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06)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06. 만독불침(106/192)
#106. 만독불침
2024.03.15.
“그대는 내가 독배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했지?”
레스반의 말에 에시카는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요. 확신하지 않아요. 잔이 아무리 휘황찬란해도 내용물은 마셔 봐야 아는 거니까요. 연인 관계와 결혼 생활은 다르고요.”
부정의 여지조차 없는 칼답에 레스반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그는 에시카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마시기로 한 이유는 단순히 복수를 위해서인가?”
“왜냐하면 저는 이미 만독불침이거든요.”
“…….”
“독에는 내성이 생겨, 어떤 독이든 두렵지 않죠. 독배인지 와인인지 구분해야 하는 것은 범인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이고, 전 달라요.”
당당하다 못해 뻔뻔하기까지 해 보이는 에시카의 답에 레스반은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독배가 아니라고 확신한다는 답이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서운하기는 하지만 이런 그녀의 모습도 에시카다워서 즐겁다.
“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배신한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겠군. 당신은 독이 통하지 않는 여자이니까 말이야.”
레스반의 말에 에시카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입을 닫았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글쎄요, 아마 그러고 싶지 않을 거예요.”
“…….”
“날 배신한 자의 말로를 이미 알고 있지 않나요?”
레스반은 에시카의 쾌활한 목소리에서 살기가 섞인 한기를 느꼈다.
확실히 에시카를 배신한 한 남자의 상황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철저한 몰락과 패배, 그리고 에시카로부터 버림받고, 영원히 갈구하며 살아가야 하겠지.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상기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에시카는 속삭였었다. 아주 오래전에 있던, 어느 악녀의 이야기를.
믿기지 않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악녀의 이름은 영령이었다.
“황태자 전하께서는 그런 멍청한 남자들과 다르죠.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셨잖아요.”
레스반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빠져나갈 곳이 없는 말이었다.
그녀를 놀리기 위해, 그런 멍청이가 되리라고 제 살을 깎아내릴 수는 없으니까.
발랄한 에시카의 모습에 웃음이 비집고 나올 것 같았다.
“이런데도 제가 전하가 독배인지, 아닌지 궁금해해야 하나요?”
확실히 제가 독배일지라도, 그녀의 앞에서는 순한 술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의 입술 안에 침입하기 위해서 튜레시안의 전쟁광은 철저한 을이 될 테니까.
그리고 절대 그녀가 자신을 뱉어내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아니.”
레스반은 손을 뻗어 그녀의 여린 턱선을 쓸어 올렸다.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여인.
하지만 한쪽 눈을 가늘게 뜨며 다른 말꼬리를 잡는 것에는 주저하지 않았다.
약혼 파티에서 칼리안의 앞에서 그녀에게 키스했던 그 감정 그대로,
“……가치없는 질문이었군. 그대에게는.”
영령이었을 적 황제의 여자가 되겠다는 말을 전했을 때, 독영의 표정이 떠오른다.
그때는 몰랐다.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대해 줄 남자는 바로 옆에 있었다는 것을.
“……”
사실 그가 독배인지 아닌지는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두 번의 실패, 한 번의 깨달음, 그리고 이제야 잡은 굳건한 그의 손.
“전하는 저를 온전히 믿나요?”
에시카를 바라보는 레스반의 눈동자가 짙어졌다.
찬란한 태양의 빛을 구름이 가리우고 있었다.
“선택권이 없는 문제야. 내가 머리만큼 심장이 뜨거운 사내인지 깨닫게 해 준 그대이니.”
레스반의 입술이 달싹였다.
클라우스 저택의 호수에서 에시카를 처음 마주했을 때,
아니, 하세츠의 창고에서 에시카를 만났을 때,
어쩌면 그전, 그보다 오래전부터 오로지 그녀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듯 레스반은 에시카에게 운명을 느꼈다.
이 모호한 집착과 사랑의 근원에 대한 답은 그녀만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대의 입술이 보이는군.”
레스반은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달곰하고 향기로운 에시카의 숨이 느껴진다.
연약하게 움찔대는 어깨를 틀어안으며 그는 그녀의 안에 더욱 깊이 침입했다.
에시카의 호흡을 얽었다.
옅은 갈증이 채워지고 더 짙은 갈증이 치밀어오른다.
**
“타메론이시여…… 이 고난 또한 당신의 큰 뜻의 일부일 뿐입니까.”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는 황후의 입술은 바싹바싹 말라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계획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악랄한 악마의 화신, 에시카! 그녀는 황후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의 종은 마녀의 악랄함에 굴복하지 않고 충실하게 당신에게 나아갈지어니, 저에게 지혜와 축복을 내려 주십시오.”
황후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그녀의 눈동자에 초점은 없었다.
잠시 후 감정이 격해짐에 따라 호흡이 거칠어지자 황후는 협탁의 서랍을 열어 약물이 든 작은 병을 열었다.
그리고 그것을 급하게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황후의 입술을 타고, 약물 방울이 선을 남기며 목덜미로 흘러내린다.
그녀는 이내 비틀비틀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눈이 초점 없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입술 끝은 고무감으로 비틀렸다.
“아아…… 당신이 보입니다. 타메론이시여.”
그리고 그렇게 미소 지으며 있기를 수십 분, 약 기운이 풀리자 황후는 다시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눈가는 빨개져 있었고, 눈은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타메론의 영광이…… 온 대지에 임하시오니…….”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검은 옷을 입은 자들 두 명이 황후의 아래 머리를 조아렸다.
황후는 여전히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그러한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닌지라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보고를 시작했다.
“황후 폐하. 명령하신 대로 칼리안 클라우스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황후는 마음을 다잡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의미에서 칼리안에게 사람을 보냈다.
보고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떨떠름했다.
“유리 아네시스가 에시카 클라우스에게 악마가 씌었다는 진술서를 쓰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걸 가져갔는데 제 아내의 글씨를 보고 클라우스 경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그리고 마녀에 대해 진술하기를 거부하더군요.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분노로 파르르 떨기만 하고…….”
유리 아네시스가 쓴 글씨를 보고 칼리안이 화가 나서 자리를 떠나 버렸다니, 황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튼 정신을 다잡을 생각이 없다면, 조카를 지원해 줄 필요는 없겠지.
“다 소용없다…….”
“예……? 황후 전하?”
“결국 그 끝은 파멸일지라.”
황후의 입술 끝이 실룩대고 있었다.
그녀는 점점 더 미쳐 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
“황후가 하인즈 대공녀를 잃은 대신 새로운 카드를 얻게 될 것 같아요.”
저택의 응접실, 에시카는 메르힌 부인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수도의 사교계의 중심 인물 중 하나가 된 메르힌 부인은, 빠르게 적들의 거취에 대한 소식을 에시카에게 제공해 주었다.
“새로운 카드요?”
“네, 아스티아 황녀님이요. 그분의 소재에 대해 파악했대요. 아마 국혼식에 맞추어 황궁에 도착할 예정이고요.”
메르힌 부인은 진지한 표정으로 걱정을 담아 말했다.
에시카는 우아하게 찻잔 속의 찻물을 한 모금 넘기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전란에서 목숨을 구한 황족들 중 한 분이시잖아요. 살아 계시다는 것이 알려졌는데, 어느 순간 소재가 모호해졌었고…… 그런데 마로운 평원지대에서 목축업으로 성공했다고 알려진 거예요.”
“…….”
“남편분은 수완이 뛰어난 상인이래요. 굉장히 넓은 토양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말과 소, 양들을 키우고 있고 그 수입이 연 삼십만 링에 달하니 낮은 품계의 귀족가들보다는 더 나은 혼처죠. 물론 아스티아 황녀님의 소재를 더 일찍 알아냈다면 폐하께서 다른 혼처를 찾으셨겠지만…….”
에시카의 입술에는 옅은 미소가 고여 있었다.
황녀를 마로운 평원으로 인도한 이유 중 하나는, 평민 기사 출신인 그녀의 남편의 신분 세탁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수완이 좋아 꽤 사업을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은 기대 이상의 성과였고 말이다.
메르힌 부인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말을 이었다.
“황녀가 이미 기혼이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잘된 일이에요. 황녀의 혼사에 대해서는 황후가 권리를 가지고 있으니,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는 방향으로 아스티아 황녀의 부마감을 찾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아스티아 황녀가 돌아온다는 것 만으로도 경계해야 하겠죠.”
결국 황궁의 여인들 중 가장 높은 위치에는 황후가 앉아 있다.
아스티아가 황궁에 적응하려면 황후의 안배가 필요할 것이고, 만약 아스티아도 이전의 대공녀처럼 황후의 눈치를 보게 된다면 에시카의 적이 되겠지.
대공녀가 파혼한 이상 황후도 아스티아를 길들이기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아마 메르힌 부인의 걱정은 그런 점을 염두에 둔 것 같았다.
“기대되는군요.”
하지만 에시카는 그런 걱정 따위는 없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네?”
메르힌 부인은 에시카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제나 몇 수 앞을 꿰뚫어 보는 에시카이고, 황녀의 등장이 긴장해야 할 요소가 될 터임에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의아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메르힌 부인에게 에시카는 말했다.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게 된다면, 깜짝 놀랄 거예요.”
“저…… 제가요?”
메르힌 부인은 알아들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얼굴을 알아보게 된다니…… 전에 만난 적이 있다는 건가?
“그런 게 있어요. 힌트는 여기까지.”
에시카는 즐거운 표정으로 말을 끊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녀를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에시카가 했던 말이 틀렸던 적도 없다.
“여자들에게 시누이란 반가운 존재만은 아닌데.”
홍차 향이 감미롭게 코끝을 간질이고 있었다.
에시카는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더 넘겼다.
“내 편일 때는 다르죠.”
그녀의 손에는 에메랄드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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