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07)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07. 다시, 결혼(107/192)
#107. 다시, 결혼
2024.03.16.
“칼리안. 저랑…….”
유리는 칼리안의 뒤를 쫓으며 소리쳤다.
“저랑 이야기 좀 해요. 네?”
하지만 칼리안은 유리의 손을 뿌리치고 앞으로 걸어 나갈 뿐이었다.
유리는 안간힘을 다해 뛰어온 뒤 칼리안의 앞에 멈추어 섰다.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그녀는 도끼눈을 하고 따졌다.
칼리안은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언제까지 저를 피하실 거예요? 전 아론의 엄마예요. 황후 폐하께서 허락하신, 당신의 부인이고요.”
“…….”
“최근 일 때문에 당황스러운 건 알아요. 저도 미치도록 당황스러웠으니까요.”
황태자의 팔짱을 낀 에시카의 모습이 떠오르자 밥맛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황후 폐하께서 에시카 그 계집을 가만 두지 않으실 거예요. 그깟 것이 황태자비 자리라니…… 말도 안 되지. 결국 모든 게 올바르게 돌아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유리는 이를 으득 갈았다.
국혼일이 내일 모레였지만, 유리는 에시카가 황태자비가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런데 공작께서는 진술서도 거부하시고…… 황후 폐하를 실망시키셨어요. 그리고 저와의 대화조차 피하고 있죠. 대체 누구의 편이신가요?”
유리는 서운함을 담아 칼리안에게 따졌다.
“설마 아직도 에시카에게 미련이 남으신 건가요?”
칼리안 클라우스. 이제 영광에 빛나는 클라우스 저택과 공작위, 막대한 자산은 없지만, 그래도 잘난 외모와 출신은 남아 있었다.
칼리안을 잘 일으켜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아야 한다.
칼리안의 고모인 황후도 에시카를 적대하는 것 같으니, 분명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칼리안은 완전히 의욕을 잃은 것 같았다.
“…….”
그리고 저 눈빛은…… 분명 자신을 경멸하고 있었다.
한때 칼리안은 유리에게 알렛 반지까지 사 주며 다정하게 굴었다.
형편없는 에시카에 비해 괜찮은 여자라고 유리를 평가했고, 그녀에게 호감을 나타냈었다.
그러나 지금의 칼리안의 눈에는 조금의 온기도 담겨 있지 않았다.
유리는 이 상황이 답답하고 싫었다.
“날 봐요, 칼리안.”
유리는 칼리안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난…… 당신을 사랑한다구요. 우리는 분명 잘 해낼 수 있어요.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고…….”
하지만 칼리안은 다시 매몰찬 손짓으로 유리의 손을 걷어 내었다.
그리고 입술을 달싹였다.
“사랑?”
그 되물음에 유리는 어깨를 흠칫했다.
칼리안의 차가운 눈동자에, 제 모습이 맺혀 있었다.
“……날 사랑해서, 에시카와의 결혼 전에 내게 그런 편지를 보냈나?”
칼리안의 낮은 목소리가 유리의 귓가에 흘러들었다.
일순간 유리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
칼리안의 입술 끝이 비릿하게 비틀렸다.
“에시카 브리기트의 추악한 진실, 그대가 보낸 편지의 제목이 기억나지 않나 보군.”
유리의 눈동자에 당황한 빛이 잠시 스쳐 지나갔으나 유리는 발뺌을 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무슨 편지를 보냈다는 거죠?”
“뻔뻔하기도 하지. 그래…… 당신은 늘 뻔뻔했어. 온통 거짓투성이인 여자였지.”
“칼리안…….”
칼리안이 손을 뻗어 유리의 어깨를 밀었다.
몇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자 유리의 등이 차가운 벽에 닿았다.
유리는 칼리안의 눈에 피어오르는 경멸 섞인 살기를 마주했다.
“당신이 에시카에 대해 쓴 진술서의 필체와, 내가 에시카와의 결혼 전에 받은 편지의 필체가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칼리안의 말에 유리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일전에 청사에서 칼리안에게 편지를 썼을 때는 그 점이 걸려서 대필을 맡겼었다.
조사관이 도움을 주었고 말이다.
하지만 에시카에 대한 진술서를 쓸 때는 별생각 없이 본 필체로 글씨를 썼는데, 설마 그걸 봤다니!
이제 발뺌이 소용없어졌다.
“난 뿌리부터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리고 내가 덫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지.”
칼리안의 눈빛이 유리의 목을 죄어 오는 것 같았다.
가늠하기 어려운 분노의 눈길과 차가운 목소리.
유리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당신은 날 사랑해서가 아니라, 내가 에시카의 남편이기 때문에 나를 빼앗고 싶어 한 거야. 지독하고 더러운 열등감 때문에.”
칼리안의 비난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쏟아졌다.
“에시카보다 존귀한 자리에 오르고 싶었겠지. 자신을 친구라고 믿는 그녀를 배신하고 어머니에게 빌붙어서 학대하고,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어.”
그리고 그것은 유리의 정곡을 정확히 찔렀다.
“…….”
“결국 나는 당신이 열등감으로 놓은 덫에 걸려든 것이고, 에시카…… 그녀를 빼앗겼지. 당신과는 비교도 안 되는 보석 같은 그녀를…….”
뒤이어지는 마지막 말은 절규에 가까웠다.
“……황태자에게 빼앗겼다고. 당신 때문에!!”
칼리안은 주먹으로 유리의 얼굴 옆의 벽을 강하게 내리쳤다.
쿵 소리와 함께 돌가루가 날렸다.
그의 주먹에서는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말이다.
보랏빛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격랑하고 있었다.
칼리안은 에시카를 되찾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에시카가 유리의 목을 조르라면 조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리는 꾹 쥔 주먹을 바들바들 떨다가 독기 어린 눈으로 말했다.
“이제 와서 피해자인 척하지 말아요. 칼리안.”
유리의 말에 칼리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닥쳐.”
“당신의 지금 모습은 당신의 선택이에요. 당신이 에시카가 아닌 나를 선택했기에 내가 당신 앞에 있는 거고…….”
“너 같은 여자, 선택한 적 없어.”
“아론이 존재한다는게, 당신이 날 선택한 증거예요!”
유리가 바락 소리치자, 칼리안이 주먹을 꽉 쥐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와서 그렇게 말해 보았자 소용없어요. 내 배 속에 당신 아이를 임신시켜 달라고 위협한 적도, 애걸한 적도 없지만, 난 당신 아이를 낳았으니까요.”
아론 클라우스. 유리를 통해 본 클라우스가의 핏줄이었다.
칼리안은 유리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제기랄……!”
칼리안의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결혼 전부터 에시카와 나를 갈라놓기 위해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청사에 고발했어. 내 고발이 받아들여지면 황후 폐하께서 우리의 혼인을 취소하실 거야.”
“당신, 내가 나간다고 에시카가 돌아올 것 같아요?”
“돌아오지 않더라도 상관없어 이제.”
고발 사실을 들은 유리가 펄쩍 뛰며 악을 썼다.
“칼리안!”
유리를 바라보는 칼리안의 눈에는 차가운 분노 외에 일말의 감정도 없었다.
“그저 당신이 죽기보다 싫을 뿐이야.”
**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해 놓고, 행복할 수는 없는 거죠.”
칼리안 클라우스가 제 아내인 유리에게 제기한 고발에 대한 소식을 들은 한스는 쌤통이라는 듯 말했다.
“대부인은 이편에도 저편에도 서지 못하고 고심하고 있다고 합니다. 까딱 유리를 쫓아내면, 아이를 자신이 키워야 할 판국이니까요. 그 고고하신 성격에 기저귀도 갈기 꺼려 한다던데.”
사교계의 소문은 빠르기도 하지, 생각하며 에시카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금 예식을 위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하녀들의 단장을 받고 있었다.
틀어 올린 머리카락과 목선은 이를 데 없이 우아하였으며, 푸른 눈동자에 갇힌 눈빛은 차분하고 또렷했다.
목걸이는 슈페르트가 보내준 것으로 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제 다 준비되었으니 나가시죠. 황태자비 전하.”
에시카는 자신을 부축하는 하녀의 손을 잡았다.
“조심하세요. 레이스를 밟으면 넘어질 수도 있어요.”
고수의 몸으로도 뒤뚱거릴 만큼 드레스의 장식이 과다했다.
원래 웨딩드레스들이 이렇지만, 황궁에서 거행되는 국혼이라 디자이너들이 더욱 신경을 썼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곳은, 황태자와의 결혼이 진행될 황궁의 거행전 대기실이었다.
오늘은 황태자와 에시카의 국혼일이었고 말이다.
아마 바깥을 나서면 두 사람을 보기 위해 방문한 모든 귀족들이 거대한 홀을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다.
에시카는 붉은 카펫 위에 올라섰다.
육중한 문이 열리면 이제 그 발걸음은 돌이킬 수 없다.
한 남자가 에시카를 기다릴 테고, 그의 손을 잡게 되겠지.
‘떨리시죠? 저도 떨려요…… 떨려서 죽을 거 같아요. 아, 죄송해요. 부인, 아니, 황태자비 전하께서도 떨리실 텐데.’
셀라가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난 괜찮으니까 긴장 풀어, 셀라.’
‘헉, 역시 부인은 대단하세요…….’
에시카는 문득 그 애의 얼굴이 떠올라 희미하게 웃었다.
행진곡이 시작되었다.
영령이었을 적 마을에 가서 재미로 결혼운을 본 적 있었다.
독영과 영령 둘 다 십대 초반 정도였을 어린 시절이다.
점쟁이는 영령의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아가씨는 대운이 심상치가 않어. 시집을 세 번은 가겠구먼.”
어이가 없어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따지려는데 점쟁이가 이번에는 독영을 보고 말했다.
“총각은 신수는 훤한데 아직 인연이 없구먼. 다음 생에서나 가능하겠어.”
나오는 길에 돌팔이 점쟁이라고 욕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재미있군.
쩌억-
한 겹의 문이 더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꽉 막힌 대기실과는 달리, 거행전은 높은 천장까지 이어지는 유리창을 통해 빛이 쏟아지고 있어 매우 밝았다.
잠시 아릿하던 시야는 몇 초도 되지 않아 빛에 적응한다.
에시카는 빛 속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아름다운 황태자비의 등장을 보고 있었다.
에시카의 자세는 곧았고 자태는 숨이 막히게 아름다웠으며 그녀의 발걸음은 오로지 한 남자에게 향해 있었다.
붉은 카페트 위에, 고고하게 서 있던 그가 에시카를 보았다.
한 발짝, 한 발짝, 두 사람의 시선이 천천히 얽혀들었다.
레스반의 눈동자가 짙게 흔들렸다.
그리고 마법처럼, 딱딱한 입술 위에 미소가 떠오른다.
레스반은 손을 뻗어 에시카의 손을 잡았다.
장갑을 끼었는데도 부드러운 온기가 심장으로 전해지는 것 같다.
에시카는 새삼스럽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 사람이 발을 맞추어 함께 첫 걸음을 내디디는 순간,
황태자와 에시카의 국혼식을 여는 웅장한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