는 그의 앞에 서서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리처드 브리스톨은 여전히 살라딘에게 시선을 주며 대답했다.
“수업에 지각을 하고, 선생에게 장난을 치고. 첫날부터 재밌게 보냈더구나.”
어떻게 알았지 싶겠지만 내 앞에 앉은 남자는 리처드 브리스톨이다.
황제조차 정보를 구하려면 그를 부른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하물며 칼론이야 그의 손바닥 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바마마.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설명할 필요 없다. 앞으로 지켜보마.”
리처드 브리스톨은 여전히 칼만 닦고 있었다.
회귀 전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가 살아있다는 걸 알았다.
그것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대답을 해줄 리가 만무하다.
나는 버려놓은 자식이었으니까.
“나가보겠습니다.”
나는 인사를 한 뒤 방을 나왔다.
리처드 브리스톨은 살라딘을 닦기만 할 뿐 루안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묵묵히 서 있던 제럴드가 물었다.
“주군, 막내 도련님께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까먹었어.”
리처드의 말에 제럴드는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살라딘을 닦고 칼집에 밀어 넣는 리처드가 물었다.
“제럴드, 자네가 보기에는 루안이 칼론에 잘 적응할 것 같은가?”
“브리스톨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적응 못할 리가요.”
“…….”
리처드 브리스톨은 더는 아무 말 없었다.
* * *
나는 가장 먼저 가문의 대장간을 찾았다.
“7공자님을 뵙습니다.”
대장간을 이끄는 브리스톨 가의 대장장이 라파엘이 인사를 한다.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 칼… 혹시 부쉈다가 다시 만들어주면 안 될까?”
나는 리처드 브리스톨이 하사한 검을 내밀었다.
정확히는 마검 라스칼이 깃든 검.
“예에? 아니 도련님.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멀쩡한 검을…. 그것도 대공님께서 직접 하사하신 검을 부숴버리라니요? 그건 제 목숨이 달아날 일입니다. 제 소관이 아니니 이해해 주십시오.”
대장장이 라파엘은 물론이고 옆에 있던 집사 케일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자식이! 죽고 싶냐?]난 라스칼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라파엘에게 물었다.
“이건 비밀로 해줄 테니까 걱정 말고. 네 실력이면 이런 검 한 자루 순식간에 만들 수 있잖아. 그것도 똑같은 걸로.”
“아유, 도련님. 바랄 걸 바라셔야죠. 브리스톨 가문에 비밀이란 없습니다. 만약 대공님 귀에 들어가면 저는 무조건 죽은 목숨이라고요. 도련님께서 제 안위를 책임지실 위치는 아직…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이다.
나는 무모한 제안을 라파엘에게 하고 있었다.
진짜 본론을 꺼내기 위해.
“그러면 내가 직접 만들 테니까 네가 옆에서 알려주면 되잖아.”
어떻게든 이 검을 부숴버리고 라스칼을 죽여야 한다.
짜증나는 쇳덩이니까.
무엇보다 날 죽인 놈을 허리에 차고 다닐 생각하니 거슬렸다.
“도련님. 대장장이 기술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도련님의 검 ‘툼스톤’은 제가 특별히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입니다. 이걸 부쉈다가 다시 만드는 건 어려워요. 더군다나 툼스톤은 대공님께서 저를 직접 불러 명을 하셔서 만든 검입니다. 이걸 손댄다는 것은 대공님을 손대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라파엘의 말을 듣자 라스칼이 웃어댔다.
[카하하! 들었냐? 애송아. 이 몸을 부쉈다간 네 목이 날아갈 거 같구나.]이런 젠장.
라파엘의 말을 들어보니 잘못 손댔다가 걷잡을 수 없을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왜 갑자기 이 검을 부쉈다가 다시 만들어달라고 하시는 거죠? 혹시 검에 문제가 있나요? 그런 거라면 대공님께 제가 직접 말씀 드리고 작업에 착수할 순 있습니다만….”
“아냐, 아무것도. 그냥 이 검 잘 쓸게. 만들어줘서 고마워. 라파엘.”
“아, 그러시다면야… 껄껄. 그 검은 도련님을 리니아 대륙 제일의 기사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꼭 그런 기사가 될게. 그런데 이 검 이름이 툼스톤이라고?”
“예.”
툼스톤이란 이름은 처음 듣는다.
‘과거의 내 검은 타이투스였어. 근데 왜 이번 생에서는 툼스톤이지?’
회귀를 했는데 미묘한 부분이 달라진 걸 발견했다. 리사 그란델이 옆자리였던 것처럼.
“그… 타이투스 라는 검이 내 검 아니었던가?”
나는 넌지시 물었다.
“아, 그건 망가져서 버렸어요. 하하하. 작업하다가 실수를 했지 뭐에요.”
라파엘이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자 나도 따라 웃었다.
“하하하, 그렇군. 수고해.”
대장간을 나오면서 케일이 물었다.
“도련님. 어디 가시게요?”
“검술 수련하러 간다.”
“예?”
앞서가는 루안 브리스톨을 바라보며 케일은 머릴 긁적였다.
“1학년 때까지 검술 레슨을 받는 걸 안 좋아 하셨는데…. 2학년이 되고 나니 자극을 받으신 건가? 도련님~! 같이 가요!”
* * *
“허억! 허억!”
나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주저앉았다.
“도련님 실력으론 아직 바위 베기는 무리라니까요.”
“아니야. 베야 돼.”
난 숨을 헐떡거렸지만 웃음을 머금었다.
“도련님.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으세요?”
“응? 아니야. 아무것도.”
케일에겐 들리지 않겠지만 나한테는 생생하게 들려온다.
라스칼의 쌍욕이.
[야!! 이 개XX가 죽고 싶냐!! 아프잖아!!]‘너 뒈지라고 치는 거다. 어떠냐? 아프면 바위를 베든가.’
나는 의도적으로 바위 베기를 선택했다.
바위를 벤다는 것은 상당한 숙련도의 검술 실력을 요하는 스킬이다.
이제 갓 칼론의 2학년이 된 하급기사가 바위를 벨 수 있을 리 없다.
‘야, 라스칼. 잔말 말고 내 말 들어라. 너 계속 바위에 처박히면 뒈질 걸?’
[이 자식이.]나는 라스칼이 바위에 충돌할 때마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왜냐고?
기사가 검을 쓸 때 물체를 깨끗이 베지 못하면 반작용에 의한 물리적 반발력이 몸으로 들어온다.
뿐만 아니라 검신에도 충격이 전해져 칼이 망가지는 일은 흔하다.
난 이걸 노렸다.
검의 재질은 강철이다.
강철을 잘 다듬어 검으로 만들었지만 투박한 바위의 겉면에 잦은 마찰과 충돌을 빚으면?
검은 상하고 만다.
특히 지금의 나처럼 얼렁뚱땅 베기로 바위를 후려치는 거라면 더더욱.
나는 일부러 베기가 아닌 후리기를 하고 있었다.
후리기는 주로 칼날이 아닌 칼의 면으로 타격을 한다.
어느 정도 무게가 있는 대검이어야 효과가 높고 기사의 근력이 뛰어나야 한다.
반면 나는?
“이야아압!!”
부아앙-!
카앙!!
“도련님!! 그러다 칼 망가진다니까요! 아무리 라파엘이 만든 검이라지만 그렇게 무식한 베기가 어디 있어요?”
나는 개의치 않았다.
라스칼의 고통어린 신음이 생생히 들려왔으니까.
‘쿠하하, 맛이 어떠냐? 마검 놈아.’
갑자기 검을 쥔 내 손에 온기가 맴돌았다.
‘뭐냐?’
[내 마력으로 네놈을 집어삼켜주마. 그러면 넌 내 꼭두각시가 되겠지. 크크큭. 기대하라고.]갑자기 손바닥으로 엄청난 마력이 밀려들어왔다.
“으어어!”
당황한 나는 툼스톤을 내던지려고 했다.
툼스톤은 내 손바닥에 찰싹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손바닥을 통해 들어온 마력은 순식간에 내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심장에 들어온 마력이 내 피 속으로 스며들어 온몸 구석구석 번져갔다.
“끄으으….”
“도련님!! 왜 그러십니까?”
케일이 달려왔다.
나는 툼스톤을 놓쳤다.
마력이 모두 들어온 순간 툼스톤이 바닥에 떨어졌다.
라스칼은 검의 정령.
툼스톤을 통해 내 몸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큭큭큭. 네놈의 심장은 이제 곧 이 몸의…. 응? 뭐냐… 이 자식 몸뚱이가….]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 * *
리처드 브리스톨은 침대에 누워 있는 루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브리스톨 가문과 계약한 의료 마법사가 루안의 손목을 짚고 있었다.
한참 뒤에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은 마법사가 일어났다.
“대공님. 막내 도련님께서는 일단 진정되셨습니다. 헌데 의아한 것이 있습니다.”
“뭔가?”
“루안 도련님께서 마법을 익히신 적이 있습니까?”
“마법? 그게 무슨 소린가?”
리처드 브리스톨과 그의 호위기사 제럴드, 루안의 집사 케일은 모두 의료 마법사를 바라봤다.
“루안 도련님의 몸에 기사에게서 흐를 수가 없는 마력이 흐르고 있습니다.”
의료 마법사의 대답에 리처드 브리스톨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다 진정되었다.
“그 아이는 마법을 익힌 적이 없네.”
“대공님. 혹시….”
“언제 의식을 회복하겠는가?”
리처드 브리스톨은 의료 마법사를 바라봤다.
마법사는 리처드의 눈빛을 보더니 의중을 파악했다.
“얼마 안 가 회복하실 겁니다. 갑작스런 마력에 반응하여 몸의 마나 하트가 각성된 듯합니다.”
“…수고했네. 당분간 지켜봐주게.”
* * *
나는 컴컴한 암흑 속에서 앉아 있었다.
“여긴 어디야?”
동굴 속처럼 울려 퍼지는 내 목소리.
누군가 대답했다.
“어디기는 네 내면 속이지.”
“누, 누구냐?”
금발의 조막만한 얼굴.
다부진 체구의 잘생긴 사내가 날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라스칼. 네놈의 검 속에 있던 정령이다.”
“정령? 이게 네 진짜 모습이냐?”
라스칼은 내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늘어놓기 시작했다.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건 정말 오랜만이군. 설마 이런 애송이가 내 아바타를 마주하게 될 줄이야….”
“야, 마검. 아까부터 계속 애송이 거리는데 한 번만 더 애송이 거렸다간 검을 아예 분질러버릴 거다. 회귀고 뭐고 그냥 같이 죽는 거라고. 알겠냐?”
라스칼은 날 째려보더니 한숨을 뱉었다.
“이따위로 생기다 만 거 같은 쓰레기한테 이런 육체가 있을 줄이야… 젠장… 짜증나네.”
“무슨 육체?”
“네가 어떤 몸을 갖고 있는지 전혀 아는 게 없는 거냐?”
“뭔 소릴 하는 거야?”
“어쩔 수 없군. 지금부터 잘 들어라. 네가 가진 육체가 어떤 능력이 있는지 알려줄 테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