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08)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08. 특별한 날(108/192)
#108. 특별한 날
2024.03.17.
튜레시안에 영광을-
위대하신 타메론의 영원한 사랑이란-
주교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렸지만 에시카는 이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저 고요함 속에 뛰는 제 심장과, 제 손을 잡고 있는 레스반……
그에게로 온 신경이 쏠린다.
“난 오늘부터 그대의 남편이야.”
손을 맞잡았을 때 레스반이 속삭였던 목소리가 뇌리에 남아 있었다.
“그러니 나를 어떻게 써야 할지, 잘 궁리해.”
그녀를 바라보는 짙은 눈동자와, 귓가에 파고들던 나직한 음성.
그가 그런 눈빛을 보낼 때면 온 신경이 예민해지며 손끝과 발끝이 찌릿거린다.
그리고 차분함 속의 복잡함과 여유 속의 옅은 기쁨이 번갈아 가슴을 간질인다.
‘어떻게 써야 할지 잘 궁리하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겠지.’
첫째는 황후에 대한 복수.
이전 삶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갔던 황태후에 대한 분노는 가슴 깊이 남아 있었다.
다음 생에서라도 꼭 당신에게만은 복수하리라-
그녀는 죽음의 순간에도 그 의지를 불태웠었다.
또한 이번 삶에서도 그녀는 적이 되어 에시카의 수족인 셀라를 죽이고 그녀를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
넓은 어깨와 툭 튀어나온 목울대, 큰 키.
예식 제복을 입었음에도 남성미가 넘치는 그의 체형은 가려지지 않았다.
그는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에시카에게 키스하다가, 에시카가 그의 단단한 가슴을 밀어내고 나서야 멈추고는 했다.
에시카는 아직 초야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유는 별 거 아니었다. 아직, 어색해서.
‘레스반이 독영 오라버니의 환생이라는 생각을 하면…… 뭔가 좀 그래.’
에시카는 다른 쪽 손을 꼼지락거렸다.
얼굴에 저도 모르게 열기가 조금 피어오르고 있었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부부가 된다는 것은, 밤을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영령이었을 적 황제와 밤을 보낸 날을 합쳐도 손가락을 다 채우지 못했고.
3년의 결혼 생활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밤을 보내 보지 않은 칼리안…….
확실히, 에시카는 성적인 즐거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레스반과 갖게 될 밤의 시간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지금…….”
레스반의 입술이 옅게 달싹였다.
그의 시선이 비뚜름하게 에시카를 향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나 보군.”
나직한 목소리는 에시카에게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는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아무리 고수일지라도 생각을 읽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텐데.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너무 당황한 티를 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생각이 꼭 ‘그 다른 생각’을 뜻하고 말한 것은 아닐 텐데.
“이를테면 음험한.”
그러나 이어지는 레스반의 말에 에시카는 옅게 숨을 삼켰다.
제국의 무공에 대해 더 면밀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고수들은 정말 생각을 읽을 줄 아는 것인지.
에시카가 반응하지 않고 있자, 레스반은 그녀의 손을 더욱 꽉 쥐었다.
내공을 불어 넣은 것도 아니고, 그저 힘을 주어 쥔 것뿐인데 전류가 흐르듯 다른 손끝이 움찔거렸다.
에시카는 당황한 시선을 살짝 돌린 채 입술을 달싹였다.
“글쎄요, 제 눈에는 부처님만 보여요.”
“…….”
“이곳에서 쓰이는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다고요.”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음험한 생각을 하는 레스반이 음험할 뿐이라는 그녀만의 항변이었다.
주교의 주례사는 한참을 이어지고 있었다.
주례사에 집중하는 것은 타메론의 광신도 황후뿐, 그녀는 눈썹 끝을 세운 채 주교를 보다가 에시카를 노려보다를 반복한다.
귀족들은 에시카의 드레스와 미모에 대해 감탄하며 수군거렸다.
“……궁금하군.”
잠시 후 다시 레스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황태자답게 차분했지만 조금은 서늘하게 들리기도 했다.
“부처라는 남자가 누구길래 계속 그대의 눈에 보이는지.”
딸꾹-
에시카는 웃음을 참으려다가 딸꾹질을 했다.
“비밀이에요.”
그녀가 대답하자마자 그의 주변에 서늘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하객들 중 부처를 찾는 것 같기도 하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딸꾹대자 레스반이 못마땅하다는 듯 그녀의 손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에시카의 입가에는 미소가 맺혀 있었다.
고수를 놀리는 것은, 조금 재미있는 것 같다.
**
“에시카…….”
슈페르트는 엄숙한 분위기 속 황제에게 관을 수여받는 동생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두 번의 결혼, 이 시대에서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것도 제국의 황태자 레스반 데온 루세인과의 혼인이라면 더욱.
만약 레스반이 그 잔혹함과 호전성 때문에, 귀족가들이 기피하는 대상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결혼은 정말이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광 황태자 레스반 데온 루세인, 비운의 이혼녀이자 클라우스 공작가의 주인, 또한 마르넬 케이크의 사업가이기도 한 에시카 클라우스와 혼인하다!]오늘 아침부터 특보를 실은 신문들이 번화가에 뿌려졌다.
두 사람의 결혼을 많은 이들이 우려와 기대를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고, 슈페르트는 그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는 얼마 전, 황제와 독대했었다.
프리하츠의 상권을 쥐락펴락하는 그였지만 고작 아버지에게서 남작 작위를 물려받을 준남작 슈페르트로서는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자리였다.
“경의 동생에 대한 결혼 예물의 일환으로, 엘뮤르를 자유 상업 지구로 선정하겠다.”
황제의 말에 슈페르트의 눈이 커졌다.
엘뮤르가 자유 상업 지구의 후보에 오른 뒤 기대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쉬우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에시카도 분명 바라던 일이기에 얼마나 즐거워할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아마 에시카는 클라우스 저택을 두 개는 살 수 있을 만큼 더 큰 부자가 될 것이다.
“내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이유를 알겠는가.”
“브리기트의 기반을 확고하게 하고, 황태자비를 지지하라는 뜻이시군요. 그리고 혹여 두 분 사이에서 결실이 탄생하게 되시면, 그분도…….”
“한낱 작위보다 돈의 힘이 갈수록 강해지는 세상에 브리기트는 발빠르게 대처했지. 클라우스는 헛된 것을 좇다가 몰락했지만 말일세. 하지만 알다시피, 황궁은 사방으로 막혀 있고 곳곳에 음모가 산재해 있네.”
황제는 건전한 균형이 유지되기를 바랐다.
레스반이 2황자인 브레이튼을 죽이는 것도 원하지 않았고, 황후가 무리한 욕심을 부리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황후와 브레이튼은 제국의 균형에 필요악이지만 황실의 후계에 현존하는 위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지 기반이 전혀 없는 에시카를, 황제는 나름의 방식으로 챙기려는 것이다.
“물론 작위도 중요하니. 승급을 축하함세.”
브리기트 남작가는 더 이상 남작가가 아닌, ‘브리기트 백작가’로 불리게 될 것이다.
한때 온 집안을 걱정하게 하던 그녀가 집안에 준 큰 선물이었다.
황제의 뜻대로 국혼과 동시에 엘뮤르의 상업 지구 선정에 대한 문서가 나왔다.
브리기트는 에시카의 덕으로 명예와 부, 모두를 가지게 된 것이다.
‘고맙다. 그리고…… 행복하거라. 이 오라비가 너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마.’
관을 수여받은 에시카가 서자,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가 들렸다.
클라우스 공작가에서 유령 공작 부인으로 살며 모진 학대를 견뎌야 했던 그녀는, 이제 튜레시안 제국의 누구보다 고귀한 황태자비가 되었다.
**
목욕을 마치고 들어오자 하녀들이 머리를 말려 주었다.
굳이 그녀들이 말려주지 않아도 내공을 운용하면 머리카락의 물기 정도는 금방 날아가지만 가만히 있었다.
이미 황후는 에시카가 무공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만, 그녀는 그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루한 시간이 지나가고 하녀들은 향긋한 무언가를 에시카의 몸에 뿌리기 시작했다.
‘기분이…… 이상해.’
따사롭게 대지를 비추던 태양이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들었다.
늘 찾아들던 밤이지만 오늘만은 가슴이 더욱 심하게 두근거린다.
아마 오늘이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겠지.
“황태자 전하께서는 황제 폐하와 독대 중이라 조금 늦으신다고 합니다.”
하녀들은 에시카의 몸단장을 해 주고 고개를 깊게 숙인 뒤 바깥으로 나갔다.
이곳은 레스반과 함께 쓰게 될 침실. 황태자비의 방.
매우 화려한 구조이며 침대가…… 매우 넓다. 네 사람은 같이 자도 될 정도이다.
그리고 에시카는 얇은 실크 드레스를 입고 레스반이 찾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그녀는, 이 나라도, 중원도, 신부가 신랑을 기다려야 하는 관습만은 참으로 비합리적인 문화라고 생각했다.
영령이었을 적 황제가 들기를 기다렸던 밤들.
그리고 칼리안과 결혼 첫날, 마냥 그를 기다렸어야 했던 밤.
사내들은 선택했고, 그녀는 선택받지 못했다.
무엇 하나 아쉬울 것 없는 그녀였음에도…… 결혼은 여인에게 약자가 되는 일.
“…….”
그래서 에시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이 방에는 창문이 있었고, 에시카는 어디든 갈 수 있었으니까.
한편 독대를 마친 레스반은 에시카와의 신방이 아닌 제 침실로 향했다.
황제와의 독대에서 이리도 집중이 되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목이 바싹 타고 가슴이 답답했다.
시종이 어디 불편하신 것이 아니냐고 물을 정도였으니, 남들이 보기에도 그러한 것 같다.
‘당장 가고 싶지만.’
전쟁터에서 살다시피 한 뒤로, 사람들은 그가 지나갈 때마다 혈향이 난다고 했다.
정말 그런 기운이 풍긴다면 여인에게는 매혹적이지 않겠지.
이런 날은 모든 것이 완벽해야 했다.
욕실에서 물방울이 몸을 타고 떨어지는 시간 또한 길게 느껴지리라, 생각하며 레스반이 자신의 방문을 열었을 때.
그는 우뚝 멈추어 섰다.
“…….”
열린 창문을 등진 에시카의 긴 머리카락이 살랑대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꿈을 꾸는 것처럼 아름다웠으며, 갈증을 심화시키는 향기가 그녀에게서 흘러나왔다.
얇은 옷을 입은 에시카가 제 침대에서 옅게 미소 짓는 모습에 레스반은 아주 잠시, 사고가 정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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