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00)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00. 상으로 그대의 입술을(100/192)
#100. 상으로 그대의 입술을
2024.03.09.
에시카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일부러 기척을 숨기고 엿들은 건가요?”
레스반이 앞에 있었는데도 제가 그가 온 걸 알지 못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레스반이 의도적으로 기운을 드러내지 않은 것.
그는 손을 뻗어 에시카의 볼을 감싸며 말했다.
“손님을 맞았다기에 궁금해서 찾았는데, 끼어들 수가 없겠더군.”
엄살 같은 그 말에 에시카는 농담하지 말라는 듯 받아쳤다.
“거짓말. 음흉해요.”
레스반이 대답 없이 피식 미소 지었다.
문밖으로 새어 나오던 에시카의 차분한 목소리는 그녀의 강한 심지를 대변했다.
에시카는 결코 피하지 않는 여자이다.
자신을 향한 비겁한 악의에 꿋꿋이 맞서고, 상황을 지배하며 그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여자.
주저앉는 클라우스 대부인의 나무토막 같은 소리는 썩 흡족했다.
에시카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더라면 돌아가는 길이 썩 위험했을 텐데, 그 초라한 몰골은 이제 그녀의 승리의 증거일 뿐이다.
물론 대부인의 추악한 목소리를 제 귀로 듣게 한 죄로, 칼리안 클라우스에게도 불이익을 줄 것이다.
이 생각은 에시카와 공유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는 그녀의 볼을 감싼 손을 어깨로 내려 에시카를 감쌌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티 파티에서의 일도 들으셨겠죠?”
이 이야기에도 레스반은 긍정의 뜻을 나타내는 침묵을 표했다.
황궁의 어디에나 레스반의 귀가 있었다. 그녀에게 썩 달가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에시카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것 같았어요.”
에시카는 황후에게 조금도 말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방 먹였다.
황후는 알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에시카에게 당하는 것이, 레스반이 손을 뻗는 것보다는 나으리라는 사실을.
레스반이 지금껏 황궁 내의 일에 신경 쓰지 않은 이유는 바깥의 일거리가 많아서였다.
“그대가 잘 하리라는 것을 믿었어.”
에시카는 레스반의 말에 흠, 하고 대답했다.
“보통은 그 반대 아닌가요. 난 못 미더운 놈들 뒤에 사람을 붙였었는데.”
“사람을 붙인 게 아니라, 보호라고 받아들였으면 좋겠군.”
보호라. 에시카에게는 어색한 단어였다.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남자에게 그런 것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그녀였으니까.
조금 머쓱해진 에시카는 레스반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가 자신을 원하며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때로는 레스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다.
그가 고수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와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이전보다 꽤 정리가 된 모습이군. 전엔 물건이 많이 쌓여 있었는데.”
그들은 가끔 이야기를 나누는, 테라스가 있는 와인 룸으로 향했다.
에시카는 여러 종류의 와인들을 저장해 놓고, 정략적 이득이 있는 귀족들에게 마르넬 치즈와 함께 선물하고는 했다.
그늘진 이곳은 조금 서늘했지만 에시카에게도, 레스반에게도, 냉기가 파고들어갈 틈은 없다.
“황제 폐하께서 약혼 예물을 보내주신다고 해서요.”
에시카는 테라스와 가까운 의자에 앉았고, 레스반은 와인 렉에서 와인과 와인잔 하나를 꺼냈다.
“의례적인 절차이지. 오래된 것들이라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는 그대의 눈에는 차지 않을지도.”
“그래도 제국에서 일 년에 단 네 병 생산되는 술도 한 병 온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미리 공간을 비워 두었어요. 다른 오래된 것들은 친정에 보내면 좋아할 거예요.”
그리고 에시카의 손에 들린 뒤, 와인을 따랐다.
“하페이스의 금주를 말하는 것이군. 희귀성은 있어도 향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아.”
짙은 향과 함께 붉은 와인이 그녀의 잔을 채웠다.
“어쩌면 이 와인보다 별로라고 생각할지도.”
“설마요. 이건 발에 채일 만큼 평범한 와인일 뿐이에요.”
테라스에서 은은히 쏟아지는 빛에 그녀의 머리카락의 반은 은사가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레스반은 와인을 든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대의 가족들을 소개받지 않았지.”
에시카는 와인 한 모금을 마시고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노쇠하고 걷지 못하세요. 아마 약혼식에도 오시기 힘들 거예요. 오빠는 두 명이 있는데…… 저보다 세 살 많은 슈페르트 오빠, 두 살 많은 세르빈 오빠.”
프리하츠에서 그들과 뛰어놀았던 유년시절은 추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만 해도 유리와의 우정이 영원할 줄 알았었지.
“세르빈 오빠는 거의 외국에 나가 있다시피 하고, 슈페르트 오빠는 약혼 파티 때 토레스에 온다고 하는데, 그때 소개시켜 드릴게요.”
에시카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오빠가 걱정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본래 그런 사람은 아니니 선입견을 갖지는 마세요. 여동생이 재혼이라니, 누구나 그럴 테니까요.”
에시카의 표정을 보던 레스반이 입술을 달싹였다.
“이럴 때 보면…… 소녀처럼 화사하군.”
“네?”
“좋다는 이야기야. 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런 표정을 지었으면 하거든.”
에시카는 의아하다는 듯 레스반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레스반은 와인이 반쯤 남은 에시카의 잔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 안의 와인을 한 모금 넘겼다.
남성미를 드러내는 그의 목울대가 일렁인다.
에시카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레스반은 그녀의 곁에서 조금 풀어져 있다.
황족이 다른 누군가의 잔에 입을 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독살 우려 이외에도 황족의 품위와 격식이 있으니까.
그것이 설령 약혼녀의 것이라 할지라도.
“종전 기념식은 어떠셨나요?”
에시카는 그를 보며 물었다.
일주일 만에 만났을 뿐인데, 왜 이렇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 것일까.
그 이유는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그래, 종전 기념식.”
레스반은 짙은 눈으로 테라스 바깥을 바라보았다.
변경된 국경선의 어느 지점에서 종전 기념식이 있었다.
패전국의 주민들은 더는 빼앗기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제국민들에게도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다.
전쟁의 승리는 복수라는 명분을 충족하며 수많은 전리품들을 가져오게 되지만, 결국 민도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니 말이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요.”
에시카의 입술이 달싹였다.
무려 10년을 넘게 계속해오던 수복 전쟁이었다.
나라의 영토는 망국의 이전보다 더 넓어져 있었고, 황족을 참살했던 그들은 모두 무덤까지 샅샅이 파헤쳐져서 대가를 치렀다.
레스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고였다가 사라졌다.
에시카는 무슨 생각을 하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전쟁광 황태자가 전쟁을 그만두려면, 전쟁보다 매력적인 것이 필요할 터라고.”
그의 황금안은 짙었다.
“지껄이는 사람들을 보고 코웃음도 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지.”
에시카는 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살짝 돌렸다.
하지만 레스반은 그녀의 어깨를 감쌌던 손을 내려 허리를 끌어안듯 잡았다.
에시카가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굳건하게.
에시카는 레스반과 눈을 맞추었다.
그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모두가 흉포하다고 말하는 전쟁광의 금안이었으나. 에시카는 언젠가부터 그의 눈빛을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아마 레스반이, 오로지 에시카만 다른 식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이…….”
레스반의 입술이 달싹였다.
와인 한 잔에 취할 리가 없는데,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기분이다.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에 새어들었다.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
레스반은 그녀의 허리를 잡은 팔에 힘을 실어 에시카를 제 무릎 위로 들었다.
그녀의 내력에 비해 체구는 너무도 가벼워 그녀의 몸이 훅 올라왔다.
에시카는 레스반의 무릎에 마주앉혀진 채 흠칫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반쯤 그늘진 그의 콧대는 더욱 높아 보였고 눈매는 깊어 보였다.
“종전 기념식 내내, 이 지지부진한 행사를 얼른 끝내고 여기 올 생각뿐이었거든.”
그의 속눈썹은, 제 속눈썹만큼이나 긴 것 같다.
두근거리는 제 심장 소리가 그에게도 들릴 것 같았다.
레스반의 입술은 붉다.
“그러니까 상으로 그대의 입술을 줘.”
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그 입술로 내려간 순간 레스반의 숨결이 천천히 다가왔다.
입술이 닿기 직전 에시카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
그의 입술이 부드럽게 에시카의 입술을 삼켰다.
오래 갈구하던 것을 마시듯 그의 목울대가 다시 크게 움직인다.
제 것인지, 아니면 레스반의 것인지 모를 와인 향이 깊게 풍겼다.
머릿속에 아찔한 전류가 흐르고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흠칫 떨렸다.
저도 모르게 그에게 살짝 물러나려 했는지, 허리를 휘감았던 레스반의 손이 더욱 단단하게 위로 올라온다.
그리고 그녀의 등을 받치고 목덜미를 굳건하게 휘감는다.
내게 벗어날 수 없다고 암시하는 것처럼.
“……음…….”
잠시 벌어진 잇새로 에시카의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곧 막혔다.
레스반이 입술을 벌려 에시카의 안으로 부드럽게 침입해왔기 때문이다.
와인 향이 더욱 짙어진다. 달콤하고 알싸하며, 향기만으로 취하는 것 같다.
에시카는 문득 생각했다.
일 년에 단 네 병 생산된다는 술보다, 이 와인이 달콤할지도 모른다는 그의 말은 진실일지도 모른다고.
그의 호흡이 에시카의 호흡을 휘감았다.
그녀는 알고 있을까. 에시카가 클라우스 대부인과 이야기를 나누러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레스반이 꽤 불안해했다는 사실을.
그는 칼리안과의 재결합을 주장하는 클라우스 대부인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부터, 문을 부수어 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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