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03)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03. 입이 가벼운 손님들(103/192)
#103. 입이 가벼운 손님들
2024.03.12.
“벌써부터 금실이 좋으시군요.”
제 아내가 될 사람에게 입을 맞추는 황태자의 모습에, 황제의 측근 한 명이 황제와 담소를 나누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저런 사랑꾼이 되실 줄은 몰랐습니다.”
레스반과 에시카를 바라보는 황후의 눈빛은 싸늘했다.
에시카에게 가까이 갔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 나오는 칼리안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파들파들 떨며 분노한 눈으로 에시카를 보다가, 황급히 칼리안의 뒤를 따르며 그를 부르는 유리.
하지만 칼리안은 대답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그들의 모습에 황후의 입가가 달싹였다.
작은 소리가 흘러나온다.
“쓸모없는 것들…….”
황후는 짜증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기도하듯 눈을 감았다.
하지만 틀어진 계획은 하나가 아니었다.
**
“실례했어.”
키스가 끝나고, 귓가에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에시카는 레스반의 짙은 금안을 바라보았다.
칼리안이 제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는 황후가 파 놓은 함정이라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레스반이 이런 파격적인 방법을 택할 줄은…… 몰랐다.
“……네, 괜찮아요.”
약혼 파티에서의 가벼운 키스가 격식에 어긋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레스반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상상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여자를 만나지 않아 여러 소문이 돌 정도였던 남자이니까.
연회장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고, 정적이 그친 후에는 부인들이 ‘어머’ 하며 발개진 볼에 손부채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칼리안 역시 완전히 상심한 얼굴로 가 버렸다.
그의 키스는 적절한 순간의 적절한 행동이었지만…… 조금 부끄럽다.
에시카는 말 없이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낮추었다.
그녀의 볼 역시 미미한 열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은 황제와 황후를 향해 걸었다.
그들을 위해 준비된 연회장에 입장했으니, 연회의 주인인 황제에게 인사를 해야 했다.
달콤한 분위기에서 엄숙한 분위기로의 전환은 어색하지 않았다.
엄숙함 속에서도, 환희의 기운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존귀하신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께 인사드립니다.”
레스반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신하의 예를 표했고 에시카 역시 완벽한 황궁 예법으로 그들에게 인사의 몸짓을 했다.
에시카의 자태는, 아까 치맛자락을 올리며 인사하던 유리와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는 모두가, 이런 에시카를 두고 유리 따위와 바람을 피운 칼리안의 정신상태를 의심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 약혼 파티에서 보니 기쁘구나. 모든 것이 적절해.”
약혼 파티는 황실 구성원이 되기 전의 약식 검증 절차 같은 것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전 애인이나 구설수가 보통 이런 자리에서 흘러나오니까.
그리고 에시카의 팔을 붙잡으며 소란을 일으킬 뻔했던 칼리안이 나가자, 더는 그녀의 발목을 잡을 요소가 없었다.
“어여쁘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그리고, 황후 폐하.”
황후의 적대는 분명하였지만 적어도 황제는 에시카에게 분명한 호의를 나타내고 있었다.
“부디 위대하신 타메론의 정의가, 두 사람에게 깃들기를 바라네.”
서늘한 눈빛의 황후는 감정 섞인 덕담을 황제의 말 뒤에 붙였다.
황후에게 타메론의 심판이라며 칼에 찔렸던 에시카는, 그 말이 분명한 악담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싱긋 미소 지으며 황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어어, 늦었습니다.”
때늦은 2황자 브레이튼의 등장에 황후의 눈썹 끝이 올라갔다.
사람들이 웅성이며 브레이튼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래, 2황자도 왔구나. 몸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예, 황제 폐하. 형님의 약혼을 축하하러 들렀습니다. 황태자비께서 손수 초대 편지도 보내 주시고 해서…… 뭐 몸살이야 가뿐히 이겨 냈지요.”
2황자 브레이튼은 낮부터 술에 취했는지 벌써 콧잔등이 빨갰다.
황후가 이를 가는 듯한 얼굴로 에시카를 노려보았다.
“허어, 그래? 벌써부터 시동생을 잘 챙기는구나. 황태자비.”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폐하.”
에시카의 겸손한 답에 황제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구나.”
“황태자 전하. 황태자비 전하. 축하드립니다. 이제 진짜 가족이 될 일만 남았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브레이튼은 취한 모습으로 실실대며 웃었다.
에시카는 답하듯 미소 지었고, 다른 이들이 보기에 얼핏 훈훈해 보이는 상황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황후의 머릿속은 급격히 복잡해졌다.
그녀는 분명 브레이튼에게 당부했다. 황태자의 약혼 파티에 오지 말라고.
왜냐하면 이번 약혼 파티에 칼리안과 에시카 사이의 실랑이가 생긴다면, 지저분한 말을 잘 퍼트려 줄 입 가벼운 귀족들 위주로 초대했으니까 말이다.
황태자를 두려워하면서도, 황태자비가 될 에시카를 질투할 만한 질 나쁜 사람들을 주로 배석했고.
브레이튼의 약혼 파티가 열린다면, 초대된 사람들의 구성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자리는 브레이튼에게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다.
“그럼 가서 파티를 즐기려무나.”
황제의 말에 인사를 한 그들이 무도회를 향해 몸을 돌려 복귀했을 때였다.
브레이튼은 곧바로 여자들 몇에 의해 가로막혔다.
“황자 전하……?”
“……하…….”
잠시 멈추어 서서 그녀들을 보던 브레이튼의 딱딱한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황후는 죽일 듯 에시카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이게 얼마만이에요. 연락 없어서 얼마나 서운했는데…….”
“미안해. 알잖아, 요즘 그거 앞두고…….”
“결혼하신다고 나 잊어버리면 안 돼요. 응?”
“나도. 루비트 팔찌 사 주기로 하셨잖아요. 언제 사 주실 거예요?”
그녀가 초대한 질 나쁜 귀족들 중 일부는 불행히도 황자와 죽이 잘 맞는 여자들이었다.
에시카는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사람은 비슷한 부류끼리 끌리는 법.
그리고 하인즈 대공녀와의 결혼을 앞둔 지금, 황후는 황자가 어울렸던 질 나쁜 이들과의 관계를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을 것이다.
치명적인 소문들이 하인즈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하지만 브레이튼은 형수인 에시카에게 감사를 표하는 윙크를 한 번 한 뒤, 양옆에 여자들을 끼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생각할 것이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황후는 철없이 이 자리에 나와 에시카의 장난에 놀아나고 있는 브레이튼에 대해 분노가 치솟았다.
‘……제기랄……!’
그리고 그 분노는 당연히도 에시카를 향했다.
당장 멱살이라도 잡고 따지고 싶지만…… 시동생을 잘 챙겼다고 황제에게 칭찬을 들은 에시카를 어떻게 혼낸다는 말인가.
속만 새카맣게 탈 뿐이었다.
‘타메론의 저주를 받아 죽을 년!’
마녀처럼 요사한 미소를 지으며 황태자와 춤을 추기 시작한 에시카를 보며, 황후는 조용한 저주를 속으로 퍼부었다.
**
음악의 선율에 맞추어 에시카는 발을 맞추었다.
그러니까…… 이런 무도회장에서 춤을 춰 보는 일은 이전 삶과 지금의 삶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중원의 황궁에서도 이렇게 짝지어 춤을 추는 문화는 없었으며, 칼리안과 결혼 후에는 기회가 있었을 테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이런 자리에 에시카를 데려가 본 적이 없었다.
칼리안은 늘 에시카를 부끄러워했으니까.
“…….”
에시카는 부드럽게 제 몸을 이끄는 레스반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는 에시카에게 황실 예법을 가르칠 때 춤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그녀의 허리를 살짝 잡고 발을 맞추며 그들은 여러 번 춤을 추었다.
“샹들리에 아래에서 보니.”
레스반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짙은 황금안에는 오로지 에시카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더욱 예쁘군.”
노골적인 칭찬에 에시카는 살짝 눈을 흘겼지만, 심장은 즐거운 박자로 뛰고 있었다.
음악은 절정을 향해 흘러갔다.
다른 이들이 춤을 멈추고 모두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황태자는 한 번도 무도회장에서 춤을 춰 본 적 없었다.
그는 피칠갑이 된 갑옷을 입고 와서 무도회장을 살벌한 분위기로 만드는 것 외에는 하지 못하는 남자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 레스반은 모든 여자가 동경할 만한 황태자의 모습이었다.
어느 귀족 자제도 따르지 못할 잘생기고 기품 있는 외모와 황태자의 제복은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근사했다.
그리고 그의 동작은 예술적인 감각은 느껴지지 않지만 한 스텝도 틀리지 않는…… 그야말로 군인과 같이 남성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모습이었다.
“……와아.”
“제니, 해니스. 너희 지금 누구를 보는 거야. 내가 보고 싶었다며…….”
한켠에서는 브레이튼이, 제 형에게 눈길을 뺏긴 두 여자들에게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레스반의 시선은 오직 에시카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여자들이 가장 바라는 사내의 모습이었다.
모두에게 차갑고 벽 같으면서도 나에게만 불꽃 같은 남자.
오늘 약혼 파티가 지나고, 에시카는 ‘전쟁광 황태자와 결혼하게 될 불쌍한 여자’가 아닌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여자로 사교계에 알려질 것이다.
음악의 절정이 지나고 두 사람의 발이 멈추었다.
레스반은 에시카를 바라보며 탄식하듯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춤에 집중할 수가 없군.”
그렇게 잘 췄으면서 무슨 말이지, 생각하며 에시카는 레스반의 눈을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에시카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느긋하게 갈구하는 듯한 목소리가, 그녀만 알아들을 듯 낮은 파동으로 들려왔다.
“자꾸 그대의 입술만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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