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05)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05. 이혼보다 나은 선택(105/192)
#105. 이혼보다 나은 선택
2024.03.14.
레스반이 하세츠에서 수배된 소년이 자신이었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슈페르트는 놀라 눈이 커졌다.
잠시였지만 슈페르트 역시 에시카와 함께 있었던 그 소년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에게 잡혀가기 전 배고파 보여 빵도 주었지만 소년이 거절했었는데.
슈페르트는 이 엄청난 인연에 대해 여러 번 감탄했다.
“진짜 운명은 따로 있었구나, 에시카!”
클라우스 저택, 에시카는 어제 약혼 파티에서 보았던 그의 반응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하인즈 대공녀가…… 찾아왔습니다.”
그때였다.
한스가 곤란한 표정으로 에시카에게 보고했다.
먼 곳에서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우선 부인의 몸이 좋지 않다고 말씀드렸는데 고집을 부려서…….”
“들여보내요.”
“하지만, 단단히 앙심을 품으신 것 같았습니다.”
“어쩔 수 없죠. 내가 뿌린 씨앗인데, 내가 싹을 틔우고 꽃까지 피워야겠죠? 열매는…… 알아서 맺을 일이고.”
에시카가 어깨를 으쓱하자 한스가 작은 한숨을 쉬며 나갔다.
잠시 후 응접실의 문이 열리고 허리춤에 손을 짚은 채 씩씩대며 하인즈 대공녀가 들어왔다.
그녀의 눈은 밤잠을 이루지 못한 듯 새빨갰다.
하인즈 대공녀는 들어올 때의 기세와는 달리 에시카와 눈을 마주치자 크게 소리를 치지는 못했다.
이전에 에시카가 했던 협박 같은 말이 뇌리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따지기 시작했다.
“어제의 약혼 파티에서 있었던 일을 다 들었어요.”
“…….”
“당신…… 아니, 황태자비께서 2황자 전하에게 초대장을 보내셨고, 그 이후로 2황자 전하에 대한 불미스러운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요. 정말…… 하…….”
하인즈 대공녀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싸우자고 저에게 선전포고를 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네요!”
붉으락푸르락하는 하인즈 대공녀를 바라보는 에시카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그 이야기를 듣다가, 대공녀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 성의 없는 모습에 대공녀는 더 화가 난 것 같았다.
“아무리 황태자비께서 제 손윗사람이 될 거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저를 도발하고 형제 간의 전쟁에 불을 붙이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 될 거예요. 저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테니까요.”
“대공녀.”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에시카가 자신을 부르자 대공녀는 화가 난 와중에도 흠칫했다.
에시카의 음성에는 오묘하게 위압적인 힘이 담겨 있었다.
“무엇 때문에 내게 찾아왔는지는 충분히 알겠는데, 하나만 묻죠.”
에시카의 푸른 눈동자는 샘 속 빛나는 사파이어처럼 차갑고 차분했다.
“당신이 화를 내야 할 대상이, 내가 맞는 건가요?”
일순간 그 말에 대공녀는 어깨를 움찔 움직였다.
에시카의 시선이 본질을 꿰뚫어 보듯 서늘한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대공녀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 그게 무슨 말인가요. 당연히 황태자비께서 판 함정이니…….”
“남편의 동생을 약혼식에 초대하는 것이 거창한 함정까지나 된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건가요?”
그 말에 대공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황후는 늘, 제가 정한 날에만 2황자를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브레이튼의 몸이 좋지 않은데 혼자만 약혼 파티에 참가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며, 대공녀에게도 쉬라는 서신을 보냈다.
“알고 있잖아요. 황후 폐하가 당신에게 무엇을 숨기는지.”
“…….”
“하인즈 대공가의 정보력이 얕은 수준은 아닐 텐데.”
2황자가 얼마나 개차반인지 전혀 모를 리가 없다.
대공녀는 주먹을 꼭 쥐었다.
그리고 잠시 뒤 차가운 눈으로 입을 열었다.
“2황자 전하의 여성 편력은 과거의 일일 뿐이에요.”
“어제 보니까,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아닌 것 같은데.”
“황태자비 전하!!”
하인즈 대공녀는 더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에시카를 쏘아보았다.
그것은 그녀가 애써 생각을 피하던 문제였다.
브레이튼 2황자의 소문은 좋지 않았다.
황후가 아무리 치부를 숨긴다고 하더라도, 그 방패막들을 뚫고 사람들에게 전해질 만큼 그는 문란하게 사는 남자였다.
“고쳐 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어요.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이를테면 진정한 사랑이라던지. 그런 걸로.”
에시카의 말에 하인즈 대공녀는 흠칫했다.
마치 에시카가 제 속을 읽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믿었던 때가 있었다’?
잠깐의 생각 후에야 그것이 에시카의 과거를 말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대공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사내들은 아이가 아니에요. 십수 년간 굳어진 본성을 고친다고요? 만에 하나 좋은 부인을 만나 나쁜 습관을 고치는 남자가 있다고 해도, 그게 내 남편이 될 거라는 생각은 오만이에요.”
대공녀는 고개를 저었다.
에시카의 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2황자의 여성편력이, 결혼 후에도 고쳐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에시카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대공녀를 향해 다가왔다.
그녀의 서늘한 눈동자는, 과거의 상처와 경험과 지혜를 담고 있다.
칼리안 클라우스 공작의 이혼 사유 중 하나에 대해서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난 당신과 달라요. 내 결혼 생활은 실패하지 않을 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녀가 그저 되물었을 뿐인데, 가슴에 금이 가는 것 같았다.
하인즈 대공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브레이튼은 술에 취한 채 약혼 파티에 나타나 중간에 여자들과 함께 나갔다고 하고, 그중 한 명과 밤을 보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공녀의 꼭 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황실 혼담 성사는 가문의 업적이에요. 난 하인즈 대공가의 대공녀이고, 결혼만 남은 상황에서 무책임하게 발을 뺄 수는 없죠.”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다는 듯, 그녀는 냉정을 되찾으려 했다.
브레이튼은 변하지 않는 난봉꾼이며 그녀의 결혼 생활이 행복할 가능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여기까지 진행된 마당에 되돌릴 수는 없었다.
“난 아리아 하인즈, 하인즈 대공가의 대공녀이니까요. 남작 가문의 딸인 황태자비께서 가진 친정 가문에 대한 책임감과는 비교할 수 없이 무겁답니다.”
또한 여기서 납득하여 무너지는 것은 에시카에게 지는 것이리라.
그때 에시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결혼 첫날밤부터, 남편이 매춘부와 그런 짓거리를 했다는 것을 알고 난 내가 발을 잘못 들여놓았음을 깨달았어요.”
에시카의 시선이 담담하게 창 바깥을 향했다.
대공녀의 가슴이 철렁였다.
에시카는 그녀와 대화하고 있지 않은 듯 독백을 이어갔다.
“이미 늦었다. 그렇게 생각했죠.”
“…….”
“그런데 이미 늦지 않은 것이더군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에시카가 클라우스 공작가에서 겪었던 일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남편은 제 소꿉친구와 외도하여 아이를 임신시켰고, 시어머니는 심각한 학대를 자행함에 더해 며느리인 그녀를 죽이려고까지 했었고.
비극적인 결혼생활을 3년간 지속해 오다가 이혼한 에시카였다.
물론 아리아 하인즈는, 제 결혼 생활이 그보다는 덜 고통스러우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뒷배에는 하인즈 대공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브레이튼의 여성 편력을 고치려는 의지 없이 덮기만 하려는 황후의 태도를 보아도, 황실에 제 편은 없을 것이다.
입술을 꾹 깨물던 그녀는 말을 이었다.
“……늦었어요. 저는…….”
“평생 속이 미어지도록 참고 사는 것보다는 이혼하는 것이 낫고.”
“…….”
“인생 황혼기에 하는 이혼보다는 신혼에 하는 이혼이 낫고.”
에시카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거슬러 오다 보면 이혼보다는 파혼이 낫죠. 낭비한 시간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대공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황실 혼사의 파혼, 누구도 입에 담을 수 없는 주제였다.
하지만 에시카는 그게 뭐 어떻냐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대공가의 영애이건 남작가의 딸이건,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잖아요?”
그 순간 대공녀는 생각했다.
어쩌면, 에시카는 처음부터 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아리아 하인즈는, 자신이 이 결혼을 통해서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되돌릴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제 자존심 때문이었다.
하인즈 대공녀로서의 명예와 가문의 기대.
하지만 그런 것들이 평생의 행복보다 중요할까.
“…….”
그래, 처음부터 자신이 화를 낼 대상은 에시카가 아니었다.
자신과 약혼했음에도 난봉꾼 짓을 고칠 생각이 없어 보이는 2황자 브레이튼과,
빤히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일언반구 없이 선물이나 요구하는 황후,
그리고 미래가 예정된 이 결혼을 미련스레 잡고 있던 자기 자신!
“……당신은 정말 잔인해요.”
고개를 숙인 하인즈 대공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에시카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녀에게 답하고 있었다.
진실이란 쓰지만 몸에 좋은 약이다. 지혜로운 자만이 그 가치를 판별할 수 있지.
하인즈 대공녀는 지혜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멍청하지도 않다.
“…….”
하인즈 대공녀는 돌아섰다.
그림자가 져서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에시카는 그녀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잠시 후 하인즈 대공녀가 응접실에서 나갔고, 에시카는 기지개를 켰다.
그녀에게 한 말은 이전의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
닷새 후,
“이혼보다 파혼이 낫다라.”
먼 곳을 바라보던 레스반이 입술을 달싹였다.
새빨간 노을이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에시카는 소파에 앉아 책을 보며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고, 노을을 보던 레스반은 에시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푸른 눈이 빛을 받아 신비로운 보랏빛으로 보인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레스반의 말에 에시카는 흠, 하고 잠시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책을 덮었다.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것이 와인인지 독배인지 알면서도 굳이 마시는 것은.”
하인즈 대공가에서 황가로부터 파혼 의사를 표시한 것은 대공녀가 돌아간 지 사흘 후였다.
하인즈 대공은 황제에게 직접 사과했고, 황제는 언짢아했으나 그 뜻을 받아주었다.
눈치 볼 만한 대공가가 사라졌으니 브레이튼에 대한 질 나쁜 소문들은 더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황후는…… 곧장 앓아누웠다고 한다.
“미련한 짓이죠. 하인즈 대공녀는 옳은 선택을 한 거예요.”
레스반은 에시카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약혼 파티에 브레이튼을 초대한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되는 것은, 레스반조차 미처 예상치 못한 이벤트였다.
그는 궁금했다. 에시카의 다음 계획이.
레스반은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에시카의 시선이 천천히, 레스반의 눈과 마주친다.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옳은 선택이라.”
짙은 시선은 늘 그랬듯 그녀를 옭아맨다.
“그렇다면 그대에게 묻고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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