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09)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09. 첫날밤(109/192)
#109. 첫날밤
2024.03.18.
레스반은 침대에 앉아 있는 에시카의 앞으로 다가갔다.
어둠 속, 턱을 살짝 들어 올려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고요했다.
호수 같은 검푸른 눈동자를 격랑하게 하고 싶은 충동을 자제하며 레스반은 에시카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감촉이 손에 얽혀든다.
일순간 레스반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
살짝 뒤로 머리가 젖혀진 에시카는 표정의 변화 없이 레스반을 바라보았다.
수 초간 그녀의 눈동자를 응시하던 레스반은 빠른 속도로 비스듬히 고개를 낮추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에시카의 푸른 눈이 잠시 일렁이다가, 눈꺼풀이 닫혔다.
입술 새를 침입한 그의 숨이 더욱 격하게 얽혀들기 시작했다.
“…….”
레스반은 사막을 헤매다가 오아시스에 탐닉하듯 그녀의 입술을 맛보았다.
에시카가 겪어 본 모든 키스들 중 가장 짙고 격한 키스였다.
잠시 서로의 입술이 떨어지자 에시카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고작 키스로 흐트러질 호흡이 아닌데, 그의 기운이 워낙 강렬한 탓이다.
레스반의 금안이 어둠 속 형형한 야수처럼 에시카의 시선과 맞닿아 있었다.
그의 입술이 달싹인다.
“그대를 내게 줘.”
허락이 필요치 않은 명령조의 간구였다.
에시카는 옅게 미소 짓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드레스 자락은 너무도 쉽게 젖혀졌고, 투둑- 하고 뭔가가 요란하게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레스반은 단정한 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의 손길은 자제력이 없는 모양이었다.
“예뻐.”
그녀의 선을 감상하는 듯한 레스반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침대 바닥으로 실크 드레스가 액체처럼 흘러내려 떨어졌다.
에시카는 드러난 몸의 일부를 제 손으로 조금 가렸다.
그녀는 달빛을 받아 빛나는 여신처럼 고고하게 아름다웠다.
잠시 레스반을 바라보던 에시카는 제 몸을 가린 손을 뻗어 레스반의 옷깃에 대었다.
그녀의 손끝을 타고 흘러드는 간질이는 듯한 기운에 레스반의 입술 끝이 옅게 꿈틀거렸다.
“이제 전하도요.”
레스반은 투박한 제 손으로 제복 재킷을 벗고, 셔츠의 첫 단추를 툭 풀었다.
그의 목울대 아래 단단한 근육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는 늘 제복이나 경량 갑옷을 입고 있었고, 이것은 에시카가 처음으로 목격하게 되는 그의 완전한 맨몸이었다.
레스반의 어깨는 넓었고 곱고 서늘한 얼굴과는 달리 단단한 근육이 잡혀 있었다.
툭-
레스반은 드러나는 제 몸을 빤히 보는 에시카를 보며 셔츠 단추를 마저 풀었다.
고개를 돌리며 얼굴을 붉히지 않고, 뻔하지 않게 눈을 일렁이는 그녀의 반응이 좋았다.
에시카의 당돌함은 갈증을 심화시키고 소유욕을 자극한다.
마지막 단추가 튕겨져 나가자 그의 복근이 드러났다.
매우 단단해서 어지간한 단검으로는 벨 수 없을 것 같은 몸이었으나 어린 시절의 전란으로부터 비롯된 흉터가 곳곳에 있었다.
에시카는 그중 하나를 만져 보았다.
장골의 바로 위에 위치한 오돌토돌한 그것을 부드럽게 쓸어내리자, 레스반의 눈썹이 꿈틀 움직인다.
레스반은 에시카의 손을 잡아끌어 제 단단한 가슴에 대었다.
“내가 더 참아야 하나?”
그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에시카는 고개를 저었다.
레스반은 다른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누르며 힘을 주었고, 뒤로 넘어간 에시카의 등이 침구에 닿았다.
“……으음…….”
이윽고 살갗에 맞닿는 부드러운 감각에 에시카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의 입술이 스쳐가는 쇄골이, 모든 살결이 일렁이는 불에 데이는 듯 뜨거웠다.
에시카는 때로 그의 머리카락 속에 손을 넣고, 어깨를 잡으며 힘을 주기도 했으며 그는 움직이지 않는 단단한 바위처럼 느껴졌다.
그를 끌어당기고 싶으면서도 밀어내고 싶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야릇하고 묘한 감각에 에시카는 가쁜 숨을 내쉬며 그와 뒤엉켰다.
레스반은 인내의 끈이 다해 가는 와중에서도 그녀의 모든 반응을 세밀하게 살폈다.
자극으로 역치가 차오를수록 눈썹이 굳었으나 에시카를 부드럽게 준비시켰다.
“그대의 약점을 찾았어.”
아찔하게 숨결을 불어넣는 레스반의 목소리에 에시카는 신음을 참지 못했다.
이어 그의 짖궂은 목소리가 들렸다.
“긍정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군.”
항의하듯 바라보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키스가 그녀의 볼멘소리를 막았다.
머릿속에 뜨겁고 아찔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사내와의 밤이 원래 이런 것이었나?
경험은 전부 백지가 되어 버리는 느낌이다.
레스반의 손길은 다소 투박하기도 했지만 그는 에시카에게 즐거움을 주는 지점을 꼼꼼하게 찾았다.
그녀의 생각을 읽듯 무엇을 바라는지 알아내어 부드럽게 괴롭혔다.
에시카는 손을 뻗어 레스반의 어깨를 잡고 그에게 입을 맞추고, 그의 팔을 세게 붙잡기도 하고, 목을 끌어안기도 했다.
수 분의 시간이 수십 분처럼 길게 느껴지다가도, 사랑받는 이 순간이 흐르는 것이 아쉬워지기도 했다.
“에시카, 사랑해.”
다소 거친 숨소리가 섞인 감미로운 말이 귓가에 흘러들었고 함께 밀려드는 새로운 감각에 에시카는 그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온몸의 신경이 하나에 쏠려 버린 것처럼, 눈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앞이 아른거렸다.
“황태…….”
“이름을 불러 줘.”
“레스반……!”
에시카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온몸에 차오르는 충족감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레스반의 숨소리도 스스로를 자제하기 어려운 듯 매우 격해져 있었다.
그는 다시 에시카에게 입을 맞추었다.
물에 빠진 채 서로를 얽어 대며 갈구하는 연인들처럼 그들은 호흡을 주고받았다.
레스반의 어깨를 꽉 잡은 에시카의 손등이 떨리고 있었다.
이런 죽을 것 같이 좋은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의 몸은 단단하고 거칠게 차오르는 파도와도 같았다.
아득해지는 정신 속, 그가 에시카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다.
꿈결과도 같은 순간에서 그녀는 레스반의 부름에 화답했다.
다시 이어지는 키스, 그리고 뜨거워지는 머릿속.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뜨겁고 강렬한 감각이 몸의 안쪽으로부터 퍼져 나온다.
허리가, 목 뒤가, 그리고 손발의 끝이 극독이라도 퍼지듯 저릿해졌다.
에시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거칠게 들이켜다가 제 목덜미를 옅게 깨물며 내뱉던 레스반의 짙은 날숨이었다.
벌떼처럼 만연하는 감각들 속에 에시카는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
“죽으면 안 돼요. 오라버니.”
어느 노마의 덜떨어진 들개들로부터 독영이 영령을 구해 주었던 여덟 살의 여름, 만신창이가 된 독영에게 영령이 울며 말했다.
“……나, 어른이 되면 오라버니한테 시집갈 거란 말이야. 그런데 죽어 버리면 어떡해.”
열 살의 독영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영령을 바라보았다.
내가 왜 이 울보를 구해 준 거지,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냥 쫓기고 있던 그녀를 보자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이깟 거 가지고 안 죽어.”
“하지만 노마의 개들은 독사보다 강한 독이 있잖아요!”
“그래도 안 죽어. 내가 안 죽는다면 안 죽는 거야.”
마교는 전란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정예로 육성했고, 독영은 그들 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다 못해 차기의 천마교주감으로 손꼽히는 소년이었다.
그리고 영령은, 약육강식의 천마신교에서 자라났으나 교주의 딸로서 홀로 꽃세계에 사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 아이.
“그리고 난 너랑 결혼 안 해.”
훌쩍이는 영령에게 뒤돌아서며 독영은 말했다.
“응? 왜요?”
“그냥 안 해. 그러니까 나한테 그런 말 하지 마. 한 번만 더 했다간 진짜로……”
영령은 독영의 뒤를 쫓으며 물었다.
아직도 눈가가 빨간 채로, 그리고 저를 구하다가 다친 독영의 다친 상처를 서툰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 애의 삶은 밝을 테고, 이런 순간들은 의미없이 흘러가는 일부일 것이다.
“난 잘생긴 남자가 좋은데 마교에서는 오라버니가 제일 잘생겼어. 그러니까 꼭 오라버니랑…….”
소녀의 손이 내려앉는 온기만으로 터무니없이 심장이 흔들리는 저와는 완전히 다른 삶.
독영은 도망치듯 빠른 보법으로 영령에게서 멀어졌다.
“오라버니!”
결국 그를 따라가는 것을 포기한 영령은 소매로 코를 한번 쓰윽 닦은 뒤, 독영의 작아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걱정에 가득 차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이 빨개. 독에 심하게 당한 거 같은데.”
“…….”
지난 삶, 어린 날의 꿈을 꾸며 중얼거리던 에시카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창문으로 화사한 햇살이 침실로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몸을 옆으로 움직이려는데 허리 부근에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제야 그녀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잠에서 덜 깬 에시카의 눈동자가 점점 또렷해졌다.
에시카는 가슴까지 이불을 끌어올린 그대로 윗몸을 일으켜 앉았다.
“……곤히 잘 자더군.”
옆에 누워 있던 그가 비스듬히 몸을 돌린 채 에시카를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높은 콧대와 찬란한 금안, 조각 같은 얼굴. 그 입술 끝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어젯밤, 이 침대에서 그와…… 있었던 일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단정하고 차가운 겉모습과 다소 잔혹한 이면성, 그리고 또 하나의 얼굴을 가진 레스반.
그의 사랑은 격했고 강렬했으며, 버거울 정도로 짙었다.
만약 에시카의 체력이 강하지 않았다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한 번으로 끝내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지금의 눈빛도, 다소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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